18.아무래도…,

사람이라는 것은 참 이중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 무엇보다 끈질기면서도 맥없이 풀어지기도하고 강하면서도 약하다.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과학을 발전시키고 지식을 쌓아왔지만 감정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할수 없는 일도 저지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냐고?

"오오오! 오오오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흑!"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멍청한 사람도 있다는 말이다.

이성적이고 똑똑한 사람이 있다. 뭐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인물을 하나 말해보라면 아마 유백우가 있을것이다. 마법사로써 탑랭커의 자리에 오른 그는 계산기처럼 치밀한 마법운용과 스킬조합, 그리고 안정적인 마력 운용으로 항상 전투에서 승리해간다.

마왕 토벌 미션 당시 뻘짓을 한번 해서 그렇지 그 이후로도 연합의 머리에 해당하는 자리를 맡아온채로 지금까지 큰 잡음 한번 없이 효율적으로 운용해온것을 보면 알수있다.

그에반해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멍청한 사람이 있다. 대표적으로 랭킹 최하위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건 말도 안돼!'

이 세계에 떨어지자마자 성훈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미션을 수행하며 다른 사람들보다 한걸음 앞서나갔다. 그 외의 랭커들도 금새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였고 대부분의 사람은 하루정도가 지나고나서야 적응을 시작했다. 그에 반해서 두 자리 수에 해당하는 날짜가 지나도록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건 꿈이다.'

'환상이다! 가상현실같은 세상에 납치된거야!'

'악마가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다!'

대체 무슨 똥배짱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것에 만족했다.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살아갈줄만 알았다. 그러나 강제 미션이 시작되고 그러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목숨을 잃은 이후로 사정은 달라졌다. 이렇게 있다가는 진짜 죽고만다. 공포심에 휩싸인 그들은 그제서야 뭐라도 해보려고 했지만 이미 그들은 너무나 늦은 시작 지점에 서있었다.

미션의 선점 보너스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전부 가져간지 오래였고 사냥을 해서 전리품을 가져와도 주위에서는 헐값에 팔릴뿐이었다. 누구도 그들을 도와주지 않고 그렇다고 어디에 들어가서 보호를 받을만한 가치도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밑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희망'이 나타났다.

"그래서 어떻게 지냈죠?"

"구, 구걸을 하면서, 최하급 미션을 수행하면서 지냈어요."

"다른 사람들이 무시하지 않던가요?"

남자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이 자리에는 그뿐만 아니라 열명이 넘는 사람들이 더 있었기 때문이다. 반년이 넘는 세월동안 거지처럼 지내오면서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거라고 생각한 자존심이 어디에선가 고개를 치켜들고 입에 자물쇠를 걸어둔것마냥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눈 앞에 있는 남자가 어깨를 두들기면서 가볍게 끌어안자 거짓말처럼 입이 열렸다.

"무, 무시했어요. 저는…저는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마치 저를 더러운것을 보는것마냥…."

"이해합니다. 김성주님이 잘못한게 아닙니다. 전 이해할수 있어요. 크게 한번 울어버리세요. 가슴속에 맺혀있던게 전부 풀릴겁니다."

"저, 전…전…크흑!"

마치 수도꼭지가 열린것처럼 김성주라는 소년은 닭똥같은 눈물을 흘려대기 시작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그 분위기에 전염된것처럼 눈물을 훌쩍이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성주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준 남자, 깔끔한 정장과 가면을 걸치고 있는 남자는 느릿한 발걸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봤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여있는 대략 스무명 가량의 인원은 전부 꼬질꼬질하며 잔뜩 야위어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성훈의 시선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경멸'이었다.

'너무해요! 이런 곳에 갑자기 떨어뜨려놓고서 살아가라니! 그리고 어떻게 생명체를 그렇게 쉽게 죽일수 있죠?'

너무해?

이 도시, 아니 더 미션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똑같은 조건, 똑같은 시작점에서 출발했다. 하다못해 노인이나 병약자조차 이 세계에 떨어질때는 최하 능력치라는 5 정도는 받고 시작한다. 대체 뭐가 너무하다는 말인가?

'저를 무시했다구요! 제가 마치 거지라도 되는것마냥!'

그럼 하루하루 구걸해서 살아가는 사람을 거지라고 하지 뭐라고 하는가?

그 놈의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운 소년은 구걸로 먹고 살면서도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에게 틱틱대는 태도를 취했다. 그밖에도 수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었다. 밖에서의 생활을 잊지못한채 침체되는 사람, 노력하지 않고 결실이 주어질줄 아는 사람, 음모론에 흠뻑 취해 해태파와 연합을 쓸어버려야 한다는 사람, 그래, 전부 정신적으로 어딘가 문제가 있거나 부족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기에 성훈은 관심을 가졌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무시 받아오셨을겁니다. 여러분이 대체 뭘 잘못했기에, 다른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잘 났다고 무시 받아야 했던겁니까?!"

'무시 받을만 하니까.'

"저는 여러분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얕보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저는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봅니다!"

'눈높이는 같겠지. 서 있는 곳은 전혀 딴판일테지만.'

"저를 따라오십시오, 저를 믿고 움직이시면 더 이상 고민하실 필요 없습니다."

발단은 간단했다.

잔혹한 성자 김이현. 그가 이끌고 있는 구원 길드의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수 없는 충실함과 헌신으로 활동해왔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그런 사람들을 만들어냈는지 알수는 없었지만 주어진 몇 가지 정보로 성훈은 간단한 추론을 할수 있었다.

'종교에 관련된거겠지.'

이능이 존재하지 않는 지구에서조차 사이비종교가 판을 치고 거기에 빠져서 전재산이나 인생을 바친 사람이 많았다. 더 미션의 세계는 어떠냐고? 분명 그런 사람은 줄어들었다. 그러나 반대로 그 '질'은 더 높아졌다.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인 온갖 '힘'을 직접 확인하고 그야말로 광신도 중의 광신도로 바뀌어버린것이다. 김이현은 모종의 방법을 써서 그 신앙의 대상을 자신에게 바꾼것같았다. 그렇다면 성훈이라고 흉내내지 못할 이유가 어디있으랴?

마침 주변에는 그를 도와줄만한 사람이 많이 있었다.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들, 완벽하게 믿고 일을 맡기고 시킬수 있는 동료들, 특히 성훈은 모르고 있었지만 엘리가 여러모로 도움을 많이 줬다. 성훈이 어떤 일을 벌일지 꿰뚫어본 그녀는 사종원을 도와주면서 그녀가 '후보'에 올리고 있던 사람들을 추가시켰다.

'종원이 보다는 못하지만….'

그렇게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부 여러가지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성훈은 '세뇌'를 시작했다.

"세뇌…가 아니라 설득? 어려운거 아니에요. 방법만 알면 여러분도 간단히 할수 있어요."

여러가지 자잘한 사항은 많이 있었지만 크게 추리자면 세 가지로 말할수 있다. 첫 번째는 공감과 위로다. 한 때 사이비 종교에 흠취해있었다던 사람에게 레어 급 무기를 쥐어주고 몇 시간 강의를 받은 성훈은 그렇게 모인 사람들과 얘기를 나눈지 얼마 안되서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을수 있었다.

두 번째는 이지를 흐리는 것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판단하게 하고 자신의 말이라면 검은것을 보고 희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정도가 되야 한다. 이 점 역시 쉬운게 아니지만 간단하게 해결할수 있었다.

허장성세(虛張聲勢)

사용자의 말을 진실로 믿게 만드는 스킬. 이 스킬 하나 덕분에 사람들은 순식간에 성훈이 자신들을 진실로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살짝 양념을 추가해서 독(毒)…이 아닌 약을 사용했다.

사종원이 약과 마법을 매개체로 이중인격이라고 불러도 좋을정도로 바뀌는것을 본 이후부터 성훈은 그에 관련된 약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었다.

'아직 대단치는 않은 수준이지만 이 녀석들 상대로는 이 정도면 충분하지.'

여러가지 독을 섞고 비전의 레시피를 추가해 만든 미약한 중독 성분과 의존성, 판단력을 흐리는 힘을 가진 약을 만들어냈다. 체력 수치가 50정도만 되도 먹히지 않겠지만 여기 있는 놈들은 전부 면밀한 조사를 거친 끝에 모였기 때문에 훌륭하게 약효가 먹혀들고 있었다.

어쨌든 성훈 비전의 약을 향초와 차로 쭉쭉 마시고 있는 그들이 중독 상태에서 빠져나가는건 불가능 하다고 볼수 있었다.

그럼 마지막 세번째는 뭐냐고?

간단하다.

"당신만 믿고 따라가겠습니다!"

"부디 제가 죽어서 천국에 갈수 있도록 약속해주십시오!"

의존성을 키우면 된다.

초월적인 존재가 있는데 누가 자신을 믿고 따르겠냐고? 그거야말로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이렇게 말하면 된다.

'나는 신(神), 그 외의 초월적인 존재들에게 선택받아 영광스러운 미래를 약속받은 사람이다. 나를 따른다면 신이 되었을때 너희들에게 천국의 티켓과 영원한 행복을 약속하마!'

어떤가? 아주 간단하다.

아마 김이현도 이런 논리로 사람들을 설득했을게 분명하다고 성훈은 생각햇다. 처음에는 의심했던 사람도 있겠지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지내면서 반복해서 듣는다면 어느새 스스로가 스스로를 세뇌하는 지경에 이르렀겠지.

그 정도의 광신도화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로 하겠지만 약이라던지, 스킬이라던지,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한지금 사람들은 고작해야 반나절만에 전부 공략 완료되었다.

"쯧."

보이지 않게 몰래 소매에 묻은 얼룩을 닦아낸 성훈은 표정을 하나 안 바꾸고 눈을 마주친채 모두의 손바닥을 단단히 움켜잡고 악수를 했다.

응? 양심이 찔리지 않냐고?

'이건 아주 '착한 일'이라고.'

그렇지 않은가?

비록 약간의 올바르지 못한 방법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그 결과 세상에서 쓰레기 취급 받던 사람들은 새로운 삶의 목표를 찾고 열심히 살아가게 되었으며 자신은 쓸만한 전력을 손에 넣었다.

이게 바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뀡먹고 알먹는 이른바 윈윈(winwin)이라는것 아닌가?

"모두 오늘은 푹 쉬십시오. 내일부터 힘차게 움직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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