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029 I... am shaken?

“흰반점 날개 독수리는 비행 괴수입니다.”

공격대장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메인 탱커분은 어그로 잘 드셔 주시고, 제가 서브탱으로 보조하겠습니다. 딜러분들, 특히 원거리 딜러 분들은 어그로를 주의해주세요. 순발력이 좋은 비행 괴수이기 때문에 어그로가 튀면 아차 하는 순간에 공격 받습니다. 힐러진은 딜러진과 충분히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으시고요.”

어느 정도 브리핑이 마무리되자 메인 탱커가 주섬주섬 일어났다. 그는 특이하게도 자기 키만 한 대도를 들고 있었다. 마치 소풍을 가듯이 그는 대도를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어슬렁어슬렁 괴수한테 접근했다.

커다란 바위 사이에 둥지를 틀고 웅크리고 있던 괴수는 메인 탱커의 접근을 눈치채고 고개를 들었다. 별로 겁을 내지도 않고 빤히 바라본다.

“흐앗!”

메인 탱커는 우렁찬 포효를 내지르며 대도로 괴수를 찔렀다. 이마를 공격당한 괴수는 놀라서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소름끼치는 울음소리를 터트렸다.

―끼아아아악!

날개를 활짝 펼친 괴수가 부리로 사정없이 메인 탱커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팔이 찢기며 피가 흘렀다. 곧바로 힐이 들어오며 상처가 회복되었다. 메인 탱커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힘차게 대도를 휘두르며 연거푸 괴수를 공격했다.

어그로가 안정권에 접어들었다. 딜러들이 슬슬 딜을 시작하려고 준비했다. 그때 힐러진에서 날카로운 음성이 울렸다.

“뭐해요? 힐 안 하고? 지금 4힐인 거 알아요, 몰라요!”

아까 유지웅에게 뭐라고 한 힐러였다. 참 까칠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솟아 나왔다.

‘누가 안 한대! 맷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보려고 일부러 한 템포 늦춘 거 아냐!’

유지웅은 바드득 이를 갈면서 손을 뻗었다. 빛이 뿜어지며 눈에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펼쳐졌다.

“딜 시작!”

딜러진에서 일제히 불꽃이 터졌다. 화염, 섬광, 총탄 등 무수한 공격이 쏟아졌다. 괴수를 중심으로 강한 폭발이 연달아 일어나기 시작했다. 메인 탱커는 그 폭발을 꿋꿋이 맞아가며 어그로를 끌었다.

‘……뭐지?’

메인 탱커는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아픔이 덜어졌다. 본래라면 괴수의 공격과 딜러진의 딜이 튀어 그에게 부상을 입히는 게 정상이다. 탱커도 당연히 아프다. 통증을 좀 더 쉽게 견딜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별로 아프지 않았다. 몸도 어딘지 가벼웠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온몸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었다.

‘힐 때문인가?’

대도를 휘두르면서 메인 탱커, 유찬형은 의문에 빠졌다. 그는 정공을 다니면서 온갖 어려운 레이드에 참가해 왔다. 그만큼 레이드 경험도 많다. 하지만 이런 기상천외한 경험은 어떤 레이드에서도 겪어보지 못했다.

‘설마?’

그의 표정이 확 변했다. 그제야 기억났다. 보호막, 지정 대상에게 보호막을 걸어서 충격을 흡수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다친 다음에 치유하는 힐과 달리, 다치지 않거나 혹은 덜 다치게 해주는 능력이 아닌가?

‘설마?’

그는 저도 모르게 힐러진을 흘끗 보았다. 틀림없다. 저 중에 그 보호막 능력자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 힐러는 네 명이고 그 중 한 명은 그와 같이 온 지인이다. 결국 나머지 셋 중에 보호막 능력자가 있다는 소리다. 그 중 누굴까?

“아차!”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시 딴 생각에 빠져 힐러진을 쳐다본 사이에 괴수의 시선이 돌아간 것이다. 평소라면 절대로 저지르지 않을 실수였다.

―끼아아악!

괴수가 크게 울부짖으며 날개를 퍼덕거렸다. 유찬형은 있는 힘을 다해 대도를 휘둘렀다. 어떻게든 어그로를 가져오기 위해 젖 먹던 힘을 쥐어 짜내 공격했다. 그러나 괴수의 시선은 이미 그에게서 떠나 있었다. 그의 그런 노력이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어그로가 튀었어요!”

서브탱커, 공격대장이 놀라서 고함을 지르며 있는 힘껏 괴수를 공격했다. 딜러들은 놀라서 일제히 딜을 멈췄다. 그리고 다 같이 자세를 낮췄다. 쉴 새 없이 퍼부어지던 공격이 순식간에 뚝 멈췄다.

어그로가 튀었다고 해서 바로 산개해서 도망치는 것은 오히려 괴수를 자극할 수 있다. 차라리 숨죽인 채 탱커가 어그로 확보하는 것을 기다리는 게 낫다.

그러나 탱커진은 딜러진의 그런 기대를 배반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한 번 돌아간 괴수의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 괴수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상승했다. 그제야 딜러진은 산개하며 흩어졌다.

“튀어!”

“힐러진 쪽으로 튀면 안 돼요! 모두 산개해요!”

난리가 났다. 괴수가 쏜살같이 날아서 달려들었다. 가장 강력한 딜로 자신을 괴롭혔던 놈이다. 그는 들고 있던 총 형태의 장비마저 내버리고 숨이 차도록 뛰었다.

“살려 줘! 살려 줘!”

딜러에게 있어 장비란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비싸고, 딜러의 전 재산이고, 딜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귀중한 장비도 괴수의 표적이 되었을 때는 짐 밖에는 되지 않는다.

목표가 된 딜러는 눈물 콧물을 흘리며 도망쳤다. 레이드란 본질적으로 위험한 것이다. 사망자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레이드가 유지되는 것은, 현대 생활과 밀접하게 결합한 생산 활동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허용된 사회적인 위험이었다. 교통사고가 위험하다고 해서 자동차를 없앨 수 없듯이 말이다.

그런 자동차 교통사고 같은, 남들에게 일어나지 않는 재수 없는 일이 왜 하필 오늘, 그것도 자신에게 일어났을까. 쫓기고 있는 딜러는 억울하고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끼아아악!

날개 달린 괴수다 보니 무척이나 빨랐다. 탱커진이 기를 쓰고 쫓았지만 이미 늦었다.

괴수의 발톱이 딜러의 등을 낚아채려는 순간이었다. 발톱이 어깨에 닿으려는 순간 파지직 불꽃이 튀었다. 동시에 괴수의 발톱이 강하게 튕겨나갔다. 그 바람에 딜러가 앞으로 넘어졌다.

“으아아! 죽었어! 딜러가 죽었어!”

“안 죽었으니까 힐 넣어요! 어서! 뭐해요, 지금!”

유지웅은 날카롭게 외쳤다. 아까부터 자신을 짜증나게 만든 정공 힐러였다. 본의 아니게 보복의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녀는 펄쩍 뛰며 반박했다.

“정통으로 맞았어요! 죽었다고요! 죽었을 게 분명해요!”

“안 죽었으니까 빨리 힐이나 넣으라고! 힐 안 넣고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이 미친 힐러야!”

괴수는 허공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다음 목표를 찾고 있었다. 유지웅은 언제든지 보호막을 넣을 수 있게 괴수한테서 눈을 떼지 않으며, 거듭 외쳤다.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빨리 힐이나 넣으라고!”

공격대 전체가 패닉 상태였다. 어그로가 튀었다는 것은 전멸 위기였다. 대부분의 대원들은 그런 극한 상황을 대처할 수 있을 만한 경험이 없었다. 그들 눈에는 공격 받은 딜러가 영락없이 죽은 것으로 보였다. 그것이 걷잡을 수 없는 패닉으로 이어진 것이다.

“탱커! 뭐해요! 빨리 어그로나 잡아!”

보다 못한 유지웅이 외쳤다. 사실 이 중에서 공격대 전멸 위기 경험이 가장 많은 것은 유지웅이었다. 어그로가 폭주한 것만 여러 번 보지 않았던가?

메인 탱커가 급히 괴수에게 달려들었다. 있는 힘껏 발등을 찔러 보지만 괴수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음 먹이를 찾던 괴수는 목표를 결정하고 쏜살같이 날아갔다. 바주카포형 장비를 든, 20대 초반의 머리카락을 붉게 염색한 여자였다.

“주리 씨! 뛰어요! 뛰어!”

안 그래도 도망치고 있던 주리는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부르자 반사적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사색이 되었다. 많고 많은 딜러 중에 괴수가 하필 자기를 쫓고 있었던 것이다.

“안 돼! 살려 줘! 엄마!”

주리는 울먹이면서 있는 힘껏 뛰다가 그만 넘어졌다. 유지웅은 급히 보호막을 넣었다. 아슬아슬하게 괴수의 부리가 주리의 복부를 쪼았다.

카캉!

불꽃이 튀기며 부리가 튕겨나갔다. 보호막이 순식간에 상쇄되며 주리의 복부에 충격이 번졌다.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다행히 급사할 정도의 부상은 아니었다. 보호막이 아니었으면 그녀는 단숨에 몸이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힐! 빨리 힐을 넣어!”

그제야 다른 대원들도, 특히 힐러진이 이변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괴수의 공격에 맞고 한 방에 죽지 않았다. 탱커도 아닌 딜러가 말이다.

“설마 보호막 능력자?”

“그 사람이 여기 있어?”

“누구야! 그 사람이?”

“그, 그럼 저거 잡아도 세금 안 내도 되는 거야!”

마지막은 아무래도 에러다! 대체 누구야! 이런 급박한 순간에 그런 생각 따위나 하는 게!

유지웅은 짜증이 났다. 여기 있는 이들은 대부분 자신보다 레이드를 다닌 지 오래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답답했다. 공격대 전멸 위기를 여러 번이나 겪은 경험자라서 그럴까? 그런 면에서 저들은 영락없는 초보다.

“닥치고 힐이나 넣어! 닥치고 어그로나 잡아! 닥치고 딜할 준비나 해!”

“저, 저 사람이다! 저 사람이 보호막 능력자야!”

“아! 닥치고 진형이나 짜라니까! 괴수 안 잡을 거야! 안 잡을 거냐고!”

화가 난 나머지 막말이 튀어나왔다. 이게 막공의 한계인가? 아니면 이들이 어그로 폭주를 겪어보지 못해서 그런 걸까?

메인 탱커와 서브 탱커가 다시 달려들었다. 사정없이 무기를 휘둘러보지만 괴수는 꿈쩍도 않는다.

어그로는 위협 수치를 말한다. 즉 괴수에게 위협을 가하면 어그로를 잡을 수 있다. 딜이 세다는 것은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조건 중 하나다. 물론 탱커는 딜로 어그로를 잡지 않는다. 무형의 압박을 가해서 괴수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어그로를 잡는다.

그러나 같은 조건이라면 딜이 더 쎈 쪽이 어그로를 잘 잡는다. 딜의 세기 또한 위협을 끄는 주요 조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걸 써요!”

유지웅은 팔목 보호대에 착용하고 있던 A급 장비, ‘부자왕의 눈물’을 꺼내 힘껏 던졌다. 공격대장인 서브 탱커가 엉겁결에 그것을 받았다.

“이게 뭔가요?”

“장비예요! 비싼 거니까 메인 탱커한테 건네 줘요! 딜이 더 쎄질 테니까!”

“맨탱님! 이거 받으세요!”

“C급 장비 따위 받아봤자 딜이 얼마나…….”

메인 탱커 유찬형은 반사적으로 부자왕의 눈물을 받았다. 주먹만 한 구슬이다. 이런 형태의 장비도 있었나?

순간 그는 눈을 부릅떴다. 온몸에서 힘이 넘치기 시작했다. 그는 손에 쥔 대도와 구슬을 번갈아 봤다. 대도가 구슬에 강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서로 호환되고 있는 것이다.

“증폭형 장비잖아! 이거 완전히 돈지랄인데!”

장비는 크게 증폭형과 비증폭형으로 나뉜다. 비증폭형이 흔하고 널리 보급된 장비다. 비증폭형은 일반형이라고도 하는데, 비증폭형 장비끼리는 서로 병용할 수가 없다. 애초에 하나만 사용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소총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병사가 소총 2정을 들고 전장에 나가지는 않는다. 애초에 소총은 개인이 1정만 들고 싸우도록 제작된 것이다.

반대로 증폭형은 수류탄 같은 것으로 보면 이해가 편하다. 소총과는 달리 여러 개를 착용하고 전장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증폭형 장비가 흔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일반형에 비해 효율이 낮아서, 같은 성능을 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비싸지기 때문이다. 둘 다 들면 딜이 더 좋아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럴 만 한 경제력이 있는 딜러는 거의 없다. 혹은 경제력이 된다 해도 기존의 일반형 장비를 팔고 더 좋은 장비를 사는데 돈을 보태는 게 효율적이다.

‘이거라면!’

아무튼 유찬형은 대도를 불끈 쥐었다. 있는 힘을 다해 대도를 괴수에게 휘둘렀다. 칼날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이 그어지며 괴수의 목줄기에 상처를 냈다. 엄청난 딜이다!

―끼아아악!

마침내 괴수가 유찬형을 노려보았다. 어그로 확보. 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공격대장이 소리 높여 외쳤다.

“메인 탱커 어그로 확보! 딜 재개하세요!”

전투가 끝났다.

괴수는 거대한 몸을 땅에 뉘인 채로 생을 마감했다. 딜러들은 저마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들은 믿어지지 않았다. 어그로가 폭주했는데도 살아남았다니.

막공의 경우 어그로가 폭주하면 보통 공격대는 전멸한다. 정공의 경우는 폭주하더라도 사망자를 내는 선에서 수습을 할 수도 있지만, 막공은 그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막공 다니는 능력자들이 어그로 폭주 경험이 거의 없는 것이다.

“살았어…….”

“하하. 살았어! 살았어!”

“보호막 만세! 앱서버 만세!”

“만세! 만세!”

“면세 만세!”

“닥쳐! 누구야!”

누군가 유지웅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대신 욕까지 해주었다. 대원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존경, 흠모, 감탄, 놀라움 등등 온갖 감정이 섞여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다는 게 이렇게나 좋은 일이었을까.

유지웅은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메인 탱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구슬 줘요.”

“아! 여기 있습니다.”

그는 부자왕의 눈물을 받아서 챙겼다. 몸을 돌리는데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부터 자신과 트러블을 빚었던, 정공을 다닌다던 힐러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아까의 도도함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대신 놀라움과 선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피식.

그는 일부러 재수 없게 비웃음을 흘리며 괴수의 머리에 엉덩이를 대고 편하게 앉았다. 중독될 것 같은 쾌감이다.

============================ 작품 후기 ============================

레이드=자동차 운행

으로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죠. 면허만 있다면 말입니다. 자동차는 위험한 흉기이기도 하지만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서 자동차를 없애자고는 누구도 말하지 못합니다. 이미 생활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레이드도 마찬가집니다.

어그로 폭주는 대형 교통사고로 보면 되겠습니다. 운전경험이 많다고 대형 교통사고 경험까지 많은 것은 아니죠. 전체적으로 보면 대형 교통사고는 자주 일어나지만, 개개인의 관점에서보면 좀처럼 보기 드문 일입니다. 어그로 폭주를 많이 겪은 유지웅은, 운전 경험은 얼마 안 됐는데 대형 교통 사고는 많은 겪은 케이스로 볼 수 있습니다.

운전경험이 많다고 사고 경험까지 많은 건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