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050 is a great start, but...

“다시는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공격대 내규를 이와 같이 엄격하게 수정했습니다.”

호텔 홀을 빌려 마련한 공격대 전원 미팅 자리에서 유지웅이 발표했다. 대원들은 스크린에 나타난, 개정 내규를 주시했다.

“레드 몹의 사망이 확인되면 메인 탱커를 제외한 공격대 전원은 사체로부터 최소 10미터 이상 물러나야 합니다. 만약 이것을 무시하고 사체나 결정체로 접근하는 대원이 있으면, 결정체를 노린 것으로 간주, 누구나 즉시 공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죽으면요?”

“강도한테 반격할 때 죽을 것을 걱정하면서 공격하나요?”

“…….”

“결정체로 접근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어떤 경우라도 결정체로 접근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손을 들었다.

“메인 탱커는 왜 제외입니까?”

“혹시라도 결정체로 접근하려는 사람으로부터 결정체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러다가 실수로 메인 탱커가 결정체를 만지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유지웅은 바보 같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대원들도 마찬가지인 듯 쓴웃음을 지었다.

정효주는 유지웅과 애인 사이다. 공격대의 주인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공격대에 해가 되는 일을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막말로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변제 능력이 있는 자들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결정체로 접근하는 자를 누구든지 공격해도 좋다면, 피격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 이 점의 불법 여부가 논란이 되기는 했지만, 남기철은 현행법상 큰 무리는 없을 거라고 조언했다.

결정체는 공격대의 재산이며, 그것을 사사로이 탐내는 자는 범죄자다. 범죄자로부터 공격대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공격하는 것은 정당방위가 된다는 것이다. 과잉방어의 우려가 있긴 하지만.

“전기혁 씨는 외국의 사주를 받고 블루 결정체를 차지할 의도에서 그런 일을 벌였습니다. 또 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해서 엄격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절대로 결정체에 접근하지 마세요.”

“예.”

“내부 사정 상 몇 주간 레이드를 보류하겠습니다. 그동안은 막공이나 다른 정공 활동을 하셔도 됩니다.”

보통 정규 공격대는 복수 정공 가입을 금지한다. 하지만 유지웅은 그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프라임 공격대의 일정만 지킨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식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프라임 공격대원 대부분이 다른 정공에도 적을 두고 있었고, 해당 정공들은 복수 정공 가입 금지 규정에도 불구하고 묵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레드 몹 성공을 통해 프라임 공격대는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공격대가 되었다. 그런 공격대와 친분을 맺어두는 것은 각 정공 입장에서도 대단한 이득이다. 그래서 금지 규정이 있지만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레드 몹 또 잡았으면 좋겠는데. 안 쉬어도 되는데.”

“어쩔 수 없죠. 아마 내부 수사 문제 때문에 그럴 걸요? 우리 중에 전기혁 씨처럼 외부 회유 받은 사람 없나 조사하기 전에는 레이드 재개 안 할 거예요.”

“하긴, 그렇겠네요.”

“그나저나 대체 어느 나라죠? 짐작 가는 데 있나요?”

“글쎄요? 너무 짐작 가는 데가 많아서. 일단 중국, 일본이야 원래 우리나라가 잘 되는 거 싫어하고 또 경쟁 관계이기도 하니까 유력하고, 미국도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나라고, 또 유럽이나 영국도…….”

대원들의 쑥덕거림 그대로였다. 결정체 접근자는 누구든지 공격해도 좋다는 내규가 생겼지만, 사전에 집안 단속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미 정부에서 총력을 기울여 프라임 공격대 대원들의 주변 사항을 조사 중이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진정되기 전까지 레이드는 보류였다.

유지웅은 남기철을 다시 만났다.

“따로 밝혀진 게 있나요?”

“현재까지는 아무런 물적 증거가 없습니다. 보통 용의주도하게 손을 쓴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느 나라가 그랬는지는 알 수 없는 거군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다른 문제 때문에 뵙자고 청했습니다.”

“뭔데요?”

“블루 결정체 공급 문제 때문입니다.”

결정체는 신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경제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신물질이다.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린 결정체와 달리, 블루 결정체는 전략 통제 물질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라늄보다 더 엄격하게 통제되는 물질인 것이다.

블루 결정체 1개면 대형 원자력 발전소가 1년 동안 생산하는 전기를 감당할 수 있다. 건설비용이 수조 원씩 들어가는 원전에 비해 송전 설비도 거저나 다름없다. 환경오염도 없다.

즉 5천억짜리 블루 결정체 20가 있으면, 20년을 가동하는 원전에 맞먹는 전기를 안전하고 환경오염 없이 제공할 수 있다. 몇 억짜리 변환 장치만 있으면 된다. 나머지는 기존 송전 시설을 활용하면 그만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활용 가능한 블루 결정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경쟁관계에 있는 결정체 유통 업체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는 중입니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최대 결정체 유통업체는 SKK에너지죠.”

“흠. 근데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시죠?”

“상부에서는 SKK업체에 블루 결정체를 맡기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한때 국내 최대의 정유업체였던 SKK에너지는 결정체가 등장한 이후로 결정체 유통업체로 변신했고, 화려하게 성공했다. 한국에는 3개 대형 업체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단독 선두는 SKK에너지였다.

“왜요? 그래도 거기가 일처리도 빠르고 대금 지불도 확실해서 레이드계에서는 알아주는 편인데.”

“나라를 위해서라도 지나친 독점은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강 의원님이요?”

남기철은 가벼운 미소를 짓기만 했다. 무언으로 긍정을 대신하는 것이다.

“그럼 생각해두신 업체라도?”

“그런 건 없습니다. SKK에너지만 아니면 됩니다.”

“강제력을 가진 명령인가요?”

“그럴 리가요. 외부에 발설할 수 없는, 비공식적인 권고, 아니 조언이라고 해두죠.”

“뭐…… 참고는 해보겠습니다.”

유지웅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독점? 시장? 그런 것은 자신이 알 바 아니었다. 레이드를 안전하게 마치고, 결정체를 제 값 받고 팔 수만 있으면 그만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것은 없다. 유지웅은 그 말을 실감했다. 그는 전문 브로커를 이용해 중국계 미국인 여권을 두 장 만들었다. 과연 상대는 프로였다. 돈만 확실하게 해준다면 쓸데없는 건 묻지도 않았고, 일에 하자도 없었다.

그가 위장 신분을 만든 것은 암시장에서 몰래 결정체를 장비로 가공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루트를 이용하는 딜러는 전 세계적으로 꽤 많았다. 우연찮게, 혹은 불법으로 얻은 결정체를 장비로 가공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유지웅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주워들었다. 브로커의 입을 통해서였다.

“장비를 C, B, A급으로 나누는데 사실 결정체의 질과는 거의 상관이 없어요. 제작에 사용한 결정체의 양에 따라 장비 등급이 나뉘는 거죠. 25인 괴수 기준으로 결정체 하나를 다 쓰면 A급, 1/2로 나눠서 쓰면 B급, 1/3로 나눠서 쓰면 C급이 되는 겁니다. 물론 각 괴수마다 결정체의 크기는 미묘한 차이가 있죠. 그게 감정가의 차이로 나타나고요.”

“호오, 그런가요? 처음 듣네요.”

“사실 A급 장비가 8, 90억 씩 하는 말도 안 되는 폭리죠. 원가는 25억 정도밖에 안 되니까요.”

몰랐던 사실이다. 대단한 비밀도 아니었는지 브로커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해주었다.

“제가 이쪽 중개 업무만 이십 년을 했는데, 장비 가공에 가장 안전한 나라는 일본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일본이 레이드 선진국이니까요. 우리나라는 공정 설비가 겨우 1개, 그것도 국가 직속으로 관리하는데 일본은 공정 설비가 수십 개가 넘어요. 대부분 민간 기업이 관리하고 있고요.”

“미국이나 중국은 어때요?”

“거기도 나쁘지는 않죠. 하지만 중국은 공정해준다는 사람들을 믿을 수가 없어요. 빼돌리는 경우도 심심치 않으니까요. 미국은 공정 설비를 이용한 모든 기록이 남아요. 그래서 암시장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꺼리죠.”

“일본이 가장 안전하다는 건가요?”

“네. 그렇죠. 대신 비싸요.”

몰래 결정체를 가공하는데 가장 안전한 나라라니. 기묘한 언밸런스가 느껴진다.

유지웅은 일본으로 결정했다. 독도 문제 등 한국과 마찰을 빚고 있어서 불편하지만, 그만큼 안전한 나라라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중국계 미국인 신분으로 입국할 테니 큰 문제도 없다. 정효주처럼 든든한 보디가드도 함께 하니 말이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특수분장을 한 채로 브로커를 만났고 대금 지불도 현금만 사용했다. 위조 여권에 사용한 사진도 분장을 한 얼굴로 찍었다. 기록상 유지웅은 한국을 떠난 적이 없고 일본을 방문한 적도 없는 것이다.

정효주와 손을 잡고 공항 게이트를 통과할 때에는 그래도 내심 떨렸다.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지날 수 있었다. 여객기 객실에 오른 순간 그는 참았던 심호흡을 터트렸다.

“푸하. 이제 살 거 같다.”

“그만 좀 떨어. 보는 내가 다 조마조마하더라.”

“나 그렇게 떨었어?”

“직원이 이상하게 생각 안 한 게 다행이었어.”

위조 신분상 둘은 신혼여행으로 세계를 일주하고 있는 중국계 미국인 부부였다. 유지웅은 키득 웃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자신에게 귀속된 블루 결정체가 잡혔다. 결정체는 공항 검색대에는 잡히지 않기에 안전하게 들고 움직일 수 있었다.

사실 장비 가공은 민간 금지 작업은 아니다. 다만 국내 설비를 이용할 경우 장비로 보호막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게 밝혀진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그는 번거롭게 해외 암시장을 택한 것이다.

말이 암시장이지, 각국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 장비 공정은 어느 정도 묵인했다. 대신 결정체의 매매는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물론 정부의 눈을 벗어난 곳에서 결정체 거래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오죽하면 미국도 ‘통제 불능’이라고 두 손을 든 것이 결정체 암시장이다.

재미있는 것은 선진국으로 자부하는 일본이 결정체 암시장의 최대 국제장터라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겉으로는 암시장을 제재하는 척하면서 뒤에서는 야쿠자와 결탁해서 음으로 양으로 시장의 활성화를 지원했다. 암시장이 커질수록 검은 돈도 많아지고, 일본의 활황에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암시장은 미국의 합법 시장보다 더 합리적이고 안전하다.’라는 말까지 있다.

“돈 많이 들까?”

“10억이면 떡을 친다는데?”

“지웅이 너, 돈 얼마나 남았지?”

“몰라. 효주 네가 잘 알지 않아?”

“저번에 네 몫으로 받은 게 125억이고, 탱커 딜러 거 면세금액 받은 게 2231억이었고, 국가에 진 빚이 880억이었으니까…… 1476억쯤 남았네?”

예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천문학적인 돈이었다. 이 정도면 재벌도 부럽지 않을 정도가 아닌가?

레드 몹 레이드의 성공은 빚 투성이 인생을 한 방에 역전시켜주었다. 덕분에 유지웅은 벼르고 별렀던 S급 장비 가공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설 수 있었다. 어차피 공격대는 내부 단속도 할 겸 당분간은 레이드가 보류된 상태였다.

“글구 보니 진짜 신혼여행 같다. 그치?”

“어머, 얘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싫지는 않은 듯이 몸을 살짝 꼰다. 그게 또 귀엽다.

“아예 온 김에 며칠 푹 쉬었다가 갈까? 일본 온천이 그렇게 좋다던데.”

“그럴까?”

“뭐 온 김에 레드 몹도 나타났으면 좋겠다.”

“왜? 대신 나서서 잡아주고 돈 받으려구?”

“아니. 구경하려고. 우리가 왜 나서?”

어디까지나 둘은 암시장을 통해 S급 장비를 가공하기 위해서 위장 신분으로 방일하는 것이다. 신원이 드러날 일은 일체 해서는 안 된다. 설령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자기 나라도 아닌데 나설 까닭도 없었다.

“아버님, 어머님은 잘 계셔?”

“응. 나라에서 비밀 경호도 대신 해준대. 효주 너네 부모님도 경호해준다던데?”

“나도 들었어. 근데 아버님 어머님, 한 번 뵈러 가야 하지 않을까?”

“벌써 인사드리려구?”

“……싫어?”

정효주는 살짝 긴장한 눈치였다. 그걸 모르는 유지웅은 태연히 대답했다.

“아니. 놀릴까 봐 그러지. 너랑 나랑 친구 사이로 오래 지내온 거 양가가 다 아는데, 같이 동거하고 있어요, 그래 봐. 얼마나 놀리시겠어? 대체 언제 눈이 맞았냐고 놀릴 거 생각하면, 으이구 끔찍해.”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정효주는 긴장이 풀어졌다.

“맞다. 아버님이 벼 재배 그만두시고 과수원 하고 싶으신 눈치던데, 과수원 농장 하나 마련해드리는 게 어때?”

“그래? 왜 아빠가 나한테는 그런 말 안 하지?”

“너를 딜러로 알고 계시니까 그러지. 아버님도 딜러가 돈 못 버는 건 잘 아셔. 왜 말씀 안 드렸어?”

“이제 말할 거야. 돈 많이 벌면 그때 말씀드리려고 미뤄두고 있었어. 근데 아빠 이상하다. 왜 과수원 이야기 나한테는 안 하고 너한테는 해?”

“몰랐니? 아버님이 너보다 나 더 믿고 의지하시는 거. 내가 너보다 더 친자식 같으시대.”

“삐뚤어질 거야. 아빠 뜻대로 불효자식이 되고 말겠어.”

“그러지 마. 그래도 자나 깨나 너 안 다치는지 네 걱정만 하시는 분들인데.”

정효주가 깔깔거리며 그를 달랬다. 일부러 찌푸리고 있던 그의 얼굴이 풀어졌다. 그는 효주의 애교에 약했다. 아니, 효주가 그를 그렇게 길들였다.

============================ 작품 후기 ============================

원래 연참 안 하려고 했는데 어제 2편 올린 이유는 댓글 보다가 제가 쓰러질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