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057 My friend is rich

IACP는 아랍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결정체 유통 기업이었다. 무려 세계 시장의 10%를 점유하고 있는 기업으로, 본래 석유 회사였다가 결정체 산업이 형성된 이후 변신을 시도했고, 성공적인 결과를 달성했다.

그런 거대한 기업이 한국에 지사를 낸다는 소식에 한국 정부와 재계는 바짝 긴장했다. 한국은 지금 뜨거운 감자를 안고 있었다. 블루 결정체를 획득할 수 있는 프라임 공격대 말이다. 아랍 자본의 유입이 프라임 공격대를 노린 건 아닌지 경계심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오일 머니…… 드디어 한국에 상륙하는가? 충격!」

언론에서도 대서특필로 다뤘다. 관련자들은 바짝 긴장한 채 IACP의 행보를 주시했다.

SKK에너지 등 결정체 업체는 떡을 빼앗길까 두려워 더욱 집요하게 유지웅에게 매달렸다. 만약 IACP가 유지웅을 노리고 국내 진출을 한 거라면 큰일이니 말이다. 그러나 국내 4대 결정체 업체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아야 했다.

“뭐라고요? 그게 사실인가요?”

“네. 결정했어요. IACP랑 거래하기로요.”

“어, 어떻게 외국계 기업에…… 정부와 국민들이 쉽게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

“전 고졸이라 무식해서 그런 건 잘 몰라요. 그냥 값 잘 쳐주는데 팔기만 하면 돼요. 남이야 무슨 상관?”

대부분 공격대가 그랬다. 값만 잘 쳐주면 결정체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 다만 한국은 결정체 감정기관이 국가 직속이고, 또 관련 법률에 따라 결정체의 가격이 거의 차이가 날 수 없는 게 그동안의 현실이었다.

국내 결정체 유통기업으로서는 땅을 칠 노릇이었다.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하면서 납품을 따내기 위해 노력했는데, 엄한 외국계 기업이 와서 채간 셈이니 말이다.

그들은 동원 가능한 모든 힘을 다해서 유지웅을 설득했다. 정부 고위 관료라는 사람들이 매일 같이 찾아와서 설득했다. 하지만 유지웅은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안슐이 내놓은 조건은 파격적이었다.

「단 1센트도 챙기지 않겠네.」

지사가 돌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운영비와 부대비용을 제외하고 한 푼의 수익도 챙기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사를 세운 이유는 유지웅이 획득할 결정체를 처분해주기 위해서라고, 그는 자신의 명예를 걸고 약속했다.

「자네가 재주만 부리고 푼돈만 챙기는 것은 내가 두고 볼 수 없네. 친우로서 어찌 그런 기막힌 상황을 모른 체 할 수 있단 말인가?」

안슐은 SKK에너지 등 국내 결정체 업체들의 행각에 진심으로 크게 분노했다. 유지웅도 지금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그의 말을 듣고 그 분노에 전염되었다.

아랍의 경우, 레이드가 끝나면 결정체를 회사에 팔고 대금을 대원들끼리 분배한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같다. 그러나 결정체를 가공해서 판매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의 일정량을 다시 대원에게 분배한다고 한다. 그래서 아랍의 능력자들은 한국의 능력자들보다 배 이상 번다고 한다.

「이 나라 능력자들은 사회 전체에 착취당하고 있군. 통탄할 노릇이야.」

안슐은 진심으로 탄식했다.

「이익을 생산자와 나누는 것은 당연한 경영 철학인 것을. 왜 이 나라 결정체 업체들은 그걸 모르고 있나?」

“안슐. 하지만 한 푼의 수익도 챙기지 않으면 당신에게는 손해가 아닌가요? 40억 달러나 투입을 하셨으면서…….”

「손해는 보지 않을 테니 염려하지 말게.」

“그래도 당신도 좀 수익을 챙기는 게 낫지 않아요?”

「마음은 고맙네만, 내가 수익을 챙기면 내 사익을 위해서 자네를 이용하게 되는 걸세. 그건 내 자존심이 용납할 수 없네.」

이 사람의 배포는 대체 얼마나 큰 걸까? 친구의 손해를 막아주기 위해서 40억 달러짜리 회사를 세워주고도, 자본금이 적어서 미안해하다니. 이쪽이야말로 너무 받기만 해서 미안해 죽겠는데 말이다.

「유통 수익은 전부 자네에게 직접 지급될 걸세. 그걸 자네가 대원들에게 어떻게 분배할지는 알아서 하게.」

안슐은 매물로 나온 빌딩을 통째로 구입하고, 미국에서 공정설비를 들여왔다. 공정설비만 해도 무려 1조 원이 넘는다. 직원들도 대량 고용해서 회사의 구색을 갖췄다. 그 모든 것을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아 해냈다. 판매망은 IACP 본사 루트를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SKK에너지 등 국내 결정체 유통업체들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서 지붕만 쳐다봐야 했다.

“한 잔 들어요.”

강우석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잔을 권했다. 유지웅은 다소 불편한 마음으로 잔을 받았다.

IACP에 결정체를 매각하겠다고 했음에도 국내 결정체 유통업체의 로비와 접대는 끊이지 않았다. IACP가 제시한 조건을 알게 된 유통업체들은 뒤늦게, 유통이익을 그와 나누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버스는 떠났다. 안슐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지사를 설립한 게 아니었다. 친구의 손해를 막아주기 위해서 설립한 것이다. 그 증거로 수익을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부대비용을 제외한 수익의 전부를 주는 것이니.

유지웅은 일부러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안슐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동안 자기가 너무 손해 본 기분이 들어서였다.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자들도 손해를 보면서 레이드를 한 셈이었다.

“매각 업체를 바꾸라는 말씀을 하실 거면 소용없습니다. 저는 이미 마음을 굳혔어요.”

“그런 말을 할 마음은 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유지웅 군의 결정을 지지합니다.”

“네?”

그는 의아했다. 당연히 강우석 의원이 마음을 바꿔달라고 부탁하러 온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니?

적당히 술이 들어가고 강우석이 입을 열었다.

“유지웅 군은 정치가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

“진흙투성이가 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죠.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 떳떳합니다. 지금까지 공직을 이용해서 어떠한 사익도 챙긴 적이 없어요. 내가 원하는 것은 이 나라의 번영 그뿐입니다.”

확실히…… 강우석은 그가 알고 있던 정치가와 이미지가 조금 다르긴 했다.

“SKK에너지 결정체 매각을 생각해보라고 한 것은 이 나라의 경직된 결정체 시장을 완화해보려고 그랬습니다. 결정체 산업으로 제2의 도약을 꾀한 것은 좋지만, 재벌 자본이 대량 유입되면서 시장이 너무 고착화 되었어요. 유지웅 군도 알겠지만, 25억짜리 결정체를 가공, 유통하면 그 과정에서 값어치는 몇 배 이상으로 뛰죠. 그런데 그 유통이익은 능력자들에게는 돌아가지 않고 있습니다.”

“…….”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조련사가 챙기는 꼴이죠. 문제는 그 많은 능력자들이 그런 현실을 잘 알지 못하거나,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겁니다.”

유지웅은 조용히 술을 홀짝였다. 강우석이 다시 말했다.

“잘한 결정입니다. 유지웅 군이 총대를 멨으니, 이제 국내 유통업체들도 경각심이 들 겁니다. 어느 정도 시장 정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죠.”

“칭찬을 해주시기 위해서 저를 부르신 건가요?”

“뭐 그것도 있고요. 본론은 아직 안 꺼냈습니다.”

“본론이 뭐죠?”

“하하, 뭐가 그리 급합니까? 일단 좀 더 먹고 마시고 천천히 즐기다가 꺼내도 충분할 것을.”

은근슬쩍 말을 돌리는 게 여간 노회한 게 아니다. 꽤 어려운 이야기를 싸가지고 온 걸까? 유지웅은 그가 권하는 대로 열심히 먹고 마셨다. 비싼 한식집이라서 그런지 음식이 목구멍으로 솔솔 넘어갔다.

“나라에서는 프라임 공격대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레드 몹을 안정적으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은, 결정체 시장의 헤게모니를 바꿀 수 있는 사실이죠. 첫 레이드에서 프라임 공격대는 훌륭하게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한 명의 사망자도 없이 안정적으로 공격형 레드 몹을 사냥했으니까요.”

이제 본론이 나오려나 보다. 유지웅은 살짝 취한 와중에도 긴장감이 빳빳하게 치솟았다.

“레드 몹을 잡을 수 있는 공격대가 있다면, 그 공격대가 낼 수 있는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고안해야죠. 그것이 정치하는 사람들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떡하면 프라임 공격대에도,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더 큰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까 하고요.”

“그런 게 있나요?”

의아했다. 레드 몹을 잡아서 결정체를 팔면 됐지, 그거 말고도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있나? 무슨 공격대에 스포츠용품 협찬을 받을 것도 아니고 말이다. 설마 나이키 로고가 새겨진 야구모자를 쓰고 레이드를 하라는 것은 아닐 테고 말이다.

“서식지를 벗어나지 않고 얌전히 있는 레드 몹을 찾아가서 잡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결정체 값 이상을 얻을 수 없다는 게 아쉽지요.”

“레이드를 하는 게 결정체 때문인데, 그럼 뭐 다른 게 더 있나요?”

“있죠. 얼마 전 일본에 레드 몹이 출현해서 도쿄를 반파해놓은 것은 알고 계시죠?”

“그럼요.”

자기도 그때 현장에 있었으니 당연히 안다. 순간적으로 뜨끔하기까지 했다. 일본에 간 것을 알고 떠보는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래서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하는 걸까?

“일본은 지금 그 레드 몹 때문에 온 나라가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 전 한국 정부에 제안을 해왔습니다. 프라임 공격대가 레드 몹을 잡아줬으면 한다고 말입니다. 결정체는 당연히 프라임 공격대 것이며, 그에 따른 추가 사례도 지불하겠다고 했습니다.”

“아!”

그제야 유지웅은 감탄했다. 강우석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는 레드 몹을 잡으면 결정체 값만 나오죠. 하지만 레드 몹 때문에 곤란에 빠진 나라의 의뢰를 받아 잡으면 추가 수당도 나옵니다. 국격도 그만큼 올라가니 나라가 좋고, 추가 소득이 있으니 프라임 공격대도 좋고. 윈윈 아닙니까?”

단순한 발상이지만 오히려 이런 간단한 것이 쉽지 않다. 유지웅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어떻게 이렇게 국가와 공격대, 둘 다 도움이 되는 발상을 떠올렸을까?

“의뢰가 없을 때는 적당한 레드 몹을 잡으면 되고, 의뢰가 있으면 그 녀석을 잡으면 추가 소득이 나오는군요. 좋은 생각인 거 같아요.”

“일본의 제안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 그건 거절이요.”

자세한 조건도 들어보지 않고 고개를 내젓자 강우석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레이드에 나서주면 착수금으로 30억 엔, 성공 시에는 60억 엔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90억 엔의 추가 소득이 생기는데, 거절한다고요?”

“그래봐야 결정체 값에 비하면 얼마 안 되잖아요. 무조건, 무조건 거절이요. 저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뼘의 일본 땅도 밟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혹시 가계에 독립투사라도……?”

“그런 분 안 계세요.”

“그럼 왜요?”

“일본 갔다가 지진 나면 어떡해요? 전 오래 살고 싶어요. 그런 위험은 감수 안 할래요. 하여튼 일본은 제외할래요.”

이유는 대강 둘러댄 것이다. 결정체를 공정하러 갔다가 일본에서 겪은 고생을 생각하면, 다시는 발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주제 파악도 못하고 보물이라고 탐을 낸 야쿠자들만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끝까지 혈압이 치솟았다.

강우석은 거듭해서 그를 설득했다. 그는 친일파가 아니다. 무엇보다 국익, 그리고 국가의 공공이익을 중시할 뿐이다. 90억 엔의 외화를 간단히 들여올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원화로는 거의 천 억 가까이 되는 거금이다. 정치가로서 이런 일에 나서지 않을 수가 없다.

“안 가요. 일본은 절대 안 가요.”

하지만 유지웅은 끝내 거절했다. 그에게 일본의 이미지는 최악이었다. 울릉도 레드 몹 사건도 그렇고, S급 장비 사고도 여러모로 부정적인 이미지만 만들었다.

‘90억 엔? 그거 제대로 주기나 할까 몰라. 거기는 진짜 못 믿을 나라야.’

마음 같아서는 레드 몹이 제대로 사고쳐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 일반 국민들의 피해는 안 된 일이겠지만, 사실 그런 자각도 없었다. 그에게는 먼 나라의 일이자,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 녀석이 2차 레이드 목표입니다.”

드디어 유지웅이 2차 레이드를 결정했다. 목표는 이번에도 공격형 레드 몹이었다. 프라임 공격대 특성상 체력형 레드 몹은 잡기 버거웠다. 레이드가 장기화될 텐데, 유지웅이 탈진해버리면 즉시 공격대는 전멸할 테니까. 보호막 능력자가 3, 4명이 있다면 모를까, 체력형 레드 몹은 어려웠다.

스크린에는 거대한 나무가 비춰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 나무가 아니라 나무처럼 생긴 레드 몹이었다. 서식지를 정하면 뿌리를 내리고 몇 년이고 장착하는 놈이어서, 레드 몹이지만 옐로 몹보다 활동 반경이 더 적다.

“마이카이군요.”

“이번에는 좀 더 안전한 녀석이군요.”

마이카이는 스키너보다 더 얌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선공 습성만 없었다면 옐로 몹으로 착각할 수도 있는 녀석이다.

공격대 브리핑에는 안슐도 참석해 있었다. 그는 프라임 공격대의 레이드 과정을 보고 싶어 했다. 유지웅도 흔쾌히 승낙했다. 친구에게 자신의 공격대를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안슐은 대원들의 표정, 장비 상태를 보며 흐음 흐음 하는 나지막한 감탄을 쉬지 않았다.

브리핑을 마치고 레이드 날짜고 정한 뒤 해산했다. 유지웅은 정효주를 먼저 돌려보내고 안슐과 같이 나섰다. 결정체 유통 문제로 할 이야기가 있었다.

「나도 레이드에 옵저버로 참가할 수 있나? 레드 몹 레이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꼭 한 번 보고 싶군.」

“문제없을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탈출 장비는 꼼꼼하게 챙기세요.”

「걱정하지 말게.」

지하크가 리무진 뒷좌석을 열었다. 안슐이 그에게 먼저 타라고 팔을 벌렸다. 차에 오르자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는 강우석이었다.

“안슐, 잠시만요.”

유지웅은 전화를 받고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전화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나중에 다시 전화…… 네? 뭐라고요?”

그는 안슐이 옆에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로 놀랐다.

「레드 몹을 처리해주면 독도 문제에서 무조건 우리나라 뜻에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나라로서도 절대 저버릴 수 없는 좋은 기회입니다.」

============================ 작품 후기 ============================

노파심에서 말하지만 이 글은 주인공과 공격대, 레이드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외 배경적인 부가 요소(예를 들어 국제정치역학적인 요소)는 가급적 집중조명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그리고보니 전편 코멘이 222개네요.

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