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069 I'm a tanker

한편 2팀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떨어진 채 대기 중이었다. 그들은 레이드에 참전하지 않지만, 비상 상황이 되면 언제든 투입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 전원에게도 고글형 통합단말기가 지급되었다.

“저게 레드 몹?”

“울릉도에 나타난 녀석과 비슷하게 생겼네. 그럼 쉽게 잡지 않을까?”

“1차, 2차 레이드 때도 조금 어렵긴 했어도 사망자 한 명도 없이 잡았대. 별 문제 없을 거야.”

“그나저나 메인 탱커는 어그로 관리를 대체 어떻게 하는 걸까요? 같은 탱커로서 그 비결이 알고 싶네요.”

아제로스의 쌍날검을 빼든 정효주가 용감하게 선두에 서서 달려들었다. 정효주를 인식한 헥스톨이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위협적으로 깃을 부풀리며 날개를 펄럭였다.

“하앗!”

정효주는 있는 힘을 다해 헥스톨의 발목을 찔렀다. 그 순간 녀석이 허공으로 상승했다. 그 바람에 그녀의 공격은 허공만 긋고 지나갔다.

―끼아아악!

헥스톨이 부리를 높이 쳐들고 홰를 치듯이 포효했다. 날개가 일으키는 풍압이 해일처럼 퍼져나갔다. 대원들은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들어 자세를 낮추고 버텼다. 이건 폭풍이었다.

“이거 아주 좋은데요?”

지원팀은 야전지휘차량 실내에서 66개의 고글 단말기가 보내오는 영상을 보며 분석 작업에 한창이었다. 고글 단말기 외에도 곳곳에 설치한 원거리 촬영 장비가 있었지만, 역시 구형은 신형에는 미치지 못했다.

중앙 컴퓨터가 수집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해서 모든 결과를 차트로 즉각 표시해주니, 판단을 내리는 것도 쉬웠다. 위협 수치, 개인별 딜링과 힐링의 강도, 진형, 각 대원의 위치 등이 한눈에 보였다.

정효주가 높이 뛰어오르며 허공에 쌍날검을 휘둘렀다. 쌍날검이 헥스톨의 발톱을 살짝 스쳤다.

―끼에에엑!

헥스톨이 크게 울부짖으며 더욱 높이 상승했다. 대원들은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뭐야? 설마 도망치는 거야?”

“아, 안 되는데!”

공격대는 비행 수단이 없다. 허공에서 내려오지 않는 괴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 어떤 괴수도 도망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대처법을 찾지 못했다.

「도망치는 게 아닙니다! 위협 수준이 상당히 높아요! 목표는 전의를 상실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위협 수준을 판별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발전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원거리 감마선 스캔을 통한 괴수 신체의 반응 분포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장치로 스캔했을 때, 괴수가 빨갛게 출력될수록 위협 수준이 높아진다.

미국에서 도입한 이 레이드 통합전술시스템도 당연히 그런 장치쯤은 기본적으로 달려 있었다. 그리고 모니터에 나타난 괴수의 스캔 영상은 진한 붉은색이었다.

「어그로가 굉장히 높습니다! 메인 탱커, 대비하세요!」

정효주는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 순간 바람을 찢는 파공음이 들렸다. 정효주는 얼른 위를 보았다. 헥스톨이 유선형으로 날개를 접고 빠르게 고공 강하하고 있었다.

「피해요! 피해!」

체중이 수백 톤은 넘을 녀석이 수백 미터 상공에서 고속으로 떨어지는 충격량은? 전차도 간단히 찢어놓을 것이다. 제대로 맞는다면 보호막을 덕지덕지 두른 탱커라 해도 버틸 수가 없다.

콰아앙!

정효주는 간신히 피했다. 조금 전 자신이 있던 곳을 보고 오금이 저렸다. 유선형으로 고공 하강한 헥스톨은 미사일처럼 부리를 땅에 박고 있었다. 그 바람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파였다.

뒤뚱거리며 헥스톨이 머리를 뽑았다. 그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졌음에도 부리에는 상처 하나 나 있지 않았다. 녀석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흙을 털어버린 채 두리번거렸다.

“난 여기 있어!”

정효주는 그렇게 외치며 빠르게 쇄도했다. 그녀를 발견한 헥스톨은 날개를 펄럭이며 달려왔다. 마치 거대한 타조가 뒤뚱뒤뚱 달리는 듯이 우스꽝스러웠다.

「부딪치면 안 돼요!」

다급한 장 팀장의 고함이 전파를 울렸다. 정효주도 곧이곧대로 부딪칠 마음은 없었다. 그녀는 몸을 살짝 틀어 헥스톨의 부리 공격을 피하고, 역으로 녀석의 눈 옆에 쌍날검 한쪽을 힘껏 박아 넣었다.

방어막이 뚫리며 쌍날검이 살가죽을 파고들었다. 고통을 느낀 헥스톨이 머리를 마구 흔들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출력되는 스캔 영상이 더욱 빨갛게 변했다.

“위협 수준! 더욱 올라갑니다!”

“어떡할까요? 조금 더 기다렸다가 딜을 시작할까요?”

분석에 한창인 팀원들이 바쁘게 물었다. 장 팀장은 모니터를 노려보듯이 응시했다. 피처럼 붉은 스캔 영상. 위협 수준이 최고로 올랐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만큼 괴수가 화가 났다는 뜻이다.

위협 수준 측정 시스템은 결국 괴수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를 신체 변화를 스캔해서 판독하는 장치라 할 수 있다. 당연히 한계가 있다. 구체적으로 누구에게 화가 났는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괴수의 생각을 읽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전투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어느 딜러가 얼마만큼 딜을 해서 얼마만큼 방어막을 무효화했는지를 계산해서 대략적인 위협 수준을 도출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었다. 인간이 짠 프로그램이기에 당연히 한계는 있다.

물론 지금은 정효주를 제외한 다른 대원들의 위협 수치는 0이었다. 정효주 외에는 아직 아무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원거리 딜러, 딜 시작하세요!」

근접 딜러들은 대비했고, 원거리 딜러들은 장비를 쥐었다. 좁게 포진한 원거리 딜러들은 헥스톨을 향해 일제 사격을 했다.

무수한 화염포, 총탄이 헥스톨에게 날아들었다. 하얀 깃털 표면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연기가 잦아들고 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깃털은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동시에 그래프에 나타난 원거리 딜러들의 위협 수치가 일제히 증가했다. 컴퓨터가 그들의 딜량과 중화된 괴수의 방어막을 대략적으로 계산해서 도출한 가상의 값이다.

컴퓨터는 경고를 표시했다. 장 팀장은 주저없이 지시했다.

「원거리 딜러들, 딜 대기.」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 헥스톨이 흠칫하면서 원거리 딜러들을 봤던 것이다. 정효주는 어딜 보냐는 듯이 힘껏 쌍날검을 헥스톨의 날갯죽지에 박아 넣었다. 그래프에 표시된 그녀의 위협 수치가 다시 최고로 올라갔다.

“생각보다 어그로가 불안정하군요. 이래서는 꽤 장기전이 되겠는데요, 팀장님.”

“그래도 통합 시스템이 정말 돈값을 하네요. 이것들을 200억이나 주고 샀다는 말을 들었을 땐 돈지랄인 줄 알았는데, 미국이 역시 무기 하나는 잘 만들어요.”

“이 어그로 측정기, 꽤나 정확하지 않아요? 전투 데이터를 종합해서 가장 위협이 되는 대상을 판독한다는 거, 말이 쉽지 프로그램 짜기 굉장히 어려울 텐데.”

“무기는 역시 미제예요. 아, 저 친미파 아닙니다.”

정효주는 아직까지 한 대도 맞지 않은 채 집요하게 헥스톨을 괴롭히고 있었다. 헥스톨은 눈앞에서 알짱거리며 칼을 찔러넣는 정효주가 얄미워서 죽으려고 했다.

한편 유지웅은 걱정 반 불안 반을 안고 지켜봤다. 헥스톨의 부리 공격이 허공을 지나갈 때마다 얼마나 마음이 조마조마한지. 참 나쁜 녀석이다. 효주가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그냥 좀 처 맞고 죽어주라고!’

「근접 딜러진, 돌격하세요!」

드디어 근접 딜러 투입 오더가 떨어졌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대기 중이던 근접 딜러들이 칼을 뽑았다.

「메인 탱커! 헥스톨의 머리를 돌려요! 꼬리가 공격대를 향하게 하세요!」

정효주는 지시대로 조금씩 옆으로 원을 그리듯 움직이며 헥스톨의 머리를 돌렸다.

「근접 딜러들은 목표의 뒤에 붙어서 딜하세요.」

침착하면서도 믿음직스러운 오더. 유지웅은 레이드 지휘를 전문가에게 맡긴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근접 딜러들이 헥스톨의 뒤에 달라붙었다. 그들은 헥스톨의 꼬리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을 피하며 딜을 시작했다.

「원거리 딜러진도 딜 시작하세요.」

기다렸다는 듯이 또다시 무수한 빛줄기가 허공을 날았다. 근접 딜러들은 딜을 하는 한편 원거리 딜러들의 공격 궤적을 끊임없이 확인했다.

원거리 딜이 격중되면 당연히 충격파가 튄다. 탱커야 이동할 수 없으니 그것을 맞고 버티지만, 근접 딜러들은 다르다. 잘못 얻어맞으면 큰 부상을 입는다. 그건 힐러의 체력을 갉아먹는 행위다. 그래서 근접 딜러들은 아군 원거리 딜러들의 딜 궤적도 신경 써야 하고, 괴수의 움직임도 신경 써야 하고, 어그로가 튀지는 않는지도 끊임없이 신경 써야 한다.

레이드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어려운 포지션이 근접 딜러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레이드 사망자는 대부분 근접 딜러인 경우가 많았다.

어그로가 안정적으로 잡히고, 딜도 거침없이 쏟아졌다. 정효주는 부리 공격에 몇 대 맞기도 했지만, 보호막 덕분에 부상을 입는 수준에서 그쳤다. 그녀가 부상을 입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힐 샤워가 쏟아졌다.

“생각보다 쉬운데요. 괜히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서브 탱커들이 할 일이 없군요. 마이카이에 비하면 이 녀석은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고공 낙하 공격은 굉장히 위협적이었습니다. 만약 제대로 맞았으면 메인 탱커라 해도 즉사했을 겁니다.”

야전차량 상황실의 그래프가 끊임없이 변했다. 각 대원의 위협 수치, 실시간 딜량, 그리고 실시간 힐량 등 다양한 전투 데이터 그래프였다. 대원들이 착용한 고글 단말기가 보내는 영상들도 수십 개의 화면에서 실시간으로 재생 및 저장되고 있었다.

그래프를 확인하던 어느 팀원이 놀라서 외쳤다.

“어? 팀장님! 이걸 보십시오!”

“뭔데 그러시죠?”

장 팀장은 팀원이 가리킨 어느 대원의 수치를 보고 소스라치듯이 놀랐다.

“이, 이게 사람이 낼 수 있는 딜입니까?”

“쿤겐 슐제거? 와, 이 사람 정말 굉장하군요. 할레이나 공격대 딜러장이라고 하던데, 정말 가차 없습니다.”

쿤겐의 딜은 엄청났다.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었다. 2위의 DPS(Damage per second : 초당 공격량)보다 무려 20%나 높았던 것이다. 2위와 3위의 DSP 차이가 1% 이하라는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딜량이었다.

상위 서열로 갈수록 딜량의 차이는 근소해진다. 한국 최고의 딜러들만 모아놓은 프라임 공격대는 딜러들 간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누가 최고인지 따지는 것조차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쿤겐은 가볍게 제치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게다가 위협 수치도 비교적 낮아요! 물론 컴퓨터가 계산한 결과니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단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컴퓨터는 딜총량, DPS, 보호막을 중화한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독하여 위협 수준을 계산한다. 괴수의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니라 외부 변수를 취합해서 정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정확도는 높아봐야 70% 정도다.

요약하자면, 바이탈 변화를 스캔해서 화가 났다는 것으로 위협 수준이 올라갔음을 측정하고, 대원 개개인이 딜을 한 정도와 방어막을 무효화한 정도를 계산해서, 괴수가 누구를 가장 먼저 노릴지를 예상하는 것이다. 결코 괴수의 생각을 읽는 것이 아니다.

아무튼 압도적인 딜 1위를 달리면서 위협 수준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정말 대단하군요. 어?”

순간 장 팀장은 놀라는 소리를 냈다. 팀원들의 시선도 전투 영상 화면에 쏠렸다. 헥스톨이 공격을 중지하고 날개를 크게 펄럭이고 있었다.

“위협 수준이 최고조입니다! 대상은 메인 탱커!”

“사소한 반응, 변화, 하나도 놓치지 마요!”

장 팀장이 다급히 외쳤다.

헥스톨은 날개를 펄럭이더니 천천히 부유하기 시작했다. 장 팀장은 바로 지시했다.

「근접 딜러, 퇴각! 퇴각!」

전파에서 쏟아지는 다급한 외침에 근접 딜러들은 즉시 해당 지역을 이탈했다. 그 순간에도 헥스톨은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사정거리를 벗어나자 원거리 딜러들은 딜 중지 오더가 없었음에도 자연스럽게 딜을 멈췄다.

헥스톨은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높이까지 올라갔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야?”

“와, 높다.”

탱커들은 달랐다. 그들은 신체 능력 자체가 강화되었기에 시력도 월등히 좋다. 정효주는 쌍날검을 쥔 채, 찢어진 옷을 다듬을 생각도 못하고 멍하니 올려다봤다.

장 팀장은 즉시 독일 항공사령부와 링크된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3기의 조기경보기와 2기의 군사위성이 배당돼 있었다.

「아까 그 고공 낙하 공격을 다시 하려는 것 같습니다! 예상 피해를 지금 컴퓨터가 계산 중입니다! 아!」

말을 하다 말고 장 팀장이 경악을 터트렸다. 힐러들의 눈이 유지웅에게 쏠렸다. 그는 불안함을 감추고 다급히 물었다.

“왜요? 무슨 일인가요?”

「계, 계산 결과가 나왔습니다! 전장 이탈! 전장 이탈! 전원 대피! 전원 대피!」

전장 이탈 사인은 최악의 경우에 떨어지는 대피령이다. 즉각 레이드를 중지하고 전원이 해당 지역을 탈출해야 한다. 탱커와 근접 딜러들이 서둘러 달려와서 힐러들을 하나씩 낚아채고는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유지웅도 정효주한테 업혀서 이탈하면서 계속 물었다.

“설마 무작위 공격? 아니면 딜러진이 타겟인가요?”

「수백 톤의 물체가 상공 1km 이상에서 초음속으로 고공 낙하할 경우, 적어도 반경 수백 미터 안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직격을 피하면 탱커는 버틸지 몰라도 딜러와 힐러는 절대 못 버팁니다!」

그런 무지막지한 공격을 준비 중이란 말인가? 유지웅은 저도 모르게, 보이지 않는 점이 된 헥스톨을 올려다봤다.

“지가 운석이야 뭐야! 이런 말도 안 되는 공격이 어딨어!”

대원들은 저마다 쌍욕을 하면서 힘껏 전장을 이탈했다. 야전지휘차량은 미리 충분히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전속력으로 바깥 쪽을 향해 질주 중이었다.

안전하다 싶은 거리까지 모두 이동했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하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팀장님? 헥스톨은요?”

「이상합니다. 아직 상공에 그대로 있어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

바로 그때였다. 하얀 눈보라가 하늘에서부터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공기 중의 수증기가 빙결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하얀 물감이 번져가듯이 빙결 자국이 상공에서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그들이 조금 전까지 전투하고 있던 지역, 그 장소를 중심으로 반경 수백 미터 내의 모든 것이 하얗게 얼어붙기 시작했다.

“…….”

거대한 얼음 결정체로 변한 땅을 보며, 대원들은 누구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