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077 I am A

레드 몹이 정효주를 향해 쇄도했다. 쌍날검을 쥐고 노려보던 정효주는 레드 몹이 코앞에 도달한 순간 옆으로 뛰어 피했다. 그리고 힘껏 녀석의 목에 쌍날검을 꽂아 넣었다.

―캬아아아!

레드 몹이 크게 울부짖으며 온몸을 비틀었다. 거대한 날개를 퍼덕거리자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났다.

“하앗!”

정효주는 다시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머리 위로 뛰어올라 그대로 점프하며, 정수리를 쌍날검으로 찔렀다.

「메인 탱커, 어그로 확보. 근접 딜러 투입.」

기다렸다는 듯이 근접 딜러들이 빠르게 뛰쳐나갔다. 레드 몹은 근접 딜러들을 확인했지만, 정효주가 다시 덤벼들자 그쪽으로 날개를 크게 휘둘렀다. 거친 풍압이 일어나며, 접근하던 근접 딜러들이 하마터면 쓸려나갈 뻔했다.

하지만 곧 다시 중심을 찾은 근접 딜러들이 자리를 잡고 딜을 시작했다. 근접 딜러들의 칼질이 방어막을 때릴 때마다 번쩍이는 스파크가 튀었다.

원격 장비를 통해 지켜보던 장태준이 다시 지시했다.

「원거리 딜러진, 딜 시작.」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원거리 딜러진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수십 줄기의 불꽃이 하늘을 수놓으며 목표를 향해 날았다.

“어그로는 안정권입니다.”

“목표의 공격 패턴도 단순합니다.”

상황실에서 팀원들의 보고가 쏟아졌다. 장태준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분석 차트를 확인했다. 그의 낯빛이 굳어 있는 것을 보고 어느 팀원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나요, 팀장님?”

“이상합니다.”

그제야 장태준이 입을 열었다.

“여기 이 기록을 보면 도쿄 참사 때 에너지포를 입에서 뿜어 도시를 날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종류의 공격을 전혀 하고 있지 않아요. 공격 패턴이 너무 단순해요.”

“목표에서 고열 반응! 머리 부위의 온도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때 팀원 한 명이 비명처럼 외쳤다. 장태준은 반사적으로 교신기에 대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딜 중지! 딜 중지! 딜러들, 전원 회피!”

레드 몹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듯이 몸을 뒤로 젖혔다. 그리고 단숨에 정면을 향해 입김을 내뿜었다. 입김이라기에는 지나치게 뜨거운 열 폭풍이 쏟아졌다.

지옥의 광경이 펼쳐졌다. 대지를 가로지른 열 폭풍이 일직선의 녹아 눌어붙은 자국을 만들었다. 그 폭만 수 미터에 달했다.

열 폭풍이 지나가고 정효주가 비틀거렸다. 그녀는 전신에 가벼운 화상을 입고 있었으나, 힐이 들어오자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강화 보호막이 대부분의 위력을 상쇄한 것이다.

옷이 거의 타버린 덕분에 근접 딜러들은 좋은 구경을 했다.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 속옷 덕분에 알몸을 보이는 꼴만은 피할 수 있었다.

수치를 느낄 때가 아니었다. 정효주는 이를 악물고 레드 몹을 향해 다시금 쌍날검을 휘둘렀다.

‘힘 소모가 전혀 없다?’

유지웅은 오른 손목에 찬 충전 장비를 흘끔거렸다. 몇 차례 보호막을 사용했지만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 대신 충전 장비의 표시 금속의 붉은 색이 살짝 옅어졌다.

‘이거 좋은데?’

충전 장비에 감탄한 것은 잠시, 그는 멀리 정효주의 알몸이나 다름없는 차림새에 화가 났다.

‘내 껀데! 나만 봐야 하는데!’

별로 위급하지 않아서일까? 정효주의 살결을 다른 남자들이 볼 수 있다는 것에 화가 났다.

“충전 장비는 어떤가요?”

“괘, 괜찮은 것 같아요! 잘 작동하고 있어요!”

처음으로 하는 전투에 집중하던 보조 힐러들은 유지웅이 묻자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목소리에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는 게 영락없는 이등병이었다. 그가 보지 못하는 각도에서 일반 힐러들이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너무 정신없이 힐하면 안 돼요. 힘을 다 빼버리니까. 탱커가 부상을 입었을 때 딱 맞춰서 힐을 넣는다는 느낌으로 해야 해요. 멀쩡한데 힐을 넣으면 체력만 소모할 뿐이에요.”

“알겠습니다!”

역시나 기합이 잔뜩 들어간 대답이었다.

헥스톨에 비하면 저 레드 몹은 확실히 쉬웠다. 아니, 헥스톨이 지독하게 어려웠던 레드 몹이라고 봐야 하리라. 울릉도에 출현했던 레드 몹도, 마이카이도 쉽지는 않았지만 죽을 힘을 쏟을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다.

게다가 충전 장비까지 있으니 보호막 유지 시간도 두 배로 늘어났다. 마음이 든든했다. 오늘은 별 위기 없이 레이드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딜러진, 딜 재개하세요.」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딜러진은 일제히 딜을 시작했다. 한 차례 열기 숨결 공격을 마친 레드 몹은 다시금 부리와 발톱을 이용해서 정효주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녀석에게도 그 열기 숨결은 상당히 체력을 소모하는 모양이었다.

「정효주 씨, 목표의 공격은 어떤가요? 다른 레드 몹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뛰어나진 않아요! 옐로 몹보다는 엄청 쎄긴 하지만, 충분히 견딜 수 있어요!”

정효주의 대답에 장태준은 만족스러워 했다. 레이드가 시작되고 벌써 삼십 분이 지났다. 하지만 별 이변 없이 평온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대로 저 녀석을 쓰러뜨리면 우리나라 입지가 확 일어서겠군요. 일본도 못 쓰러뜨려서 쩔쩔맨 녀석을 어렵지 않게 쓰러뜨렸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일본 반응은 어떻죠? 워낙 피해가 커서 뭔가 말이 많을 것 같은데.”

“아주 가관이에요. 프라임 공격대가 과거를 물고 늘어지는 편협한 사람들이라고 우익 언론에서 헛소리를 하고 있어요. 그게 또 여론이 받아들이고 있고요.”

“뭐, 그럴 만도 하네요. 한 번도 진정한 자성을 한 적이 없는 나라인데 어련하겠어요? 사실 전 공대장님이 일본을 안 돕는 것 이해가 가요.”

“조상분이 일본군 강제징집 피해자라고 하시잖아요. 나 같아도 절대 안 도와줘요. 왜 원수를 도와요? 그것도 사과 한 마디 없이 자기들 잘했다고 떵떵거리는 파렴치한 원수인데.”

장태준이 듣다못해 한 마디 했다.

“전투 중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그만 하세요.”

“죄송합니다.”

장태준도 팀원들의 대화에 동조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투 중이었다. 그런 사담을 나눌 때가 아니었다. 평온하게 레이드가 유지된다 해도, 언제든 변수는 일어날 수 있는 법. 전투 중에는 전투에만 집중해야 한다.

“목표 체내에 다시 고열 반응! 어?”

갑작스럽게 보고하던 팀원이 말하다 말고 깜짝 놀랐다. 장태준이 급히 그를 봤다.

“무슨 일입니까?”

“체온 상승률이 지나치게 높습니다! 1,000도를 훨씬 넘어섰어요! 아까와 비교도 되지 않는 온도입니다!”

“이런! 근접 딜러진, 딜 중지하고 바로 이탈해요! 50미터 이상 떨어져서 대기하세요! 원거리 딜러진도 딜 중지!”

그렇지 않아도 레드 몹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복사열 때문에 이미 근접 딜러들은 딜을 중지하고 물러서고 있었다. 정효주는 뜨거운 복사열을 견디며 어그로를 끌었다. 이 정도 열기쯤은 보호막이 없어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갑자기 레드 몹이 휘황찬란한 빛에 휩싸였다. 섬광이 터진 듯 엄청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차단 효과가 있는 고글형 단말기를 착용하지 않았으면 아마 눈이 멀었으리라.

번쩍!

레드 몹을 중심으로 거대한 폭발이 일었다. 뜨거운 광선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고막이 터진 것처럼 귀가 멍멍했다.

폭발이 그치고 난 뒤, 탱커를 제외하고 제대로 서 있는 대원은 없었다. 폭발의 위력은 대단했다. 사방 300미터를 쓸어버리듯이 집어삼킨 것이다.

상황실은 뒤집어졌다.

“광역 공격? 말도 안 돼!”

“위력은? 위력은 어느 정도죠? 힐러진은 무사합니까?”

“응답해요! 아무나 응답하세요!”

“으으…….”

죽을 듯한 신음소리에 유지웅은 정신을 차렸다. 온몸이 뜨겁고 죽을 듯이 아팠다. 언뜻 팔을 보니 지독한 화상에 살점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떠서 주변을 살폈다. 힐러들이 전부 쓰러져 있었다. 경련을 일으키는 것을 봐서 다행히 죽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대장님? 대장님? 들립니까?」

“드, 들려요…….”

그는 간신히 대답했다. 어찌 된 건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지금 유희선, 김혜영 힐러가 힐러진을 우선 회복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목표가 광역 공격 이후 움직임을 멈췄습니다. 사망자는 없습니다.」

그는 왼손목에서 흐르는 피가 팔찌형 S급 강화 장비를 적시는 것을 멍하니 보았다.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았다. 온몸이 욱신거리며 아팠다.

그때 따스한 빛이 흘러들어왔다. 피가 멎고, 상처가 봉합되고, 아픔이 사라져 갔다. 이윽고 몸이 완전히 회복되자 그는 벌떡 일어났다.

“괜찮으세요? 다 회복되셨죠?”

김혜영이 핼쑥한 얼굴로 묻고는 다른 부상자에게 힐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유희선도 부지런히 힐을 시전하고 있었다. 대화할 틈도 없는 모양이었다.

「두 힐러가 의식을 잃지 않아서 살았습니다. 만약 저 두 분마저 의식을 잃었으면 아무도 힐 할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전멸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망자가 없다는 게 천운이었다. 죽지만 않으면 힐러가 힐을 쏟아서 치유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단지 시간이었다. 탱커진과 쿤겐을 제외한 공격대 전원이 타격을 입고 쓰러져 있었으니. 다행히 레드 몹도 혼신의 힘을 다한 광역 공격이었는지 움직임을 멈추고 있는 채였다.

힐러들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린 그들은 서둘러 다른 힐러들과 딜러들을 회복시켰다. 앞으로 몇 분이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목표가 움직입니다!」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울렸다. 힐러진은 다급해졌다. 아직 쓰러져 있는 딜러들이 많았다. 시간이 더 필요했다.

정효주가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눈을 번쩍 뜬 녀석은 정효주를 보고 발악처럼 포효를 내질렀다.

―캬아아아아!

광역 공격에도 살아남은 것이 불쾌했던 것일까? 녀석이 크게 날갯짓을 하며 상승하기 시작했다. 정효주가 있는 힘껏 점프해서 쌍날검을 휘둘렀지만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레드 몹이 끝없이 상승했다. 눈부신 섬광이 다시금 레드 몹을 감싸기 시작했다. 절망 같은 외침이 상황실을 울렸다.

“목표 체내에서 또 다시 고열 반응! 2,000, 아니 더욱 더 상승합니다! 3,000! 3,500! 4,000!”

대원들의 눈에 절망이 어렸다. 또다시 광역 공격을 가하려는 모양이었다. 유지웅은 이를 악물었다. 보호막은 즉시 시전이 가능하지만, 연달아서 무한대로 시전할 수는 없다. 매 시전마다 딜레이가 소요되기 때문이다. 과연 몇 명에게 보호막을 걸어줄 수 있을까?

「메인 탱커와 본인, 힐러진 위주로 보호막을 시전하세요. 딜러진은 포기합니다.」

냉정한 지시가 떨어졌다. 어쩔 수 없는 방법이리라. 딜러들도 그것을 체감했는지 이를 악물었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공포감이 딜러들을 잠식했다. 유지웅은 그게 너무 싫었다. 저들을 전부 살려줄 수 없다는 무력감을 용서할 수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자앙!”

외마디 좌절이 울리는 순간, 레드 몹을 중심으로 엄청난 섬광이 터져 나왔다.

번쩍! 번쩍!

두 차례에 걸쳐 눈부신 빛무리가 터졌다. 광학 촬영 장비가 잠시 먹통이 되었다. 이윽고 전자 장비가 정상화되었다. 엄청난 피해를 각오했던 장태준은 순간 놀라서 눈을 비볐다.

“이, 이건?”

“마, 막아냈습니다! 아니,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아, 아무튼 공격대 전원 무사합니다!”

모니터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공격대 본진에 커다란 빛의 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돔과 같은 반투명한 막이었다. 그 막이 레드 몹의 광역 공격을 흡수한 것이다.

구체형의 빛의 장막은 쓰러진 딜러진은 물론이고 정효주를 포함한 서브 탱커까지 전부 감싸고 있었다. 그 지름만 무려 수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장막이었다.

“…….”

불가사의한 현상에 모두가 할 말을 잊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인지 아무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때 유지웅이 픽 하고 쓰러졌다.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놀란 힐러가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그는 왼손에 찬 강화 장비를 향했다. 장비는 아까 그가 흘린 피로 본래의 색을 잃은 상태였다.

상황실에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던 장태준이 겨우 입을 열었다.

“이건…… 광역 보호막?”

============================ 작품 후기 ============================

드디어 방벽 찍었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