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080 You're a nobleman?

유지웅은 레이드 때마다 정효주가 누드쇼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남자 대원을 전부 빼버리고 여자로만 재구성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대책을 찾아야 했다.

탱커들은 레이드 전용 속옷을 따로 입는다. 탱킹 과정에서 옷이 찢어지는 것은 필수기 때문이다. 탱커 속옷은 특수 재질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어지간한 충격에 매우 강하다. 그렇다면 특수 재질로 만든 통짜 옷은 없는지 유지웅은 알아봤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방탄도 되는 속옷이긴 하지만 괴수의 공격에는 얄짤없어요. 직격을 맞으면 찢어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속옷을 입는 부위는 괴수의 직격을 맞는 일이 드무니까 비교적 견디는 거지요. 이것도 제대로 맞으면 특수 재질이고 뭐고 없어요. 그냥 찢어지는 거예요.”

공격에 노출되는 팔다리 등을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다. 이 장사만 몇 년을 했다는 상인의 설명에 유지웅은 어깨가 축 늘어졌다.

“방법이 없을까요? 제 여자친구가 탱커라서 그래요. 맨날 남자들 앞에서 세미 누드쇼 하는 게 안타까워서 그래요.”

“없을 걸요? 이 재질로 겉옷 만들어봤자 한 방 얻어맞으면 찢어지고 말아요. 그래서 속옷만 만드는 거예요.”

여자 탱커가 가슴 노출을 하는 것은 다반사라고 한다. 팬티에 비해 브래지어는 공격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골반 부위는 웬만해서 맞지 않으니 다행으로 여기라는 말에, 유지웅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S급 충전 장비가 완성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저희야말로 영광이었습니다.”

한성산업은 급성장 중이었다. 충전 장비도 판매 허가가 떨어졌고, 보조 힐러들이 앞을 다투어 충전 장비를 구매했다. 물론 보조 힐러에게 충전 장비를 구입할 수 있는 돈은 없었다. 그래서 나라에서 특별히 저금리의 장기 대출 상품을 내놓았다. 덕분에 한국의 경제 흐름도 활발해졌다.

충전 장비는 결정체 투입 양에 따라 저장할 수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다. 하지만 강화 장비와 달리 그런 식으로 등급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리고 결정체의 1/5만 사용해도 한 사람의 능력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었다.

그래서 충전 장비는 일괄적으로 같은 성능으로 만들어졌다. 강화 장비와 달리 사용하는 결정체 양도 적었다. 게다가 충전 장비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 덕에, 생산 가격에 거품도 적게 들어갔다.

생산 및 유통 마진을 고려해서 충전 장비는 개당 7억 원의 가격으로 정해졌다. 그 중 결정체 원가만 5억 원이다. 한성산업은 적당히 이익을 보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을 설정한 것이다.

“사업이 잘 되시나 봐요.”

“아주 잘 되고 있습니다. 다 유 대장님 덕분입니다.”

유지웅이 투자한 500억은 그에게는 별 것 아닐지라도 한성산업 입장에서는 가뭄에 온 소나기였다. 게다가 그는 지분 요구 같은 것도 안 했다. 한성산업의 큰 은인이었다.

기존 충전 장비를 벗은 유지웅은 새로 만든 S급 충전 장비를 오른 손목에 찼다. 결정체 귀속과 리미트 해제 절차는 장비 제작을 의뢰하기 전에 이미 마쳤다.

‘이건 무슨 특수 기술이 있을까?’

새 장비를 얻었으니 성능을 시험하는 것은 당연지사. 유지웅은 즉각 레이드를 가기로 결정했다.

“막공을 가자고?”

정효주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반문했다. 유지웅은 그렇다는 듯이 끄덕였다.

“응. 새 충전 장비 시험도 할 겸 막공이나 가자.”

“하지만 옐로 몹 잡아서 얼마나 번다고.”

“돈 벌려고 가는 거 아니야. 장비 시험하려고 가는 거지.”

“그냥 다음에 레드 몹 레이드 때 시험하면 안 돼? 어차피 저번 것보다 더 나쁘진 않을 거 아냐?”

“그래도 스펙 파악을 미리 해두고 가면 더 좋지.”

“그것도 그러네.”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정효주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난 안 갈래.”

“왜?”

“충전 장비 시험하는 건데 나까지 갈 필요는 없잖니? 난 그냥 집에서 쉴래.”

“그래, 그럼.”

정효주가 같이 안 가는 게 아쉽긴 했지만 어차피 옐로 몹을 잡는데 그녀까지 올 필요는 없었다. 그것이야말로 닭 잡는데 용 잡는 칼을 쓰는 격이다.

유지웅은 프라임 공격대 힐러장인 박현정에게 연락했다. 그녀는 꾸준히 레드 몹 레이드에 참가하면서, 따로 옐로 몹 막공도 여전히 운영하고 있었다.

그의 연락을 받은 그녀는 당연히 뒤집어졌다.

“막공을 오시겠다고요? 아니, 왜요?”

“충전 장비 시험도 해볼겸 해서요. 안 되나요?”

“안 될 건 없지만……. 자전거 레이스하는데 혼자 스포츠카 끌고 오신 거잖아요. 옐로 몹이 너무 불쌍할 거 같은데.”

박현정. 상당히 팜므파탈적인 분위기를 가진 여자다. 처음에는 그를 넌지시 유혹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섹시 어필을 딱 관두었다. 유지웅은 정효주 눈치를 안 봐도 돼서 좋긴 한데 살짝 아쉽기도 했다. 당연히 지금은 순수한 공격대 힐러장과 공격대장 관계일 뿐이다.

“면세금액의 70%는 가져가시는 거죠?”

“그럼요. 내 건데.”

유지웅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박현정이 피식 웃었다.

“공대장님 입장에서는 푼돈이실 텐데.”

“그거야 알지만 제 돈이니까 가져가야죠. 안 그럼 효주한테 혼나요.”

“여자친구분한테 꽉 잡혀 사시는 거 같아요.”

“잡혀 살긴요. 제가 잡고 사는 거죠.”

그는 사실 집에서 아무 것도 안 한다. 정효주가 그에게 뭔가를 시키는 것도 없다. 청소도 혼자 다 하고 요리와 설거지도 혼자 다 한다. 쓰레기 버리라고 시키지도 않는다. 남자의 이상향이 섹스할 수 있는 엄마라고 하던데, 정효주가 딱 그랬다. 엄마처럼 모든 걸 다 해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잡고 사는 거 아닌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진짜 제대로 잡혀 사시나 봐요. 그렇게 알고 계신 거 보면.”

“……?”

박현정의 말이 뭔가 의미심장했다.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려는데 어느덧 브리핑이 시작되었다.

“어그로 안 튀게 조심하시고요, 딜러분들은 딜 사인에 귀 잘 기울이세요. 힐러 분들은 탱커 체력에 신경 쓰시고요. 그리고 또…….”

유지웅은 구석에서 마음 편하게 응시했다. 대원들은 진지하게 박현정의 브리핑을 들었다. 레드 몹 브리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내용이다. 자기도 한때는 저런 간단한 브리핑을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주의 깊게 듣곤 했다.

옐로 몹은 레드 몹에 비하면 단순하다. 공격 패턴도 단조롭고 특별한 광역 기술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결국 탱커가 어그로를 유지하고, 딜러가 때리는 게 전부다. 옛날에는 그렇게 어렵게만 느꼈던 레이드가, 지금 생각하니 왜 이렇게 간단할까?

“그리고 오늘 잡는 몹은 특별히 모든 세금이 면제돼요. 그래서 면제되는 금액의 70%는 따로 저 분이 가져가실 거예요. 그 점 숙지하시기 바래요.”

“네? 설마 저 분이 프라임 공격대장인가요?”

“네. 맞아요.”

“우, 우와!”

대원들의 입이 벌어졌다. 수십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자 유지웅은 조금 쑥스러웠다.

“저 팬입니다! 싸인 좀 해주세요!”

느닷없이 여자가 달려들었다. 큰 눈망울이 귀여운 여자였다. 아마도 고등학생? 조금 우스웠지만 그는 짐짓 뺐다.

“지금 레이드 직전이잖아요. 이러시면 안 돼요. 공대장님 통제에 따라야죠.”

“그럼 이따가 끝나고 사인 해주세요! 꼭이요!”

박현정도 그냥 지켜보면서 웃고 말았다. 유지웅은 자신의 위명을 실감했다. 평소에 프라임 공격대장으로서 다른 사람을 만날 일이 거의 없었는데,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흠모하는 눈길로 쳐다보는 것도 썩 괜찮았다. 약간 민망했지만.

“우, 우와! 이게 광역 보호막이에요? 진짜 신기하다!”

“여기 안에 있으면 어그로 튀어도 괜찮은 거예요?”

“이거 얼마나 버틸 수 있어요?”

대원들은 직경 10여 미터의 광역 보호막을 둘러보면서 신기하게 여겼다. 어그로가 튀어서 친 게 아니었다. 장비를 시험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이것저것을 다 해본 것이다.

“우, 우와! 이게 보호막?”

“내 몸이 빛나고 있어! 와, 디게 신기해!”

“이러면 저 괴수한테 맞아도 안 죽는 건가요?”

단일 보호막을 대원 전원에게 일일이 걸어보기, 광역 보호막을 여러 차례 펼쳐보기, 광역 보호막으로 괴수를 가둬보기, 등등 유지웅은 레드 몹 레이드에서는 할 수 없는 별의별 것을 다 시험해보았다.

옐로 몹은 꽤 강력한 녀석이었지만 별다른 긴장감은 없었다. 대원들도 장난을 치듯 즐기면서 레이드에 임했다. 반쯤 긴장이 풀어졌으나 박현정도 뭐라 하지 않았다. 대원들 전원에게 단일 보호막이 걸려 있는 상태다. 이건 뭐 어그로가 튈 거면 한 번 튀어보라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레이드는 안정적으로 끝났다.

“30억입니다.”

“우와! 만세!”

“아싸! 횡재했다!”

30억이면 막공에서 잡은 것 치고는 굉장히 비싼 것이다. 25명이 나누면 한 명 당 1억이 조금 넘는다. 레이드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돈이지만, 레드 몹을 잡으면 한 명 당 100억이 넘는 것에 비하면 초라한 액수였다.

“요즘은 분배 어떻게 하나요? 아직도 힐러가 많이 받아요?”

“그렇죠 뭐. 그런데 저는 그렇게 분배 안 해요. 그냥 똑같이 돈 나누고 있어요.”

“그렇게 해도 힐러가 오나요?”

“예전 같으면 안 올 텐데, 오긴 오더라고요. 보조 힐러들도 있고 하니 다들 긴장하고 있나 봐요. 참가율도 꽤나 높아진 편이고요.”

박현정도 유지웅과 함께 레드 몹 레이드를 하면서 적지 않게 그의 영향을 받았다. 자기가 운영하는 막공의 분배율을 똑같이 한 것도 그 중 하나였다.

레이드 관습이 변화하고 있었다.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까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프라임 공격대가 있었다. 프라임 공격대의 행보 하나 하나가 한국 레이드계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균등 분배를 놓고 이미 레이드계에 커다란 논란이 일고 있으며, 레드 몹 레이드에서 당당히 제 몫을 한 보조 힐러 덕분에 충전 장비의 보급도 빠르게 이뤄졌다.

“이제 싸인해주세요!”

아까 그 여고생 대원이 당당하게 종이를 내밀었다. 유명 인사가 된 기분에 그는 쓴웃음을 짓고 싸인을 해줬다.

유지웅은 안슐이 선물한 세스토 엘레멘토를 몰고 귀가했다. 리모컨으로 차고 입구를 열려는데 뭔가를 바리바리 싸들고 걷고 있는 쿤겐을 발견했다. 그는 차창을 내리고 인사했다.

“어디 갔다 와요, 쿤겐?”

“아, 공대장님.”

유지웅을 보고 쿤겐은 깍듯이 인사했다. 늘 느끼는 거지만 그는 서열 정리가 철저했다. 자신보다 위라고 인식하면 깍듯하게 허리를 굽힌다.

“간식거리를 좀 사오는 길입니다.”

“뭘 그렇게 많이 샀어요?”

“그냥 이것저것 사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쿤겐은 유지웅의 집 근처로 이사 왔다. 옆집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대충 건넛집쯤 된다.

차에 탄 그대로 계속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지라 그는 차에서 내렸다.

“어디 갔다 오시는 길입니까?”

“막공을 좀 갔다 왔어요. 옐로 몹 상대로 장비 시험도 할 겸 해서요.”

“아, 그러셨습니까? 어떠셨습니까?”

“강화 장비는 뭐 대충 활용할 줄 아니까 충전 장비 내구도나 그런 걸 시험했죠.”

“S급 충전 장비는 일반 충전 장비와 뭐가 다릅니까?”

“충전률이 다른 것 같아요. 100의 파워를 충전하면 200 이상으로 방출하는 것 같더군요. 방전 현상은 내일 충전해서 시험해볼 생각이고요.”

“충전 장비는 강화 장비처럼 궁극기 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그런 게 있을 것 같은데요.”

“있긴 한데 별 거 아니에요. 리타이어 상태에서도 보호막을 쓸 수 있게 해주더라고요. 겨우 몇 분 정도지만.”

“그게 왜 별 거 아닙니까? 대단한 거 아닌가요?”

“글쎄요. 강화 장비 궁극기에 비하면 별로…….”

S급 충전 장비는 일반 충전 장비에 비해서 확실히 여러 가지로 탁월했다. 일반 충전 장비는 충전한 양 만큼 출력을 내지만, S급 충전 장비는 충전한 양의 배 이상을 방출한다. 게다가 충전량이 완전 소모되고 소유주가 리타이어 상태가 되어도, 몇 분 정도는 계속 힘을 쓸 수 있게 해준다.

아쉬운 것은 충전 증폭률 정도였다. 수천 억짜리 장비이니만큼 몇 백 배로 증폭해주는 것은 아닌지 은근히 기대했는데, 겨우 몇 배 정도였다. 하기야 충전이라는 개념 자체를 빗대어 생각해보면 이 정도만 해도 어딘가 싶다.

적어도 레드 몹을 잡다가 리타이어 할 염려는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좋으니, S급 충전 장비에 투자한 보람은 있었다.

“그래도 그 정도면…… S급 충전 장비가 또 만들어질 일은 없겠군요. 다른 이에게는 수천억을 쏟아 부을 정도의 가치는 없을 테니까요.”

“그렇죠.”

유지웅에게는 소중한 성능이지만, 확실히 다른 이들에게는 수천억의 돈을 투자할 만큼 가치 있는 성능은 아니었다.

“그런데 쿤겐, 전부터 궁금했는데 어떻게 쿤겐은 탱커를 안 하고 딜러를 하게 된 거예요?”

“전에 말씀드렸듯이 제가 어그로를 끌 수가 없어서 탱커로서는 부적합하기 때문에…….”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라요. 어그로를 끌 수 없는 탱커면 레이드도 거의 못 갔을 텐데, 어떻게 S급 장비를 얻었는지 궁금해서요.”

쿤겐의 표정이 살짝 구겨졌다. 유지웅은 민감한 질문을 했나 하고 아차 싶었다. 하지만 대답 못할 것은 아니었나 보다. 이윽고 쿤겐이 이를 바드득 갈며 말했다.

“선물 받았습니다.”

============================ 작품 후기 ============================

고심 끝에 제가 수치 수정을 좀 했습니다. 일본의 연간 결정체 생산량을 13만 개로 수정했습니다. 참고하시길.

하는 김에 초능력자 수도 칼질을 했습니다. 원래는 전체 인구의 5%라는 설정이었는데 1% 이하로 설정 변경했습니다. 100명 중에 한 명이 안 됩니다.

사실 설정을 짤 때 가장 어려운 게 정말 숫자 같아요..

한국의 생산 설정도 따로 짜서 나중에 올리겠습니다. 설정 패치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