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105 Do you want me to grab that?

독일 때와 달리 이번 레드 몹은 급한 게 아닌지라 유지웅은 시차를 적응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사실은 시차 적응을 핑계로 놀았다. 카지노도 한 번 갔다. 1달러도 못 따고 죄 털리고 돌아왔지만 재미있었다.

미국에 온 지 사흘째 되는 날 반가운 손님이 나타났다.

“안슐!”

손님이 왔다는 호텔 지배인의 설명에 누구지 의아했던 유지웅은 안슐을 보고 반가워했다. 안슐은 미소를 띤 채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여긴 어떻게 온 거예요?”

「사업차 미국에 있었는데 자네가 레이드 원정을 왔단 이야기를 듣고 왔네.」

유지웅을 만날 때면 그가 항상 구비하는 휴대용 홀로그램 장비 덕에 둘은 편안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룸서비스를 시킨 유지웅은 대낮부터 칵테일을 마시며 그와 즐겁게 이야기했다. 정효주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 맞다. 안슐, 우리 내년에 결혼할 것 같아요.”

「오, 저런. 축하하네. 나도 초대해주겠나?」

“당연하죠!”

「서둘러 결혼 선물을 준비해야겠군. 기대하게.」

기대보다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안슐이 줄 결혼 선물이 대체 뭐가 될지 상상이 안 간다.

“맞다. 안슐, 축구 구단을 갖고 있다면서요?”

「그렇다네. 안타깝게도 리그 우승을 놓쳤지. 그래서 대대적인 리빌딩을 준비하고 있네.」

“축구는 잘 모르지만, 꼭 다음번에는 우승하길 빌어요.”

「사실 내 클럽은 완벽하다네. 그런데 번번이 경쟁 클럽에 발목을 잡히고 있지. 아니, 정확히는 그 클럽의 한 선수에게 프리미어 리그 모든 클럽이 골머리를 썩고 있어.」

“그럼 그 선수를 사오면 안 되나요?”

「이적료로 2억 5천만 파운드까지 제시했는데, 클럽 감독이 구단주와 이사들을 설득해서 이적을 막고 있네. 아무래도 돈에 넘어가서 팔지는 않을 것 같네. 그거 때문에 아주 골치가 아프다네. 그 선수를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 다음 시즌 우승도 불가능할 것으로 보여.」

“그 선수가 누군데요?”

「자네와 같은 나라라고 들었는데. 김현준이라고, 그 클럽의 주장이지. 그런데 자네는 어지간히도 축구에 관심이 없는가 보군. 동양인 최초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인데 말이야.」

“아하하, 제가 스포츠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근데 선수를 안 판다면 아예 클럽을 사면 되지 않아요?”

「난 내 클럽을 최고로 만들고 싶은 거지, 남이 만들어놓은 최고의 클럽을 원하는 게 아닐세.」

“그래요? 근데 감독 혼자서 이적을 반대하는 거라고 했죠? 그럼 그 감독도 세트로 묶어서 같이 사오면 안 되나요? 그 감독은 그 선수를 자기 밑에 두고 싶은 거잖아요?”

「…….」

잠시 말이 없던 안슐이 가볍게 박수를 쳤다.

「그런 방법이 있었어.」

빈말이 아니었는지 안슐은 그 자리에서 비서에게 전화해서 뭔가 지시를 내렸다.

「그나저나 자네도 꽤나 골치 아프겠군. 미국이 가만히 놔두지 않을 테니 말이야.」

“네? 무슨 말이에요?”

「이런, 아직 회유가 안 들어왔나? 미국이 자네 능력을 잔뜩 탐내서 벼르고 있던데.」

“별로 그런 건 없던데요?”

사실 한국 정부는 미국 원정을 썩 내키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굳이 반대하지도 않았다. 공개적인 방문을 가지고 미국이 어떤 음모술수를 꾸밀 순 없기 때문이다. 국제관계에 법이 없다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힘만이 통용되는 것은 아니다.

유지웅은 미국의 원정 의뢰를 받아들여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입국했다. 그것을 가지고 장난질을 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물론 자국민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혹은 친분을 다지기 위한 회유는 시도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한국 정부는 유지웅이 한국을 떠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다. 어차피 돈에 구애받지 않으며, 가족과 지인들이 한국 땅에 있는 이상 외국으로 갈 이유도 없으니.

「그럼 차차 회유가 들어오겠군. 그들이 어떤 혹할 조건을 제시한다 해도 신중하게 생각하게. 그리고 이번 레이드도 건승을 빌겠네.」

“고마워요.”

「미리 결혼 축하하네. 난 결혼선물을 뭘 주면 좋을지를 생각해봐야겠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밤늦게 술을 대작하다가 헤어졌다. 덕분에 즐거웠다.

시차 적응을 마친 제니스 공격대는 완벽한 태세를 갖추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지원팀이 분주하게 장비 세팅을 시작했다. 장태준은 대원들 앞에서 마지막으로 대응 공략을 정리했다.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몸통 박치기 공격입니다. 어그로가 불안정한 괴수는 아니지만, 칼리타는 드물게 무작위로 원거리 딜러에게 달려가서 박치기 공격을 가하는 때가 있습니다. 모션이 워낙 크니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겁니다.”

누군가가 질문했다.

“보호막이 못 버틸까요?”

“그건 알 수 없죠. S급 장비 보호막이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추정은 하지만, 확신할 순 없는 겁니다. 그리고 보호막이 제때에 들어가지 못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피할 수 있는 공격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장태준은 속으로 깊이 탄식했다. 보호막 때문에 딜러들이 너무 안이해졌다.

딜러의 역할이 뭔가? 괴수의 체력을 깎는 것이다. 괴수의 공격을 받아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탱커의 역할이다. 한 방 맞으면 죽어버릴 종잇장들이 피할 생각을 안 하고 ‘버틸 수 있을까?’라는 생각 따위나 하는 게, 말이나 되는가?

제니스 공격대는 전투 준비를 마쳤다. 이미 미군이 일정 거리를 두고 대기 중이었다. 여차하면 즉각 투입될 수 있도록. 그래서 미 정부는 임시지만 제니스 공격대에게 미군 부대를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유지웅은 또 그 권한을 장태준에게 떠넘겼다.

“저게 칼리타야?”

대원들이 소리 죽여 이야기했다. 넓은 들판에 거대한 소 한 마리가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크고 날카로운 뿔은 스치기만 해도 모든 게 찢어질 것만 같았다.

소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 크기는 대형 버스 네 대는 합친 것만큼 컸다. 네 개의 발굽은 웬만한 소형차만 했다. 몸집만 보면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메인 탱커, 투입.」

정효주가 번개처럼 뛰어나갔다. 높이 솟구친 그녀는 쌍날검을 힘차게 종으로 휘둘렀다.

낌새를 느꼈는지 칼리타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눈동자가 붉게 변했다. 칼리타는 곧바로 두 앞발을 높이 치켜들고 울부짖었다.

―크어어엉!

뒷발로 딛고 칼리타가 일어서자 그 높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정효주의 얼굴에 낭패가 어렸다. 그녀는 있는 힘껏 도약한 터라 아직 활공 중이었다.

칼리타가 힘껏 앞발을 내리쳤다. 소형차만 한 발굽이 그녀를 사정없이 가격했다. 퍼억 하는 둔탁한 타격음이 울리고 그녀가 땅에 내동댕이쳐졌다. 땅이 깊게 파이며 먼지가 풀썩 일었다.

“으으으…….”

그녀는 재빨리 중심을 잡고 일어섰다. 강력한 일격이었지만 3단계 보호막은 아직 벗겨지지 않았다.

“하앗!”

쌍날검을 수평으로 세운 채, 정효주는 힘껏 찔러 들어갔다. 칼리타의 앞발이 또다시 철퇴처럼 떨어졌다. 그녀는 살짝 방향을 틀어 앞발 공격을 피하고, 그대로 쇄도했다.

까강!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손목에 전해지는 반발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재빠르게 뒤로 물러난 그녀는 얼얼한 손목을 쓰다듬으며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어?”

「무슨 일입니까?」

“아무 것도 아니에요. 다시 갈게요!”

정효주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달려들었다. 칼리타가 우렁찬 포효를 내질렀다. 두 발로 서 있는 소라니, 말만 들으면 우스꽝스러울 것 같지만 실제로 보니 위압감이 대단했다.

―크아아아!

칼리타가 또 다시 앞발을 힘차게 휘둘렀다. 정효주는 재빨리 몸을 낮게 숙이며 파고들었다. 왼쪽 앞발이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두 손으로 쌍날검을 날카롭게 세워 잡고, 그대로 찔러 들어갔다. 그때였다.

퍼억!

오른쪽 앞발이 그녀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그녀는 순식간에 십여 미터나 내동댕이쳐졌다. 보호막이 상당량 훼손되었으나 그녀의 몸에는 타격이 없었다. 그리고 재빨리 추가 보호막이 들어와서 그녀를 감쌌다.

그녀는 칼리타의 허벅지를 향해 있는 힘껏 쌍날검을 찔러 넣었다. 까강! 하며 엄청난 반발력이 되돌아왔다. 온몸의 체중을 실어 전력을 다한 만큼 이번에는 손목이 얼얼한 정도가 아니라 온몸에 충격이 밀려들었다.

반발력을 역으로 정효주는 뒤로 힘껏 물러났다. 그녀는 다시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설마?”

「정효주 씨. 혹시…….」

“딜 대기요! 아직 딜 시작하면 안 돼요!”

「알겠습니다. 근데 설마 제 예상이 맞다면…….」

“제 공격이 전혀 안 먹혀요.”

낭패였다. 방어막의 강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아무리 힘껏 찔러도 칼날이 파고들지를 못한다. 이래서는 어그로를 끌 수 없다.

딜러의 딜이 주먹이라면 탱커는 송곳이라 할 수 있다. 딜러의 딜은 확산형으로, 괴수의 방어막을 뚫지 못하지만 중화해 버린다. 그래서 딜러한테 계속 얻어맞으면 결국 방어막이 사라지게 된다.

반대로 탱커는 딜러보다는 딜의 출력이 약한 대신 방어막을 한 점으로 뚫고 신체에 직접 타격을 준다. 즉 딜러의 딜보다 덜 위협적이지만, 신체를 타격하기에 괴수가 아픔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괴수는 탱커가 더 위험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왜 안 들어가는 거냐고!”

정효주는 재빠르게 뛰어다니며 있는 힘을 다해 칼리타를 찔러 보았지만, 마치 송곳으로 바위를 찌르는 듯 엄청난 반발력만 되돌아왔다.

방어막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면 괴수에게 타격을 줄 수 없다. 이 상태에서 딜러진이 딜을 시작하면 괴수는 그녀보다 딜러들을 더 위협적이라고 느끼게 된다. 즉 어그로를 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낭패였다.

“무슨 일이야?”

“왜 딜 사인이 안 떨어지지? 저 정도면 충분히 어그로 잡은 거 아니야?”

정확한 사정을 모르는 딜러들이 웅성거렸다. 오직 유지웅만이 보고를 받고 얼굴이 흙빛이 되어 있었다.

“저 괴수의 방어막이 그렇게 단단해요?”

「모르겠습니다. 왜 탱커의 딜이 뚫고 들어가지 못하는지.」

“설마 딜러의 공격도 먹히지 않는 건 아니겠죠?”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시험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 딜을 시작하면 괴수는 분명히 정효주 씨보다 딜러진을 더 위협적으로 느끼게 될 겁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또 있을까.

S급 강화 장비의 리미트를 해제했다. 단일 보호막은 더욱 강력해졌으며, 광역 보호막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거기다가 S급 충전 장비도 가세했다. 63명의 대기조도 언제든지 투입할 수 있게끔 준비를 갖추고 있다.

이 정도면 정말 거의 모든 위험을 고려한 완벽한 팀 구성이 아닌가? 유지웅은 원정을 오면서 자신만만하게 생각했다. 제니스 1차 레이드로 마이카이를 잡았을 때처럼, 손쉽게 잡을 수 있을 자신했다.

그런데 탱커의 공격이 방어막을 뚫지 못한다니. 그럼 어그로를 끌 수 없다는 것 아닌가?

「목표 체내에서 고열 반응! 힘을 모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효주 씨, 충격에 대비, 아니 회피하세요!」

정효주가 바짝 긴장했다. 칼리타가 거칠게 콧김을 내뿜으며 네 발로 땅을 딛고 섰다. 그리고 뒷발로 땅을 거칠게 긁기 시작했다. 마치 돌진을 앞둔 투우 같은 모션이었다.

느닷없이 칼리타가 쏜살처럼 뛰쳐나갔다. 육중한 몸 어디에서 나왔는지 경악스러운 속도였다. 정효주는 재빨리 몸을 날렸지만 뿔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행히 보호막은 깨져나가지 않았다.

“으, 으아아악!”

칼리타는 정효주가 피했음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돌진하고 있었다. 마치 앞을 보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진격 방향에는 딜러진이 있었다.

「회, 회피! 아니! 회피하지 마세요! 광역 보호막! 광역 보호막을 펼치세요!」

장태준이 다급하게 외쳤다. 누가 공격에 맞을지 알 수 없는데 일일이 단일 보호막을 펼치는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유지웅은 곧장 광역 보호막을 펼쳤다. 직경이 50미터가 넘어가는, 매우 커다란 광역 보호막이었다. 딜러진이 힐러진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무리해서 크게 시전한 것이다. 보호막은 그를 중심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너무 큰 광역 보호막이었다. 충전 장비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보호막 시전에 빠져나갔다.

============================ 작품 후기 ============================

저의 갤삼이는 제때 도착했어요. 하지만 개통이를 놔두고 지 혼자 왔네요.

그나저나 도발 면역이네요. 으핫. 어떻게 잡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