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Where is the Stone of Knoxus 00119?

“아, 올해도 다 갔어.”

어느덧 11월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던 지난 한 해였다.

딜러로서 레이드에 처음 발을 내딛었고, 첫 레이드에서 큰 실패를 겪었으며, 보조 힐러로 각성하고, 그러다가 최현주와 사귀었고, 또 깨지고, 다시 보호막 능력자로 각성하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일을 겪었다. 그래서인지 다음 달로 다가온 연말이 의미 깊게 느껴졌다.

“집은 언제 다 짓지?”

“내년 가을쯤이라고 했니?”

“응. 그래도 겨울 공사 가능하다니까 다행이지.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동절기 중단 그런 건 없나 봐.”

시골 부모님 새 집은 골조가 한창 올라가는 중이었으나 둘이 살 신혼집은 이제 겨우 기존 대학 건물을 철거하고 정지 작업을 완료한 상태였다. 공사 규모가 워낙 넓은데다가 건설 규모도 엄청난지라 시간이 꽤 걸린다고 했다.

다행히 건설 기술력이 좋아져서 예전 같았으면 몇 년씩 걸렸을 공사지만, 지금은 획기적으로 공사기간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인력과 돈을 무제한으로 투입할 계획이었다.

“우리 신혼여행 갔다 올 때까지는 완공됐으면 했는데.”

“그럼 결혼식을 늦춰야 하는데?”

정효주의 중얼거림에 그녀의 무릎을 베고 누운 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면서 그가 대답했다.

녹서스의 돌 문제는 흐지부지되었다. 안슐에게 단서 조사를 부탁한 것도 진척이 없었고, 개인적으로 했던 여러 가지 검사에서도 특이사항을 찾을 수 없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레드 몹이 정효주를 대체로 두려워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개체가 얼어붙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에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정효주에게 덤비는 녀석도 있었다. 어쨌든 레이드는 무척이나 쉬워졌다. 정효주 때문에 레드 몹이 다른 대원들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게 된 것이다.

정말 녹서스의 돌이 그녀에게 흡수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어떤 영향을 끼쳤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특별한 점이 없었기에, 둘은 녹서스의 돌에 어떤 영향을 받은 건가 보다 하고만 생각하기 시작했다.

“지웅이 너, 통장에 돈 얼마 남았니?”

“음…… 딱 6조 7004억이네. 아, 한성산업에 투자한 1,500억은 계산 안 했어.”

제니스 공격대는 어느덧 7차 레이드까지 마쳤다. 덕분에 개인 자산이 6조 원을 넘어섰다.

“아아, 실감이 안 나. 내 남자 돈이 그렇게 많다니.”

“나도 그래.”

“너도 역시 그렇지? 돈이 너무 많으니까 막 이상하지?”

“아니, 그게 아니라 내 여자가 이렇게 예쁘다는 게.”

“아이, 왜 그래. 부끄럽게.”

얼굴을 살짝 붉히며 그녀가 눈을 피했다. 히죽 웃음을 띠며 그가 손을 뻗어서 뺨을 쥐었다. 그녀의 얼굴을 아래로 살짝 잡아당기며 입술을 내밀었다. 막 키스하려는 순간이었다.

딩동. 딩동.

벨이 울리자 정효주가 벌떡 일어났다. 좋은 시간을 방해당한 유지웅이 얼굴을 가볍게 찡그렸다.

“누구야? 택배 올 거 있어?”

“아니. 없는데. 누구지?”

인터폰을 확인한 정효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는 재빨리 등을 돌렸다. 유지웅이 물었다.

“왜 그래?”

“아무도 없는 척 해.”

“누군데 그래?”

“혜주야.”

“혜주가 왔어? 왜? 무슨 일로?”

“몰라. 그러니까 없는 척 하는 게 나아.”

“에이, 그래도 멀리서 찾아왔는데 없는 척 하는 건 아니지. 내가 열어줄게.”

유지웅은 문 열림 버튼을 눌렀다. 정문이 열리고 잠시 후 정혜주가 정원을 뛰어왔다. 현관문을 열어주자 정혜주는 와락 안기면서 꼬옥 끌어안았다.

“형부! 저 왔어요!”

한쪽에서 정효주가 못마땅한 듯한 눈초리로 째려 봤다. 정혜주는 바로 알아차리고 눈을 흘겼다.

“언니는? 내가 반갑지도 않은가 봐?”

“왜 왔어?”

“언니 집에 동생이 놀러온 게 뭐가 이상해? 아, 한창 신혼이라서 그런가? 언니, 그럼 안 돼. 아직 식은 안 올렸잖아.”

정혜주는 둘이 동거하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기특한 것은 그거 가지고 놀리기는 해도 비밀은 지킨다는 것.

정효주도 동생이 싫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올곧게 클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단지 지금 막 애인이랑 한 판 뜨려고 하는 찰나에 딱 방문한 게 싫었을 뿐.

“언니이. 나 밥 안 먹었어. 밥 좀 해주라, 응?”

유지웅한테서 떨어진 정혜주는 언니한테 들러붙어서 머리를 비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정효주는 동생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고는 말했다.

“갈비 해놓은 거 있어. 기다려 봐.”

“와! 갈비! 만세! 한우지?”

“그래. 한우야. 횡성한우.”

“역시! 언니 집에 오면 입이 호강한다니까!”

정혜주는 언니를 따라 주방으로 쫄래쫄래 들어갔다. 옆에 찰싹 붙어서 요리 준비하는 걸 도왔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으니 유지웅은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여동생이 없어서 그런지 애교쟁이 처제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서 다 같이 둘러앉아 사과를 깎았다. 사과 조각을 집어 먹으며 정혜주가 입을 열었다.

“근데 형부, 신혼집은 언제 다 지어요?”

“풉!”

하마터면 입에 머금고 있던 과일 조각을 뿜을 뻔했다. 정효주가 급히 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언니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알아. 제니스 공격대장이 대학부지 매입해서 새 집 짓는다는 거. 그게 무슨 국가 기밀도 아니고 알려고 들면 알 수 있지.”

정혜주는 가슴을 팡팡 두드렸다.

“내가 형부와 언니 일이라면 사소한 거 하나도 안 빼먹고 다 알아보고 있다구.”

물론 새 집 짓는 게 군사기밀도 아니고 알려고 들면 얼마든지 알 수 있는 사실이긴 했다.

“와, 근데 정말 쩐다. 형부, 진짜 신혼집 짓는데 2조 원 넘게 쓰신 거예요? 사람들이 그러는데 거기 부지값만 1조 7,000억이 넘는다고 하던데요.”

“어, 뭐. 그 정도 해.”

“이야! 역시 형부는 대단해! 결혼 한 번 하는데 2조짜리 집을 사면 아이 낳고는 뭘 해줄지 벌써부터 궁금한데요?”

“그게 궁금해서 쪼르르 달려온 거야?”

정효주가 차분하게 물었다. 살짝 못마땅해 하는 느낌이 묻어났다. 정혜주가 키득 웃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럴 리가 있어? 그냥 형부랑 언니 보고 싶어서 왔지.”

“아닌 거 아니까 말해. 내가 아무렴 널 모르겠어?”

“진짠데?”

“그래? 그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놀다만 가. 알았지?”

“치. 언니 너무 치사해.”

가볍게 눈을 흘기던 정혜주는 얼른 유지웅의 팔을 껴안듯이 매달렸다.

“형부. 부탁이 있어요.”

“뭔데?”

“다음 달이면 12월이잖아요? 저도 방학 한다구요.”

“아, 그러네. 방학이 있지.”

“방학이라고 놀면 뭐해요? 용돈이라도 벌어야지. 근데 형부도 알다시피 요즘 세상이 얼마나 각박해요? 가게 사장이 알바생 성추행하고 또 일은 실컷 부려먹고 돈은 안 주고, 그쵸?”

확실히 듣고 보니 여러 악덕 업주들 때문에 세상 물정 모르는 알바생들이 많은 피해를 입는 세상이기는 하다.

“그래서 말인데요. 형부, 저 방학 때 알바 좀 시켜주시면 안 돼요?”

“그, 글쎄? 네가 레이드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레이드 현장에 데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아이참, 꼭 그런 데만 알바 자리 있는 건 아니잖아요?”

가만히 듣고 있던 정효주가 끼어들었다.

“공격대 사무소에서 일반 업무에 알바생들을 많이 쓰긴 하는데. 너, 그거 말하는 거니?”

“응!”

“시켜주는 건 문제 없는데, 조건이 있어.”

“뭔데? 나 열심히 할 수 있어!”

“공격대장 예비 처제라는 거 사무소 사람들이고 누구고 간에 절대로 말하지 마. 그럼 알바 시켜줄게.”

“만세! 고마워, 언니!”

유지웅은 정혜주가 왜 저렇게 좋아하는지 몰랐다. 사무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사무소의 전반적인 관리는 장태준 팀장과 새로 고용한 회계팀장이 쌍두마차 식으로 이끌어가고 있었으니까. 그는 종합적인 보고만 받고 세세한 실무는 그 둘에게 맡기고 있었다.

반면 정효주는 그가 신경 쓰지 않는 것들을 꼼꼼하게 다시 한 번씩 따져보고 검토하는 게 늘 일이었다. 그래서 공격대라든가 사무소 전체적인 흐름을 그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다.

“우리 사무소 급료가 높잖아. 알바생 시급도 상당히 높아. 9,000원이 넘던가 그래. 일도 별로 안 힘들고. 그래서 구직자들한테 인기 많아.”

“고마워요, 형부! 고마워, 언니! 알바비 받으면 내가 크게 한턱 쏠게!”

“너 아직 방학도 안 했…….”

“방학이야 금방 온다고요!”

효주를 닮아서 그런지 처제가 귀엽다. 철부지 같으면서도 은근히 야무진 것도 그렇고.

12월을 앞두고 양가 상견례 날짜가 정해졌다. 사실 상견례라는 게 의미가 없긴 했다.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으니 말이다.

양가에서는 예비 신혼부부인 둘이 모아놓은 돈이 상당히 많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다. 일단 시골에 지으려고 하는 집 규모만 해도 상당했으니. 결정적인 것은 둘이 지금 살고 있는 고급 주택을 양가 모친이 한 차례씩 방문한 것이다.

느닷없는 방문이었기에 동거의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 쉬는 날이라서 놀러온 거라 하기에는 자기 집처럼 편안한 옷차림과 건조대에 널린 여자 속옷 등은 도저히 변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정효주 모친은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모른 척 넘어갔지만, 유지웅 모친은 따로 그를 불러다가 아주 혼쭐을 냈다. 뭐 이미 쌀이 익어 밥이 된 상태라 일이 더 크게 번지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큰 의미는 없는 상견례이지만 양가가 결혼을 허락하고 정식으로 날을 잡는다는 의미가 있었다.

“효주야, 나 어때? 이거 좀 이상한 거 같아.”

“여기가 삐뚤어졌잖아. 이리 서 봐. 잡아줄게. 됐다. 자, 이제 나도 마저 준비할게.”

“너, 오늘은 몇 시간이야? 오래 걸릴 거면 나 전설대전이나 몇 판 하게.”

“금방 끝낼 거니까 게임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너 저번에도 금방이라고 해놓고는 두 시간…….”

“금방 된다니까!”

요란하게 준비를 마치고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원래는 남자 가족, 여자 가족 따로 오는 게 모양새가 맞겠지만 그냥 알아서 찾아오시라고 했다. 대신에 유지웅 커플은 상견례 장소에서 먼저 기다리기로 했다.

“아이고,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건강하셨어요?”

“염려해주신 덕분에요. 그나저나 애들 어렸을 때 농담처럼 한 말이 정말 현실이 됐네요.”

“그러게요. 우리가 정말 사돈으로 인사하게 될 줄은 몰랐네요.”

“부족한 아이지만 잘 부탁합니다, 사돈.”

“아니에요. 우리 효주야말로 오히려 여러 모로 부족하죠.”

식사가 나오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가 흘러갔다. 예비 시부모 앞이라 그런지 정효주는 정갈하면서도 깔끔한 정장을 입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다. 유지웅은 그런 모습이 또 신선하면서도 예뻤다.

“식은 그럼 언제로 할까요?”

“애들이 신혼집 새로 짓고 있다네요. 그게 내년 가을쯤에는 완공될 것 같대요.”

“아, 들었어요. 아무래도 신혼집 완공되고 식 올리는 게 새 출발하는 기분 나고 좋을 것 같긴 한데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아 있어요. 식부터 빨리 올리고 신혼집은 천천히 들어가라고 하죠. 지금 사는 집도 좋은 것 같던데.”

“그럼 한 5월로 할까요?”

“좋네요.”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 유지웅은 양가 부모 몰래 정효주와 시선을 교환했다. 이 자리에 오기 전 둘은 이미 합의를 보았다. 이제 그만 사실대로 밝히기로 말이다.

“어른들께 말씀드릴 게 있어요.”

“뭔데? 말해보렴.”

“사실 우리 정공 하나 운영하고 있어요. 제가 공격대장이고 효주가 탱커장이에요. 메인 탱커예요.”

“아니, 효주가? 우리가 레이드는 잘 모르지만 효주가 메인 탱커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안전한 거니?”

예상대로 효주 부모가 우려를 표했다. 딸이 정공 메인 탱커를 하기에는 부족한 스펙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랑 함께 하면 괜찮아요.”

“정공 이름이 뭐니?”

“이 사람이. 보나마나 조그만 정공일 텐데 그걸 말한다고 우리가 아나? 정공이 한두 개도 아니고 말이야.”

“에이, 왜 몰라요. 그래도 결정체 가공업에서 사업하는 집안인데 건너건너 들은 게 있겠죠.”

효주 부친이 가볍게 타박하자 모친이 그렇게 반박했다. 유지웅은 다시 정효주와 시선을 교환했다. 괜히 떨렸다.

“제니스 공격대예요.”

“……뭐라고? 제니스 공격대?”

레이드 종사자가 아니라 해도, 제니스 공격대라는 이름은 일반인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것이다. 양가 부모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살짝 굳어졌다.

“제니스 공격대라면…… 그, 레드 몹만 잡는다던 정공 말하는 거냐?”

“네.”

============================ 작품 후기 ============================

공사기간이 좀 짧은 면이 있지만 1) 소설의 흐름에 맞추기 위해서 2) 공사기술이 현실보다 더발달했다는 이유와 3) 인력과 금전의 무제한적인 투입을 통한 공사기간 단축 4) 기타 등의 사유를 고려해서 작중 배경으로 내년 가을로 완공을 잡았습니다.

현실보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픽션 보정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어느 정도의 픽션의 편의 및 흐름을 위한 보정은 이해해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