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140. We're married.

사력을 다한 딜이 쏟아졌다. 레드 몹이 거칠게 울부짖으며 난동을 부렸다. 있는 힘을 다해 브라우니를 공격해보지만 보호막에 막혀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다. 그러는 동안에도 딜은 쉬지 않고 쏟아지고 있었다.

―캬아아아!

한 차례 거친 포효처럼 음파 공격이 사방을 쓸었다. 그러나 대비하고 있던 유지웅이 재빨리 광역 보호막을 쳐서 광역 공격을 막아냈다. 하도 레드 몹 레이드를 해서인지 목표가 취하는 모션만 봐도 광역 공격을 할 것이라는 것을 대강 알 수 있었다.

―크르르릉! 캬아아앙! 크아아앙!

브라우니는 아주 신이 났다. 날개가 다친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리저리 날뛰면서 물어뜯기 바빴다. 오죽했으면 장태준이 근접 딜러에게 계속 대기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저기에 휘말렸다가는 근접 딜러가 다치게 생겼다.

―끄르르르…….

마침내 단말마 섞인 신음을 흘리며 레드 몹이 쓰러졌다. 고릴라처럼 생긴 거대한 몸집이 쿵 하고 넘어지자 땅이 세차게 흔들릴 정도였다.

「딜 중지.」

그제야 딜러들은 한숨을 내쉬며 공격을 멈췄다. 급작스러운 습격이어서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별 탈 없이 끝났다.

“오늘 힐러진 수고하셨어요.”

“뭘요. 딜러진 딜이 좋아서 쉽게 끝난 거죠. 딜러분들도 고생 많으셨어요.”

“근데 이거는 분배가 어떻게 되나요?”

“분배요? 그런 게 있어요? 원래 동원 소집 되면 걍 적당히 소집 보상 받는 거 아니었어요? 그 비용은 나라가 결정체 팔아서 지불하잖아요.”

“원래야 그렇죠. 하지만 우리는 아닐 걸요?”

보통 동원 소집된 능력자들은 레이드가 끝난 후 법률에 규정한 대로 보상금을 받는다. 그리고 괴수 사체 소유권은 국가에 귀속되는 것이다. 국가는 결정체를 팔아서 보상금을 지불하고 남은 돈은 국고에 환수된다. 물론 실제로는 거의 남지 않는다.

하지만 유지웅은 정부와 다른 약속을 했다.

어차피 레드 몹이 습격하면 유지웅과 제니스 공격대 우선으로 소집된다. 그래서 정부는 유지웅에게 많은 것을 약속했다. 레드 몹 사체의 소유권을 제니스 공격대에 주기로 인정한 것이다. 대신 정부가 통상 지불해야 하는 소집 보상금은 유지웅이 대신 지불하기로 했다.

정부로서는 조금 아쉬운 약속이다. 하지만 유지웅의 존재가 레드 몹을 쉽게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을 고려하면, 그 정도는 특혜라고도 부를 수 없다. 오히려 사망자가 거의 나오지 않는 점 때문에 정부가 고마워해야 한다.

“아, 그럼 저 결정체 우리 공대장님이 갖는 거예요?”

“그렇죠. 우리끼리 레이드 한 거나 똑같아요.”

“이야, 그럼 출동 수당 받겠네요.”

대원들은 그런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했다. 돈이 들어온다는데 기쁘지 않을 리가 없다.

힘든 전투를 마치고 정효주는 땀을 닦았다. 괴수 사체가 가루로 흩어지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브라우니가 꼬리날개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배를 딱 바닥에 붙이고 그녀 옆에 앉았다.

“잘했어.”

칭찬이라는 것을 알아듣는 걸까. 꼬리를 흔드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매우 기쁜 것 같다.

괴수 사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 자리에는 반짝이는 푸른색 보석만 남았다. 진주만 한 크기의 결정체가 신기했는지 브라우니가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정효주가 놀라서 외쳤다.

“브라우니! 안 돼!”

얼마나 절박한 외침이었던지, 승리를 자축하던 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돌아갔다. 곧 그들의 눈도 경악으로 휘둥그레졌다.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브라우니가 블루 결정체를 홀라당 먹어버린 것이다.

“으악! 먹었어!”

“결정체를 먹었어! 아아악! 수천억 짜리를!”

“어, 어떡해? 어떡해?”

사색이 된 정효주가 재빨리 뛰어들었다. 주먹을 쥐고 브라우니를 마구 때렸다.

“토해내! 토해내, 브라우니!”

영문을 모르는 브라우니는 겁을 집어먹은 채 그녀가 때리는 대로 맞았다.

“빨리 토하라고!”

정효주가 얼굴이 빨갛게 된 채 배를 계속 때렸다. 브라우니는 배를 까뒤집고 깨갱거렸다. 숨이 넘어갈 듯한 비명이 연신 시끄럽게 울렸다.

그때였다. 브라우니의 몸이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다. 곧 섬광이 짙어지며 눈을 똑바로 뜰 수가 없게 되었다.

「물러나세요!」

장태준이 급히 지시했다. 정효주는 재빨리 뒤로 뛰었다.

“뭐, 뭐에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예요, 지금?”

당황한 대원들이 웅성거렸다. 장태준이 침착하게 오더를 내렸다.

「전원 전투 준비.」

“네?”

어리둥절해하면서도 대원들은 시키는 대로 물러나서 진형을 갖추었다. 몸에 밴 본능 같은 것이었다.

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브라우니가 있는 쪽은 도저히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었다. 저마다 손과 팔로 눈을 가리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캬아아아!

마침내 빛이 멎으며 거대한 포효가 일었다. 하늘과 땅이 뒤흔들릴 듯한 엄청난 포효였다.

변신을 마친 브라우니는 전보다 몸집이 커져 있었다. 암사자만한 몸매가 황소만한 크기로 변한 것이다. 아까 섬멸한 레드 몹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크기지만, 몸집이 작은 대신 굉장히 단단해 보였다. 깃털도 반짝이는 은색으로 변해 세련되면서도 날카로운 기세를 뿜고 있었다.

새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브라우니는 날개를 파드득거리며 크게 포효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새 옷을 입고 으쓱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좋게 봐주면 귀엽고, 솔직하게 봐주면 어처구니없고, 나쁘게 봐주면 기가 막힌 모습이었다. 지금 저게 얼마짜리를 처먹어놓고 저러고 있는 거냐!

「공격! 메인 탱커, 어그로 확보하세요!」

장태준의 관점은 달랐다. 괴수는 서로를 잡아먹고 강해질 수 있다. 즉 결정체를 먹고 강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브라우니는 아까 섬멸한 레드 몹보다 더 강력한 개체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미 뱅가를 통해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속전속결이 답이다. 적어도 멍하니 손 놓고 있다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효주도 그런 장태준의 뜻을 이해하고 즉각 반응했다. 그녀는 장검을 쥐고는 힘껏 뛰어들었다. 그리고 으쓱거리는 브라우니의 배를 힘껏 찔렀다.

―깨갱! 깨개갱!

개 멱따는 소리가 울렸다. 칼침 한 방 맞았을 뿐인데 브라우니는 죽을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정효주를 보고는 발딱 누워서 배를 뒤집었다. 그녀가 순간 멈칫했다. 브라우니는 이때다 싶어서 얼른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아차!”

깜짝 놀란 그녀가 재빨리 반응했다. 그녀는 반격 자세를 갖추며 맞서 뛰어들려고 했다. 바로 그때였다. 코앞까지 달려온 브라우니가 땅에 배를 납작 깔고 엎드렸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꼬리날개를 힘껏 흔들기 시작했다.

“…….”

몸집이 커져서 하는 짓은 예전과 똑같다. 아니, 황소만 한 녀석이 저러고 있으니 그 언밸런스함에 묘하게 웃기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대원들은 공격 지시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구경했다.

―끄응, 끼잉, 끄으응…….

브라우니가 연신 고개를 흔들며 구슬픈 소리를 냈다. 방금 전 맞은 칼침이 호되게 아팠던 모양이다.

“장 팀장님, 이거 계속 공격해야 하나요?”

「……글쎄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바라보던 정효주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지금 저게 얼마짜리를 처먹고 애교를 피워? 그런다고 용서가 될 것 같은가 말이다.

“어떡할 거야! 그걸 먹으면 대체 어떡해!”

답답한 나머지 그녀는 주먹을 쥐고 브라우니의 머리를 쾅 하고 내리쳤다. 브라우니가 깨갱하고 비명을 지르며 배를 까뒤집었다. 등을 땅에 대고 누운 채 날개를 파드득거리며 허공에 발버둥을 쳤다. 대원들 중 몇 명이 참지 못하고 그만 웃고 말았다.

브라우니가 덩치만 커졌을 뿐 태도는 달라진 게 없다는 게 확인되자 결국 레이드는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났다. 아무래도 작은 시절 정효주에게 얻어맞았던 기억이 어지간히도 생생한가 보다. 게다가 커지자마자 칼침을 제대로 맞았으니, 오히려 전보다 더욱 무서워하며 따르고 있었다.

블루 결정체를 먹고 커졌다는 소리에 정부 관계자들은 놀라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낭패감을 지우지 못했다. 괴수 사육 계획이 무산되지 않은 것은 다행이지만, 수천억짜리 결정체를 홀라당 먹어버리다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어쩌긴요. 당연히 주인이 물어내야죠.”

유지웅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그는 사정없이 정부 관계자들을 몰아세웠다.

“확실히 해두죠. 우리는 정부의 의뢰를 받아서 브라우니의 사육을 보조해주는 입장이에요. 어디까지나 소유주는 우리가 아니라 정부라는 거죠. 그러니 브라우니가 먹은 결정체 값은 정부가 물어내는 게 맞죠.”

주인이 있는 병아리를 개가 잡아먹었다. 당연히 개 주인이 병아리 값을 물어내야 한다. 그게 세상 이치 아니던가?

블루 결정체는 제니스 공격대 소유이며 브라우니의 소유권은 정부에 있다. 유지웅은 브라우니 획득 즉시 정부의 요구대로 돈을 받고 팔아넘겼으니까.

“하, 하지만 조련 입장에서 관리 책임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게 왜 우리 책임이에요? 오늘 우리가 여기 온 건 어디까지나 레드 몹이 습격해서 동원된 거라고요. 브라우니를 교육하려고 온 게 아니라고요.”

“그, 그래도…….”

“그리고 더 확실하게 해볼까요? 전 브라우니 사육을 반대했어요. 위험하고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요. 그걸 대통령님이 자기가 책임진다고 우겨서 떠맡듯이 맡은 거라고요. 근데 왜 우리가 책임져야 돼요?”

아무런 책임권한도 없는 하급 정부 인사는 유지웅의 날선 추궁에 쩔쩔 맸다.

브라우니는 그런 세속적인 다툼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이 정효주한테 딱 붙어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정효주는 처음에는 수천억짜리를 먹어치운 것 때문에 화를 냈지만, 상황 돌아가는 것을 보고 화내는 것을 관뒀다. 이거 잘만 하면 자신들은 손해 볼 게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철수하죠.”

제니스 공격대는 철수했다. 출동 수당을 줘야했지만 분쟁이 해결되면 정산하기로 유지웅이 약속했다. 다들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에 불만 없이 물러났다.

일이 커지고 커져서 청와대까지 이 일이 들어갔다. 당연히 정부 입장이 난처해졌다.

“브라우니는 국가 소유고, 결정체는 우리 소유죠. 우리 것을 국가의 개가 먹었으니 당연히 국가가 물어내야죠.”

사실 유지웅의 논리는 틀린 게 없다. 푼돈이었으면 정부도 허허 하고 웃으며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청구금액이 기절초풍할 만큼 크다는 것에 있었다.

자그마치 2조 1,000억 원이나 되었다. 결정체 값을 7,000억으로 잡고, 예상 유통마진을 그 두 배로 잡아서 다 합치니 무려 2조 1,000억이나 청구된 것이다.

국가 예산 규모가 크다고 해도 나라 살림이란 건 본래 빡빡하게 돌아간다. 십 원 하나까지 쓸 곳을 정해서 예산 계획을 잡는다. 예정에 없던 지출 내역이 생기면 국회 승인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게 나라 살림이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2조 1,000억 원의 출혈이 발생하고 말았다. 레이드 부서 특성상 대규모 비상금을 운용하고 있지만, 억 소리도 아니고 조 소리 나올 정도로 규모가 커지면 대책이 없다.

“유지웅 대장의 입장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정부 입장을 이해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결국 행정안전부 장관까지 나서서 그를 설득했다. 사실 장관은 조금 억울했다. 어쩌다 보니 초능력자 관리본부가 행정안전부 산하기구로 있지만, 자신은 명목상의 최고책임자일 뿐 실제로는 아무 영향력이 없었다. 조만간 관리본부는 행정안전부와 동급 부서로 승격되고 새 장관도 임명될 예정이었으니까.

“그런 게 어딨어요? 저는 이번에 엄청난 손해를 봤단 말이에요. 제가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딱 저 손해 본 만큼만 배상해달라는 건데요.”

“주고 싶어도 그럴 돈이 없습니다. 예산 변경 승인이 날 때까지 기다려주시던가, 아니면 우리가 제시하는 타협을 받아들이시던가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국회가 과연 예산 변경을 승인해 줄지는 의문이다. 유지웅은 두 번째 이야기를 일단 들어보기나 하자는 심정으로 물었다.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3천억입니다.”

“……뭐라고요?”

“그, 그것도 긁고 긁어서 모은 예산입니다. 정부는 정말 돈이 없어요.”

빈말이 아니라 그 돈도 내주고 나면 당분간은 초능력자 관리본부는 엄청난 긴축 운영을 해야 했다.

유지웅은 조금 화난 듯이 말했다.

“제가 이래서 브라우니 잡자고 했잖아요. 왜 그때 안 잡아서 결국 이 지경이 됐냐고요.”

“죄,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장관은 일단 사과부터 하고 봤다. 공직에서 은퇴하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싶으면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아야 했다.

“이거 안 되겠네.”

유지웅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전화기를 꺼냈다. 어딘가로 전화하는 모습을 장관은 불안하게 지켜봤다. 이윽고 통화가 연결되자 유지웅이 반색했다.

“김 변호사님? 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아, 다름이 아니라 제가 사소한 재무 분쟁 하나가 생겨서요. 네, 별 것도 아닌데 제가 직접 매달리는 것보다는 전문가한테 위임하는 게 역시 좋겠죠? 합의하셔도 되고 소송을 하셔도 되니까 돈을 받아만 내주세요. 아, 청구 금액이요? 2조 약간 넘어요.”

2조라는 말에 법무법인 킴벌리는 눈이 뒤집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김장호가 달려왔다. 유지웅은 즉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제부터는 두 분이서 이야기하세요.”

복잡한 건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최선이다.

============================ 작품 후기 ============================

그러게 옛 어른들은 머리 검은 짐승은 함부로 거두는 게 아니라고 하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