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176 We're on vacation.

사람은 자기 지위에 걸맞는 씀씀이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사회 경제에 도움이 된다. 저축의 미덕은 가지지 못한 자의 바이블일 뿐이다.

「돈은 쓸 만한 가치 있는 곳에는 주저 없이 써야 하지.」

안슐은 이 어린 친구를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 재산을 많이 모았으면서 어디에 써야 할지를 모른다. 돈을 쓰는 즐거움을 안다면 좋을 텐데. 그런 큰뜻에서 축구 클럽을 사자고 권유했고, 비싼 차와 항공기를 선물한 것이다.

그는 유지웅을 데리고 다니며 이것저것 상류층의 씀씀이를 가르치는데 주력했다. 카지노, 사치, 심지어 사회 기부까지 자신이 돈을 쓰는 분야를 남김 없이 보여 주었다.

유지웅은 특히 기부 행위에 궁금증을 나타냈다.

“근데 다른 건 결국 나한테 쓰는 거지만 기부는 남에게 내 돈을 주는 게 아닌가요? 그게 의미가 있을까요?”

「많은 의미가 있지만, 하나만 말하겠네. 명예가 있지.」

“명예요?”

「그렇지. 명예. 그런 무형적 가치야말로 얻기 가장 어렵고, 제일 값진 것이지. 보트나 토지, 보석 같은 것은 그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것들이지. 쉽게 구할 수 있으니.」

유지웅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자네도 경험이 있을 텐데. 레이더를 위한 보험재단을 설립하고 많은 이익을 얻지 않았나?」

“글쎄요? 재단이 수익을 꽤 내기는 하지만 최소 운영비를 빼고는 보험기금에 재투입하고 있어서 저한테 남는 건 없어요.”

「왜 남는 게 없나? 명예가 있는데.」

“명예요?”

「남을 위해 한 푼을 쓰는 것도 주저하는 사람이 많네. 하지만 자네는 사회를 위해 많은 돈을 풀었지. 그건 충분히 칭송받을 만한 명예로운 일이야.」

“제가 가진 거에 비하면 정말 얼마 안 되는 돈인데요.”

「한 푼 쓰는 것도 꺼리는 사람들이 널렸다네. 액수야 어떻든, 자기 것을 베푼다는 것은 명예로운 걸세. 액수가 크면 더 명예로운 것이고.」

유지웅은 그동안 안슐이 자기 사업, 취미를 위해서만 재산을 쓰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자국의 복지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기부를 자랑스러운 일로 여기고 그로 인한 만족감을 돈보다 더욱 가치 있게 여겼다. 그것은 색다른 충격이었다.

돈을 쓰면서 얻는 만족감. 그리고 사회에 대한 도움. 안슐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 두 가지를 절묘하게 절충하고 있었다.

그렇게 안슐한테 부자의 마음가짐을 배우고 있는 중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

「유 사장님, 저 최윤입니다.」

점심을 먹고 숙소에서 한가하게 간식을 즐기던 유지웅은 뜻밖의 전화에 의아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저,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말씀해 보세요.”

비록 삐져서 한성산업을 놔주긴 했지만, 최윤에 대한 유지웅의 마음은 호감으로 남아 있었다. 최윤은 무엇보다 그를 위해서 일을 처리하려고 했다. 방어장비 기술을 묻으려고 한 것은, 다른 창립 멤버에게는 배신에 가까울지 몰라도, 유지웅에게는 충성을 바친 행위였다.

「전화상으로 드리기는 조금 어려운 이야기인지라…… 언제 한 번 찾아가도 될까요?」

“제가 지금 외국이라서요. 이야기 길어져도 괜찮으니 편하게 말씀하세요.”

「그럼 염치 불구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조만간 회사를 나오려고 합니다.」

“회사를요?”

살짝 놀라긴 했지만 아주 납득 못할 것은 아니었다. 방어장비 때 최윤은 유지웅의 편을 들었다. 다른 이들과 커다란 반목을 한 셈이다. 유지웅이 계속 사주로 남았다면 모를까, 그가 회사를 놔준 상황에서 최윤의 입장은 코너에 몰렸으리라.

「실은 저도 개인적으로 몇 가지 준비한 사업 아이템이 있는데, 그쪽으로 새로 창업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혼자 하려니 여러 가지로 불안하기도 해서요…….」

“무슨 아이템인지 간단하게라도 들을 수 있을까요?”

「한성산업처럼 결정체 공정 분야입니다. 하지만 장비쪽보다는 결정체의 소재 제련과 공정 쪽이고요. 결정체를 이용한 신소재 개발이나 혹은 기존 소재를 더 저렴하게 공정하는 회사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사업 계획서가 필요하시다면 메일로 바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사업계획서는 뭐 나중에 보내주시고요. 투자하죠.”

「예? 사업계획서도 안 보시고요?」

“최 사장님은 괜찮습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그는 조금 감동 먹은 눈치였다.

“제가 어떤 식으로 투자해주길 바라시죠?”

「자본 투자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가진 자금만으로는 부족해서요.」

“김 변호사님한테 이야기를 해둘 테니 자세한 건 두 분이서 의논하세요. 나중에 필요한 금액을 말씀하시면 지원해드리죠.”

「감사합니다.」

최윤이 도움을 청하자 유지웅은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가 자신에게 보인 충성심을 이런 식으로라도 보답해줄 수 있다는 게 보람 있었다. 이것도 안슐이 말한 돈쓰는 가치일까?

“최윤 씨한테 투자하게?”

“응. 사람은 마음에 드니까.”

“요새 사업 같은 거 관심 있나 봐?”

“별로? 그냥 회사 하나 산 셈 치지 뭐. 얼마나 한다고.”

정효주가 배시시 웃으며 머리를 기댔다. 침대에 몸을 기대고 누운 채 둘은 다정히 손을 잡았다. 그녀가 과일을 집어서 입에 넣어 주었다.

“레이드 쉬니까 이것도 이거 나름대로 좋다.”

“나두.”

“이참에 아예 쉬어버릴까?”

“얘는. 제니스는 어쩌려고?”

정효주 말이 맞다. 현재 남은 대원들은 그를 믿고 끝까지 남은 사람들이다. 유지웅도 도의적인 책임감이랄까, 그런 걸 느끼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쉴 수는 없었다.

* * *

「또 오게.」

안슐이 못내 아쉬워하며 배웅을 나왔다. 둘은 영영 헤어지는 친구처럼 악수를 풀지 못했다. 결국 정효주가 잡아 끌고 A3 내부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내가 안슐 초대해야지. 집을 좀 더 근사하게 꾸며야겠어.”

유지웅은 그렇게 뒷일을 계획하며 오랜만에 한국 레이드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한 달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아부다비에 머무르는 동안 한국 쪽은 귀를 닫고 있었기에 그 동안 별 일 없었는지도 궁금했다.

레이드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한 유지웅은 깜짝 놀랐다. 쪽지가 수십 통이 넘게 와 있었다. 전부 기존 탈퇴자들이었다. 이상하다 싶어 열어보니 하나같이 죄송했다, 다시 가입할 수 있겠느냐 하는 내용이었다.

“뭐지? 왜 갑자기 제니스로 돌아오려고 하는 거지?”

“우리도 분배제 한다는 거 안 거 아니니? 어쨌든 우리가 제일 쉽고 안정적으로 잡는 건 사실이잖아.”

“근데 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이렇게 바로 다시 가입하고 싶다는 게 말이 돼? 자기들도 생각이 있으면 내가 일부러 분배제 늦게 시행했다는 거 알 텐데.”

정효주는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말했다.

“다른 정공이 레드 몹 잡는 게 뭔가 눈에 안 찼던 건 아닐까? 아무래도 우리만 하지는 않을 거 아니니?”

“그런가?”

오랜만에 집에 온 유지웅은 바로 침대에 널브러졌다. 정효주는 두 팔을 걷고 청소를 한답시고 나섰다. 한 개 층이 통째로 방이다 보니 청소해야 할 면적이 장난이 아니었다.

십여 개가 넘는 청소 로봇이 바닥을 청소하고, 정효주는 마스크를 쓰고 먼지를 닦느라 바빴다. 유지웅은 그녀가 청소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침대에서 빈둥거렸다.

패드컴퓨터를 들고 놀던 그는 레이드 일정을 잡아볼까 하다가 박현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레드 몹 트라이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녀는 금방 전화를 받았다.

「아, 공대장님. 휴가는 잘 다녀 오셨어요?」

“아직도 휴가 중이죠. 뭐, 레이드 안 할 때는 항상 휴가 중이긴 하지만요.”

「재미있으셨나 보다.」

“참, 한국은 그동안 별 일 없었어요? 오면서 확인해봤는데 탈퇴자들이 다시 가입하고 싶다고 쪽지 보냈더라고요. 생각보다 레이드가 별로인가 봐요?”

「아……. 그거 안 그래도 할 말이 많아요.」

유지웅은 의아했다. 박현정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레드 몹 레이드 좀 말이 많더라고요.」

“어떤 건데요?”

「정부 발표에 좀 허위가 있는 거 같아요. 사망자가 전혀 없다는 것도 뭔가 아닌 것 같고. 말 들어보면 죽은 사람도 있다는 것 같은데, 실제로 죽었다고 난리 치는 것도 없고. 그냥 여러 가지로 소문이 좀 안 좋아요.」

“그래요?”

퍼뜩 안슐의 말이 생각났다. 안슐은 레드 몹 도전이 너무 순조로운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뭔가 은폐가 있지 않느냐는 식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확실한 건 아니에요. 레이드 참가자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거든요. 제니스에 재가입하고 싶다는 사람들, 아마 레이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겪어서 그럴지도 몰라요. 한 번 물어보세요.」

“알았어요.”

전화를 끊고 유지웅은 재가입 희망자 명단을 놓고 고민하다가 한 명을 선정했다. 그보다 한 살 많은 여자 힐러였다. 만나자고 하니까 상대는 얼른 수락했다.

정효주가 정성들여 코디를 해주었다. 깔끔한 양복 정장을 입고 사업 바이어처럼 컨셉을 잡았다. 남편 외출 복장을 마친 그녀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자기 작품을 감상하다가 손뼉을 쳤다.

“아, 근데 차가 에러다.”

“차가 왜?”

“얘는. 그런 옷 입고 람보르기니 타면 좀 아니잖니. 좀 고급스럽고 묵직해 보이는 세단을 타야지.”

“세단이라면 몇 대 있는데 아무 거나 사지 뭐.”

“그 차들은 좀 저렴한 거라…… 할 수 없지 뭐.”

아무튼 준비를 마치고 유지웅은 혼자 집을 나섰다. 약속한 카페가 있는 빌딩 주차장에 차를 댔다. 상대는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김예원 씨?”

“아, 네. 오셨어요?”

그가 부르자 김예원은 얼른 일어났다. 가볍게 인사를 하고 둘 다 자리에 앉았다.

“제니스에 다시 들어오고 싶다고요?”

“네. 제가 그때는 생각이 짧았어요. 죄송해요.”

“혹시 다른 레드 몹 레이드에 가셨나요?”

“……네.”

“레이드가 별로였나 봐요? 혹, 생각만큼 안전하지 않았다던가.”

김예원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뭔가를 깊이 고민하고 있는 눈치였다. 유지웅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한 번 나간 대원을 딱히 다시 받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왜 다시 돌아올 마음을 먹었는지는 궁금했다.

“저…… 제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건 비밀로 해주셔야 해요. 보안 서약을 했거든요.”

“알았어요. 아무한테도 말 안 하죠.”

“정말로 지켜주셔야 해요. 혼자만 아셔야 해요.”

“네. 말씀해 보세요.”

그렇게 다짐을 받고도 그녀는 한참이나 망설였다. 어지간히 간이 떨리는 모양이었다. 유지웅도 뭘까 하고 괜히 긴장되었다.

이윽고 쭈뼛거리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건 레드 몹 레이드 참가자들만 알아야 하는 비밀 사항인데요. 정부 발표가 전부 사실이 아니에요. 몇 가지 숨긴 게 있어요.”

“그게 뭔데요?”

“첫 레이드에서 사망자가 전혀 없었다는 거, 거짓말이에요.”

그녀는 큰 결심을 한 듯이 말을 했지만 유지웅은 의외로 놀랍지 않았다. 그도 이상했던 것이다. 아무리 방어장비를 착용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해도, 첫 레이드에서 희생자가 없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조금 이상한 거라면, 희생자를 줄이고 싶었다면 정부가 그에게 대기를 부탁하면 되었다는 것. 결국 그의 도움 없이 레이드를 치러야 하긴 하겠지만, 최대한 시행착오는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많이 이상했다.

“첫 시도에서 탱커 두 명과 힐러 네 명이 죽었대요. 테스트였기 때문에 딜러와 다른 인원은 근처에 대기 시키고, 그렇게 여섯 명만 투입한 거래요.”

“이상하네요. 엔시디아 탱커진은 전부 멀쩡하던데. 여섯 명이나 사망했으면 숨길 수도 없었을 텐데.”

“그 여섯 명, 일본 레이드 능력자들이었거든요.”

============================ 작품 후기 ============================

심각하게 안 갈께요. 걍 흘려 넘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