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189 Food Pulse?

“미국에도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그럼 어찌 되는 건가?”

“그보다 그건 어떻게 알았나? 미국이 말해주던가?”

“이러고 있어도 되는 건가? 당장 대비해야 하는 거 아닌가?”

부처장관들이 허둥대기 시작했다. 유지웅은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히카리가 일본에서 난동을 부릴 때, 제니스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부산에서 두 달 넘게 체류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들이었다. 설마 이번에도 그런 요구를 하면 어쩐단 말인가? 부산은 그나마 도시라서 나았지, 아무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언제까지나 머물러 있으라는 건 아니겠지?

“당분간 유지웅 공격대장님과 정효주 탱커는 한국, 아니 서울을 벗어나지 말았으면 합니다. 비상 상황이 되면 바로 V-23을 이용해서 호남 지역으로 출동할 수 있게끔 말입니다. 다른 제니스 대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행스럽게도 호남지역에서 무기한 대기하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는 없었다. 유지웅은 안심하고 물었다.

“근데 저 영상은 어떻게 입수한 건가요? 미국 군 기밀 자료일 텐데.”

“미국 측이 제공했습니다.”

“그렇게 쉽게 주던가요?”

어찌 되었든 간에 유지웅은 미국 지원을 거절했다. 그래서 미국은 핵을 써서 괴수 떼를 잡았다. 당연히 섭섭함을 느낄 텐데, 군말 없이 자료를 주었다?

“미국이 보통 몸이 달아 있는 게 아니거든요. 지금은 핵을 써서 막았다지만 다음번에는 또 어찌 될지 모르니까요.”

“그렇군요.”

왠지 살짝 미안해지려고 한다. 그래도 미국 갈 수 없는 건 갈 수 없는 거다. 그게 다 쇼일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이미 다 정리된 일 아닌가?

“대초원 지대 피해가 크면 내년 곡물 생산량이 대폭 감소하겠군. 여파가 만만치 않겠어.”

“가축 사료 값이 폭등하겠군요. 육류 가격 조절에 차질이 생길 수 있겠습니다. 대비해야겠어요.”

“그나저나 호남지대는 그럼 언제까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겁니까? 국민 주식 문제라서 굉장히 민감한데. 한두 해라면 몰라도 몇 년 넘게 저렇게 놔둘 순 없지 않습니까?”

장관들이 웅성거리며 논의를 시작했다. 유지웅은 더 용건이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걸 보고 남기철이 급히 따라왔다.

“유지웅 대장님.”

“또 하실 말씀 있으세요?”

“미국이 전해주라고 하더군요.”

남기철은 USB 메모리 하나를 내밀었다.

“그레이트 플레인스에 나타난 괴수들 데이터를 정리한 자료입니다.”

“미국이 이걸 왜 저에게?”

“미국은 호남지대에 똑같은 괴수가 출현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대비를 했으면 한다는군요.”

“이거 그냥 받아도 되는 거예요? 저는 상관없지만 외교 관계에서는 뭐 받으면 뭐 줘야 되고 그러는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합니다만 유지웅 대장님이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걱정하지 말고 받아두십시오.”

조금 망설이다가 유지웅은 USB를 받았다. 남기철의 말대로 자신이 손해 볼 건 없었다. 무상으로 받았다고 뭘 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개인이란 이런 게 좋다.

세스토 엘레멘토를 타고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정효주는 차 안에서 벌써부터 USB 자료를 열람하고 있었다. 친절하게도 자료는 전부 한국어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를 위해서 미국이 따로 편집을 한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흘끔 봤던 유지웅은 아예 주차장을 찾아 차를 세우고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그만큼 메모리 속 자료는 흥미를 끌었다.

8월 25일. 몬테나 주 어느 목초지대에 십여 마리의 옐로 타입 괴수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8월 26일. 신고를 받고 출동한 주 방위군 인력이 괴수 사체를 수거하려 했으나 수거 직전 괴수 사체가 연기로 변했다. 연방 정부에는 괴사라고만 간단히 보고되었다.

9월 30일. 옐로 몹이 죽은 땅에서 식물형 레드 몹이 처음으로 출동했다. 급히 공격대가 퇴치에 나섰으나 힘에 부쳐서 퇴각. 거대 선인장 형태의 레드 몹은 씨앗을 퍼트리며 자기와 동일한 개체를 다수 만들고, 또 무수한 숫자의 작은 개체를 만들어 초원지역을 집어삼키며 하강을 시도했다.

11월 11일. 동원 가능한 공격대를 총 동원해서 퇴치에 나섰으나 이미 사태는 속수무책이었다. 엄청난 희생을 치른 뒤 결국 핵을 사용해서 괴수 떼를 처치하는데 성공했다.

“우와, 이거 장난 아니네?”

정효주가 질렸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상대 못할 건 아닌데? 여기 보면 작은 것들은 옐로 몹보다 좀 약한 정도고, 큰 것들은 일반 레드 몹 정도래. 큰 개체는 몇 십 개체도 되지 않고. 보호막 씌우고 네가 쓸어버리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S급 방어장비까지 갖추면 별로 어렵진 않을 것 같긴 해.”

“중요한 건 조기 진압이지.”

영상을 보니 한숨이 나오긴 한다. 아무래도 호남지대 땅은 못 쓰게 된 것 같은데, 원래대로 되돌릴 방법을 찾을 수는 있을까? 저대로 놔두면 계속 식물형 괴수가 출현할 가능성을 안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남기철이 연락을 했다. 방금 헤어졌는데 무슨 일로? 유지웅은 의아해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타났습니다.」

다급한 목소리에 그의 얼굴도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 * *

V-23이 빠르게 하늘을 날고 있었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브라우니가 그 뒤를 쫓고 있었다. 더 빨리 날 수 있었지만 녀석은 V-23의 속도에 맞춰 비행했다. 또한 제니스 대원들을 나눠서 태운 수송 헬기 편대가 그 뒤를 따랐다.

“상황은 어때요?”

「현재 급속히 성장 중입니다. 이미 크기가 10미터를 훌쩍 넘었습니다. 씨앗을 퍼트리거나 개체 분열을 할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패드컴퓨터를 통해 유지웅은 영상을 확인했다. 서리가 내린 넓은 평야 중심에 커다란 나무가 자라 있었다. 그 크기는 10미터가 훨씬 넘고, 지름은 약 3미터에 달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나무다. 문제는 이 나무가 어제까지만 해도 없었다는 것이다.

「뿌리를 내리고 성장을 한 식물 개체가 더러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기형적으로 일찍 자라고 바로 말라죽어버립니다. 성장을 시작해서 죽기까지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녀석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도 싱싱하고, 또 계속 자라고 있습니다. 성장 속도도 느린 편입니다.」

“식물형 괴수로 자라날 가능성이 있다는 거군요.”

「네. 미국 대초원 지대처럼 되면 힘들어집니다. 조기에 진압해야 합니다.」

미국 전투 기록을 보고 느낀 건데, 식물형 괴수는 이동이 느린 대신 끊임없이, 그리고 빠르게 번식하며 개체수를 늘린다는 게 최대의 골칫거리였다. 만약 미국이 초기에 제대로 진압했으면 피해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V-23이 착륙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유지웅 부부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늦가을바람이 살을 긁고 지나갔다. 브라우니가 날개를 펄럭이며 내려앉아서 머리를 수그렸다. 정효주는 잘했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다른 헬기도 속속들이 착륙했다. 안에서 내린 제니스 대원들이 주변에 집결했다. 현장 조사팀을 비롯하여 정부파견단도 이미 도착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제가 현장지휘관 곽지용 대령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40대 중후반의 군인이 경례를 붙였다. 아버지뻘 되는 사람에게 깍듯한 경례를 받으니 괜히 머쓱해졌다.

“상황 전달은 계속 받았어요. 별다른 이상은 없죠?”

“네. 없습니다.”

“지원팀이 장비 세팅하는 대로 바로 시작할게요. 장 팀장님, 시야링크는 무인헬기 위주로 하죠.”

“알겠습니다.”

장태준이 대답하고는 팀원들에게 장비 세팅을 지시했다.

제니스 공격대는 공중 시야 확보를 위해 다수의 무인헬기를 사용한다. 각 헬기가 고감도 카메라로 보내온 영상 정보를 통해 전술 정보를 취합하는 것이다. 눈이 튀어나오게 비싼 장비였지만 유지웅은 장비 투자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다수의 헬기가 하늘을 날아 적당한 지점에 자리를 잡고 영상 정보를 송출하기 시작했다. 기술팀원이 신중하게 링크장비 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이윽고 치지직거리는 화면이 사라지고 깨끗한 영상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겨울을 앞둔 토양에 솟은 거대한 녹색 나무. 하루 만에 자라났다기에는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크기였다.

“블랙 몹이면 어떡하지?”

“지원 요청을 해뒀으니 괜찮을 거야. 방어장비도 있고, S급 주장비와 충전장비도 있으니까 염려 없어. 그리고 미국 자료를 보면 블랙 몹 정도는 아니었어.”

“S급 방어장비가 완성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

토양에 흡수된 옐로 몹의 사체는 약 2천 개가 넘는다. 결정도를 단순 합산해도 5만은 거뜬하다. 그런데 5만이면 강한 레드 몹 수준인지, 아니면 블랙 몹 수준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래도 토양에 흡수된 에너지가 전부 저 나무 괴수에 흡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극히 일부이리라. 그렇다면 기껏해야 레드 몹 수준일 것이다.

장비세팅을 마치고 공격대도 전투 진형을 갖추었다.

「최대한 근접해서 섬광 공격을 한 방 날리고 시작하는 건 어떨까요?」

“맞출 자신이 없어요.”

「목표의 적 인식 거리를 확인할 겸 최대한 가까이 조심스럽게 접근해보죠. 제 생각이지만 식물형이라서 동물형 괴수보다는 좀 더 인식거리가 짧을 것 같습니다.」

보통 레드 몹은 200미터 안으로 들어오면 알아차리고 바로 선공에 나선다. 그런데 이 거리가 꽤 멀다. 정효주가 섬광 공격을 쏴봐야 빗나가기 쉬운 거리다. 그래서 그녀는 섬광 공격을 보통 잘 사용하지 않는다.

“알았어요. 해볼게요.”

정효주는 평소와 다르게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거리가 줄어들수록 긴장감이 차올랐다.

300…… 200…… 150…….

어느덧 그녀는 100미터 안까지 접근했다. 하지만 괴수는 아직 움직임이 없었다. 설마 옐로 몹인가?

유지웅이 교신기에 대고 물었다.

“혹시 괴수가 아니라 그냥 변종 식물 아니에요?”

「이제 확인해보면 되겠지요. 정효주 씨, 지금 섬광 공격을 하세요.」

가볍게 끄덕인 정효주는 두 손을 모아서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녀의 손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나무 괴수의 중심에서 커다란 외눈이 번쩍 떠졌다. 동시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다.

―키에에엑!

무성한 가지가 빠르게 휘날렸다. 고운 포자가 사방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정효주는 당황해서 공격하려던 것을 멈추고 장비를 빼들었다. 그리고 달려들었다. 그녀의 주장비 칼날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다.

나무 괴수가 퍼뜨린 포자가 사방에 내려앉았다. 포자가 내려앉은 땅에서 나무 괴수를 닮은 조그만 식물들이 빠르게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크기는 성인 키의 두 배에 달했다. 순식간에 생겨난 수백 개의 새끼 괴수가 정효주의 앞을 막아섰다.

‘겁을 안 먹어?’

가장 앞을 막아선 새끼 괴수를 단숨에 베어 넘기면서 정효주는 의아함을 느꼈다. 왜 겁을 안 먹지? 혹시 식물이라서 무서운 것을 모르는 건가?

“브라우니!”

새끼 괴수의 수가 너무 많았다. 아무리 베어 넘겨도 앞을 막아서니 전진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부르자 브라우니가 힘차게 울부짖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캬아아아!

브라우니의 괴성이 하늘을 뒤흔들었다. 순간 새끼 괴수들이 일제히 멈추었다. 뿐만 아니라 나무 괴수도 미친 듯이 흔들어대던 가지를 멈췄다.

기이한 현상에 모두가 놀라워하고 있을 때, 브라우니는 한 마리 매처럼 빠르고 유려하게 내리꽂혔다. 고속으로 급하강을 한 브라우니는 나무 괴수를 그대로 꿰뚫고 지나갔다.

―끼에에에엑!

나무 괴수가 울부짖는 소리가 소름끼치게 울렸다. 두 동강이 난 나무 괴수의 무성한 가지가 미친 듯이 뒤흔들렸다.

반으로 쪼개진 나무 괴수 사이에서 브라우니가 뭔가를 물고 있었다. 언뜻 보니 파란 색으로 빛나는 결정체였다. 녀석은 블루 결정체를 입에 물고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서성거렸다. 그러는 사이 반으로 쪼개진 나무 괴수 사체가 연기로 흩어졌다.

정효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 레드 몹을 단 한 방에 죽여 버리고 결정체를 빼먹다니. 언제 브라우니가 저렇게 컸지?

유지웅이 그것을 보고 손뼉을 쳤다.

“브라우니를 여기에 방목하면 되겠네. 그럼 안심이잖아.”

============================ 작품 후기 ============================

그렇게 브라우니는 목동견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