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216 This is now mine.

“협조라면, 어떤 식으로요?”

“미국에 보유하신 농장지에서 나는 곡물의 일정 물량을 국내에 반입했으면 합니다.”

“안정적인 곡물 공급을 원하시는군요. 조건이 맞는다면 못할 것도 없지요.”

유지웅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대통령의 얼굴도 눈에 띄게 밝아졌다. 하지만 그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근데 정부도 200만 헥타르를 받기로 하지 않았나요? 그 정도 면적이면 굳이 제 협조는 필요 없으실 텐데?”

“적지 않은 면적이지만 조만간 닥칠 식량가격 폭등을 피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미 가축 사료 값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중입니다.”

“뭐, 아무튼 실무진 통해서 제안서 보내보세요. 서로에게 윈윈이 되는 조건으로. 아셨죠?”

“그런데 그 넓은 땅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아무래도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2,000만 헥타르면 한 국가나 다름없는 어마어마한 면적이다. 아무리 비행기로 제초제를 뿌리는 등 대규모 기계 농업을 하는 시대라지만, 그래도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이다.

대통령의 질문이 담고 있는 은근함을 눈치 챈 유지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대통령님. 왜 이러세요. 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호남평야 사주는데 29조 원 넘게 썼어요. 이 정도면 사회 주도층의 의무는 충분히 이행한 거 아닌가요?”

일순 대통령은 말문이 막혔다. 유지웅은 변화 없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생계수단 잃은 수십만 농민들 사정, 저도 딱하게 생각하지만 제가 무제한으로 도와줄 순 없습니다. 저는 충분히 제 도리를 다했다 봅니다. 설마 그 분들을 미국 땅에서 농사짓게 하자는 건 아니시겠죠? 영어도 못하고 비행기 면허도 없으신 분들인데? 그 비용은 또 누가 부담하죠?”

“……실례했습니다. 제가 욕심이 앞섰나 봅니다.”

“농민들 구제해주고 싶은 마음은 저도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저한테만 의존하지 마시고 다른 길도 찾아보세요. 우리나라, 솔직히 이제 엄청 잘 사는 편이잖아요?”

대통령이 골머리를 썩고 있는 건 하루아침에 땅을 잃은 수많은 농민들의 구제책 때문이었다. 사실 이게 바쁜 시간을 쪼개 그를 만난 진짜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 쪽에서 먼저 선수를 치고 나왔다.

최고 권력자의 요청을 들어보기도 전에 단칼에 자르듯 끊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 유지웅은 거침이 없었다.

“땅은 넓고 앞으로 생산할 곡물은 무궁무진해요. 일단 쌀이랑 밀, 그리고 가축 사료용 곡물을 생산한다고 하는데 저도 합리적인 가격에 국내에 들여올 생각이에요. 식량 가격 조절에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죠. 그러니 이 정도에 만족하세요.”

“감사합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대통령은 감사를 표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상대하면서도 하청업체 직원을 대하듯 자연스러운 태도가 조금은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획득한 블루 결정체가 천 개가 넘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죠. 왜 그러세요?”

“혹시 급처분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대통령의 얼굴에 살짝 염려의 빛이 맴돌았다. 아마도 미국과 같은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결정체 값의 폭락 같은.

“아니요. 이건 시중에 풀지 않기로 했어요. 필요한 만큼만 가공해서 제니스 장비 만들고, 나머지는 그냥 보관할 거예요. 어차피 제가 돈이 더 필요한 것도 아니고 모든 결정체를 현금화할 필요도 없죠.”

“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사실 결정체 값이 폭락하면 결정체 수출국인 우리나라로서는 타격이 크거든요.”

“나중에 팔더라도 조금씩 물량을 풀려고요. 근데 팔 일은 없을 것 같네요. 지금도 현금만 40조 원 정도 있으니 뭐.”

유대 자본 계열의 어떤 국제 은행은 워낙 금 보유량이 많아 단독으로 국제 금 시세를 결정할 만큼 막강한 파워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결정체로 산업 구조가 유지되는 현대 사회에서 금의 가치는 결정체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리고 유지웅은 개인임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국제 결정체 시세 변동에 개입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대통령과 면담을 마치고 유지웅은 청와대를 나섰다. 리무진 안에서 서지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미국 농지는 그럼 어떻게 운용하실 계획이신가요?”

“그냥 적당한 사람 구해서 맡기면 안 될까요? 미국도 소작은 금지인가요?”

“농업 법인을 세우시고 생산부터 유통까지 일체의 일을 일임하시면 됩니다. 미국민들의 정서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현지인으로 구성하는 게 좋겠죠.”

“혹시 추천할 만한 적당한 인물이 있나요?”

“제가 방위산업 쪽으로 주로 활동을 해서 전문 영역은 아니지만 알아본다면 알아볼 순 있을 겁니다. 한 번 해볼까요?”

“네. 부탁드릴게요.”

흑석동 저택으로 돌아와서 유지웅은 자문단과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확실히 전문가들이라서 그런지 식견도 뛰어났고 그가 생각하지도 못한 의견들을 제시했다.

저녁에는 효웅산업 CEO이자 최고기술책임자인 최윤을 만났다.

“전에 말한 대로 대원 숫자만큼 S급 강화장비와 방어장비를 만들 생각이에요. 그런데 결정도 1,000짜리로 하면 성능이 많이 차이 날까요?”

“그린 결정체 25짜리가 40개가 모여서 1,000이 된다 해도 블루 결정체 1,000짜리보다는 성능이 못합니다. 하지만 동위 결정체끼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같은 블루 결정체라면 결정도가 낮은 건 물량으로 채울 수 있죠.”

“아, 그럼 1,000짜리 5개를 합치면 5,000짜리로 만든 것과 똑같다는 건가요?”

“네.”

“그럼 5,000짜리 여러 개를 합치면 더 좋은 성능을 낼 수 있지 않을까요?”

솔깃해서 물어보았다. 정효주에게 더 좋은 장비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최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일정 수치를 넘어가면 성능 증폭 효율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블루 결정체가 보급되지 않았을 때는 A급 장비 이상은 만들어지지 않았던 거죠. 블루 결정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한 번 시험해볼까요?”

“네. 일단 5,000짜리 3개를 드릴 테니 해주세요.”

유지웅 커플을 제외한 대원 숫자는 38명이다. 그 중 쿤겐은 이미 강화장비가 있으므로 방어장비만 지급하면 된다. 따라서 총 37개의 강화장비와 38개의 방어장비를 만들기로 했다. 장비 하나에 결정체를 5개씩 쓰기로 했으니, 총 375개의 결정체를 사용하기로 했다. 추가로 정효주가 쓸 고급 S급 장비를 만들기 위해 5,000짜리 결정체 3개를 쓰기로 했다.

자문단의 유용성을 확인한 유지웅은 이참에 검증된 전문가를 좀 더 포섭하기로 했다. 그게 소문이 나자 젊은 학자 및 전문가들이 자문단에 들기 위해 안달이 났다.

이제 명실공히 세계 제일의 부자라고 할 수 있는 젊은 거부의 싱크탱크에 들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인맥이었다. 연봉 10억과 막대한 연구 자금 및 경비 지원은 별개로 치더라도. 덕분에 최초의 멤버인 손재진이 대신 유명세를 앓았다. 그에게 부탁을 하는 동료들이 줄을 섰던 것이다.

대농장을 운영하기 위한 현지 농업 법인 설립도 마쳤다. 모든 법적 절차는 김장호가 나서서 대신 처리했다.

“야, 이렇게 보니 나도 어지간히 문어발이네.”

그의 철칙은 간단했다. 소유하되 참견하지 않는 것. 사실 사업이든 농사든 아는 게 없으니, 참견하지 않고 그냥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속이 편하다. 레이드만 하려고 해도 할 게 너무 많고 신경 쓸 게 넘쳐 나는 세상이다.

* * *

“시원해?”

거품이 묻은 손으로 가슴팍을 어루만지며 그녀가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물침대에 편히 누운 유지웅은 끈적끈적한 오일 마사지를 받으며 나른한 감각에 잠겼다. 부드러운 손이 마술처럼 근육이 뭉친 곳을 찾아 풀어줄 때마다 시원한 감촉이 밀려 왔다.

그녀는 젖꼭지를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비키니 브래지어와 끈으로 된 티팬티를 입고 있었다. 무릎을 꿇으면 마치 하체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입지 않은 것만 못한 붉은 수영복은 하얀 피부와 진한 대조를 이루어, 남자의 욕심을 더욱 자극하고 있었다.

오일통을 거꾸로 쥐고 그녀는 오른 손바닥에 오일을 듬뿍 떨어뜨렸다. 그리고 신랑의 다리를 쓰다듬듯이 문지르며 오일을 넓게 발라 나갔다.

몸을 돌리고 무릎을 꿇은 그녀의 엉덩이가 탐스럽게 보였다. 그는 더듬더듬 손을 뻗어 엉덩이를 매만지다가 손가락 하나를 깊이 찔러 넣었다. 촉촉이 젖은 속살이 손가락을 물듯이 달라붙으며 바싹 조였다.

상체를 기대듯이 엎드린 그녀가 팽팽하게 일어선 중심을 가볍게 쓰다듬고는 입에 넣었다.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이 정성스럽게 애무하자 기분 좋은 쾌감이 몰려 왔다.

왼손을 뻗어 젖가슴을 쥐었다. 부드러운 살을 가볍게 주물럭거리며 아래에서 느껴지는 그녀의 혀를 느꼈다. 이윽고 그녀가 얼굴을 들었다. 미열을 띤 얼굴이 은은한 색기를 드러낸다.

“잠깐만.”

그녀가 뭔가를 가져와서 포장을 뜯었다. 콘돔이었다.

“갑자기 그건 왜? 우리 한 번도 그거 안 썼잖아?”

“이거 굉장히 얇은 거래. 괜찮을 거야.”

“아니, 아무리 얇아도 안 쓴 것만 못하지. 그러니까 왜 갑자기 그걸 쓰냐니까?”

“나 약 잃어버렸어. 다시 약 타 올 거니까 며칠만 이거 쓰자. 응?”

그녀는 아이를 달래듯이 말하고는 콘돔을 씌우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손목을 붙잡았다.

“약 내가 다 버렸어.”

“뭐? 그걸 왜 버렸니?”

그녀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체를 일으킨 그가 팔을 뻗어 허리를 감았다. 부드러운 몸을 잡아당겨 무릎에 앉히고는, 허벅지를 살살 쓰다듬는다.

“아이 갖고 싶지 않아?”

“……갖고 싶지. 근데…….”

“그럼 갖자. 뭐가 문제야?”

“…….”

“그러니까 약 이제 그만 먹어.”

하얀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신을 품은 남자의 직접적인 요구가 부끄럽게 했다.

살며시 떨어뜨린 얼굴을 그가 가볍게 쥐고 자신을 향하게 했다.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얼굴이 가까워지며, 입술이 서로 닿았다.

어느 때보다 키스는 뜨겁고 달콤했다. 팔로 허리를 단단히 감은 채, 다른 손으로 젖가슴을 부드럽게 쥐고 쓰다듬는다. 뿌연 증기가 차오르는 가운데 길고, 끈적끈적하게 서로의 혀를 탐닉한다. 눈동자는 서로에 대한 애욕으로 흘러넘치고, 두 팔은 어느새 상대를 꼭 끌어안은 채 놓을 줄을 모른다.

물침대에 편안하게 누운 그녀는 홍조를 띠고 그를 지그시 응시했다.

“나 진짜 아이 가져도 돼?”

“진짜지, 그럼 가짜야?”

“레이드는…….”

“쉬면 되지.”

“그래도…….”

어느새 그녀를 덮친 그가 입술로 말을 막아버렸다. 단념한 그녀는 몸을 활짝 개방하며 그를 맞아들였다. 기분 좋게 눌러오는 그의 체중이 어느 때보다 애틋하고 사랑스러웠다. 자신의 안을 헤집는 그의 움직임에 취하며, 그녀는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깊숙이 얽히는 남녀의 알몸 위로, 뿌연 증기가 아른거리며 피어올랐다.

============================ 작품 후기 ============================

이브에는 역시 이런 이벤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