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218 This is now mine.

지분 매입 절차는 유지웅의 부탁에 따라 서지원이 맡았다. 원래 그는 자문을 해주는 입장이지만, 현재 유지웅이 거느린 전문가 중에서 이쪽 방면에 박식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서지원은 시중에 나온 물량을 은밀하게 매입했다. 너무 가격이 오르면 물량이 얼어버린다. 그러나 아무리 신경을 써도 시중 물량 매입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서지원은 우호 지분을 가진 세력을 만났다.

“김 회장님, 저희에게 일성전자 보유지분을 파시지요.”

“난 이 회장 오랜 친우일세.”

“사업에 진정 우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일성전자의 최대 우호주주인 CK그룹 김정남 회장은 일흔을 앞둔 노인이었다. 하지만 단정한 겉모습만 보면 50 초반이라고 해도 의심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다른 이가 일성전자 지분을 원한다면 내놓지 않았을 것이다. 시가의 열 배쯤 부른다면 모를까.

하지만 다른 인물도 아니고 유지웅이다. 재계에서는 그를 1인 경제라고 농담 삼아 부르기도 한다. 근데 그게 농담이 아니라는 게 식은땀 나는 현실이다.

대농장, 대저택, 전용기, 해외 구단 등의 재산을 제외하고 보아도 현금만 40조 원에 이른다. 보유하고 있는 결정체는 천 개가 훌쩍 넘는다. 결정체는 부동산이나 귀금속과 달리 현금에 준하게 취급되는 물건이다.

재산보다 더 무서운 것은 세계 유일의 보호막 능력자로서 레이드 산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 심지어 미국도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손을 비빈다. 그런 인물의 심기를 거슬러봤자 좋은 게 없다.

어느 정도 마음을 정한 김정남 회장이 물었다.

“지분을 팔면 CK에 무슨 이득이 있나?”

“프리미엄을 얹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IACP와 좋은 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겁니다.”

지분 매입을 위해서라면 무슨 수를 써도 좋다고 유지웅이 이미 허락한 상태다. 게다가 IACP 한국지사는 친구를 위해서 아랍 부호가 설립한 회사였다.

IACP는 국제 결정체 시장에 강한 입김을 행사하는 회사였다. 그런 곳과 협력 관계를 구축하면 그룹에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1인 경제라 불림에도 불구하고, 재계와 접점이 거의 없던 유지웅과 연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팔겠네.”

“감사합니다.”

우호 주주 중에서 최대주주인 CK그룹이 전량 물량을 넘기기로 했다.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른 국내 우호주주들도 앞을 다투어 지분을 넘기기 시작했다.

전자산업은 다른 어떤 산업보다 결정체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서지원은 유지웅이 일성을 노리는 게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레이드 산업의 황제인 그는 분명히 남들이 알지 못하는 비전을 그리고 있을 것이다.

“앞으로 일성전자가 크게 성장할 게 틀림없다.”

진실을 안다면 뒷목을 잡을지도?

아무튼 서지원은 총 지분의 12%를 확보했다. 유지웅은 단독 개인으로서는 최대 지분을 가진 주주가 되었다. 일성전자 시가총액이 150조이니, 프리미엄까지 해서 약 20조 원이 들었다. 정식으로 지분 보유 신고를 하자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일성그룹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왜 우호주주들이 지분을 넘기고 있는 거야? 지분을 산 게 대체 어느 놈이야?”

“그게, 제니스 공격대장 유지웅입니다.”

“뭐야? 아니, 그 사람이 대체 왜 우리 지분을 사들이는 거야? 적대적 인수합병이라도 할 생각인가?”

일개 개인이 일성전자에 적대적 인수 합병을 선언한다? 평소라면 코웃음을 칠 일이다. 하지만 그 개인이 그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막말로 시가 250조 원의 일성전자를 개인 재산으로 통째로 사들일 수도 있는 사람이다. 작정하고 결정체를 수급하기 시작하면 그 현금 동원 능력을 당해낼 수가 없다.

“지금 그쪽에서는 외국계 주주들과 접촉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물밑 작업을 벌이는 것 같습니다.”

“경영진을 교체하겠다는 건가?”

이형준의 손자인 이재형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얼마 전 일성전자로 옮긴 그의 입장에서는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었다. 게다가 그는 유지웅과 한 번 부딪쳤다가 패배한 전력이 있었다. 사업상으로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이를 가는 사이였다.

“회장님께 이미 보고가 들어갔을 거야. 내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나 지켜보고 계실지도 몰라.”

“옳은 말씀이십니다.”

“만나봐야겠다. 약속을 잡아.”

비서는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약속을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상대는 재벌 3세 따위가 만나고 싶다고 감히 청탁을 넣을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비서는 대리인인 서지원과 어렵사리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이 자가 전권을 위임받은 자인가?”

“네. 유지웅 회장은 레이드 외는 전문 지식을 알지 못해서 자기가 직접 나서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전문가를 고용해서 일을 처리하게 합니다.”

“부자라면 다 그렇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권력이다. 권력을 가지는 자는 말 한 마디에 수많은 사람들을 부릴 수 있다. 자기는 손 하나 까딱 않고 인생을 즐기면서 사람들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다. 그 맛에 중독되면 권력을 쉽게 내려놓기 어렵게 된다.

그 같은 부자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일에 직접 나서겠는가. 그냥 전문가에게 일에 착수하라고 한 마디 하면 끝이다. 그것은 곧 서지원을 설득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안녕하십니까, 서지원입니다.”

“반갑습니다. 일성전자 기획본부장 이재형입니다.”

본사로 직접 찾아온 서지원과 악수를 나누며 찬찬히 그를 살폈다. 삼십대 후반, 자신보다 나이는 많다. 하지만 재벌의 핏줄을 타고 나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무수히 널려 있는 젊은 일꾼 중 한 명에 불과하다. 그런 일꾼이 용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자신과 대등하게 어깨를 부딪치려 한다.

로비스트로 활약하며 수많은 거물 프로젝트를 성사한 경력이 있지만, 그 정도로는 일성가의 핏줄을 상대할 수 없다. 하지만 유지웅의 기세를 업은 순간 그 핸디캡은 사라졌다.

“일성전자 지분 매입 때문에 의논드릴 게 있어서 한 번 만나 뵙자고 했습니다.”

“별 거 아닙니다. 제 의뢰인께서 일성전자에 투자를 하고 싶어 하셔서요.”

“제니스 공격대장 같은 분의 투자라면 우리 회사로서는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 분이 원하는 것은 단순 투자가 아닙니다.”

“경영권을 원하시는 겁니까?”

서지원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보유지분과 우호지분을 모으다 보면 경영권도 노릴 수 있겠지요. 주식회사 구조상 당연한 거 아닐까요?”

“제가 알기로 유 회장님께서는 기업 경영에는 관심이 거의 없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녕 유 회장님의 뜻입니까?”

일성전자의 지분을 통째로 살 수도 없거니와,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서지원이 원한 것은 일정 지분을 확보한 이후 우호주주들을 끌어들여서 경영진을 교체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미 물밑 작업을 통해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었다.

지분 12%를 확보하는 데에는 은밀하게 움직였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유지웅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대놓고 하는 게 더 효과가 컸다.

외국계 주주들은 특히 유지웅한테 붙을 것이다. 그는 미국인도 아니면서 어느 미국인보다 미국에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 아닌가.

“무슨 말씀이신지?”

“유 회장님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의향이 아닌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그럴 리가요. 설마 어느 누가 함부로 그 분을 움직이려고 들겠습니까? 그 분이 지시하면 주위 사람들은 그 지시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서 따를 뿐이죠.”

“현 경영진은 일성전자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고, 또 지속적인 성과를 냈습니다. 무리한 경영진 교체는 회사의 발전을 뎌디게 만들 뿐입니다.”

“글쎄요. 연간 순수익 15조 원의 영광 뒤에는 커다란 그늘이 있더군요. 비자금 조성과 근로자 착취 문제 같은 거 말입니다.”

“무노조 정책은 그룹 차원의 복지 정책입니다. 우리는 노조가 필요 없을 정도로 편안하고 안락한 근무 환경을 만들려고 수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전 노조를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분명한 건 일성전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만 손질하면 많은 이익을 내면서도 친사회적인 좋은 기업이 될 수 있다는 점이죠. 회장님께서는 그 가능성에 기대를 하시고, 투자를 결심하신 겁니다.”

이재형은 심각하게 굳은 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다년 간 로비 활동을 해온 서지원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야심 넘치고 실력 있는 전문가에게 든든한 백이 더해지니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결국 그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오후에 할아버지인 이형준 회장의 호출을 받았다.

“어찌하고 있느냐?”

“죄송합니다. 현재 손을 쓰고 있는 중입니다. 반드시 경영권을 지켜내겠습니다.”

“못난 녀석.”

이형준 회장은 혀를 찼다. 차기 그룹을 이끌어가야 할 후계자가 왜 이렇게 생각이 짧을까.

“어째서 싸울 생각만 하는 게냐? 유 회장은 우리 적이 아니다. 아니, 적으로 삼아서는 안 될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일성전자의 경영권을 원하고 있습니다. 타협을 할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룹 경영진이 걱정하는 것은 나도 이해한다. 하지만 그건 너무 근시안적인 사고방식이다. 차기 그룹 총수가 되고 싶다면 그들과 똑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재형은 얼굴을 들었다. 그는 바보가 아니다. 조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대강 감이 왔다. 동시에 자존심이 상했다.

“유 회장은 기업 경영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아마 주변에서 부추겼겠지. 굳이 대항할 필요 없이 숙이고 들어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럼 일성의 체면은 뭐가 됩니까?”

“너는 유 회장의 나이만 보고, 다른 것은 전혀 보지 않는구나.”

차분하면서도 냉정한 질책이었다. 속마음을 읽힌 듯한 꾸짖음에 이재형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조부의 말대로 자신은 유지웅의 나이에만 집착하고 있었다. 예전 면전에서 면박을 당했던 경험이 시야를 자꾸만 좁게 만든 것이다.

“못 미더워서 못 맡기겠구나. 내가 직접 만나 보마.”

“죄송합니다.”

이형준 회장은 비서실을 통해서 약속을 잡으려고 했지만 성사를 이루지 못했다. 연주대학교 결정체학이 단체 엠티를 떠났다고 황 비서실장이 보고했다.

* * *

유지웅이 일성전자를 택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친척들을 경영진에 밀어 넣어도 그들이 부패를 저지르는 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성전자 경영진 입장에서는 자신이 밀어 넣은 친척은 견제 대상이니까.

또 친척들 입장에서는 국내 제일의 제조 기업이니 만큼 어깨를 당당하게 펼 수 있게 된다. 적은 노력으로 친척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친척들에게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다. ‘여러분들이 혹시 제 이름이 먹칠할까 봐 걱정돼서요.’라고 말하면 누가 기분이 좋을까? 그래서 그는 아내와 의논해서 적당한 핑계를 만들어냈다. 아무래도 자문단에게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에는 민감한 이야기였으니.

“효웅산업이 궤도에 오르면 일성전자와 연계해서 큰 이익을 창출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일성전자에 투자를 했어요. 근데 솔직히 말해서 경영진을 못 믿겠어요. 일성전자가 잘 나가는 기업이기는 한데 근로자 착취도 그렇고, 백혈병 문제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말이 많잖아요?”

“그렇지.”

“그래서 믿을 만한 사람이 내부에서 경영 감시를 좀 해줬으면 하는데, 제가 믿을 만한 사람이 없잖아요? 이 험한 세상이 핏줄 말고 누구를 믿겠어요? 그러니까 두 분이 해주시면 좋겠어요.”

작은 아버지는 혹하는 표정이었다. 큰아버지는 싫지는 않으면서도 조금 난감해했다.

“네 뜻은 알겠다만, 난 그래도 조그맣지만 명색이 사업하는 사람인데…….”

“사업체야 태현이 형한테 맡기면 되죠. 형도 이제 27인데 슬슬 경영 수업해야 되잖아요. 그리고 굳이 손 떼실 필요 있어요? 형식만 그렇게 해놓고 계속 관리하시면 되죠.”

“그런데 나름대로 사장 소리 들으면서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남의 밑에서 일을 하려니 좀 그렇구나.”

“누가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하겠어요? 절대 그런 거 못해요. 그런 사람 나오면 저한테 말씀해 주세요.”

큰아버지는 나름대로 개인 사업을 해왔지만, 일성전자에 비하면 턱도 없는 규모였다. 일성전자의 하청업체에 납품하는 작은 공장 정도였으니.

“알았다. 조카가 신경 써서 하려는 사업인데 우리가 도와줘야지, 우리 아니면 누가 도와주겠냐. 한 번 맡겨다오.”

“잘 좀 감시해주세요.”

두 삼촌은 벌써부터 의욕에 불타올랐다. 유지웅은 자신이 지어낸 핑계가 의심받지 않는 눈치이자 안심했다. 근데 사실 틀린 말은 안 했다. 효웅산업이 궤도에 오르면 일성전자 기업가치도 따라서 증가한다. 자기 이익을 위해서 친족을 감시 역할로 투입하면 나쁠 것은 없다.

앞으로 명절이 꽤나 화목해질 것 같다.

============================ 작품 후기 ============================

단지 좀 더 화목한 명절을 위해 내린 결정이 앞으로 경제계 전체에 어떤 파급효과가 미칠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