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237 Meet my wife

와이프와 한창 어른 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던 유지웅은 미 대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현재 방한 중인 빌클런 대통령이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첫 소감은 간단했다.

“아, 귀찮게.”

효주랑 뒹굴기도 바빠 죽겠는데 웬 미국 대통령? 그래서 생각해보겠다고 하고는 자문단에 연락을 했다.

“왜 미국이 보자는 걸까요?”

그렇지 않아도 자문단도 미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방한 때문에 여러 가지로 비상이 걸린 상황이었다.

「어쩌면 결계화 능력을 눈치 챈 게 아닐까요?」

전화를 귀에 대고, 정효주의 무릎을 베고 누운 채로 유지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알몸의 그녀가 말없이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오늘도 그녀의 품에 빠져들고 싶은데, 세상이 가만 놔두지를 않는 것 같다.

“그럼 결계 때문인가?”

「만약 눈치 챘다면,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주요 도시만이라도 결계를 설치하고 싶을 겁니다. MD망 구축에 쏟아 붓는 정성만 봐도, 미국이 얼마나 안보 의식에 민감한지 알 수 있으니까요.」

“만나봐야 할까요? 귀찮은데.”

「이야기해보는 거야 나쁘지 않지요. 미국에 소유하신 농지도 있고 하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이익입니다.」

유지웅은 얼마 전에 고용한 비서진에 스케줄을 조정하라고 지시했다. 비서실장이 알았다고 응답했다.

전화를 내려놓고 유지웅은 몸을 돌렸다. 정효주의 부드러운 알몸을 껴안으며 다시금 희열에 잠겼다. 착 감기는 살결의 매끄러움은 언제 만져도 기분이 좋다. 따스한 그녀 안의 체온을 느끼며 몇 번이고 자신의 표식을 남겼다.

몇 차례 애정을 나누고 숨을 고르고 있는데 비서실장한테 연락이 왔다.

「오늘 저녁 7:00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알았어요. 장소는?”

「현재 미 대통령측이 체류 중인 미 대사관입니다. 아무래도 보안 문제 때문에 그곳이 제일 적당했습니다.」

딱히 이견은 없었다. 장소도 가깝고 보안도 확실하니까. 근데 7시면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슬슬 준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 욕실로 향했다. 후희를 즐기듯 애무하며 서로의 몸을 씻겨 주었다. 또 한 번 아래가 성을 내는 바람에 달려들 뻔 했지만, 그래도 한 나라의 정상을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 참아야 했다.

씻으면서 그가 한숨을 푹 쉬었다.

“나 왜 이러지? 이러다가 진짜 짐승 되는 거 아니야?”

“우리끼리 있을 땐 짐승이 돼도 괜찮아.”

“친구들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던데…….”

스무 살 시절, 그녀와 갓 사귀었을 때도 욕구가 왕성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변하기 시작한 건 퍼플 결정체가 흡수된 이후인 것 같았다. 쪼개진 퍼플 결정체의 영향력으로 서로에게 강하게 끌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상상까지 들 정도다.

실제로 매력적인 여자를 봐도 딱히 별 생각이 안 들었다. 그도 남자인 이상 다른 여자에 눈이 돌아가긴 했지만, 막상 욕구가 솟으면 제일 먼저 효주만 생각나곤 했던 것이다.

다른 여자를 사귀었던 경험 때문인지 효주와 섹스를 할 때와 너무 비교가 된다. 옛 여자친구인 최현주와 섹스할 때는 효주만큼 편안함, 그리고 강렬한 쾌락은 느끼지 못했다. 꼭 그녀가 탱커라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은데.

“다 됐다. 누구 남편인지 디게 근사한데?”

코디를 마치고 한 걸음 물러선 정효주는 뿌듯해서 감상했다. 말쑥한 검은 정장에 은색 시계, 블랙에 가까운 짙은 갈색 구두로 점잖은 청년 사업가 이미지를 연출해 보았다. 아무래도 격식을 차리는 곳에 나가야 하니까.

“넌 안 가게?”

“내가 가서 뭐 하니. 난 그냥 쉴래. 정리할 것도 있고.”

“알았어.”

본채 앞에는 리무진이 대기 중이었다. 유지웅이 차에 오르자 리무진이 부드럽게 출발했다. 정문에서 차가 나오는 걸 확인한 경호팀이 문을 열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남기철이었다.

“아, 국장님. 무슨 일이시죠?”

「빌클런 대통령과 만나기로 하셨다고요?」

“네. 할 이야기가 있나 봐요.”

「그 문제로 여쭤볼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유지웅을 상대한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2년 남짓한 기간 동안 남기철도 나름대로 고생하면서 터득한 노하우가 있었다. 그는 말을 돌리는 걸 싫어한다.

「보호막 결계가 무엇입니까?」

“보안 문제 때문에 말 못 해드려요.”

당황하지 않고 유지웅은 간결하게 대답해줬다. 물어봐서 대답해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예전이었다면 남기철도 여기서 당황했을 테지만, 그도 이제 나름대로 면역력이 생겼다.

「알고 싶습니다. 어떡하면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생각해보고 결정할게요.”

「꼭 부탁드립니다.」

남기철은 정중하게 부탁하고는 몇 마디 당부를 전한 뒤 전화를 마쳤다.

미 대사관은 진입로부터 경찰들이 교통을 통제하고 있었고, 주변 건물 옥상마다 저격수가 배치돼 있었다.

리무진이 도착하자 미리 연락을 받은 빌클런 대통령이 입구까지 나와서 맞이했다. 기자들이 그 장면을 정신없이 찍었다. 유지웅은 어느 때처럼 알이 큰 선글라스를 썼다.

회의실에 안내받은 유지웅은 귀에 꽂은 이어폰을 켰다. 자문단은 이어폰에 장착된 마이크로 실시간 회담 내용을 듣고, 또 무선으로 그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다.

“반갑습니다. 미합중국 대통령 빌클런 아서 드날린입니다.”

“제니스 공격대장 유지웅입니다.”

통역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시작했다. 빌클런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운을 뗐다.

“사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의 정상회담보다 더 큰 효과를 가져 올 회담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캡틴은 어떻습니까?”

“글쎄요. 저는 일개 국민일 뿐이라…….”

“다른 이도 아닌 캡틴이 그렇게 스스로를 낮추면 섭섭하죠. 겸손이 너무 지나치십니다.”

유지웅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동안 쌓인 경험이 허투루 축적된 건 아니었는지, 세계 최강대국의 대통령과 면담하고 있는데도 별로 긴장감이 들지 않았다.

“참, 땅은 잘 받았어요.”

“농업에 관심이 있으신가 봅니다. 사실 조건을 듣고 우리도 의외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곡물 사업이 수익성이 좋을 것 같아서요. 농지 법인도 한 번 가져보고 싶었거든요.”

“이미 많은 편의를 봐주라고 이야기를 해놨으니, 편안하게 사업하시면 될 겁니다.”

“고맙습니다.”

직접 유지웅을 보는 건 빌클런도 처음이었다. 이 앳된 청년이 개인으로서는 세계 제일의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게 참 실감이 안 났다. 이미 개인 자산으로는 세계 제일의 부자고, 언젠가는 록펠러 가문 등 세계 유수의 가문과도 맞먹는 재력가가 될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면, 왜 이런 능력자가 미국에 태어나지 않았는지 아쉽기도 했다.

“실은 이번에 불원숭이를 섬멸하면서 우리 미국이 재미있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혹시 저에 관한 건가요?”

“네. 보호막 능력을 응용해서 괴수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땅의 성질을 바꿀 수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그게 너무 궁금해서 미국에서 여기까지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자문단의 추측대로 미국은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어느 정도 염두에 둔 바였기에 유지웅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순순히 인정했다.

“네. 맞아요.”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 미국이 야심차게 준비해온 MD망은 그 능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군요.”

“그래도 MD는 대단하죠. 미국이 아니고는 그런 시도 자체는 하지도 못할 거예요.”

“혹시 미국 대도시에 작업해줄 수 있습니까?”

빌클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참모진의 분석에 따르면 이게 가장 성공 확률이 높았다. 상대는 정치가도 아니고 이제 겨우 스물 두 살의 젊은이. 또 빙빙 돌려 말하는 화법을 무척 싫어하는 인물이다.

“글쎄요.”

“부탁합니다. 비용은 지불하겠습니다.”

“조건만 맞으면 못할 것은 없죠. 하지만 이 자리에서 바로 확답을 드리기는 좀 그렇네요.”

“물론 그러시겠지요. 그렇다면 조만간 실무진을 통해서 의논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현재 미국과 화해 분위기가 차근차근 쌓이고 있는 걸 생각하면 굳이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잠시 생각하던 유지웅은 순순히 끄덕였다.

“세부 조건은 나중에 따져 보죠.”

“감사합니다.”

빌클런은 속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의외로 어렵지 않게 협상을 체결했다. 만약 한국 정부를 통해서 했으면, 한국에 이것저것 해줘야 했을 것이다. 역시 중개거래보다 직거래가 편하다.

‘빨리 돈 벌어야지.’

하루빨리 세계 수준의 부자 가문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다. 유지웅은 얼마를 받으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했다.

* * *

“이미 승낙한 것 같습니다.”

비서실장의 보고에 최재형 대통령은 몹시 안타까워했다.

“아깝군요.”

“아쉽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서운합니다. 조금이라도 정부와 의논을 해주었으면 좋을 텐데.”

결계라는 게, 괴수가 접근하지 못하는 땅을 만들어내는 것임을 알고 대통령은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정말 그런 게 가능하다면 세계의 괴수 방어 패러다임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그의 가치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셈이다.

막말로, 외국으로 떠나지 못하게 국보로 지정이라도 해야 하는 입장이 된 셈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만큼 그의 가치가 어마어마해졌다는 뜻이다.

앞으로 그는 여러 나라 주요 도시에 결계를 설치해주고 그만큼 어마어마한 이권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든 거기에 숟가락을 얹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가 이미 수락해 버렸다.

유지웅의 입장에서 볼 때 결계 설치는 개인적인 영리 행위다. 누구와 의논하고 자시고, 나라의 입장을 고려하고 말고 할 게 없는 것이다. 그래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앓아야만 했다.

“자세한 조건은 어떻습니까?”

“일단 시범적으로 워싱턴에만 먼저 설치해주기로 한 모양입니다. 유 회장이 꽤 큰 요구를 할 것 같은데, 미국도 아직 감은 못 잡고 있습니다.”

“싱크탱크와 접촉하면 뭔가 알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 사람들 입이 보통 무거운 게 아닙니다. 아무리 회유해도 듣지 않습니다. 차라리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나을 겁니다.”

미국과 유지웅이 사이가 험악할 때, 한국은 중간에 끼어 이리저리 눈치만 보았다. 그런데 차라리 그때가 좋았던 것 같다. 둘 사이가 좋아지고 있으니 이거 영 불안하다. 너무 좋아져도 이쪽에 좋을 건 없는데.

한편 유지웅은 어떤 대가를 받아내면 좋을지 자문단과 의논하느라 바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거듭 강조했다.

“터무니없는 폭리를 취할 생각은 없어요. 대도시에 괴수가 접근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생기는 이익을 근거로 해서 제가 받아야 할 대가를 산정해 주세요.”

자문단 멤버 중 하나인 어느 경제전문가가 대답했다.

“근데 그렇게 계산하면 터무니없는 액수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 작품 후기 ============================

폭리는 아니지만 터무니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