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238 Meet my wife

도심 지역에 괴수가 침범하면 지진이나 태풍과는 비교도 안 되는 참사가 일어난다. 특히 인구 밀집 지역에 긴급 레이드라도 벌어지면 무시무시한 재산 피해가 발생한다. 뿐만 아니라 한 번 그런 사고를 겪은 지역은 사람들이 꺼리게 된다. 기껏 발전시켜 놓은 도시가, 사람들이 오지 않는 기피지가 되고 만다.

그래서 선진국일수록 주요 대도시에 괴수가 침범하지 않도록 방위망을 구성하는데 힘을 쏟는다. 어쩌다가 유입되는 옐로 몹은 자극하지 않고 유인해서 살살 내보내거나, 혹은 외곽으로 끌어내서 섬멸하기도 한다.

그런 방어망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돈이 든다. 인간끼리 전쟁이 거의 사라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괴수와 싸우는데도 돈이 없어 허덕이는데 무슨 인간끼리 싸우고 있겠는가.

그러나 100% 안전한 건 아니다. 아무리 철저히 안전운전을 해도 교통사고율을 0%로 만들 수는 없듯이.

하지만 이제 이야기는 달라졌다. 결계로 성역화 작업을 마친 땅은 괴수가 꺼려하는 지역으로 성질이 변한다.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땅은 자연히 사람들이 선호하게 되고, 땅의 가치가 증가하게 되며, 또한 그 땅을 방위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을 뺄 수 있다.

“미국이 워싱턴 D.C.과 인근 지역을 방위하는데 소모하는 예산이 매년 3,000만 달러입니다. 대지 정화 작업을 하면 더 이상 이 돈을 지출하지 않아도 되죠.”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나가요?”

“주둔 레이더 부대 유지비와 방위망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 등을 합하면 그 정도 됩니다.”

자문단에는 그 정도 지식쯤은 줄줄 꿰고 있는 전문가들이 널려 있었다.

“MD망을 제외하고, 미국의 국방 예산 중 괴수 방위 시스템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돈이 매년 4,000억 달러입니다.”

유지웅은 살짝 질렸다. 아니, 그럼 매년 400조 원을 방어망 유지에 쏟아 붓고 있단 말이야? 레이더 부대 유지라던가, 관련 설비 운용비 뭐 그런 걸로?

“괴수가 절대 침범하지 않는 안전한 지역이 만들어진다면, 그만큼 예산 운용에 여유가 남게 되죠. 그 남는 예산과 약간의 수수료를 더해서 요구해도 미국은 불만이 없을 겁니다. 오히려 그만큼 인력과 장비 수급에 숨을 돌릴 수 있게 되니, 미국으로서는 대단한 이익이죠.”

“문제는 정화의 유지 기간입니다.”

시험 삼아 정화한 땅의 패턴 변화를 정밀 측정하게 계산한 결과, 최소 10년에서 길게는 50년까지 땅의 성질이 유지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짧은 기간이 아니라서 좋긴 한데 10년에서 50년이면 편차가 너무 크다.

“어차피 미국도 한 번에 지불하는 건 불가능하니 매년 분할해서 받는 게 좋겠어요.”

며칠 동안 조언을 받고 의논한 끝에 대략적인 조건 초안이 나왔다. 유지웅은 자문단의 몇몇 학자들을 거느리고 다시 미 대사관을 방문했다.

유지웅과 미 대통령의 회담은 이미 해외까지 소문이 났다. 해외 매스컴에서도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아내려고 혈안이 되었다.

“제가 깊이 생각한 결과 시범적으로 워싱턴 D.C.를 정화해달라는 귀국의 요구는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화 작업에 소모되는 결정체 비용은 귀국이 부담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제 보수로는…….”

일부러 그가 말끝을 흐리자 미 대통령은 물론이고 참모진의 목울대도 크게 움직였다. 살벌한 긴장감이 회의실을 잠시 맴돌았다. 과연 저 입에서 어떤 요구가 떨어질까?

“연간 4,000만 달러입니다. 정화 성질이 유지되는 기간 동안만 받겠습니다.”

빌클런 대통령은 무척 놀랐다. 너무 싸서 놀란 것이다. 이건 각오했던 비용보다 훨씬 싸지 않은가?

참모진도 그의 생각과 다르지 않은지 놀란 눈빛으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싸게 부른 거지? 저 인간 주변에도 전문가들은 많을 텐데?

“한창 미국과 친분을 쌓아가는 와중에 터무니없는 폭리를 씌워서 내 배만 불릴 마음은 없습니다. 아무쪼록 이 거래를 시작으로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하네요.”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은 앞으로도 귀하의 우방으로 남을 겁니다.”

참모진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지금 빌클런의 발언은 이 자리에 어울리는 게 아니었다. 유지웅은 개인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것이지, 국가를 대표하는 인물로 참석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마치 한 나라의 원수 대하듯이 말했다.

미국이 워싱턴 D.C.를 방어하기 위해 유지하는 레이더 부대 등에 들어가는 전체 예산이 연간 약 3,000만 달러쯤 된다. 그런데 유지웅은 고작 연간 4,000만 달러를 요구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겨우 1,000만 달러의 추가 지출로 완벽한 안전지대를 확보하고, 또 그만큼 인력과 부대장비 등의 여력이 생긴다.

빌클런이 보기에 이건 유지웅이 통 크게 양보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도 손해는 아니다. 사소한 것을 양보함으로써 호의를 쌓으면 결국 본인에게 이득이 되어 돌아오는 법이니.

의회 승인을 얻기 위해 그 자리에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승인이 나는 대로 본계약을 체결하고 곧장 정화 작업을 펼쳐주기로 했다.

“귀하를 캠프데이비드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언제고 시간이 나는 대로 한 번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의외로 쉽게 수락을 얻어낸 빌클런은 기분이 좋았다.

* * *

결계를 설치할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그야말로 유일무이한 독점 상태. 결계를 설치한 장소는 레드 몹의 접근까지 막아낼 수 있는 완벽한 안전지대가 된다.

그야말로 보수는 부르는 게 곧 값이 된다. 4,000만 달러가 아니라 4억 달러를 불러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하지만 자문단은 지나치게 천문학적인 액수는 부르지 않는 것만 못하다고 조언을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리 안보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해도, 당장 없는 돈을 만들어서 줄 수는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난치병에 걸리더라도, 치료비가 없으면 생명을 포기할 수밖에 없죠. 받아낼 수 있는 만큼만 적절히 받아내는 게 장기적으로 좋습니다.”

구체적으로 얼마를 받아내야 좋은지는 자문단 내에서도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유지웅은 전문가들이 제시한 액수 중 가장 적은 액수인 4,000만 달러로 정했다. 다수의 전문가들이 너무 적은 액수가 아닌지 걱정을 했다. 하지만 그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매년 쏟아 붓는 예산이 4,000억 달러라면서요? 그거만 받아내도 충분한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자문단도 납득했다.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는 건 좋은데 횡포를 부려봤자 반감만 사게 된다. 적당히 받아낼 수 있을 만큼만 받아내면 상대방도 합리적인 가격에 흡족해하고, 관계가 오래 간다. 어느 한쪽만 지나치게 일방적으로 이득을 보면 사이는 험악해진다.

국내 대기업 같은 그런 데는 갑질을 해도 상관없는데, 미국을 상대로는 아무래도 부담이 된다고 할까? 당장 미국에 가진 땅도 있고 하니 미국 여론도 신경 써야 한다.

워싱턴을 시작으로 대도시마다 하나씩 둘씩 정화 작업을 마치고, 거기에 소모되던 예산만큼 받아내면 장기적으로는 막대한 이득이 된다. 결코 그에게도 손해는 아닌 것이다.

한편 미국과 유지웅 사이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사실에 국내 언론은 난리가 났다. 대체 무슨 거래가 오고갔는지 알아내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유지웅도, 미국 측도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알 도리가 없었다.

성질 급한 이들은 유지웅이 미국으로 국적을 옮기는 건 아닌가 하고 난리를 쳤다.

―제니스 공격대를 국보로 지정해서 해외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심지어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까지 나왔다. 물론 유지웅은 거기에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대꾸할 가치도 없는 망언이었으니까.

청와대에서 경제수석이 연락을 했다. 조금쯤 정부와 의논해서 일을 해주었으면 바랬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적인 영리 활동인데 뭐 하러 그래요.”

「그래도 아무래도 타국과 거래를 하다 보면 손해를 보실 수도 있고, 또 외환관리법 등 국내법에 저촉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고 하니 조심하는 차원에서…….」

“그런 문제라면 걱정 안 해주셔도 돼요. 저도 조언해주는 친구들이 많으니까요.”

경제수석은 더 이상 말을 못했다. 상대는 미 대통령과 단독으로 거래하는 인물이다. 경제수석 따위가 어떻게 제어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한편 양해각서에 따른 본 계약 체결을 놓고 미 의회에서는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래서 정식으로 계약 체결 및 결계 설치를 위해 유지웅 커플은 A3를 타고 워싱턴을 방문했다.

공항에는 이미 미국을 움직이는 주요 인사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워싱턴 시민들이 모여 열렬히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이번에는 저번 미국을 방문할 때처럼 UN군을 호위 병력으로 거느릴 필요도 없었다.

이틀 정도 환영회에 참석해서 미국의 유력 유지 및 정치가 사람들과 안면도 익혔다. 백악관에서 열린 만찬회에서 유지웅은 특이한 노인을 만났다.

“세인 아민 카네기요.”

카네기라는 말에 유지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네기라면 철강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일으킨 미국의 재력가 아닌가?

“유지웅입니다.”

그가 의아했던 건, 카네기 가문의 최고 연장자라는 저 노인이 왜 저렇게 못마땅한 듯이 자신을 노려보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딱히 문제를 만들고 싶지도 않았고, 또 말도 통하지 않는 관계로 간단한 안부 말고는 더 나눈 이야기는 없었지만.

나중에 만찬회가 끝나고 저녁 때 유지웅은 자문단에 연락해서 살짝 물어봤다.

「카네기 가문은 유 회장님 때문에 간접적으로 손해를 좀 본 게 있습니다. 아마도 그것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큰 손해인가요?”

「결정체 관련 산업에서 약 5억 달러 정도 손해를 보았다고 하더군요.」

“에이, 별로 손해 본 것도 없잖아요.”

정말 그거 때문에 그렇게 사람을 노려본 건가? 혹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더 큰 손해를 본 건 아닌가?

이틀간의 만찬회를 즐기고 유지웅은 곧바로 정화 작업에 착수했다. 정화 능력은 공개 직전까지 대중에는 비밀로 했다.

결계를 어떻게 펼치는지 그 과정은 당연히 극비였다. 그는 효주한테 보호막을 걸고, 결계를 펼쳐 결정체의 힘을 흡수했다. 그리고 워싱턴에 정화를 펼쳤다.

혹시라도 만에 하나 기반시설의 오작동을 우려해서 미국은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험을 해도 괜찮을까요?”

미국의 요구에 유지웅은 선뜻 승낙했다. 제품에 하자가 없음은 판매자가 입증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상도다.

워싱턴 부근에 서식하는 레드 몹을 자극해서 끌고 왔다. 정효주가 나서면 쫓아올 놈도 도망칠 우려가 있기에, 그리고 임신 중인 그녀를 투입할 순 없기에 적당한 미국 탱커를 이용했다. 보호막을 걸어주었기에 그가 죽을 위험도 전혀 없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화가 나서 쫓아오던 레드 몹은 정화지역 근처에 오자 머뭇거리기 시작하더니, 곧바로 딱 멈추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화지역에 들어간 탱커를 보며 으르렁거리기만 하더니 다시 본래 자기가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물론 녀석은 귀가하지 못했다. 기다리고 있던 정효주가 나서서 단칼에 쓸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직접 레이드를 뛴 건 아니고 심심해서 먼 거리에서 궁극기를 날렸는데 그게 정통으로 머리를 날리는 바람에 죽은 것이다. 사실 그녀도 그게 맞을 줄 몰랐다.

============================ 작품 후기 ============================

신상품은 원래 좀 싸게 팔아야죠. 구매력이 높아질 때까지는...

ps : 미국이 괴수 방위에 지출하는 예산을 2,000억 달러에서 4,000억 달러로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