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247 Giant's Movement

중국의 요구 사항은 당연히 유지웅의 귀에도 들어갔다. 비서실장이 보고를 할 당시 그는 1:1 사이즈의 레고 부가티를 조립하고 있었다. 보고를 듣고 그는 잠시 굳었다가 한참 후에야 기가 막힌 듯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대체 무슨 염치로?”

통일한국의 입장에서 지금 중국은 일본보다 더 미운 나라다. 일본의 침략 행위가 과거 역사라면 중국의 침해 행위는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특히 당장 북한이 과거 헐값에 팔아넘긴 이권이며, 동북공정 등 국민감정을 건드리는 요소가 한둘이 아니었다.

레고 조립도 내팽개치고 유지웅은 서재를 나섰다. 비서실장이 황급히 뒤를 따랐다.

“남 국장님 당장 오라고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과연 서슬 퍼런 회장님 포스. 4급 공무원쯤은 자기 아랫사람처럼 오라 가라 하는 위용을 보여주신다. 자고로 정승집 개는 정승보다 더한 위세를 부린다 했다.

그냥 전화만 했을 뿐인데 남기철이 바짝 긴장해서 ‘화 많이 나셨습니까?’라고 묻는다. 그래서 화가 많이 나셨다고 대답하니 알았다고 바짝 긴장했다. 전화를 끊고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남기철이 부리나케 흑석동 저택으로 달려왔다.

“어떻게 된 거죠? 중국이 약 먹었대요?”

“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불원숭이 토스한 게 얼마나 됐다고 무슨 염치도 없게 안전지대를 설치해 달라 말라야?”

불원숭이가 백두산에 출현한 것 때문에 한국과 중국 사이에 얼마나 치열한 신경전이 오고갔던가. 아니, 그건 유지웅이 알 바는 아니고, 아무튼 레이드 하는데 중국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던 걸 생각하면 블랙 몹을 한 다스쯤 몰아넣고 싶은 심정이다.

게다가 불원숭이 처리가 안 되니까 핵을 터트려서 일부러 한국 쪽으로 몰아넣지 않았던가? 중국은 핵이 빗나갔다고 발표했지만 유지웅은 안 믿었다. 세상사람 전부가 믿어도 그는 믿지 않을 생각이었다.

“정부의 방침은 어떻죠?”

남기철은 그가 물어봐주는 게 눈물 나게 고마웠다. 사실 정부에서도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나 하고 나름 골머리를 썩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일반 사업가면 협조를 구한다는 식으로 강행 처리하면 그만인데, 이건 뭐 대통령보다 더한 산업경제 실권자니.

“북한이 매각한 이권과 문화재, 그리고 동북공정 등 외교관계에서 실리를 취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무슨 말씀 하시는 거예요?”

“예?”

“전제 조건이 잘못 됐잖아요. 나 참, 지금 완전히 헛다리들 짚고 계시네. 제일 중요한 것부터 확인을 했어야죠.”

“무슨 말씀이신가요?”

유지웅은 새삼스럽게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중국에 안전지대 설치 안 합니다.”

“……예?”

남기철은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건 무슨 폭탄 발언이 따로 없다. 안전지대 설치를 조건으로 중국한테 이것저것 뜯어내려고 벼르던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 모든 계획이 도루아미타불이 되게 생겼다.

“일본보다 더 못 믿을 국가가 중국 아닌가요? 일본도 못 믿어서 두 번 다시 안 갔는데, 중국을 들어가라고요? 그것도 임신한 와이프 데리고? 말도 안 되는 생각이죠.”

남기철은 알고 있다. 이 사람은 한 번 안 한다면 진짜 죽어도 안 한다. 일본이 그렇게 매달렸어도 끝내 일본 땅을 밟지 않은 것이 훌륭한 증거다. 물론 그는 갈 의향이 있다고 말은 했지만 속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걸 남기철은 안다. 한두 번 부딪친 것도 아니고.

확실히 난 사람에게는 천운이 따르긴 하나 보다. 일본이 좌익과 우익의 반목으로 국내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그가 가지 않아도 될 여건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으니.

“확실히 알아두세요. 전 중국 땅 절대 안 밟을 겁니다. 못 믿을 나라예요.”

그가 한 번 결정했으면 그걸로 끝이다. 거기에 토를 다는 것은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꼴. 방침이 정해졌으니 지금까지의 계획은 접고 다시 방침을 짜야 한다.

아쉽긴 했다. 안전지대 설치를 조건으로 막대한 이권을 챙길 수 있는 나라 중 하나가 바로 중국인데.

하지만 그의 입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일본보다 더 못 믿을 나라가 중국 아닌가.

유지웅의 가치는 예전과 차원이 달라졌다. 핵 없이 레드 몹을 안전하게 잡게 해주는 레이더에서, 레드 몹이 접근하지 못하는 안전지대를 설치하는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었다. 그 가치는 감히 측정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공산당이 독재하는 나라, 왕조 아닌 왕조가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사회주의 국가, 타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강대국이 과연 순순히 자국에 들어온 그를 놓아줄까? 아닐 것이다.

원래 정부도 그런 걸 염려하긴 했지만, 미국 파견에 UN군을 호위로 거느렸듯이 중국의 납치 시도 등을 원천봉쇄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만큼 중국에 빼앗긴 이권이 아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가 못을 박았으니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

* * *

중국의 안전지대 설치 요구 때문에 백악관에는 비상이 걸렸다. 왜 청와대가 아니라 백악관이냐면, 미국은 유지웅 이상으로 중국을 위험한 국가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자국민으로 끌어들이려고 찜 쪄 놓은 주요 인사인데, 중국땅 잘못 밟았다가 영영 못 나오면 어떡하나?

“반드시 입국을 막아야 합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입국을 하게 된다면 미군이 호위를 해야 합니다. UN평화유지군으로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EIS 국장 루딘이 그렇게 기염을 토했다. 빌클런 대통령을 비롯해서 백악관 참모진도 동의했다. 어떻게 된 게 청와대보다 백악관이 이 사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안전지대 효과는 어떤가?”

“예상 이상입니다. 옐로 몹은 물론이고 레드 몹도 안전지대로 접근하지 않습니다.”

“우리측 설비와 전문가를 동원해서 정밀 측정을 해봤는데, 적어도 40년 이상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패턴 스펙트럼 측정을 통해 수퍼 컴퓨터로 계산한 결과입니다.”

한국은 최소 10년, 최대 50년으로 예상을 했다. 하지만 레이드 관련 과학기술이라면 미국이 단연 1위다. 미국은 더 정밀한 측정 및 분석을 통해 40년 이상으로 오차를 줄였다.

“중국도 아마 충분히 예상하고 있을 겁니다.”

“만만치 않은 국가지. 우리 미합중국과 유일하게 대적할 나라니까. 아무튼 절대로 방심해서는 안 돼. 미스터 유의 반응은 어떻지?”

“확고하게 거절했습니다.”

“예상대로군.”

미국은 한국보다 유지웅을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 한국 대통령이 나름 어느 정도 파악은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간 들인 공을 생각하면 미국만큼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청와대는 행동에 제약이 많았다. 무소속 출신이라는 약점 때문이다. 높은 국민 인기로 커버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국회가 번번이 제약을 걸고 있는 실정이다. 정작 국회는 유지웅 눈치를 더 보고 있었다.

“아무튼 필요하면 미스터 유와 직접 면담을 해서라도 중국행의 위험성을 알려주도록 하게. 중국이 레이더를 어떻게 통제하는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사 같은 것도 정리해서 그에게 보여주고.”

“알겠습니다, 각하.”

레이더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중국이 사용하는 채찍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일반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하는 것은 예사다. 몇 가지만 알려줘도 유지웅의 경계심은 금강석이 될 것이다.

“3대 도시 반응은 어떻지?”

“시민들이 만족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경제 활성화 효과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레이드 인력 및 장비에도 한결 여유가 생겼다. 유지웅에게 주는 돈이야 원래 방위를 위해 지출하던 비용이니, 미국은 결과적으로 이득을 챙기고 있었다.

“적어도 50대 주요 대도시에는 하루빨리 설치를 마쳐야하는데…….”

“캡틴 유가 이리저리 재고 있는 게 많습니다.”

“사실 헐값이긴 했지. 그가 입맛을 다실 만한 제안을 빨리 생각해보게.”

“그런데 워낙 아쉬운 게 없는 사람이라서…….”

그는 이제 스물 두 살이지만 더 이상 어리게만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게 됐다. 현명한 조언가 친구가 뒤에 있고, 그가 거느린 똑똑한 전문가만 수십 명이 넘는다. 한 국가의 원수를 대하듯이 신중하게 접근하고 딜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그런 걸 모른다.

핵으로 불원숭이를 쫓아낸 건 미국도 파악하고 있었다. 핵이 빗나갔다? 코웃음이 나오는 변명이다.

* * *

A3를 타고 유지웅 커플은 영국으로 향했다. 공항에는 영국 수상을 비롯한 대대적인 환영 인파가 나와 있었다. 그도 느긋하게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아주고, 군악대 사이를 수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이 정도면 국가 원수를 맞이하는 예우였다.

“영국을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국의 친구로서 해야 할 일을 하러 왔을 뿐입니다.”

“영국 전체를 대표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수상과 유지웅을 태운 의전 행렬은 리버풀 머지사이드 주로 향했다. 카 퍼레이드처럼 많은 이들이 행렬을 쫓았다. 기자들은 조금이라도 선명한 사진을 담으려고 애를 썼다.

신 구디슨 파크는 거의 완공 단계에 들어갔다. 조만간 완공되면 거창한 완공식을 가질 참이었다. 막대한 돈이 들어간 화려한 홈구장, 에버튼 선수와 서포터즈의 꿈이 담긴 건축물이었다.

유지웅은 특별히 무료로 리버풀에 안전지대를 설치해주기로 했다. 소모되는 결정체도 자신이 직접 댄다. 집에 남아도는 게 결정체이고, 돌멩이 줍듯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기 때문에 한 결정이었다. 사람이 한 번 쏠 때 통 크게 쏴야 더 인상적인 법이니까.

인파를 물리고 유지웅 커플은 아무도 없는 홈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준비 됐지?”

“응.”

그는 정신을 집중하고 결계를 펼쳤다. 하얀 섬광이 뻗어나가며 결정체 에너지를 흡수했다. 파란 날개가 돋아나자 그는 응축된 힘을 힘껏 방출했다. 눈부신 섬광이 터지며 곧 하얀 광채가 눈처럼 사방을 새하얗게 뒤덮었다가 사라졌다. 동시에 밖에서 우렁찬 함성이 들렸다.

「지켜보고 계신 시청자 여러분, 보이십니까? 리버풀은 워싱턴, 뉴욕, 그리고 LA에 이어서 4번째로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지역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게 에버튼 덕분입니다. 유지웅 공격대장은 구단을 사랑하는 구단주로서 소임을 다 했을 뿐이라고 겸손을 표하고 있습니다만, 그가 아니면 과연 누가 이런 큰일을 선뜻 해줄 수 있을까요?」

흥분한 리포터가 카메라 앞에서 떠들어댔다. 에버튼 서포터즈는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한 것처럼 크게 기뻐했다. 도로마다 차가 막히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사람들은 안다. 리버풀에 안전지대를 설치해준 것은 에버튼 때문에 특별히 취한 서비스라는 것을. 영국의 다른 지역에 또 언제 설치해 줄지는 기약할 수 없다.

리버풀의 지역적 가치는 앞으로 크게 상승할 것이다. 심지어 영국은 얼마 전에 레드 몹 스크리버 때문에 몇 개 도시가 쑥대밭이 된 끔찍한 기억이 있는 나라가 아닌가.

“구단주님, 만세!”

“만세! 만세!”

리버풀에는 축구 클럽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리버풀, 다른 하나가 에버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안전지대 설치 이후, 리버풀과 에버튼이 맞붙을 때 리버풀 서포터즈는 얌전하게 응원하는 관습이 생겼다. 리버풀 서포터즈가 야유라도 보낼라 치면 에버튼 서포터즈가 이렇게 큰소리를 치기 때문이다.

“너네 이 안전지대 누가 설치해준 건지 알아? 엉? 아냐고!”

리버풀 서포터즈 수난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이래서 구단주를 잘 만나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