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285 Ocean Raid

“괴수가 확실합니다! 결정도 11,500! 아까 그 녀석입니다! 다른 한쪽은 10,200!”

11,500과 10,200. 거의 대등한 녀석 둘이 왔다. 각각은 브라우니보다 결정도가 떨어지지만, 물속에서는 브라우니가 녀석들을 당해내지 못한다. 게다가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 둘이 힘을 합치면 브라우니도 난감할 것이다. 아무래도 녀석들이 잔뜩 화가 난 모양이었다.

“브라우니. 너 요즘 단식했냐?”

―끼이잉…….

“왜 아직도 결정도가 그 모양이야? 내가 적어도 3만까지는 빨리 올려놓으라고 그랬잖아! 효주가 그렇게 말 안 했어?”

아무래도 저거, 새끼 먹이느라고 지는 거의 안 먹은 게 틀림없었다. 돌아가는 대로 새끼 결정도부터 재봐야겠다.

괴수 출현 보고를 받고 장태준이 급히 대응 전술을 짰다.

“아까 했던 것처럼 브라우니가 해수면 저공에서 녀석들을 유인하고 쿤겐이 궁극기로 위협 공격을 가해야겠습니다. 만약을 대비해서 메이도 함께 했으면 합니다.”

“메이를요?”

“한 마리만이라도 약화를 걸면 일을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겁니다.”

일리는 있는 말이었기에 유지웅은 난감해졌다. 원래 메이는 단순히 옵저버로 참가했다. 제니스의 특별 대원으로서 자긍심과 소속감을 심어주기 위해 일부러 데려온 것이다. 유지웅은 벌써부터 위험한 레이드에 그녀를 투입할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메이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그녀는 장태준의 말을 듣자마자 주저 없이 말했다.

“하겠어요.”

“위험해요.”

“하고 싶어요. 하게 해주세요.”

제니스에 오면서 메이는 받은 게 너무 많았다. 중국에서 살며 받은 대우와는 천지차이였다. 메이는 그 은혜에 하루라도 빨리 보답하고 싶었다. 나아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제니스에 입증하고 싶었다. 유지웅에게 좋은 여자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쉔도 그런 마음을 이해했기에, 우려가 되면서도 섣불리 말리지는 못했다.

고민하던 유지웅이 얼굴을 굳히고 끄덕였다.

“좋아요. 메이도 도와주세요.”

“감사합니다!”

“이건 제니스의 정식 레이드입니다. 수확물이 있다면 내규에 따라 공평하게 나눕니다.”

현재 제니스의 분배 방식은 간단하다. 레이드에 참여한 대원들이 머릿수대로 나누는 것이다. 그것은 유지웅이 포함된 편제라 해도 예외는 없다. 단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면제 받는 세금의 90%를 유지웅이 가져간다는 것이다. 제니스를 재정립하면서 수정한 내용이었다.

메이는 다르다. 유지웅은 그녀의 특별함을 대우하는 차원에서 면세금에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머릿수대로 나눈 분배금을 고스란히 받는다.

물론 유지웅은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레이더라고 해봐야 자신과 쿤겐, 메이, 그리고 쉔이 전부였다. S급 강화장비가 아직 없는 쉔은 바다 위에서 당연히 도움이 안 되니 전력에서 제외된다. 브라우니가 있다 해도 셋만으로 결정도가 근 일만이 넘는 괴수를, 그것도 두 마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쫓아낸다. 그것만 생각하자.’

그렇게 가이드라인을 확실히 했다. 레이드를 위해 온 게 아니라 수송 선단을 안전하게 한국에 입항시키기 위해 온 길이다. 목적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급히 헬기가 떠올랐다. 괴수 두 마리는 해수면에 비칠 정도로 가깝게 부상한 채 따라오고 있었다. 선단과 약 30km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였다. 아무래도 아까 호되게 당한 것 때문에 큰놈이 경계심을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브라우니와 헬기가 가까워질 무렵 탐지장비에서 갑자기 녀석들이 사라졌다. 소나 탐지장비가 아니라 결정 에너지를 탐지하는 장비였다. 반응이 사라졌다는 것은 깊이 잠수를 했다는 뜻이다.

「소나 반응! 목표가 고속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선단에서 다급한 보고가 빗발쳤다.

“기수를 돌려요! 돌아가야 해요!”

그러나 괴수들은 너무 빨랐다. 우지끈 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울리는가 싶더니 굉음이 허공을 찢었다. 가장 후미에 있던 일본 선박 한 척이 좌로 기울어진 채 항로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연료가 유폭되었는지 검붉은 연기가 측면에서 피어올랐다.

그제야 유지웅은 왜 녀석들이 거리를 유지한 채 잠자코 따라왔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브라우니를 경계한 것이다. 그리고 브라우니가 선단을 벗어나자마자 바로 급습을 했다. 아무래도 녀석의 목적은 브라우니보다는 화풀이인 것 같았다.

“망할!”

당했다는 것에 화가 나면서 한편으로는 한국 선박이 피해를 입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선박의 동행을 허락한 게 절묘한 한 수가 된 셈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으면 적어도 세 척의 한국 선박이 침몰했을 것이다.

방금 공격당한 일본 선박은 이미 틀렸다. 구명정이 내려지고 승무원들이 급히 탈출하고 있었다. 일본은 5척의 대형 수송선 중 3척을 잃었다.

―캬아아악!

브라우니가 날카롭게 포효하며 수면으로 달려들었다. 검게 비치는 녀석의 그림자를 향해 그대로 발톱을 할퀴었다. 녀석은 비웃기라도 하듯이 그대로 깊은 수심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놀랍도록 빠른 속도였다. 이동을 하는 것도, 잠수를 하는 것도.

「알파, 선단에서 급히 이탈합니다. 베타, 선단 중심을 향해 돌파하고 있습니다.」

두 괴수에 각각 알파와 베타라는 임시 명칭을 붙였다. 알파는 최초에 나타났던 큰 놈, 베타는 지금 함께 나타난 작은 놈이다.

궁극기를 맛봤던 알파는 좀 더 신중하게 움직였고, 베타는 아직 겁 없이 날뛰고 있는 듯했다.

베타가 다른 선박을 노렸다. 이번에는 일본 선박이 아니라 한국 선박이었다. 상대적으로 작아서 그런지 만만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유지웅은 다급히 외쳤다.

“브라우니! 저거 막아! 못 막으면 니 딸 입양, 아니 오븐에 튀겨버릴 거야!”

―캬아아악!

뭔가 포효에 패기가 깃들었는데? 아니, 분노인가?

브라우니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몸을 유선형으로 만든 채 고속으로 쇄도하며 수면을 낮게 뚫고 들어갔다. 수십 미터 넘게 물보라가 튀어 올랐다.

「소나에 잡음 다수! 굉음 때문에 탐지가 불가능합니다!」

브라우니와 베타가 부딪친 모양이었다. 하얀 기포가 바다를 가득 잠식하고 있었다. 어지간히 큰놈 둘이 서로 부딪쳤으니 바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잠시 후 브라우니가 허공으로 불쑥 솟구쳤다. 온몸의 깃털이 해수로 흠뻑 젖어 있었다. 눈빛은 여전히 날카롭게 살아 있었다.

“쿤겐, 메이, 준비하세요.”

헬기에 동승한 장태준이 낮게 지시했다. 쿤겐은 강화장비를 만지작거리며 긴장감을 높였다. 메이도 결연한 얼굴로 주먹을 꾹 쥐었다. 유지웅도 여차하면 보호막을 걸 준비를 했다.

브라우니한테 보호막을 걸어주고 싶은데 거리가 너무 멀었다. 가까이 접근하기에는 브라우니가 일으키는 바람에 헬기가 뒤집어질 우려가 있었다. 녀석이 알아서 잘 피해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 때였다.

촤아악!

물보라가 높이 튀어오르며 거대한 유선형의 몸체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베타가 날치처럼 해수면을 뚫고 상승한 것이다. 검은 빛이 감도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몸체는 매끄러울 만큼 눈이 부셨다.

“……고래?”

유지웅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 거대한 몸집이 저렇게 높이 뛰어오를 수 있다는 것은, 마치 기적의 한 장면처럼 보였다.

베타는 수십 미터를 뛰어올라 그대로 브라우니를 향했다. 브라우니는 날개를 펄럭이며 상승했다. 빈 허공을 스치고 지나간 베타는 포물선을 그리며 다시 수면에 착지했다.

첨벙!

높이 튀어 오른 물보라가 하늘을 덮쳤다. 물살이 어찌나 세게 퍼져 나갔는지 가장 가까이 있던 선박들이 기우뚱거리며 전복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수중에 이상한 초저주파음! 파동이 매우 낮습니다! 알파가 내는 소리로 들립니다!」

「의사소통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해저는 괴수들이 내는 저주파음으로 시끄러워졌다. 물론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아니기에, 시끄럽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이었다.

“브라우니! 낮게 날아! 녀석을 유인해!”

―끼이잉!

그 말을 알아들었는지 브라우니가 힘차게 대답하고는 고도를 낮춰 해수면 가깝게 접근했다. 수면에서 불과 20미터도 되지 않는 저공 비행이었다.

「베타! 다시 수면을 향해 고속으로 움직입니다! 또 상승하려는 것 같습니다!」

베타가 아무래도 브라우니를 보고 단단히 공격 본능이 든 모양이었다. 유지웅은 이때다 싶어 돌아봤다. 장태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얼른 메이에게 말했다.

“메이, 준비하세요.”

“알겠어요.”

메이의 약화 능력은 사정거리가 무척 길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녀는 다른 레이더처럼 위험한 전투 지역에 가까이 접근하지 않아도 지원을 할 수 있었다.

촤악!

또다시 물보라가 피어오르며 은빛 몸체가 솟구쳤다. 이때를 위해서 브라우니한테 낮게 날라고 지시한 것이다.

「알파가 내는 저주파음 주기가 빨라졌습니다! 알파! 베타를 향해 고속으로 접근합니다!」

브라우니한테 덤비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었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베타는 허공에 완전히 몸을 드러냈고, 때를 놓치지 않고 메이가 약화를 걸었다.

―캬아아앙!

마치 비명과도 같은, 기이한 음파가 허공을 찢었다. 날카로운 송곳이 고막을 살짝 울리고 지나간 듯했다. 짜르르 울리는 귀를 유지웅은 반사적으로 틀어막았다.

―캬아아악!

흥분에 취한 브라우니의 포효가 울렸다. 유지웅은 얼른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브라우니가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두 발로 베타의 몸집을 단단히 움켜쥐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자기보다 몇 배는 큰 다랑어를 낚아챈 바다갈매기를 보는 듯했다.

“브라우니가 괴수는 괴수인 모양이군요. 자기보다 몇 배는 큰 괴수를 저렇게 움켜쥘 수 있다니.”

베타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마구 날뛰고 있었다. 떨어뜨릴 것처럼 위태위태해 보이는데 브라우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알파! 해수면으로 고속 이동 중!」

촤악!

보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알파, 처음 선단을 습격했던 녀석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공중은 자신의 영역이라는 듯, 브라우니는 가소롭다는 괴성을 지르며 힘차게 날개를 움직여 상승했다. 알파는 아무 것도 없는 허공만 가로지르고는 다시 수면 위로 떨어져 내렸다.

승자의 의기양양함을 누리던 브라우니는 부리로 베타를 쪼려고 했다. 순간 유지웅이 다급히 제지했다.

“안 돼! 멈춰!”

“왜 그러시는 겁니까?”

“의사소통까지 하는 똑똑한 놈들이잖아요. 혹시 사육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브라우니는 육지와 공중에서는 다른 괴수들을 제압하는 강력한 맹수다. 하지만 물속에서는 영 힘을 못 쓴다. 자기보다 한 끗발 떨어지는 녀석들에게도 쩔쩔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걸 보고 생각한 것이다. 만약 저 녀석을 길들일 수만 있다면 해로 개척을 하는데 수월하지 않을까? 일단 약화도 걸렸고, 브라우니한테 잡혀서 꼼짝도 못하니까 안심할 수도 있고. 해봐서 안 되면 그때 처리하면 그만이니 손해 볼 것도 없다.

다만 문제는 친구를 잃은 알파가 어떻게 나올지 염려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선단 후방에 1km 정도 뒤쳐진 채 알파가 조용히 따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선단을 위협하지도, 공격 의사를 비치지도 않았다.

============================ 작품 후기 ============================

마누라를 인질, 아니 어질로 잡히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