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286 Versus Raid

귀항로는 길었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긴장감이 떠나질 않았다. 친구를 잡힌 알파는 거리를 유지한 채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으며 계속 뒤따랐다. 마치 감시하듯이.

브라우니를 시켜 위협하려 했으나 그때마다 녀석은 물속 깊이 들어갈 뿐이었다. 브라우니가 물러나면 다시 수면 가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마치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 허튼 짓 하지 마라’ 라고 위협하는 듯했다.

「브라우니처럼 사육하실 생각이시라고요?」

“네, 그래요. 불가능할까요?”

「길들일 수만 있다면 정말 유용할 겁니다만,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브라우니 외에 레드 몹 길들이는 것은 죄다 실패하지 않았던가요?」

「전투 기록을 보면 고래와 비슷한 습성을 가진 것으로 보이고 저주파음으로 서로 의사소통도 합니다. 치고 빠지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전술도 세울 줄 알고, 적어도 범고래에 맞먹는 영리한 개체가 아닐까 합니다. 그럼 길들인다 해도 위험할 텐데요. 주인을 물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 애초에 주인이라는 자각 자체가 없이 물어버릴 기회만 노릴 겁니다.」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그렇게 영리하다면 차라리 길들이는 게 쉬울 수도 있습니다.」

「네? 그건 무슨 말씀이시죠?」

「지금 베타가 붙잡히자 알파가 조용히 따라오고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알파에게 베타가 소중한 짝이라는 증거입니다. 베타에게 위협이 갈까 봐 알파는 섣불리 선단을 공격하지도 않습니다. 상황 파악을 할 줄 아는 영리한 녀석입니다.」

「협상이 가능할 거라 보시는군요.」

「협박이 통할 만큼 똑똑한 녀석이죠.」

본능만으로 움직이는 여타 멍청한 레드 몹이라면 당연히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리판단을 할 줄 알고, ‘정치적’으로 움직일 줄 아는 놈이라면 협상, 혹은 협박을 할 수 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별론으로 치더라도.

정황을 보면 베타가 알파에게 소중한 존재는 틀림없다. 베타에게 행여 위협이 갈까 봐 섣불리 자극하지 않고, 자기 존재감을 적당히 드러내면서 따라오는 것을 보면 인간에 맞먹을 만큼 똑똑한 놈이다.

「적어도 브라우니에 버금가는 지능을 지녔다고 봅니다.」

자문단은 여러 가지 테스트를 통해서 브라우니가 적어도 15세 인간에 달하는 지적 능력을 지녔다고 판단했다. 말은 못해도 눈치로 상황을 판단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심지어 말을 알아들으면서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거라는 의견도 있었다.

똑똑하기 때문에 오히려 힘의 우위를 파악하고 굴복하고 아래로 들어오는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알파와 베타도 가능하지 않을까?

「쉽지 않을 겁니다. 설령 협상 혹은 길들이기가 성공했다 해도 바다로 도망치면 그만입니다. 저 녀석들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을 겁니다.」

「도망을 못 가게 해야지요.」

「어떻게 말입니까?」

「베타가 인간 손에 있는 한 알파는 인간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인질로 잡아두면 되겠군요.」

「이 경우는 인질이 아니라 어질이 되겠지요. 아, 그런데 물고기가 아니라 포유류인가요?」

미리 이야기를 들은 정부는 급히 거대한 웅덩이 하나를 준비했다. 이른바 베타를 가둬놓을 감옥이었다.

해변에 이르러 수심이 얕아지자 알파는 더 이상 쫓을 수 없게 되었다. 브라우니는 웅덩이에 베타를 떨어뜨리기 위해 이동했다. 알파는 베타를 움켜쥔 채 멀어지는 브라우니를 노려보며 구슬픈 울음소리를 냈다.

일본 선박은 예정대로 일본으로 입항했다. 일본 총리는 한국 정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고맙다고 감사 표시를 나타냈다. 원래는 유지웅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일본 처지에 그와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못 되었다.

물자 수송선이 들어오자 한국은 일단 한시름 놓았다. 산업자원, 식량 등 나라 유지에 필수적인 물자들이었다. 그러나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새 항로를 개척하던가, 아니면 바다 말고 대량 수송이 가능한 운송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주장이었다. 특히 한창 붐을 일으켰다가 사장된, 결정체를 이용한 대형 수송선의 개발에 다시금 사람들의 관심이 모였다.

한때 수십만 톤 이상의 수송기를 만들어 많은 물자를 빠르게 운반한다는 발상이 붐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결정체는 그것을 가능케 해줄 꿈의 연료였다. 그러나 비용 면에서 수지가 맞지 않아 결국 사장되었다.

그런 수송기를 만들 돈이 있다면, 그 돈으로 선박을 건조하는 게 더 많은 이익을 내기 때문이다. 운송에서 시간은 중요한 것이지만 불필요하게 절감할 필요는 없다. 한 달 안에만 도착하면 되는 물건을 비싼 돈을 들여 일주일 안에 들여올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장된 대형 수송기 개발 계획이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그런 항공기 개발이 하루아침에 뚝딱 되는 게 아니었다. 결정체가 아무리 꿈의 동력원이라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공정 기술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아마 항공기가 개발되고 보편화되기 전에 문명 기반이 붕괴할 것이다.

「새 항로를 찾자! 괴수가 출현하지 않는 안전한 해역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육지에 가까운 연안은 비교적 안전한 편이다. 중요한 것은 대양과 대양을 잇는 안전해역이 어디인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면 다시 각 대륙을 바다로 이을 수 있다.

한편 여러 선진국은 이번에 제니스, 아니 유지웅이 보인 가능성에 주목했다. 길들인 레드 몹의 유용성을 깨달은 것이다.

브라우니는 그동안 레드 몹을 최초로 길들였다는 상징성에 지나지 않았다. 레이드를 조금 더 수월하게 해준다는 장점 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러중 전쟁 때 다수의 약한 개체들을 위협해서 날뛰지 않게 만들 수 있음이 밝혀졌다. 사실상 금지된 국가 간 전쟁을 가능하게 해주는 열쇠가 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해금현상이 도래한 현재, 바다를 개척할 수 있는 중심으로 이용할 수도 있게 되었다는 게 드러났다.

“가장 좋은 것은 제니스가 브라우니를 이용해서 안전한 항로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은 브라우니를 이용해서 선박의 정기적인 운항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전자는 아직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후자는 분명한 실현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백악관 국무회의 자리에서 루딘은 그렇게 열변을 토했다. 지금의 상황은 미국에 있어서도 큰 위기였다.

“안전항로라는 게 정해져 있는 겁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1차 해금사태 때도 마찬가지지만, 괴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바다는 대단히 넓은 곳입니다. 당연히 괴수가 거의 출몰하지 않는 해역이 존재했습니다. 그런 해역을 우연히, 혹은 희생을 무릅쓰고 발견해서 이어진 게 안전항로라 불리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괴수가 단지 서식지를 옮겼다는 것뿐이군.”

“그렇습니다. 바다는 넓고 거대합니다. 괴수가 잘 나타나지 않는 해역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곳을 찾아내면 그만입니다.”

괴수 탐지장비는 물속 깊은 곳을 꿰뚫지 못한다. 기계의 힘을 빌린 항로 개척에 한계가 있는 이유다.

“제니스 회장은 길들인 레드 몹을 이용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 미국은 그에 적극 참여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 선수를 뺏기기 전에 협조 관계를 구축해야만 합니다.”

빌클런은 루딘의 열변에 수긍했다. 위기의 상황에서 보물의 가치가 더 빛난다고 할까. 바다가 막힌 지금 유지웅의 가치는 더욱 증가했다.

“그런데 이번 선단 인솔 과정에서 제니스 회장이 괴수 한 마리를 나포하고 한 마리는 유인했다고 들었네만, 그건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총력을 동원해 조사 중입니다만, 제니스의 보안 유지 수준이 매우 높아져서 자세한 정황 파악이 어렵습니다. 다만 추측하건데 사육을 시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과연 가능하겠나?”

“이미 레드 몹을 길들인 전적이 있는 인물입니다. 자신이 있으니 시도하지 않겠습니까? 실패한다 해도 처분하면 그만이고요.”

다른 것도 아니고 해양 괴수다. 길들이기를 성공한다 해도 바다로 도망가면 무슨 수로 잡을까? 브라우니가 도망을 안 치는 걸 보면 방법이 있을 것 같긴 한데, 어떻게 할지 미국 수뇌부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 * *

베타가 들어갈 만한 웅덩이를 급히 만드는데 정부에서는 폭탄까지 동원해서 빠른 공사를 했다. 유지웅의 요청대로 동해안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를 잡았다. 그는 베타를 웅덩이에 옮겨 놓고는 브라우니에게 감시를 시켰다.

알파는 웅덩이 근처 해안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다. 보이지 않는데 정확히 그쪽 주변을 향하는 걸 보면, 베타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시험 삼아 브라우니를 시켜서 베타를 다른 쪽으로 이동하는 척 해보았다. 해안에서 보이지 않는 루트였는데도 알파는 정확하게 따라 움직였다. 멀리서 기척을 감지하는 게 확실했다.

자문단은 알파의 지능이 브라우니에 맞먹을 거라는 전제 하에 여러 가지 사육 계획을 세웠다. 유지웅은 그에 따라 움직였다. 나흘 간 서로 격리를 시켜두었다가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브라우니가 베타를 발톱으로 움켜쥐고 날아올랐다. 베타가 발에 붙잡힌 채로 허공에 나타나자 알파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차마 뛰어오르지는 못하고 구슬픈 울음소리를 낸다.

브라우니가 물속에서 싸우기를 꺼려했듯이, 공중에서는 알파가 취약하다. 아니, 애초에 알파는 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게다가 브라우니보다 더 약했다.

“힘의 차이, 상황의 열세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섣불리 달려들지 않고 저러는 거죠.”

“정말 똑똑하네요. 인간에 맞먹는 건 아닐까요?”

“이제 협상을 시작해야겠습니다.”

“하지만 말이 안 통하는데 협상이 되겠어요?”

“다 방법이 있습니다.”

군에서 지원한 병력들이 사육 작업에 동원되었다. 금속으로 만든 거대한 화살 형태의 추진체 발사차량에 실려서 나왔다. 괴수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새로 제작한 고문도구였다.

“발사!”

화약이 터지며 추진체가 발사되었다. 추진체는 빠른 속도로 솟구쳐 베타의 몸에 부딪쳤다. 베타는 몸을 꿈틀거렸지만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방어막에 감싸인 몸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알파는 그렇지 않은지, 심하게 요동을 쳤다.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듯이 세찬 물결을 일으켰다. 끝내 행동에 옮기지는 못했다.

사육 작업을 지휘하는 전문가가 나섰다. 그는 용감하게 보트를 타고 알파에게 가까이 접근했다. 주변에서는 위험하다고 말렸는데 그는 괜찮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만약 알파가 그렇게 똑똑한 놈이라면 박사님을 인질로 잡지 않을까요?”

“인질의 가치 차이를 이해할 만큼 똑똑한 녀석입니다. 우리 측에서 저의 가치가 높지 않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접근해야 녀석도 협상이 시작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의 장담대로 알파는 박사를 공격하지 않았다. 박사는 허공에 뜬 채 꿈틀거리는 베타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저 멀리 수평선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지름 5미터에 달하는 하얀 공이 부표처럼 둥둥 떠 있었다.

“가져 와.”

박사는 일부러 짧게 말했다. 한참을 미동도 보이지 않던 알파가 마침내 움직였다. 박사가 가리킨 방향으로 가서 공을 머리로 밀며 가져온 것이다.

박사는 다시 발사를 명령했다. 추진체가 또 베타를 가격했다. 박사는 반대방향에 떠 있는 녹색 공을 가리키며 또 말했다.

“가져 와.”

그렇게 훈련 아닌 훈련이 시작되었다. 베타가 붙잡힌 바람에 알파는 고스란히 시키는 대로 했다. 그건 마치 개를 훈련시키는 것과 같았다. 다행히 녀석이 똑똑했기에 개를 훈련시키는 것보다 더 빨리 작업이 진행되었다.

이에 고무된 자문단은 세밀한 훈련 계획을 세우고, 또 녀석을 어떻게 이용해서 항로를 개척할지 방도를 만들었다.

“알파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베타를 놓아줘서는 안 됩니다. 또 너무 오랫동안 떨어뜨려서도 안 됩니다. 주기적으로 접촉하게 해서 베타가 안전하다는 걸 확인시켜줘야 합니다.”

“베타를 돌려주는 순간 둘은 바로 바다로 도망칠 겁니다. 그럼 오히려 위협이 더 커지게 됩니다.”

브라우니를 길들인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힘의 차이를 절감한 녀석이 곧바로 숙이고 들어와서 가능했던 일이다. 하지만 다른 레드 몹들은 흉포하거나 겁이 많기만 해서 훈련 자체가 불가능했다.

때문에 레드 몹을 길들이는 것은 사실상 포기 상태였으나, 이제 그 가능성이 열렸다. 정부에서도 크게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지원과 혜택을 퍼주었다. 바다가 막힌 상황에서 해양 괴수를 길들여 이용할 수만 있다면, 그 가치는 막대할 것이다.

그런데 훈련을 시작한 지 보름째가 된 날이었다. 서울에서 학교도 가지 않고 정부와 함께 대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던 유지웅은 점심을 먹던 중 급한 보고를 받았다.

“회장님.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뭔데요?”

“베타가 새끼를 낳았습니다. 모두 세 마리입니다.”

유지웅은 물을 마시다 말고 뿜을 뻔했다.

“설마 암컷, 수컷이었어?”

============================ 작품 후기 ============================

너도 똑같이 애아빠 될 몸이 그러면 안 된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