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318 Deep Sea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사단장이 부대 뒤에 황량한 들판만 있는 게 마음에 쓰여 지나가다가 무심코 한 마디 했다. ‘부대 뒤에 산이 있으면 좋겠군.’ 그리고 다음 날 사단장은 하룻밤새 웬 산 하나가 부대 뒤에 생겨난 것을 볼 수 있었다.

해학적으로 과장된 이야기다. 허나 그만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발언은 사소한 것도 아랫사람들에게 커다란 부담을 준다는 것을 잘 나타낸 일화이기도 하다.

이번 다국적 연합 공격대 구성도 그런 식이었다. 유지웅은 베링 해역의 안전을 확보하는 김에 급격히 팽창한 제니스 예비대 간의 화합을 위해서 워크샵처럼 레이드를 가기로 결정했을 뿐이다. 일종의 피크닉, 혹은 회사 MT다.

그런데 그게 다리를 건너고 건너면서 엄청나게 부풀려져, 625척의 군함과 1만 명의 레이더를 긁어모으는 경악스러운 결과를 낳고야 말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국제 연합 공격대가 구성되고 제니스에 그 지휘권이 일임되었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한 유지웅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냥 다른 나라도 해양 레이드 구경도 하고 경험도 쌓고 싶어서 저러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연합팀의 규모를 듣고 그런 마음은 깨끗이 사라져 버렸다.

세상에, 레이더만 1만 명이고 군함이 625척이라고? 게다가 뭐? 군사 위성 50기 사용 권한까지?

“저도 어떻게 된 건지……. 그냥 국방부에 협조 요청을 한 번 했을 뿐인데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 뭐 이런…….”

장태준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는 패닉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제니스의 전술 지휘는 자신의 역할이다. 그런데 저 막대한 전력의 지휘권이 제니스에게 위임되었다고 한다. 그럼 설마 자신이 저것들을 지휘해야 한단 말인가?

“장 팀장님의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예?”

“아무쪼록 잘 부탁합니다.”

설마 했는데 돌아온 확인사살에 장태준은 뒤로 넘어갈 뻔했다. 이 인간, 상황이 이런데도 자신에게 지휘를 맡길 참인가?

“고, 공대장님. 지휘는 어렵습니다. 저는 육군 대위 출신입니다. 저 정도 병력을 지휘하려면 적어도 군단급 이상의 사령관 경험과 연륜이 있어야 할 겁니다.”

“뭐 어때요? 우리가 사람이랑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고 괴수와 싸우러 가는 겁니다. 레이드 전술 지휘는 장 팀장님 이상의 경력자가 없지 않나요?”

그건 사실이다. 유지웅은 프라임 시절부터 장태준을 철저하게 레이드 전술 지휘가로 육성해왔다. 레이드 전술만큼은 공격대장인 그도 장태준을 존중한다. 다른 공격대가 전술지휘팀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은 것을 고려해보자. 프라임 시절부터 전술 지휘를 해온 장태준은 명실공히 세계 최고의 레이드 지휘관이다.

“하지만…….”

“장 팀장님이 안 하시면 제가 직접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하는데, 둘 다 못해요. 전 외부 인사가 제니스를 지휘하는 건 참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제가 머리 아픈 건 더더욱 참을 수 없고요.”

“…….”

“정 마음에 걸리신다면 국방부에 요청해서 임시 참모단이라도 지원해달라고 하죠. 꽤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휘권은 장 팀장님이 맡아야 합니다.”

장태준은 말문이 막힌 채 한참을 고민했다.

욕심이 나는 것은 사실이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못할 것도 없다. 함정 운용이야 각 함장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자신은 개별 함대에게 진형 구축, 이동 등의 포괄적인 명령만 내려주면 된다. 전 세계에서 레드 몹 괴수를 대상으로 레이드 지휘 경험이 많은 인물도 자신 아닌가.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자 자신감이 솟구쳤다. 참모단까지 구축해준다면 더욱 지휘가 편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한 번 해보겠습니다.”

“국방부 요청은 제가 직접 할까요? 아니면…….”

“아닙니다. 공대장님 의사라고 전달하면 저쪽에서 알아서 해줄 겁니다.”

“설마 그것도 이번처럼 일이 커지진 않겠죠? 사실 이번 레이드는 그냥 가벼운 야유회일 뿐인데…….”

“이제부터는 절대 함구하셔야 합니다. 진실이 어찌 되었든 간에 이렇게 일이 커졌는데, 그런 사실이 새나가면 제니스의 체면에 손상이 갑니다.”

“그렇겠죠?”

장태준을 격려해서 지휘권을 맡기는 것은 일단락했다. 하지만 연합팀 규모를 보면 볼수록 어이가 없다.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걸 보면 한국 정부, UN, 그리고 여러 나라들이 어떤 오해를 했는지 대략 감이 잡힌다. 제니스가 총원 소집을 하는 것을 보고, 그만큼 위험한 레이드일 거라 지레 겁들을 먹은 것이다.

이제 와서 ‘단합 대회 가는데요.’라고 말을 하는 것도 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셈이다.

“에잇, 이왕 이렇게 된 거 국제 연합팀 운용 연습 한 번 한다 생각하지 뭐. 모비딕이랑 브라우니 대충 살살하게 하고 시간 좀 끌다가 잡으면 되겠지.”

* * *

베링 해역 레이드가 제니스 단합을 꾀할 목적으로 완전 편제를 갖췄다는 것은 유지웅 커플, 그리고 장태준만 아는 비밀이었다. 그런 비사가 있는지 모르는 일반 대원들은 전장으로 향하는 병사처럼 흥분해 있었다.

“엄청나게 위험한 레이드가 될 거야. 연합지원팀 규모를 봐. 군함만 600척이 넘어.”

“당연하지. 바다에서 하는 레이드잖아? 아무리 공대장님 능력이 뛰어나도 바다에서는 물고기가 한 수 먹고 들어갈 걸?”

“어? 하지만 우리도 모비딕 1호가 있잖아? 게다가 브라우니도 있고. 그런데도 위험하다는 거야?”

“정말 그러네.”

제니스는 출발 준비에 한창 여념이 없었다. 현재까지 제니스는 3개의 예비대가 갖춰진 상태다. 각각의 예비대는 저마다 다른 군함에 나눠 탑승했다. 대신 각 예비대의 장들은 제1예비대가 탄 군함에 동승했다. 회의의 편리를 위해서다.

“대원들이 긴장하고 있어요.”

“나도 좀 긴장이 되네요. 얼마나 강력한 개체일지 좀 가늠이라도 되면 좋으련만.”

박현정이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 그녀는 제1예비대 힐러장으로 활동 중이었다.

“그런데 상어 레드 몹을 상대할 때는 쉽지 않았나요? 손발 하나도 안 맞는 미국 공격대를 데리고도 쫓아냈잖아요.”

“그때는 쿤겐의 결정타가 명중한 덕분 아니었나요? 아, 폄하하려는 건 아니에요. 수중 레이드가 그만큼 힘들지 않나 해서요. 어땠어요, 쿤겐?”

제1예비대 부힐러장인 최가의였다. 그녀는 얼마든지 다른 예비대의 힐러장을 할 수 있는데도 굳이 제1예비대에 남았다. 다른 제1예비대 대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제니스가 방어장비 보급 때문에 40인 규모로 줄어들던 시절에도 꿋꿋하게 남은, 순혈 제니스 대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래서 다른 예비대로 흩어지지 않고 제1예비대에 남은 것이다.

“수중 활동은 뭍보다 어렵습니다. 요행히도 궁극기를 맞추기는 했지만, 제 공은 아닙니다. 다 공대장님께서 공격대를 잘 이끌어주셨던 덕분입니다.”

“쿤겐은 공대장님한테 뭐 들은 거 없어요? 같은 집에 사는 최측근이잖아요.”

“특별히 들은 말은 없습니다.”

테레사는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지금쯤 집에서 자고 있을 금동이를 생각했다. 이제는 눈도 뜬 데다가 사람을 알아보기도 한다. 사람 손을 무척이나 가리는데, 피가 안 섞인 남의 손은 무척이나 꺼려했다. 하지만 그녀가 안아주면 엄마가 안아준 것처럼 좋아하고 잘 따른다. 그걸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작은 웃음이 나왔다.

“레이드가 위험하지 않은 게 어딨겠어요. 제니스가 하는 레이드라면 더욱 그렇죠. 하지만 공격대장님을 중심으로 우리가 잘 뭉치면, 어떤 괴수도 잡을 수 있을 거예요.”

“아아, 그래요. 우리 공대장님 열혈팬 메이의 말이 백 번 천 번 옳아요.”

“패, 팬이라니요. 저, 저는 그냥!”

이제 갓 스물이 된 메이의 반응에 몇 몇 여자들이 쿡쿡 웃었다. 메이가 유지웅을 흠모하는 것은 어지간히 영향력 있는 여자 대원들은 다 안다. 어떤 대원들은 장난삼아 언제쯤 메이가 유지웅을 유혹할 수 있을지 내기를 하기도 했다.

‘아무리 와이프가 소꿉친구 미인 탱커라 해도 세계 제일의 부자가 한 여자로 얼마나 만족하겠어? 그것도 아직 한창 젊은데.’

아내에 대한 의리를 지켜온 건 인정하지만, 그게 과연 얼마나 가겠느냐는 게 여자들의 은밀한 중론이었다. 그래도 그런 잡담을 그들 안에서 끝내고, 외부로는 절대 옮기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김철희 탱커는 안 왔어요? 아까 대기소에서도 못 본 거 같던데. 2번 함에 있나?”

“안 왔어요. 인원점검 할 때 제가 명단 봤거든요.”

“어머? 정말요? 그런 걸 일일이 다 확인하시나 봐요?”

“언니도 참. 정규리 탱커가 지금 김철희 탱커한테 마음 있어서 한창 작업 중이잖아요.”

가벼운 핀잔에 박현정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깨를 으쓱했다. 정말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정규리는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떨어뜨렸다. 하얀 피부와 좁은 어깨가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미소녀였다. 십 대로 보이지만 벌써 스물여섯이다.

“하긴, 김철희 탱커 정도면 일등 신랑감이죠. 남자답게 생겼다, 탱커다, 거기다가 공대장님 고향 동생이니까 앞으로의 출세길은 따논 당상? 잘해 봐요, 정규리 씨.”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안 부끄러워해도 돼요. 능력 있는 남자한테 미녀가 끌리는 건 보기 좋은 모습이죠.”

자기 키보다 큰 대검을 가슴에 꼭 껴안은 채 웅크리고 있던 이유리가 한 마디 하며 웃었다. 박현정이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받아쳤다.

“그래서 이유리 탱커는 그 많은 남자들의 구애도 거절하고 싱글이신 거예요? 차마 가슴에 담아둔 님을 잊지 못해서?”

“제가 언제 공대장님을 가슴에 담았다고 그랬어요?”

“이유리 탱커가 공대장님 좋아하는 거 우리끼리는 이미 다 아는데 뭘 숨기고 그래요. 내가 옛날에 공대장님한테 작업 걸었다가 안 먹힌 것도 여기 사람들 다 아는데, 설마 나보다 더 창피하겠어요?”

“박현정 씨, 공대장님한테 작업 걸었어요? 옛날에?”

“그랬죠. 근데 한창 와이프, 아니 그때는 여자친구였죠. 정효주 씨랑 한창 뜨거울 때라서 제가 작업 건 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나 봐요.”

박현정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공대장님 곁에 있다 보니 눈만 높아져서 저도 큰일이에요. 다른 남자들이 전혀 남자로 안 보이는 거 있죠? 정효주 씨만 괜찮다면 세컨드도 상관없을 거 같은데.”

“그거 큰일 날 소리예요.”

“농담이에요, 농담. 우리끼린데 그런 것도 못해요?”

“근데 진짜 농담?”

“아아, 더 이상은 노코멘트.”

여자들 사이에 가벼운 웃음이 번졌다. 테레사는 그런 분위기를 이해하지 못한 채, 한 발짝 떨어져서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레이드의 위험도를 걱정하던 게 언제냐는 듯 여자들은 유지웅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이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테레사는 유지웅이 여자 대원들 사이에서 이렇게 인기가 좋은 줄 몰랐다.

박현정이 한 마디 했다.

“그래봐야 절벽, 아니 하늘 위의 고고한 구름이죠. 쳐다보는 것까지만 되고, 잡을 수도 없는 그런 거.”

“맞아요. 근데 뭐 어때요. 난 쳐다보기만 해도 좋더라. 정효주 씨랑 다정한 거 보고 있으면 꼭 영화 풍경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좋아져요.”

“하지만 자기가 정효주 씨 자리에 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요?”

“당연한 걸 물으시는군요.”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 * *

“……를 해주시면 됩니다. 이상입니다. 질문 있으신 분?”

장태준은 등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설명을 마쳤다. 나이 지긋한 장성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집중하고 있었다. 모두 국방부에서 원활한 작전 수행을 위해 지원해준 참모단이었다.

그래서 누가 왔냐고? 합참차장이 작전본부장, 정보본부장 등 직속 장성들과 장교들을 이끌고 왔다. 별 세 개 장성들이 무리를 지어 온 것이다. 차라리 자신을 통제하러 온 거면 마음이 편하겠다. 나이 지긋한 장성들이 자기 지휘를 받고 또 보조를 해주기 위해 아래로 들어왔으니, 식은땀이 멈출 줄을 몰랐다.

“장 사령관님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저희 참모진이 최선을 다해 보필하겠습니다.”

“사령관이라니요. 저는 제니스 지원팀장일 뿐입니다.”

“하지만 호칭이 마땅하지 않아서……. 뭐 어떻습니까? 장 사령관님, 참 좋은 호칭 같은데요?”

대체 상부에서 무슨 주의를 듣고 온 건지 육군 출신인 젊은이를 대하는 태도가 합참의장을 대하는 것 마냥 깍듯하다. 장태준은 이 부담감을 떨쳐 버리고 싶었다. 다행히 구원자가 왔다.

“이야기는 많이 나누셨나요?”

유지웅이 회의실에 들어오자 장태준은 살았다는 듯이 얼른 일어섰다.

“예. 모두 뛰어난 장성분들이라 제가 할 일은 특별히 없을 듯 합니다.”

“중요한 레이드입니다. 조금의 어긋남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워낙 많은 나라에서 긁어모은 연합군이라 지휘 체제 통합 작업에 어려움이 많은 건 알겠지만, 베링 해역에 들어서기 전에는 모든 통합 작업을 마쳐야 합니다.”

“염려 마십시오.”

장태준은 다소 측은하게 합참 장성들을 보았다. 유지웅이 지금 얼마나 엄청난 이야기를 한 건지는 그가 잘 안다. 625척의 전함, 1만 여 명의 레이더, 50개 이상의 위성 및 부수적인 항공전술시스템, 수십 개국의 지원으로 뭉친 이 거대 연합군의 지휘 통합 작업을 겨우 며칠 안으로 끝내란다.

아무리 까라면 까는 게 군대 속성이라지만, 어쩜 저리 시원스럽게 알겠다고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장태준은 장성들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삐익! 삐익!

갑자기 요란한 비상벨이 울렸다. 흠칫 놀란 유지웅 및 참모진은 얼른 지휘실로 뛰어갔다. 통제장교가 급히 보고했다.

“선발 호크아이에서 온 연락입니다! 상어 형태의 결정도 35,000의 괴수가 탐지되었다고 합니다!”

“35,000? 수중인 걸 감안하면 매우 힘든 레이드가 되겠군요!”

“역시! 이만한 전력을 모으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결정도 35,000. 결정도만 높고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수중 레이드라는 점을 고려하면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수치라고 볼 수 있다.

유지웅은 다소 얼떨떨했다. 안 그래도 워크샵 가자는 한 마디가 이렇게 크게 터질 줄 몰라서 나름대로 전전긍긍했는데, 하늘이 도와주는 건가?

‘근데 몹이 쎄다고 좋아해도 되나?’

============================ 작품 후기 ============================

까라고 하면 까는 게 익숙한 사람들이라서 장성까지 먹은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