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320 Deep Sea

촤아악!

브라우니가 입수하자 물기둥이 높이 솟구쳤다. 모비딕 배에 착지한 유지웅 커플은 덕분에 물을 흠뻑 뒤집어썼다. 어차피 수중장비복을 입고 있으니 상관은 없지만.

「전원 입수. 브라우니를 지원합니다.」

지시가 떨어지자 수면 위를 스치듯 날던 헬기에서 대원들이 차례차례 물에 뛰어들었다. 유지웅 커플도 수면 아래로 뛰어들었다.

수중인 까닭에 유지웅은 교신 장치를 켜고 물었다.

「기절한 모비딕은 어쩌지?」

「글쎄? 언제 정신을 차릴까?」

장태준이 말했다.

「함선을 시켜 인양하겠습니다.」

「괜찮을까요? 괜히 이 해역에 접근했다가 전복되기라도 하면…….」

「전투하면서 조금씩 이동해야죠.」

고글 디스플레이에 전장 정보가 다양한 점으로 변해 떠올랐다. 브라우니는 현재 괴수와 대치 중이었다. 거의 200미터 이상 떨어져 있는데 여기까지 강한 물살이 느껴진다. 서로 물어뜯고 피하려고 하는 추격전이 치열했다.

「와, 엄청 크다.」

괴수는 거대한 상어처럼 생겼다. 등 부위는 짙은 청색이고 배 부위가 희었다. 언뜻 봐도 몸길이만 300미터는 되는 것 같았다.

브라우니는 날개를 제외한 몸집이 기껏해야 황소 크기에 지나지 않는다. 결정도에 비하면 몸집 크기가 매우 작은 편이다. 적 괴수와 비교하니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상어 괴수가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돌진했다. 브라우니는 허우적거리며 날카로운 이빨을 피했다. 입의 크기도 무시무시했다. 저 이빨에 물어 뜯겼다가는 형체도 남지 않을 것만 같았다.

「역시 바다는 무궁무진해. 뭐 저리 커?」

어쩌면 바다라서 몸집 크기에 제한을 덜 받거나, 아니면 몸집이 큰 게 더 유리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저런 거대한 괴수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경이적이었다.

「브라우니에게 보호막을 주세요.」

「어? 벌써 닳았나?」

유지웅은 살짝 놀라서 얼른 보호막을 시전했다. 브라우니의 몸이 다시 희미한 푸른빛으로 빛났다.

「전 대원, 진형을 펼칩니다. 탱커진 앞으로, 힐러진과 원거리 공격진은 뒤로, 근접 딜러진은 힐러진을 호위하세요.」

제니스 대원들은 일사분란하게 진형을 갖췄다. 수중장비복 제어가 익숙지 않아서 물살에 좀 고생을 하기도 했으나, 곧 어렵지 않게 진형 편성을 마쳤다.

장태준은 근접 딜러진을 힐러진 호위라는 수동적인 임무로 돌리고, 원거리 딜러진을 주력으로 내세우는 전술을 짰다. 근접 딜러진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밖에 없는 대우다. 하지만 대세는 거스를 수 없었다.

‘제니스는 원딜이 대세다.’

국내 레이드계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말이었다. 제니스는 모든 공격대가 동경하는 집단이다. 당연히 제니스에서 취하는 정책, 전술은 다른 레이더들도 끊임없이 찾아서 본다. 마치 프로 게이머들의 경기를 빠뜨리지 않고 시청하는 게이머들처럼.

프라임 시절만 해도 근접과 원거리는 거의 대등한 비율로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지금의 제니스는 확고한 원거리 딜러 위주로 체제가 굳어지고 있다.

장비의 발달과 보호막 능력의 강화에 따라 수정되는 전략이 근접 딜러들에게는 독이 된 것이다. S급 강화 장비를 착용한 원거리 딜러들의 기본 딜과 궁극 딜은 너무나 엄청났다. 거기에 휘말리는 근접 딜러에게 일일이 보호막을 거는 것은 공격대 전체로 보면 낭비였다.

그래서 장태준은 근접 딜러진을 수동적 호위로 돌리고, 결정타를 가하거나 딜이 모자랄 때 투입하는 전술을 즐겨 썼다. 근접 딜러진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근접 딜러진 입장에서는 보직에서 좌천되는 거나 다름없다.

―캬아악!

브라우니가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물속을 유영했다. 적 괴수의 뒤로 돌아간 녀석은 목덜미를 힘껏 쪼았다. 적 괴수는 간지럽지도 않은지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고, 그 바람에 브라우니는 저만치 나가떨어졌다.

두 괴수가 서로 치고 박고 할 때마다 물살이 세차게 흔들렸다. 거대한 몸집이 움직일 때마다 부딪쳐 오는 수압이 장난 아니었다. 꽤 거리를 두고 있는데도 이 정도였다.

「근데 이상하다…….」

「왜 그러십니까?」

「어디서 많이 본 생김새라서요.」

「백상아리 형태의 괴수라서 그럴 겁니다. 영화 죠스에서 나오기도 한 유명한 상어죠.」

「그런 게 아니라…….」

고글이 영상 정보를 확대해서 표시했다. 유지웅은 적 괴수의 커다란 눈동자를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왠지 저 눈동자가 낯이 익다. 어디서 봤더라? 인상을 쓰면서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적 괴수 본진으로 돌진 중! 위험합니다! 탱커진, 가드하세요!」

「브, 브라우니는 뭐 하는 거야!」

정효주는 당황해서 앞으로 나섰다. 물속이라서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녀석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선두에 나선 그녀가 몸을 부딪쳤지만, 300미터에 달하는 거구를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보호막 덕분에 다치지는 않았으나 전혀 저지하지 못한 채 나가떨어져야 했다.

「절대 못 지나간다!」

이유리가 결연한 표정으로 나섰다. 다른 탱커들도 그녀의 뒤에 합세했다. 그녀는 손에 쥔 단검을 빼들고 달려들었다. 평소에는 자기 키만 한 대검을 쓰지만 오늘은 수중 레이드라서 버리고 왔다. 단검이 더 몸을 움직이기 쉽기 때문이다.

「꺄악!」

그녀는 있는 힘껏 적 괴수의 이마에 단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아프지 않은 건지 아니면 대수롭지 않은 건지 적 괴수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유리 등 탱커진을 간단하게 밀쳐낸 백상아리는 그대로 본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젠장!」

유지웅은 급히 힘을 끌어올려 광역 보호막을 시전했다.

번쩍!

눈부신 빛의 막이 넓게 쳐졌다. 구체는 힐러진 등 제니스 본진 전원을 완전히 감쌌다. 한 명 한 명에게 단일 보호막을 걸어주는 것보다는 이게 더 효율적이다. 더 빠르고, 안전하다.

투웅!

적 괴수가 보호막에 힘껏 부딪쳐 왔다. 보호막에 금이 갈 듯이 찌직거리며 짜릿한 느낌이 울렸다. 유지웅은 마치 직접 부딪친 것처럼 얼얼함을 느꼈다.

「와, 장난 아닌데?」

적 괴수는 몸을 돌려 뒤로 물러났다. 처음에는 도망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벌어지자 다시 방향을 돌려 돌진해왔던 것이다.

투웅!

「이, 이런 무식한……!」

투웅!

「설마 박치기로 광역 보호막을 깨려고? 그런다고 이게 깨질 것 같아?」

투웅!

「우와, 충격도가 왜 이래?」

짜릿한 느낌이 울렸다. 히카리나 불원숭이를 상대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장태준의 지시를 받은 탱커진이 급히 달려들어서 등에 칼을 꽂는 등 있는 힘을 써보지만 먹히지 않는 것 같았다. 어그로를 전혀 끌지 못하고 있었다.

「칼이 전혀 안 들어가요! 이거 무지 단단해요!」

이유리가 비명처럼 외쳤다. 다른 탱커들도 마찬가지. 심지어 정효주도 낭패를 보이고 있었다.

「내 기본 공격도 안 먹혀!」

「광선검 공격은요? 설마 그것도 안 들어가는 겁니까?」

퍼플 결정체를 이용한 2차 궁극기를 말한다. 궁극 에너지를 무기에 집중시켜 어떤 방어막도 가를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섬광 궁극기를 근접 공격으로 치환해서 신체 내부에 직접 때려 박는 무지막지한 기술이다. 섬광 궁극보다는 파워가 약하지만 오래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웬만한 레드 몹은 이 기술 한 방이면 죽는다.

「아뇨, 그건 들어가고 있어요!」

「그런데도 저렇게 멀쩡하다는 건가요?」

「네! 말도 안 돼요!」

괴수라 해도 방어막을 걷어내면 별다를 것 없다. 방어막만 없으면 포탄, 아니 총알로도 잡을 수 있다. 그게 정설이다. 그런데 정효주가 광선검 공격으로 직접 방어막을 지나쳐 신체에 충격 에너지를 때려 박는데도 반응이 없다?

「죽지 않는 건 둘째 치고, 적어도 어그로는 끌 수 있어야 되는데 쳐다보지도 않아요!」

정효주가 비명처럼 외쳤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상어 괴수는 꿋꿋하게 광역 보호막에 박치기만 하고 있었다. 정효주의 공격은 아프지도 않다는 듯이.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가?

투우웅!

번쩍!

힘껏 부딪치는 순간 광역 보호막이 드디어 깨져나갔다. 하지만 이쯤은 이미 대비한 것이다. 유지웅은 재빨리 다시 광역 보호막을 쳤다. 그리고 득의양양했다.

「어때? 또 한 번 깨보시지?」

녀석이 고래가 아니라 상어라는 게 안타깝다. 지능 높은 포유류라면 아마 지금쯤 좌절감을 느끼고 있을 텐데.

적 괴수는 뒤로 물러났다. 보호막을 깨고 덮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또 다시 나타나자 놀란 모양이다.

「제1예비대 원거리 딜러진, 전원 이탈해서 궁극기 발사 준비하세요. 제2예비대 탱커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시를 받은 이들은 얼른 움직였다. 광역 보호막 바깥쪽에 있는 제2예비대 탱커진도 수면 가까이 상승했다. 탱커의 섬광 공격이 워낙 강력한지라 위에서 아래로 꽂으려는 것이다.

그때였다. 상어 괴수의 전신이 발광하기 시작했다. 은가루를 뿌린 것처럼 물속이 은은하게 빛났다. 마치 물속에 눈이 내리듯이 황홀한 광경이었다.

「뭐지? 설마 광역 공격이라도 하려고?」

뜻밖의 변화에 모두들 숨을 죽였다. 그때 통제부에서 외마디 비명이 울렸다.

「겨, 결정도 13만! 13만을 넘었습니다! 13만 5천!」

「뭐라고요?」

다들 기절할 듯이 놀랐다. 저게 3만 5천이 아니라 13만 5천짜리라고?

「그럼 블랙 등급? 설마 불원숭이처럼 체내에 결정체를 분산해두었다는 건가요?」

「어떻게 13만이 넘었는데 멀쩡할 수 있어? 신체가 못 견디는 게 정상 아니야?」

지금까지 다른 블랙 몹들은 겨우 10만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붕괴했다. 심지어 불원숭이도 체내에 분산된 결정 에너지 10만 전부를 합하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자기 몸이 터질 거라고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헌데 저 녀석은 어떻게?

거대한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으르렁거리는 듯한 눈이 무엇을 노려보고 있는지, 유지웅은 불현듯 깨달았다. 바로 테레사였다. 본진을 향해 맹렬히 달려든 것도 딜러진에 섞여 있는 그녀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제야 그는 왜 저 눈동자가 낯이 익었는지 깨달았다.

「아……!」

기억났다. 녀석은 바로 미국에 새끼를 뺏긴 어미 상어였다. 몸집이 너무 커져서 못 알아봤다.

============================ 작품 후기 ============================

심해를 무시하지 마, 분명 후회할 걸.ㅠㅠ

(엉엉 언제 뭍에 올라가 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