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375 Pest Turbulence

영국은 곤충 괴수 때문에 한 해 밀농사를 전부 망쳤다. 이에 농부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영국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곤충 괴수의 움직임이 워낙 빨랐기 때문이었다. 사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세울 시간을 갖기도 전에 모든 게 끝났다. 공격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든 밀을 갉아놓고 떠난 뒤였다.

반면 미국과 남미 국가들은 대비할 시간이 충분했다. 넓은 대서양이 시간을 벌어주었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과 브라질은 곤충 괴수 무리가 상륙할 것으로 예상되는 연안에 딜러들을 잔뜩 소집해 놓았다.

“탱커는 거의 필요 없다고?”

“예. 우리 쪽으로 오는 무리들은 결정도를 다 합쳐봐야 4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광역 계열의 딜러만 있으면 충분히 녹여버릴 수 있습니다.”

처음 카직스의 껍질에서 부화한 작은 카직스 무리는 전부 합쳐서 결정도가 10 정도였다. 호크 아이는 뭉쳐 있는 무리 전체의 결정도를 뭉뚱그려서 10이라고 식별한 것이다. 한 마리 한 마리씩 구분하지는 못했다.

즉 한 마리 한 마리는 결정도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희박하다는 것이다.

미세하긴 하지만 0은 아니었기에 방어막은 존재한다. 그리고 방어막은 재래식 무기의 파괴력으로는 뚫을 수 없다. 단, 방어막의 농도가 미약하기에 딜러가 한 대만 쳐도 소멸해버린다.

그 점은 인류에 있어 행운이었다.

일단 독일에서 제니스의 끈질긴 추적으로 최초 무리의 20% 정도가 소멸했다. 남은 녀석들이 미국과 브라질을 향하고 있는데, 두 무리로 나뉘다 보니 각각 처음 무리의 40% 정도씩 남게 된 것이다.

“곤충 괴수 무리는 현재 약 시속 300km로 이동 중입니다. 이대로라면 약 21시간 뒤에는 미국 동부에 상륙합니다.”

닥치는 대로 농작물을 갉아먹는 곤충 무리가 무려 시속 300km로 바다를 횡단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재앙이다.

유지웅 이하 제니스 공격대도 A3와 독일이 준비한 제트기를 타고 부랴부랴 미국과 브라질로 향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도와주는데 좀 튕기고 몸값도 올리고 그래야 하겠으나, 지금 상황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자문단이 일단 곤충 괴수 무리를 퇴치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태가 매우 심각하다고 조언했다.

「만약 아마존 밀림이 초토화되면 지구의 허파 한쪽이 잘려나가는 거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아마존은 거대한 밀림이자 지구의 허파다. 엄청난 양의 산소를 내뿜고 또 탄소를 흡수한다. 만약 곤충 무리가 아마존 전부를 못 쓰게 만들어버린다면? 뒷일은 상상하는 것도 끔찍하다.

그래서 유지웅도 부랴부랴 곤충 괴수 무리를 쫓아 나선 것이다. 다행히 녀석들의 이동 속도는 시속 300km 정도로, 그의 전용기 A3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느렸다. 다른 팀은 독일이 준 제트기를 타고 미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핵을 사용하는 것은 어때요? 대서양 중앙을 지날 때 터트리면 거의 피해 없이 막을 수 있을 텐데요. 어차피 방사능 오염도 없잖아요.”

「대서양에 있는 다른 해양 괴수들이 그것 때문에 놀라서 오히려 연안으로 몰리면 그것도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미국 동부 해안 10km 지점에 해양 괴수가 출몰해서 난리가 났습니다.」

“대서양이 얼마나 넓은데 전술핵 하나 썼다고 괴수들이 죄다 해안 지방으로 몰려오겠어요?”

어쩌다 보니 A3에서 미국, 독일, 제니스, 브라질 등이 참석한 긴급 국가 정상 회담이 열리게 되었다. 중간에 이상한 게 하나 끼어 있긴 하지만 일단 넘어가자.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우리 브라질은 찬성합니다. 바다 한가운데서 핵으로 안전하게 소멸시키는 게 낫습니다.」

브라질은 핵사용을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주저했다.

“비시 대통령님, 지금은 대서양 항로 개척을 신경 써야 할 때가 아닙니다. 곤충 괴수 무리를 조기에 박멸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엄청난 화가 될 겁니다. 만약 저것들이 몰살하지 않고 살아남아서 번식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미국이 핵사용을 망설이는 정확한 이유는 따로 있다. 현재 미국은 영국과 연결되는 대서양 항로를 개척 중이었다. 수중 탐지 장비를 이용해, 해양 괴수 출몰이 없는 해역을 탐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유럽 대륙과 미국 동부를 완전히 잇는 안전항로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미 1/3쯤은 뚫린 상태였다.

항로 지도가 1/3이나 완성됐는데 만약 핵을 터트려서 해양 괴수의 서식처가 바뀌기라도 하면, 지금까지 들인 공이 모두 허사가 된다. 미국과 유럽을 잇는 항로를 다시 처음부터 찾아 나서야만 한다.

「미국은 핵을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해안선에 이미 충분한 공격대 방어망을 형성했으니, 곤충 괴수 무리쯤은 어렵지 않게 박멸할 수 있습니다.」

“안전한 길을 놔두고 돌아가는 건 위험해요. 미국만이 아니라 미국의 곡물에 의존하는 세계 국가들도 생각해주세요. 만약 곤충 괴수 무리가 미국에 무사히 상륙해서 농작물을 망친다면 세계적으로 엄청난 재앙입니다. 미국 혼자만의 운명이 아니에요.”

「저는 미합중국의 공격대가 가진 힘을 믿습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비시 대통령은 뜻을 바꾸지 않았다. 그렇다고 남의 나라가 핵 안 쓰고 막아보겠다는데 강경하게 다그칠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죠. 일단 우리 제니스 1개 예비대도 미국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지원할 겁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미스터 제니스.」

긴급 정상 회담은 일단 그렇게 종료했다. 브라질은 핵을 이용해서 바다 위에서 막기로 했고, 미국은 상륙 예상 지점에서 공격대를 이용해 박멸하기로 했다.

“하여튼 있는 것들이 더해요. 돈 몇 푼 벌어보자고 안전한 길도 돌아가네.”

유지웅이 그렇게 투덜거리자 2팀은 의아해서 서로 눈치만 살폈다. 그들도 회담 내용은 옆에서 들었다. 핵사용이 가장 안전하기는 했지만 미국의 결정도 이해 못할 것은 아니었다. 왜 유지웅이 저렇게 비난하는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저, 공대장님.”

“네? 할 말이 있나요?”

“왜 그러시죠? 미국, 대서양 항로 어쩌고 하시던데 혹시 무슨 문제가 있나요?”

“2차 해금 사태 이후 미국은 줄곧 대서양 항로를 뚫으려고 그 넓은 바다 전역을 스캔하고 다녔거든요. 돈이 엄청 깨졌죠. 해양 괴수를 잡는 건 아니고, 괴수가 없는 해역을 찾는 작업이었어요.”

“네.”

“지금 1/3 정도 완성됐는데, 핵을 쓰면 괴수 서식처가 변동할 수 있으니까 처음부터 다시 작업해야 돼요. 비시 대통령은 그래서 핵을 못 쓴다는 거고요.”

“미국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라도 아까워서 핵 못 쓸 거 같아요.”

“그래도 안전한 게 장땡 아닌가? 저라면 바다 위에서 막겠어요. 그게 제일 확실하잖아요.”

대원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했다. 유지웅은 피식 웃으며 일침을 놓았다.

“아까워서 핵 못 쓴다는 게 문제예요. 돈 많이 든 프로젝트라고 했잖아요.”

“……아.”

누군가 깨달았다는 듯이 가볍게 탄성을 질렀다. 여전히 이해 못한 대원들은 어리둥절했다.

“왜 그래?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

“미국에서 돈 많은 재벌이랑 기업체들이 공동으로 출자해서 항로 개척 작업을 시작했다고 들었어. 그리고 비시 대통령은 공화당이잖아.”

“아하.”

“그러니까 정치 논리라는 거네?”

그제야 하나둘씩 쓴웃음을 지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도 왜 굳이 돌아가나 했더니, 이유가 있었다. 항로 개척 작업이 도로 아미타불이 되면 엄청난 손해를 보는 이들 때문이다. 그리고 비시도 그들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었다.

* * *

곤충 무리 상륙 예상 지점은 브라질의 북쪽에 있는 해안국가 가이아나로 추정되었다. 이에 브라질과 유지웅은 가이아나 정부와 협의해서 가이아나 해안에 방어망을 형성했다.

어디까지나 만약을 위한 조치다. 녀석들이 남미 대륙에 상륙하게 놔둘 마음은 없었다.

「전술핵 미사일 4기, 발사 확인했습니다.」

「목표 추적에 들어갑니다. 4기, 각각 4방향에서 목표를 포위했습니다.」

「전기 폭발 성공 확인!」

가이아나에 임시로 마련된 국가수반 회의실에서 가벼운 환호가 울렸다. 브라질 대통령도 잔뜩 상기된 얼굴로 물었다.

“목표는 섬멸했습니까?”

“후폭풍 때문에 호크아이가 접근이 어렵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확인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옐로 몹보다 훨씬 못한 녀석들이니, 충분히 박멸되었을 겁니다.”

레드 몹도 핵은 못 버틴다. 하물며 수십만 마리를 전부 합쳐도 결정도가 4가 될까 말까 한 조그만 녀석들이니, 핵폭발에서 살아남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혹시나 해서 1기도 아니고 4기를 동시에 터트렸으니 거의 확실하다.

장태준이 조금 심각하게 말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극소수의 낙오된 일부가 살아남았다면 호크 아이로는 탐지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결정도가 미세한 곤충 괴수가 극소수만 있다면, 아마 호크 아이의 감지장비로는 식별이 안 될 겁니다.”

“그래요? 음, 역시 미제도 한계는 있는 법인가…….”

“공대장님, 방금 미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남미를 향하고 있던 곤충 괴수 무리의 완전 소멸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유지웅은 놀랐다. 아니, 미국이 어떻게 그걸 알고 확인을 해준단 말인가?

어느 지원팀 대원이 자기가 아는 대로 설명했다.

“미국의 글로벌 MD(Monster Defense)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미국이 괴수 정찰용으로 운용하는 위성만 해도 알려진 숫자가 351개입니다. 아마 MD 시스템으로 확인했을 겁니다.”

“역시 무기는 미제야.”

유지웅은 방금 한 말을 철회했다.

장태준이 심각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호크 아이에 장착된 탐지장비보다 월등히 뛰어난 장비를 탑재한 위성을 351개나 운용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왜요, 사줄까요?”

“예. 저희도 한반도에 그런 위성을 몇 개 정도 자체적으로 운용하면 좋겠습니다.”

“어? 제가 말한 건 위성이 아니라 MD시스템을 말한 건데.”

장태준은 순간 자신의 고용주에게 미안해졌다. 그의 지갑을 너무 우습게 봤다. 그 말 그대로다. 그는 위성 몇 개가 아니라 시스템을 통째로 사줄 수 있는 남자다.

“미국 상황은 어떻죠?”

“12시간 후에 곤충 괴수 무리가 동부 해안에 상륙합니다.”

유지웅은 잠시 시계를 보았다. 초음속 제트기 A3를 이용하면 곤충 괴수 무리가 상륙하기 전에 미국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결정했다.

“미국으로 갑시다. 지원해야죠.”

“예,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내 땅 지키기 힘드네.”

“큰 땅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입니다.”

“그러게요. 빨리 처분하든가 해야지. 이제 호남 있어서 쓸모도 없을 거 같은데.”

사실 그야말로 미국 제일의 땅부자다. 개인으로서는 가장 큰 면적의 농장을 갖고 있으니.

유지웅은 2팀을 이끌고 다시 미국으로 향했다. 독일 오랴, 브라질 오랴, 다시 미국 가랴 피곤할 텐데 다들 불만 한 점 비추지 않았다.

“상륙 예상 지점은 어디죠?”

“사우스 캐롤라이나 주입니다. 연방 정부는 30만 명의 레이더를 조지아주에서 노스 캐롤라이나주에 걸쳐 집결했습니다.”

지도를 보고 유지웅은 살짝 감탄했다.

“넓게도 배치했네. 30만 명이면 미국 전체 레이더 중에서 얼마나 되죠?”

“약 10% 정도입니다.”

어느덧 A3가 플로리다 반도 상공에 접어들었다. 비행 중에 한숨 푹 자고 일어난 유지웅은 착륙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그는 승무원에게 콜을 넣었다.

“무슨 일입니까?”

「죄송합니다. 기상 상태가 나빠져서 기체가 다소 흔들릴 수 있다고 합니다.」

“위험한 건 아니죠?”

「아닙니다. 허리케인 영향권이긴 하지만 거리가 충분히 멀기 때문에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아, 그렇군요. ……잠깐, 뭐라고요? 허리케인?”

============================ 작품 후기 ============================

드랍 지역 바뀜. 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