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377 Pest Turbulence

호남산 곡물을 볼 때마다 늘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했다.

일본과 중국 지역에 꾸준히 공급하면서 안전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은 이미 입증되었다. 본의 아니게 그 지역 주민들을 모르모트로 이용한 셈이지만, 호남산이라도 좋으니 제발 주기만 해달라고 아우성을 부린 것은 당사국들이다.

하지만 호남 곡물을 공급하면서 막상 얻은 실익은 없었다. 중국과 일본은 곡물 대금을 지불할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당장 굶어죽게 생겼으니 그거라도 먹게 해달라고 하는 나라들이 무슨 돈이 있겠나. 대금은 죄다 국채로 받았다. 상환하거나 팔아야 돈으로 변하는데, 만기는 아직 멀었고 일본과 중국 국채는 금융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 추세다.

결국 잘 살고, 인구도 많으며, 곡물 소비량이 높은 나라들을 노려야 한다. 미국 같은 나라 말이다. 미국민이 직접 섭취하는 곡물 양도 무시무시하지만, 육류 생산에 들어가는 가축 사료와 식재품 재료 등 간접 섭취양도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선진국은 아직 호남 곡물 하면 좀 꺼리는 경향이 높다. ‘그거 먹고 탈 안 날까?’, ‘중국이나 일본은 당장 굶어죽게 생겼으니 그거라도 먹었지만, 우리는 아니잖아?’라는 게 보편적인 중론이다.

유지웅의 눈치를 보는 미 정부도 호남 곡물 수입에 관해서만큼은 태도가 완강했다. 물론 유지웅이 강요한 적은 없었다. 언젠가 주미한국 대사가 넌지시 운을 떼본 적이 있는데, 수입 예정은 없다고 칼같이 잘랐던 것이다.

만약 미국이 호남 곡물을 수입해서 소비한다면?

중국이나 일본과는 차원이 다른 안전성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놔두면 되나?’

소형 카직스 무리를 놔두면 전미 지역의 농가가 초토화될 것이다. 비축 물량이 있다 해도 한계가 있다.

그렇게 호남 곡물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들면, 일단 첫 단추는 꿸 수 있게 된다. 아직 시작도 못 하고 입맛만 다시고 있는 것에서 한 발짝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엄청 효도가 될 텐데.’

안 그래도 부모님이 요새 좀 풀이 죽으신 것 같다. 생산되는 곡물량은 엄청난데, 실제로 큰돈은 되지 않으니. 한국 정부가 지급 보증을 서고 최악의 경우에는 대금 국채를 전부 인수하기로 했다지만, 당장 보전해주는 돈은 생산비용 정도에 불과했다.

‘강대연 교수님 말도 맞아. 바다에서 핵 쓰면 된다고 제안했는데 거절한 건 미국이잖아? 그것도 대기업들 이익을 보전하려는 논리로…….’

그 점을 걸고넘어지면, 설령 제니스가 나서지 않더라도 도의적인 책임을 짊어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유지웅은 여러 모로 심하게 흔들렸다.

“안 되겠다. 효주랑 의논해봐야지.”

자기 혼자서 결정하기에는 파급력이 너무 크다. 아니, 자기 혼자서 결정해야 할 일이 아니었다. 이 일은 운명공동체인 정효주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테니까. 당연히 그녀도 의사결정에 참가해야 한다.

그는 곧바로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시차 때문인지 그녀는 자다가 일어난 목소리였다.

「응.」

“자고 있었어? 금동이는?”

「애기도 자고 있지. 근데 무슨 일이니?」

“곤충 괴수떼 말인데…….”

정효주는 한국에 있지만,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다. 유지웅은 호남 곡물의 선진국 시장 진입을 위해 제니스가 이 사태를 방관해야 한다는 조언에 관해서 상세하게 이야기를 했다.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우리 전에 약속한 거 기억나?」

“약속?”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인품이 훌륭해서 아이가 자랑할 수 있는 부모가 되자구 했잖니.」

“……아. 그랬지.”

「내 생각은 그런데, 넌?」

유지웅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창피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나온 웃음이었다.

「우리가 먼저 떳떳해지자. 벌써 많이 가졌는데 꼼수로 더 가지려고 하지는 말자.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둘은 단시간에 많은 부를 쌓았지만, 모두 정당한 과정으로 획득한 것이었다. 재산의 대부분은 결정체를 팔거나 레이드를 하면서 번 돈이었다.

“네 말이 맞아. 다짐해놓고 내가 잠깐 흔들렸네.”

「조급해하지 마.」

“응. 한밤중에 깨워서 미안해. 잘 자.”

전화를 끊고 유지웅은 곧바로 장태준을 불렀다.

“곤충 괴수 박멸을 지원하겠어요.”

“알겠습니다.”

* * *

“일단 대농장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전원 안전지대로 피신시켰습니다. 확인되진 않았지만 곤충 괴수 무리도 안전지대에 들어올 수는 없을 겁니다.”

미국 대농장에는 안전지대가 한 개 있다. 직경 2km 정도의 작은 안전지대인데, 만약을 대비해서 직원들 거주구역에 설치해둔 것이다. 괴수가 공격을 해오면 즉각 대피할 수 있도록.

원래 대농장 전 지역에 안전지대를 설치할까도 고려했는데 비효율적이라는 조언에 관두었다. 그 무시무시한 면적에 안전지대를 설치하려면 엄청난 돈이 든다. 대농장이 한국에 있는 것도 아니고 미국 영토인데, 그렇게까지 큰 투자를 할 필요는 없다.

결정을 내린 유지웅은 미군 지휘부로 향했다. 별을 단 지휘관이 벌떡 일어났다.

“백악관과 연결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전문 통역가의 통역으로 유지웅은 회담을 시작했다. 화면이 커지며 곧 비시의 얼굴이 나타났다. 하루 이틀 사이에 그의 얼굴은 십 년이라도 늙은 것처럼 수척하게 변해 있었다.

「미스터 제니스.」

“곤충 괴수 박멸을 위해 힘을 아끼지 않고 지원하겠습니다. 특별한 수익을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오, 감사합니다.」

비시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실시간 감시 상황을 보면서 회의를 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넓게 펼쳐진 전자 화면에 미국 전역 지도가 나타났다. 곤충 괴수의 위치, 이동 방향, 피해 지역 등이 각각 다른 색깔별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막아내고는 있군요.”

「내륙 지역에는 해안 방어선 인력을 소집하지 않아서 대부분의 레이더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인명 피해는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농작물 피해가 극심합니다. 곡물은 물론이고 식물이란 식물은 전부 갉아먹고 있습니다.」

비시는 잠시 뜸을 들이고 다시 말했다.

「참모진은 안전지대를 설치하면 곤충 괴수가 접근하지 못할 거라고 합니다. 혹시 안전지대 설치가 가능합니까? 물론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겠습니다.」

“글쎄요. 제가 괜히 빼는 게 아니라, 미국의 농사 지역 면적이 엄청난 것으로 아는데, 그 넓은 면적을 안전지대로 씌우는 것은 지나친 비효율 아닐까요? 소모되는 결정체 양도 엄청날 겁니다.”

안전지대는 인구 거주구역 등 핵심적인 장소만 선별해서 설치하는 게 효율적이다. 면적이 넓어질수록 소모되는 결정체 양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케네드 사령관이 대신 설명할 겁니다.」

「영광입니다, 미스터 제니스.」

비시가 물러나고 노련한 인상을 가진 별 넷 단 군인의 모습이 강조되었다.

「이른바 안전지대를 이용한 몰이 작전을 하는 겁니다.」

“몰이?”

「여기 시뮬레이션 화면을 보아 주십시오.」

곧 곤충 괴수의 위치와 예상 이동 방향을 도식화한 시뮬레이션 화면이 나타났다.

작전의 요지는 이렇다. 예상 경로 맞은편에 안전지대를 설치한다. 그리고 좌우에도 각각 안전지대를 설치한다. 안전지대를 이용해 U자 형태로 끝이 막힌 길을 만드는 것이다.

곤충 괴수가 막다른 길목에 갇히면 후방과 상공에서 딜을 퍼부어 단숨에 섬멸한다는 작전이었다.

그럴 듯해 보였던 유지웅은 옆을 돌아보면서 장태준에게 물었다.

“어때요?”

“아마 함정을 만들기 전에 미국 전 지역이 초토화될 겁니다.”

유지웅도 아참 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안전지대를 설치하려면 정효주가 있어야 한다. 그녀는 지금 한국에 있다. 지금부터 바로 날아온다 해도 너무 늦다.

미국은 안전지대 설치 메커니즘을 잘 모르니까 저런 작전을 세웠던 것이다. 유지웅이 즉석에서 뚝딱 하고 만들어내는 줄로 알고 있으니.

“지금 안전지대 설치는 할 수 없습니다.”

「정당한 비용이라면…….」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설치를 안 하는 게 아니라 할 수 없는 겁니다. 자세한 이유는 기밀 사항이므로 말씀드릴 수 없는 게 유감입니다.”

비시는 아쉬워하는 듯했으나 어쩔 수 없이 물러났다.

“현재는 방위전력이 너무 분산되어 있습니다. 주먹구구식으로 막아내고는 있으나, 녀석들은 식물을 섭취하고 계속해서 개체 수를 늘리고 있습니다. 촘촘한 포위망을 형성해서 단숨에 모든 녀석들을 박멸해야 합니다.”

장태준은 자신이 세운 전술안을 제시했다. 내로라하는 미국 참모진 모두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제니스 원거리 딜러 개개인은 전력을 다할 경우 약 직경 3km 범위를 초토화할 수 있습니다. 1개 예비대는 원거리 딜러가 각 20명씩, 총 40명이 지금 미국에 있습니다. 이들을 2.5km 정도 간격을 두고 배치하면, 약 가로 20.5km, 세로 13km의 면적을 지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잠깐, 하지만 딜러의 사정거리는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바둑판 알처럼 대원들을 배치하고 자기 위치에서 그대로 최대 출력으로 광역기를 터트리면 됩니다. 딜러는 단일 보호막으로 보호하면 됩니다.”

「그런 작전이 정말 가능합니까?」

“물론입니다.”

미 참모진은 몹시 놀라워했다. 제니스가 아닌 이들은 절대 생각해낼 수 없는 전술이다. 왜냐하면 딜러 개개인의 화력에서 월등한 차이가 나이 때문이다.

일반 레이더는 기껏 해봐야 공격 사정거리가 100미터도 안 되고, 타격을 가하는 범위도 직경 십 몇 미터밖에 안 된다. 메뚜기떼에 미국이 애를 먹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숫자가 너무 많고 넓게 흩어져 있는데, 찔끔찔끔 눈송이 던지듯이 딜을 하니 한 번에 섬멸하는 게 불가능했던 것이다.

반면 전원이 S급 강화장비로 무장한 제니스 대원은 한 번에 최대로 뽑아낼 수 있는 화력 자체가 다르다. 그래도 미국은 설마 직경 3km의 면적을 타격할 수 있을 줄은 몰랐다.

화살을 가지고 싸우는 이와 미사일을 가지고 싸우는 이는 당연히 발상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이건 뭐 클래스에서 감히 비교도 안 되는군요.」

「제니스의 최대 화력이 그 정도라면 이동 경로에 매복을 하고 있다가 터트리면 될 것 같습니다. 굳이 안전지대로 함정을 만들 필요도 없습니다.」

과연 S급 강화장비. 수천억이나 하지만 비싼 값은 단단히 하고 있다.

비시는 내심 한국이 부러웠다. 클래스 차이가 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한 줄은 몰랐다.

유지웅을 뺀 일반 대원은 별 거 없을 줄 알았는데, 이건 한 명 한 명이 지닌 화력이 정규 공격대의 최대 화력을 넘어서는 수준이 아닌가.

장태준의 전술안은 즉각 받아들여졌고, 곧바로 매복 지점이 선정되었다. 곤충 괴수 무리의 이동 속도는 시속 300km에 달하지만 1시간에 300km를 가는 것은 아니다. 식물과 마주칠 때마다 닥치는 대로 갉아먹기 때문이다.

40명의 제니스 원거리 딜러가 매복 지점에 바둑판처럼 각각 2.5km씩 거리를 두고 배치되었다. 가로 8명, 세로 5명씩 격자처럼 촘촘하게 배치를 한 것이다.

유지웅도 매복 지점으로 이동했다. 작전 실행 직전 전원에게 보호막을 걸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곤충 괴수 무리의 진격 속도에 맞춰서, 헬기를 타고 이동하며 보호막을 걸어주기로 했다.

작전의 핵심은 곤충 괴수 무리가 매복 지역의 중앙을 지날 때 전원이 동시에 S급 궁극기를 터트리는 것이었다. 한 명 한 명이 크레모어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앞으로 100km 남았습니다! 이대로라면 약 20분 안에 매복지역에 들어서게 됩니다.”

참모진의 보고에 비시는 입안이 비쩍비쩍 말랐다. 대서양 한가운데에서 섬멸할 기회를 날려버린 치부를 묻어두기 위해서라도, 이 작전은 반드시 성공해야 했다.

============================ 작품 후기 ============================

과연 제니스는 비시의 X을 치울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