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385 Boy Friends?

한국은 전기를 밑지고 팔고, 그 적자를 가정에 부담시키는 구조다. 가정용 전기는 산업용 전기보다 비싸며, 많이 쓸수록 돈을 더 내야 하는 누진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심지어 기업체가 자가 발전한 전력을 비싼 값에 한전공사에 팔고, 싼값에 한전이 공급하는 전기를 사용해서 이득을 취하는 이상한 수익 구조까지 생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상한 부담 구조가 바뀌지 않은 것은, 한전의 지분 49%를 여러 대기업들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체 입장에서야 싼 값에 전기를 사서 쓰고, 그 부담은 국민에게 전가되고, 한전이 흑자를 낼수록 자기들이 이익이니까 당연히 현재 구조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레이드가 활성화 된 이후 한국은 사실상 에너지 생산 과잉 국가로 올라섰다. 하지만 거듭된 요구에도 이런 기형적인 수익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많은 국민들이 자신들이 그런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정치인이 재벌 기업체에 이 발 저 발 얽혀 있어, 구조 개선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정효주가 거기에 칼을 댔다. 당연히 한전은 물론이고 대주주들은 난리가 났다.

“전기를 기부한다고? 대체 어떤 식으로?”

“방법이야 많습니다. 발전 시설을 지어서 직접 전기를 공급할 수도 있고, 아니면 예상 사용량만큼 결정체를 정기적으로 기부해도 됩니다. 후자가 양쪽 다 편리합니다.”

한국은 발전 전력의 100%를 결정체로 생산한다. 생산단가는 1kWh당 20원 정도다.

결정체 발전은 발전단가가 저렴한데다가, 발전소 설계 및 건설이 쉽고, 사고 위험도 적으며, 환경오염이 전혀 없다는 장점이 있다. 값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당연히 결정체 발전이 어느 나라에서나 대세다. 결정체를 구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제니스 안주인 말대로라면 어떻게 되지?”

“시행 즉시 당장 우리 한전공사는 엄청난 적자를 떠안게 됩니다. 적자를 피하려면 산업용 전기료를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젠장, 전기를 공짜로 주는데 적자가 나다니. 이게 말이 되나?”

“일반 가정이 사용할 전기를 무료로 주겠다는 거라서 그렇습니다.”

그게 문제다.

정효주의 제안은 언뜻 보기에는 한전 입장에서는 좋아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한전 입장에서는 절대로 원하지 않는 기부다.

국민들의 ‘전기료를 대신’ 내주는 거라면 한전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전기’를 대신 내주는 것은 한전 입장에서는 엄청난 손해다.

국민들이야 무료로 전기를 쓸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적자를 국민들에게 부담시키는 한전 입장에서는, 전기료를 거둘 수 없으니 엄청난 적자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된다. 결국 산업용 전기를 올려야 한다.

하지만 49%의 지분을 가진 주주들이 바로 그 산업용 전기로 혜택을 보는 기업들이다. 전기료를 올려도 손해, 올리지 않아도 손해인 것이다.

한전과 대주주들, 정부가 머리 싸매고 대책을 찾고 있을 때 정효주는 아예 폭탄을 터트렸다. 대리인을 통해서 바로 매스컴에 발표해버린 것이다.

처음에 국민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곧 가정용 전기가 완전 무료화 된다는 말에 모두가 환호했다.

―이게 뭐야? 앞으로 전기료를 제니스가 대신 내준다고?

―제니스가 아니라 공격대장이 대신 내준다는 거 같은데?

―틀렸어. 전기료를 대신 내주는 게 아니라 가정 소비 전기를 제니스가 공급하고, 그 대신 일반 가정은 전기료를 대신 안 내도 되는 거다.

―무슨 차이가 있어?

―전기료를 대신 내줘봐야 결국 한전이랑 대주주만 배를 불리는 거지. 근데 전기를 대신 내주니까 국민들은 좋고, 지금까지 잇속만 채우던 한전이랑 대주주는 엿 된 거지. 제니스가 그 점을 제대로 노리고 들어갔어. 이건 진짜 엄청난 빅엿이다.

공짜로 전기를 쓸 수 있게 해준다는 데 싫을 사람은 없다. 물론 공짜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았다.

―근데 공짜는 좀 그렇지 않아? 그럼 소비량이 엄청 늘 텐데, 환경오염도 있을 테고…….

―환경오염? 그거 언제적 이야기야? 결정체로 생산하는 전기는 환경오염 안 생긴다.

―환경오염은 그렇다 쳐도, 어쨌든 공짜는 문제 아니야? 너도 나도 엄청 많이 쓸 텐데?

―글쎄? 소비량이 늘긴 하겠지만 일반 가정이 전기 써봐야 한계는 있지 않나?

―가정 전기로 몰래 공장 돌리는 건?

―그런 거야 당연히 제재하겠지. 제니스는 어디까지나 일반 가정 전기를 공급한다고 하잖아.

―하여튼 구더기 무서우니까 아예 장도 담그지 말자는 애들이 꼭 있어요.

한전과 대주주들이 미처 대책을 세우기 전에 언론에 터트려버린 바람에 기정사실화 되어버렸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되고 만 것이다.

유지웅이 힘없는 인물이라면 개인적으로 을러대서 어떻게 무마할 수 있겠는데, 과연 누가 호랑이 목에 방울을 단단 말인가.

그래도 모두가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한전의 김영수 사장이 총대를 메고 흑석동 저택을 찾아왔다.

“재고해주셨으면 합니다.”

팔짱을 끼고 비스듬하게 쳐다보던 정효주가 말했다.

“뭐가 문제라는 거죠? 국민들이 사용할 전기를 대신 공급해주겠다는 게 그렇게 잘못인가요?”

“하지만 이렇게 되면 한전은 엄청난 적자를 보게 됩니다.”

“그 말은 국민들한테 지금까지 바가지를 씌웠다는 걸 인정하시는 거네요?”

“…….”

김영수 사장은 많은 변명거리를 준비해왔다. 지금도 무수한 변명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차분한 눈동자와 마주치자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제가 왜 전기료가 아니라 전기를 대신 내주겠다고 한 건지, 아시지 않아요?”

“그, 그건…….”

“지금까지 일반 국민들 상대로 폭리 취했으면 충분하시잖아요? 이제 스스로 자구책을 찾아보셔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그만 쥐어짜시고요.”

확고한 음성에 김영수 사장은 뼈아프게 느꼈다. 협상의 여지는 전혀 없다. 혼자 찾아왔다고 우습게 봤는데, 처음부터 이미 작정하고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래도 이 말은 해야 했다.

“하지만 제니스한테는 엄청난 손해 아닙니까? 이런 게 제니스에 무슨 이득이 있죠?”

“지금 기부자한테 손해인데 왜 기부를 하는 거냐고 물으시는 건가요?”

“…….”

김영수 사장은 다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결국 그는 아무런 수확도 거두지 못한 채 힘없이 돌아서야 했다.

한편 정효주의 폭탄 발언으로 정부도 난리가 났다. 대통령은 급히 비상회의를 열고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비장하게 말했다.

“산업 전기료를 인상해야 합니다. 또 자가발전장치를 갖춘 기업들이 발전전기를 직접 사용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전면적인 개편은 피할 수 없습니다. 이참에 뿌리부터 개조해야만 합니다.”

잘못된 전기 요금 체제는 대통령도 바꾸려고 했으나, 그때마다 대주주인 기업체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메스를 대봤자 리스크만 크고 기대 수확은 없기에 대통령은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한쪽 눈을 감아야만 했다. 하지만 절호의 기회가 생겼다.

“산업 전기 요금을 인상하면 기업들의 산업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기업체에 혜택을 주기 위해 다수 국민들이 출혈을 보는 구조야말로 잘못된 겁니다.”

“지금이 적기입니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기회는 오지 않습니다.”

국민들의 기대에 호응이라도 하듯 드디어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개편안을 발표했다.

잘못된 산업 전기 요금 제도를 대대적으로 수정하는 한편, 제니스가(家)에서 기부한 전기로 국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적극 돕겠다는 것이다.

특히 제니스와 협의해서 전기료가 무료인 점을 악용하고자 하는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 철저한 노력을 할 것이라 했다. 무료 혜택은 어디까지나 일반 가정 소비 용도로 전기를 사용했을 때에만 해당한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에어컨이나 난방을 풀로 가동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집에 전기로를 두거나, 전기선을 이어 몰래 공장으로 연결하는 등의 행위는 철저히 적발한다. 전력 사용량 자체를 속일 수는 없으니 적발도 어렵지 않다.

“근데 형, 정말 괜찮은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공짜면 전력 소비량 폭증할 텐데, 부담이 되지 않겠어요?”

“뭐, 자기들이 전기 써봤자 얼마나 쓰겠어? 기껏해야 에어컨 여름에 하루 종일 틀겠지. 계산해봤는데 내가 효주랑 레이드 두 번 가면 일 년치를 커버할 수 있다더라.”

“……죄송해요. 제가 형을 너무 과소평가 한 거 같아요.”

* * *

“결정체 전력생산단가는 kWh당 20원입니다. 연간 가정 소비 전력이 약 600억kWh이니, 단순 계산을 하면 결정도 6,000의 블루 결정체 두 개면 일 년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전력거래소 및 여러 발전사에서 나온 사람들의 설명에 유지웅은 혼잣말처럼 한 마디 했다.

“대체 그동안 얼마나 남겨먹은 거야?”

작은 목소리지만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사람들의 얼굴에 진땀이 흘렀다. 눈앞의 청년이 한숨만 쉬어도 자신들은 훅 갈 수 있기에, 잘못한 게 없음에도 괜히 몸이 움츠러들게 된다.

“그러니까 가정 소비량을 충당하려면 일 년에 결정도 12,000이면 된다는 거군요?”

“네, 현재 소비량으로는 그렇습니다.”

“뭐, 거기서 더 늘어봤자고…….”

원활한 전력 공급을 위해 마련한 오늘 브리핑에 참가한 교수들이 입을 열었다. 특히 손재진은 세종시 결정체 연구단지에서 헬기를 타고 날아왔다.

“회장님, 전에 말씀드린 대로 퍼플결정체는 자연적으로 결정 에너지를 흡수해서 최초의 결정도를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 흡수 속도는 약 한 달에 약 300입니다.”

“그럼 30짜리 그린 결정체를 한 달에 10개씩 만들어내는 꼴인가요?”

“비교하자면 그렇습니다. 퍼플 결정체는 적절한 양만 사용한다면, 그린이나 블루 결정체와 달리 소모되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연간 12,000의 결정도가 필요한데 퍼플 결정체 하나로 그중 3,600을 커버할 수 있습니다.”

“그럼 퍼플 결정체 4개만 만들면 영구적으로 커버할 수 있다는 뜻이군요.”

“그 문제는 최윤 사장이 설명할 겁니다.”

교수진 분위기가 왠지 가볍지 않았다. 유지웅은 고개를 갸웃했다. 최윤이 목청을 가다듬고 나섰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갑작스러운 사과로 말문을 열자 유지웅은 더욱 의아했다.

“퍼플 결정체 융합에는 실패했습니다.”

“네?”

“전에 시연한 대로 블루 결정체 융합은 이제 안정적인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퍼플 결정체 융합은 생각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나요?”

“융합 촉진 반응에서 기존의 데머샤가 제대로 된 촉매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단순한 출력 문제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 건지 현재 연구 중입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또 별 거라고. 유지웅은 흔쾌히 끄덕였다. 애초에 하루아침에 완성될 연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블루 결정체 융합만 해도 현재 어느 나라도 이루지 못한 대단한 성과다. 아, 휘버 박사는 빼고.

정효주가 정리를 했다.

“퍼플 결정체는 일단 한 개뿐이고 연구를 해야 하니까 발전용으로는 돌릴 수 없을 것 같네요. 전력 공급이 시급하니까 기존 발전사 중에서 발전설비 하나 임대해서 전력을 공급하는 것으로 하죠. 그럼 빠른 시간 안에 시행할 수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렇게 ‘제니스 발전소’를 새로 짓는 한편, 급한 대로 기존 발전사의 설비 일부를 임대해서 전력을 공급하기로 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전기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것에 기뻐하며, 제니스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어느 재벌도 엄두를 내지 못할 엄청난 기부다. 그것도 일상생활에 당장 피부로 와 닿는 직접적인 혜택이었다. 일각에서는 전기료 인상 때문에 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거라는 우려의 시선이 있었지만, 그런 주장은 더 이상 힘을 얻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왜 내 에어컨을 내 맘대로 틀지를 못하니.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