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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99 Common Friends

“MD 제휴 협정?”

황 실장의 보고를 듣던 도중 이형준 회장은 흥미를 보이며 말을 끊었다.

“그렇습니다. 안슐 회장의 방한 목적은 아시아 지역의 MD 시스템 구축 논의입니다. 이미 우리 정부와 꽤 깊은 곳까지 이야기가 전개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MOU 체결만 남은 셈입니다.”

“제니스도 거기에 관여할 것 같은가?”

“분석팀에서는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니스 회장은 실질적인 괴수 방위 책임자입니다. 중요한 방위 정책 시행시마다 정부 책임자들이 제니스 회장을 방문해서 의견을 듣습니다.”

말이 의견을 듣는다고 한 거지, 사실상 결재를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황 실장은 좋게 돌려서 말한 것뿐이었다.

“하지만 MD시스템은 미국 것이 아닌가?”

“미국이 만들었지만, MD 시스템을 보유한 방산업체의 대주주 중 한 명이 안슐 회장입니다.”

“그럼 안슐 회장이 미국의 사주를 받고 MD시스템 아시아지부 중추를 한국에 설립하려고 하는 건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반대?”

“안슐 회장이 직접 회사 경영진과 백악관 및 의회를 설득해 MD시스템 아시아 확장 계획을 이끌어냈습니다. 원래 미국은 유지웅 회장과 접점이 발생 시 주요 협상 카드로 사용하기 위해 MD시스템을 아끼고 있었습니다.”

MD시스템은 몬스터 디펜스 시스템을 말한다. 괴수의 습격을 효율적이고 총체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위성을 포함한 다양한 감시 장비를 동원해, 국토 전체에서 일어나는 괴수의 움직임을 24시간 추적하는 시스템이다.

미국은 MD시스템을 통해 자국 영토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괴수 반응을 촘촘히 체크한다. 그 결과 비상 상황이 벌어져도 발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이 되겠군.”

“그렇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발주가 예상됩니다. 우리 일성 그룹이 절대로 이 일에서 빠져서는 안 됩니다.”

MD시스템 구축을 위해서는 다수의 정지 위성과 연동 시스템, 통합 커맨드 센터 설립, 전국에 걸쳐 촘촘한 감시 중개소 등을 설치해야 한다. 그밖에도 다양한 장비들이 요구된다.

그게 다 돈이다. 위성 혹은 통합 관리 수퍼 컴퓨터 같은 주요 장비야 미국이 생산하겠지만, 감시 중개소나 커맨드 센터의 설치 같은 것은 국내 업체가 얼마든지 뛰어들 수 있다.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되지?”

“적어도 30조 원 이상입니다. 그것도 초기 투입 자금만을 따져본 겁니다. 향후 지속적인 유지 관리 비용이 소모됩니다.”

30조 원의 방위산업 시장. 기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건수 아닌가.

“희연이는 어떤가? 이 일을 맡을 수 있겠나?”

“유지웅 회장을 상대하는 거라면 가장 적임자입니다. 그룹 내의 어떤 분보다 유 회장을 잘 파악하고, 또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럼 그렇게 하지.”

* * *

“MD 설치요?”

“그렇다네. 그 문제 때문에 한국에 왔지.”

“돈 좀 들겠네요.”

“뭐, 얼마 안 한다네. 초기 투입 자금이 기껏해야 400억 달러쯤?”

“생각보다 싸네요.”

“비용도 저렴한데 설치해두면 두고두고 편하지. 괴수 움직임을 사소한 것 하나까지 24시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거기다가 고용 창출 효과도 있네. 시스템 운용에는 다수의 전문 IT 인력이 필요하니까.”

MD 설치는 안슐이 먼저 제안한 게 아니라 한국 정부가 말을 꺼낸 것이다. 돈이 많이 들어서 그렇지, 좀 산다는 나라는 MD시스템을 설치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미국이 손에 꽉 쥐고 살랑살랑 흔들면서 값을 높이고 있어서 그렇지.

이에 청와대는 MD시스템을 보유한 방산업체의 대주주가 유지웅의 친한 지기인 안슐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안슐은 세계 정상급 거부 가문의 수뇌부일 뿐만 아니라, 미국 정계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이었다. 딱 좋은 목표였다.

세간에서는 안슐과 유지웅의 우정을 이익을 위한 결합이라고 커다란 오해를 하고 있다. 미국도 그렇고 러시아도 그렇다. EIS는 정작 제대로 파악해서 몇 번이나 보고를 올렸지만, 비시는 ‘그게 말이 되나?’ 하면서 일축해왔다.

나름대로 세상을 휘두른답시고 으스대는 사람들 눈에, 유지웅과 안슐의 관계는 도저히 순수한 우정으로 봐주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둘은 나이 차이도 꽤 나는데다가, 서로 알게 된 지 겨우 4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히 서로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손을 잡고 하하 호호 하는 거라고 여길 수밖에.

하지만 둘의 관계를 정확히 꿰뚫어본 인물이 국내에도 있었다. 바로 남기철 국장이다. 대통령은 남기철과 긴 면담을 한 끝에, 과감한 결정을 내리고 실행에 옮겼다. 바로 안슐을 찾아간 것이다.

‘부디 친구의 나라에 MD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길고 지루한 협상은 없었다. 그 말에 안슐은 흔쾌히 승낙을 했다. 회사와 의회, 백악관을 설득하는 것도 자신이 직접 나서서 해치웠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유지웅은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 관계를 알고 정부가 안슐을 이용한 거네요?”

“뭐, 그렇게 볼 수도 있지. 하지만 난 개의치 않네.”

안슐이 그런 뒷사정을 꿰뚫어보지 못할 리가 없다. 그가 어디 그런 뻔한 걸로 이용당할 사람인가.

“안슐은 괜찮다고 하지만 전 좀 그렇네요. 나한테는 미리 말도 안 하고 그런 일을 하다니.”

“복잡한 수사 없이 그냥 솔직하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네. 좀 안 됐다 싶더군. 자네가 얼마나 어려웠으면 직접 부탁을 못하고 나한테 먼저 왔는가 하니 마음이 짠했네.”

“뭐, 안슐이 그렇게 봐주면 저도 문제 삼진 않을게요. 아무튼 미안해요.”

“좋은 건 나눠 써야지. 미국은 이 좋은 걸 너무 자국만 독점하고 있네. 괴수의 습격이 발생했을 때, 초기의 발 빠른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안슐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하자 유지웅은 마음이 편해졌다. 하기야 겨우 30조 원짜리 싸구려 프로젝트다. 그렇게 생각하니, 별 거 아닌 일로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대통령이 안 되어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 대통령과 비공식 협의 자리를 갖기로 했는데, 자네도 같이 갈 텐가?”

“그러죠.”

안슐은 국가 원수와 대등한 파워를 가진다. 아부다비 왕가의 인물인 데다가, 국제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웬만한 국가 원수를 뛰어넘는다.

그런 인물이 대통령을 만난다. 말 그대로 정상 회담이다. 하지만 유지웅은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기분으로 편하게 준비했다.

* * *

결정체 연구단지는 세종시 지역 주민들의 크나큰 자랑이다. 수십 조 원의 자본이 투입된 연구단지, 허나 유지웅은 연구단지 시설에만 투자를 한 게 아니었다. 연구단지에 거주하는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다.

세종시에서도 이에 발을 맞추듯이 연구단지 인근 지역에 대규모 주택 공급 계획을 세웠다. 도로, 학교, 병원 등 기반시설 인프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연구소 직원들이 가장 감동 받은 것은 서울과 세종시를 잇는 전용 자기부상열차 철로를 개설한 것이다. 건설비용 및 운용비용은 모두 제니스가 분담하는 대신 관리는 한국철도에 위탁하기로 했다.

이 철로가 완공되면 서울과 세종시는 20분 생활권이 된다. 제니스 연구단지 직원과 그 가족이라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높은 수익과 다양한 복지. 세계의 석학들이 모여드는 곳. 편리한 교통. 국내의 모든 과학자와 공학자에게 세종시는 가장 가고 싶은 직장으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효웅산업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있다. 하지만 회사의 두뇌나 마찬가지인 연구팀은 결정체 연구단지에 입주했다. 다양한 석학들로 구성된 최고의 연구팀은 이곳에서 밤낮으로 결정체 연구에 몰두한다.

효웅산업 연구소의 가장 큰 보물을 꼽으라면, 모든 직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RPX-1 수퍼 컴퓨터를 꼽는다. 이 모델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가장 성능이 뛰어난 모델로, 미국에 큰돈을 주고 주문 제작한 것이다. 제조비용이 너무 비싸서 정작 미국은 이 모델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RPX-1은 연구소에서 처음 가동을 시작한 이후로 줄곧 하나의 모델만을 시뮬레이션했다. 무슨 모델을 시뮬레이션하는지는 연구소 직원 아무도 몰랐다. RPX-1의 통제권한은 전적으로 효웅산업의 CEO이자 연구소장인 최윤에게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 오랜 계산이 끝나는 날이었다.

「계산 종료.」

“…….”

화면에 떠오른 그래프를 들여다보는 최윤의 눈빛은 바짝 굳어 있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깊이 한숨을 쉰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버튼을 눌렀다.

개인 서버에 저장할까 고민하던 그는 생각을 바꿨다. 연구소에 있는 그의 개인 서버는 완벽한 보안을 자랑한다. 그러나 온라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부담스럽다. 그는 휴대용 메모리에 시뮬레이션 결과를 저장했다.

컴퓨터 통제실을 나선 그는 복도에서 연구소 직원인 박재윤과 마주쳤다.

“어, 소장님. 퇴근하시는 건가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아참. 재윤 씨.”

그냥 지나치려던 최윤은 생각난 듯이 그를 불렀다. 재윤은 의아해서 돌아봤다.

“왜 그러시죠?”

“가렌 박사가 RPX로 돌리고 싶은 시뮬레이션이 있다고 했었지?”

“네. 그랬죠. 근데 그 이야기는 갑자기 왜……?”

효웅산업 연구소에서 일하는 석학들은 누구나 최고의 성능을 가진 RPX를 사용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RPX는 가동 이후부터 줄곧 최윤이 입력한 하나의 모델만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돌리고 있었다. 그게 벌써 일 년이 넘었다.

“내일, 아니 오늘부터 가렌 박사가 사용해도 좋다고 해줘.”

“정말입니까?”

박재윤은 놀라서 반문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가렌 박사, 아니 그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원들도 뛸 듯이 좋아할 것이다.

“그래. 가렌 박사한테 우선순위를 주고, 가동 자원이 충분하면 다른 연구원들도 공동으로 사용해도 좋아. 그 부분은 가렌 박사와 의논해서 협의를 보라고 해.”

“충분하고도 남죠. RPX가 얼마나 괴물인데요.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전하겠습니다.”

“그럼 부탁해. 난 며칠 휴가 갈 테니 그리 알고.”

“휴가요?”

“응. 좀 피곤하네.”

그러고 보니 평소보다 낯빛이 무겁다. 박재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이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서둘러 방향을 돌렸다.

―최윤이 시뮬레이션을 종료했다.

―결과는?

―알 수 없다. 현재로서는 무슨 모델을 테스트한 건지에 관해서도 아무런 단서가 없다. 보안이 너무 철저하다.

―목마를 이용하는 건 어떤가?

―불가능하다. 목마는 일본에 있다.

―최선을 다해 알아내라. 이 일에 조국의 미래가 달려 있다.

―노력하겠다.

대화가 종료되었다. 레지나는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안색이 너무 창백해 보인다. 마치 살아있는 시체라고 하면 좋을 정도로 무기력하다.

“조국의 미래? 웃기고 있네. 두고 봐……. 어디 너희 맘대로 될 줄 알고?”

그녀는 책상 위로 눈을 돌렸다. 조그만 사진첩 하나가 보인다. 사진 속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 무릎 위에 앉은 소녀가 활짝 웃고 있다.

“할아버지. 거의 다 왔어요.”

============================ 작품 후기 ============================

잊을만 하면 언급되는 휘버입니다;;;

사실 휘버라는 이름은..이휘소 박사님의 휘를 따와서 지은 거긴 합니다만-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