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413 Enemies Invisible

「찾았습니다.」

장태준 팀은 안슐의 핸드폰을 위치 추적해서 실시간으로 유지웅과 정효주에게 정보를 전송했다. 언뜻 듣기로는 예전에 정부와 연계해서 무슨 통합 정보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하던데, 실무 레벨의 일이라 유지웅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중요한 때 제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25층?”

「18층 계단실이 붕괴하는 바람에 서쪽 계단실 전부가 막힌 상태입니다. 현재 안슐 회장님과 나미 대원이 그곳에 갇혀 있습니다.」

“알았어요. 효주야, 가자.”

두 사람은 다른 대원들과 달리 표준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다. 교신 및 정보 수신용으로 고글만 챙겼을 뿐이었다. 레이드를 할 것도 아니니 방어막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다만 유지웅은 만약을 대비해서 강화장비와 충전장비는 챙겼다.

“큰일이야. 열원이 120명이 넘어.”

붕괴된 계단과 마주치자 정효주는 천장을 뚫었다. 그리고 한 팔로 신랑을 안아들고는 가볍게 점프해서 위로 올라갔다. 벌써 이 짓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유지웅도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120명? 그럼 우리 둘로는 힘들 텐데…….”

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안슐과 나미를 구출하는 것이다. 호텔에 남은 다른 사람을 구출하는 것은 제니스 대원 및 자발적으로 모여든 다른 레이더들이 해야 할 역할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함께 갇혀 있는데 안슐과 나미만 달랑 구출해서 나가는 것은 아무래도 그렇다. 사람인 이상 죄책감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손은 네 개뿐이다. 그나마 유지웅은 보호막을 걸어주는 것 외에는 도움이 안 된다. 결국 정효주 혼자서 다른 세 명을 챙겨야 하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버겁다.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손이 모자라서다.

콰앙!

교신기를 통해 희미한 폭발음이 들렸다. 유지웅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또야?”

어딘가에서 폭발이 발생한 모양이었다. 즉 다른 희생자가 나왔다는 뜻이다. 이 호텔 어딘가에서 또 사람이 죽었다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위급한 순간이다 보니 유지웅은 아직 자세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그는 테러 조직이 무차별로 사람을 이용해 테러를 가하고 있다고만 인식하고 있었다. 정효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 보니 서둘러 안슐을 구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계단실이나 혹은 밀폐된 공간에 갇혀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공용 복도에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냥 계속 천장 뚫고 올라가자. 그게 낫겠어.”

정효주가 과감한 제안을 했다. 사실 그게 제일 편하다. 천장을 뜯는 거야 맨손으로 몇 초면 뚝딱 되는 일이니까. 남의 비싼 건물에 가급적 흠집 내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사람 목숨 살리는 게 먼저다.

다시 천장을 맨손으로 뚫은 정효주는 신랑을 한 팔로 안고 가볍게 뛰어올랐다. 바로 그때였다.

“도, 도와주세요!”

쓰러진 채 팔로 기다시피 하던 여자가 둘을 보고는 화색이 되어 외쳤다. 얼마나 울었는지 화장이 번져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여자는 발목 두 개를 다친 듯했다. 미니스커트 아래로 뻗은 다리 끝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유지웅은 난감해졌다.

“죄송해요. 저희가 지금 찾는 사람이 있어서요. 하지만 구출대한테 이곳 위치를 알려드릴게요. 몇 분만 버티시면…….”

“제발, 제발 도와주세요!”

여자는 자기를 버리고 간다고 생각했는지 울먹이면서 계속 외쳤다. 정효주도 마음이 안 좋은지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언제 안슐이 갇힌 계단실이 붕괴할지 모른다. 갈 길이 급한데 모르는 여자를 구하자니 안슐이 걸리고, 그렇다고 갈 길을 재촉하자니 눈앞의 여자가 마음에 걸린다.

“철희야.”

「응, 형.」

“너 지금 나 있는 곳으로 올 수 있어? 얼마나 걸려?”

「거기? 10분 안에 도착할 수 있어.」

“그냥 천장이나 벽 막 뚫고 오면?”

「그럼 3분도 길지.」

유지웅은 표정이 밝아져서 여자한테 말했다.

“들었죠? 3분도 안 걸린대요. 구조 요원 한 명을 불렀으니까 이곳에서 꼼짝 말고 3분만 있으시면 돼요.”

“하, 하지만…….”

“어차피 저희는 지금 내려가지 못해요. 찾아야 할 사람이 있거든요. 이제 곧 올 대원은 바로 호텔 밖으로 피신시켜 줄 거니까 안심하세요.”

정효주가 차분하게 거듭 설명하자 여자는 그제야 알아들었는지 울먹임이 조금 진정되었다. 하지만 목소리에 배인 간절함은 더욱 커졌다.

“정말이죠? 금방 구조자가 오는 거죠?”

“네. 방금 연락했어요. 저희가 아는 애고, 여기 위치도 아니까 금방 올 거예요.”

여자가 진정하자 됐다 싶은 둘은 다시 위층으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꺄아악!”

여자가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둘은 놀라서 눈을 돌렸다. 스커트 아래로 뻗은 허벅지가 붉은 색으로 변해 있었다. 마치 피부 아래에서 대동맥이 터져 버린 것 같았다. 붉은 색은 허벅지에서 시작해서 순식간에 여자의 온몸으로 번졌다. 여자는 고통스러운지 더 이상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지웅아, 보호막!”

정효주는 왜 그런 말을 외쳤는지 몰랐다. 그저 막연히 생각나는 대로 내뱉었다. 어쩌면 보호막이 뭔가 해주지 않을까 하는, 충동적인 느낌에 내뱉은 말이었다.

유지웅도 마찬가지였다. 외침을 듣자마자 거의 본능적으로 여자에게 보호막을 걸었다. 레이드를 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급한 상황에서 누가 보호막이라고 외치면 일단 걸고 보는 것이다.

화악 하고 여자의 몸이 밝은 빛에 휘감겼다. 여자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꿈틀거렸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여자의 온몸을 뒤덮었던 붉은 빛이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뭔가에 먹히듯 붉은 기운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며 사라졌다.

옷에 가려진 부분을 확인할 순 없지만 언뜻 보기에는 붉은 기운이 다 사라진 듯했다. 유지웅과 정효주는 얼른 위층으로 올라가야 한다는 것도 잊고 멍하니 바라봤다.

“이게…… 뭐지?”

“그, 글쎄?”

“설마 저게 폭발 원인?”

이 여자 괜찮은 건가? 둘은 선뜻 발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호흡을 확인해보니 가늘게 숨도 쉬고 맥박도 뛰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괜찮아진 것 같긴 한데, 방금 전 보았던 광경이 워낙 그로테스크해서 이대로 떠나기가 꺼려졌다.

“형!”

그때 바닥이 와르르 무너지며 구멍이 뚫리고 김철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격이 참으로 듬직해 보였다.

“왔어?”

“응. 내가 뭐 도와줄 거 있어?”

“이 여자 좀 데리고 나가 줘. 우리는 안슐이랑 나미 씨 구하러 계속 올라가봐야 하거든.”

“알았어.”

“사람들 구조하는 거 힘내.”

“걱정하지 마. 근데 이 여자 보호막 걸려 있네?”

“어쩌다 보니. 설명할 시간 없어. 어서 가.”

김철희는 혼절한 여자를 가볍게 안아들었다. 유지웅과 정효주도 얼른 위층 천장을 뜯고 위로 올라갔다. 신랑을 안아들고 점프를 하면서 정효주가 문득 말했다.

“보통 폭탄을 이용한 테러가 아닌 거 같아.”

“……느낌이 안 좋아.”

“안슐 씨가 있는 곳에 사람 엄청 많은데, 만약 그 중에 저런 사람이 있으면…….”

정효주는 차마 그 뒤는 잇지 못했다. 순식간에 대참사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괜찮을 거야. 방금 봤잖아? 보호막 거니까 정상으로 되돌아왔어.”

유지웅은 자신도 걱정이 되면서 억지로 그렇게 말했다. 정효주의 표정은 여전히 풀어지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아? 피부가 빨갛게 변한 게 폭발 원인 같은데, 그게 보호막으로 억제가 된다면…….”

“설마 결정 에너지?”

보호막은 물리 충격을 막아내는 성질을 가진다. 그 외에도 결정 에너지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상호 반응한다.

단순히 폭발 충격을 막아낸 게 아니라 여자의 몸에 일어난 이상 현상을 억제했다면, 여자의 몸에서 결정 에너지와 관련된 어떤 반응이 일어났다는 뜻이 아닐까?

“거의 다 왔어.”

유지웅은 숨을 들이마셨다. 고글 좌표축에 표시된 안슐이 있는 곳은 이제 30미터도 남지 않았다.

* * *

출입구가 막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비좁은 계단실에 갇혔다. 안슐은 무리하지 않고 친구의 구조를 기다리기로 했다. 제수씨와 함께 직접 오고 있다고 하니, 시간만 맞춘다면 어렵지 않게 구출될 수 있을 것이다.

“괜찮을 겁니다.”

안슐은 쾌활하게 말하며 나미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녀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왜 사람 몸에서 결정 에너지가 느껴졌지?’

그것도 몸이 터진 사람한테서 말이다. 절대로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 여자의 몸에서 느껴진 결정 에너지와 폭발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게 분명했다.

‘여기서는 힘을 쓸 수 없는데.’

나미의 약점은 바로 물이 없는 곳에서는 힘을 거의 쓸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힘을 쓸 수 없을 뿐이지 위험에 처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근력은 보통 여자 수준이지만, 웬만한 폭발로는 죽거나 다치지 않는다.

그녀는 안슐을 빤히 바라봤다. 그는 뭔가 다르다. 다른 사람과는 두드러지는 이질감이 그에게서 느껴진다.

여기 갇힌 모든 이는 겁에 질려 있었다. 모두가 불안해하고 무서워한다. 하지만 그는 조금 긴장은 했으나 크게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저것이 여유라는 감정일까?

지금까지 나미가 특별하게 느낀 인간은 단 두 명이었다. 바로 유지웅과 정효주다. 나미는 그 둘의 체내에 갇힌 거대한 힘의 근원을 느꼈다. 지금의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웬만한 레드 몹은 상대도 안 될 결정 에너지로 충만해 있었다.

그래서 지금 안슐이 더욱 이상하게 보인다. 그의 몸속에서는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의 신체는 말 그대로 평범한 인간 그 자체였다.

그러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지금은 위급한 상황이다. 약하디 약한 인간의 몸으로는 당연히 두려움에 떨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표정 어디에서도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안슐은 전화를 확인했다. 지하크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아까 상황을 알리고 나서 두 번째 연락이었다.

“지하크? 말하게.”

아까 지하크는 즉각 IACP 한국 지사와 협력해서 구출 지원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안슐은 그에 관한 보고를 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회장님. 유럽에 운용 중인 정보수집팀이 수집한 극비 정보가 있습니다.」

“유럽? 이 상황에 갑자기 유럽은 왜 나오나?”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영국, 중국, 일본에서도 유사한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폭발 횟수가 훨씬 많아 피해도 더욱 큽니다.」

안슐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갔다.

「아무래도 지금 이 테러, CERC(유럽 합동결정체연구기구)의 소행인 것 같습니다.」

“설마 마르코 웬리의 작품인가?”

마르코 웬리는 CERC에서 일하고 있는, 생화학병기의 권위자의 이름이었다.

「정확히는 그들이 고의로 저지른 짓이 아니라 그들이 만든 위험물이 사고로 흘러나간 것 같습니다. 그들도 당황해서 사실을 은폐하려고 날뛰고 있습니다.」

“그 위험물의 정체가 뭔가?”

「결정 에너지를 품은 감염성 미소구조체입니다. 사람의 체내에 침투해 일정한 조건이 갖춰지면 폭주해서 폭발을 일으킵니다. 아마도 아직 초기 단계라 여러 가지로 불안정한 것 같습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런 것을 만들었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설마……?”

「예. 바이러스형 괴수입니다.」

============================ 작품 후기 ============================

너의 목소리가 들려 본방 사수도 포기하고 열심히 썼습니다. 헤헤헤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