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470 Endless Raids

하얀 철옹성.

아이오와 주 특수형무소를 처음 본 최윤의 소감은 그랬다. 5미터가 넘어가는 콘크리트 담, 사각지대 없이 온 사방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합금으로 만들어진 육중한 입구. 그것은 단순한 감옥이 아닌 하나의 단절된 세계였다.

“이곳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범죄를 저지른 정치범이나 마약 수뇌부 같은 이들을 수감하는 곳입니다. 수감자 전원이 독방을 쓰며, 일체 외부와의 접촉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면회 한 번을 신청해도 허락이 나오는데 갖가지 승인을 얻어야 하죠.”

토미 에슨. 전 CIA 국장.

지금은 해체되었다지만 한때 세계 첩보 시장에서 온갖 활개를 치고 다니던 수장의 장이다. 휘버 박사 암살을 지시한 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인물. 본래라면 ‘제3자 없는 자리에서 독대’ 같은 게 허용될 리가 없다.

그러나 백악관은 고심 끝에 최윤의 요청을 승인했다. 다른 인물도 아니고, 유지웅의 오른팔이라 일컬어지는 인물의 요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대통령 보좌진은 최윤이 현존하는 최고의 결정체학자란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토미 에슨은 휘버 박사의 유산을 강탈해서 어디에 숨겼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몸. 둘의 만남이 결코 예사롭지 않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비시 대통령은 표면적으로는 도청을 일체 엄금했습니다만, 도청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면담을 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아무리 귀하가 유지웅 공격대장의 오른팔이라 하나 이곳은 미국입니다. 이 땅에서 그를 거스르지는 못해도 그의 눈을 가릴 수는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동행한 EIS 요원이 그리 주의를 주었다. 최윤은 말없이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EIS에는 40% 가까운 인원이 부국장을 따른다고 한다. 이 요원은 부국장 라인일까? 아닐까?

그는 짐짓 자연스럽게 왼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 주물렀다가 놓았다. 요원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 왼손목에 찬 시계를 가볍게 똑똑 두드렸다.

최윤은 알아차렸다. 이 요원, 칠드그린 라인이었다.

“도청 당해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중요한 이론 이야기는 도청해봤자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요.”

자신감이 넘치는 대답이었다. 요원은 과연 세계 제일의 결정체 과학자다운 태도라며 납득했다. 최윤은 덧붙였다.

“어차피 응집 이론의 위대함을 모르는 사람과 이론 이야기를 하러 온 것도 아닙니다. 그냥 몇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을 뿐입니다.”

요원은 강한 적의를 느끼고 멈칫 했다. 최윤은 보기 드물게 맹렬한 증오를 드러내고 있었다.

‘과학자는 과학자란 건가…….’

당시 휘버 박사의 죽음에 비분강개한 과학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많은 이들이 사고가 아니라 암살이라며 미 정부에 해명을 요구하고,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만큼 휘버는 시대가 낳은 위대한 천재요, 과학자였다. 퀼캄의 결정도 측정 기술, MD시스템의 괴수 탐지 기술, 결정체 정제 기술 등, 결정체에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의 발전에는 휘버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최윤 또한 결정체 과학자로서, 그런 위대한 인물을 암살한 것에 분노한 거라고 요원은 생각했다.

백악관의 시원스러운 허가와는 별개로 보안 절차는 철저하고 엄중하게 진행되었다. 최윤은 몇 개나 되는 보안 서약에 서명을 해야 했으며, EIS에서 파견한 요원과 항상 동행해야 했다. 화장실조차 혼자 가서는 안 된다고 한다.

―끼이익.

마침내 모든 면회 절차를 마친 최윤은 어느 독방에 안내되었다. 창 하나 없는 육중한 합금문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도소 직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최윤은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익 하며 문이 닫혔다. 밖에서 들려오던 소음이 한순간에 뚝 멎었다. 완벽한 방음이 이뤄지고 있는 밀실 공간이었던 것이다.

가로세로 4미터 가량의 좁은 방 한가운데에는 테이블과 의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맞은편에는 초로의 늙은 백인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이는 먹었지만 체격은 건장하고 근육도 잡혀 있었다. 혹시라도 무슨 해코지를 할 거라 여긴 건지, 그는 두터운 수갑에 손목과 발목이 봉쇄돼 있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포승줄로 의자에 몸이 칭칭 감겨 있었다.

최윤은 천천히 그를 쏘아보다가 영어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토미 에슨입니까?”

물끄러미 최윤을 응시하던 토미가 대답했다.

“의외로군. 세계 제일의 결정체 과학자가 나 따위 타국 무기징역수와 무슨 할 말이 있다는 거요?”

조용하지만 보이지 않는 조롱, 그리고 호기심을 담고 있는 질문이었다.

토미는 최윤과 휘버 간에 맺어진 사적인 인연을 알지 못한다. 얼굴도, 이름도, 아무 것도 모르는 두 사람이 전자 TXT를 통해 무수한 의견을 교류하고, 유대감을 쌓아온 그 추억에 관해서 아는 바가 없다.

그러나 최윤과 휘버, 둘의 공통점, 젊은 나이에 세계 제일의 결정체 과학자가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또한 최윤은 휘버 박사가 남긴 응집 이론을 증명 및 복원할 유력한 두뇌로 손꼽히고 있는 인물이다.

‘일면식 없는 전대 과학자의 죽음에 이를 갈고 있나?’

토미로서는 그렇게 여기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이리라. 그래서 저도 모르게 눈빛에 조소를 품은 것이다. 눈앞에 있는 이가, 친구를 죽인 원수를 찾아온 이라는 것까지는 알지 못하기에.

“왜 닥터 휘버를 죽였습니까?”

“그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소. 재판장에서 항변한 게 내 의지의 전부니, 찾아서 열람해보시오.”

“왜 죽였습니까?”

“어차피 평생 감옥에서 나가지 못할 몸, 이제 와서 내가 입을 열 거라 생각하시오?”

“왜 입니까?”

“…….”

파도 소리, 짠 냄새, 모래사장. 그 셋은 서로 다르지만 결국 바다라는 점에서 같다. 마찬가지로 최윤의 추궁은 조금씩 그 형태가 달랐으나, 본질적으로는 원망이라는 하나의 감정이었다.

토미가 휘버를 암살한 것은 미국의 이익이 아닌, 미국을 움직이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가장 큰 후원 세력 중 하나였던 로스차일드가 몰락했고, 토미는 끈 떨어진 신세가 되었다.

암살의 책임을 지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을 때만 해도 그에게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적당히 형을 살고 난 뒤 극적인 타협으로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는. 허나 로스차일드는 몰락했고, 그는 평생 감옥을 나올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그럼에도 입을 다무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로스차일드 외에 다른 믿는 후원 세력이 있다는 것일까. 아니면…….

최윤이 말했다.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디서 오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

토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는 바로 표정을 수습했지만 순간적인 동요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최윤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알아보았다.

“바로 응집 이론의 핵심이자, 최종 목표입니다. 헌데 당신은 그것을 알고 있군요. 그렇지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나는 과학자가 아니오. 복잡한 결정 에너지 이론은 알지 못하오.”

“아니오. 당신은 알고 있어요. 그래서 로스차일드가 몰락했는데도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겁니다. 당신이 알고 있는 내용이 훗날 당신의 가장 큰 무기가 되어줄 거라 믿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이해가 안 되는군. 재미없는 소리를 할 거면 면회를 여기서 끝내는 게 어떻소?”

토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초조해졌다. 그는 연방 정부가 이 대화를 도청할 거라 단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화가 연방 정부 귀에 들어가면,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불리하게 되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 반응에서 확신했습니다. 당신은 ‘근원’이 무엇인지 알고 있군요.”

“……닥터 최. 그만 두시오. 내 항변은 이미 재판장에서 다 끝냈…….”

“물론 난 아직 ‘근원’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아직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먼저 알아내고 말 겁니다. 그래서 당신이 어떤 욕심도 부릴 수 없도록, 당신이 휘버의 유산을 더럽히고 독점할 수 없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지켜낼 겁니다.”

친구의 빛을 꺼뜨린 자.

친구의 유산을 더럽히고, 손에서 놓지 않으려 드는 자.

눈앞의 남자를 죽이고 싶은 욕구를 필사적으로 누르기 위해 최윤은 팔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금이라도 통제를 놓았다가는, 미친 듯이 달려들어 그의 목을 조일 것만 같았다.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방법을 상상하고, 머릿속에서 실현하고, 하지만…… 결국 포기했습니다. 나는 범죄자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요.”

“…….”

“당신이 놓지 않으려는 휘버의 유산, 그것을 인류를 위해 지켜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복수인 것 같군요.”

최윤은 믿었다. 휘버는 친구가 복수에 인생을 팔지 않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자기가 남긴 연구를 인류를 위해 올바르게 인도해주기를 바랐을 것이라고.

‘……나인가? 아니면……?’

토미는 차가운 최윤의 눈빛에서 섬뜩함을 느꼈다. 복수를 선언할 때, 그의 눈동자가 보는 것은 자신이 아니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신‘만’이 아니었다. 자신, 그리고 자신을 통한 무언가를 보고 있는 것이다.

불현듯 깨달았다. 최윤은 휘버를 지켜내지 못한 모든 것을 원망하고 있는 것이라고.

암살을 실행한 현장 요원을, 암살을 지시한 자신을, 암살을 종용한 후원 자본 세력을, 그리고 지켜내지 못한 미국이라는 나라를. 그 전부를 원망하는 것이다.

“부디 이 감옥에서 끝까지 지켜보기 바랍니다. 당신들은 그의 유산을 결코 손에 넣지 못할 테니까.”

엉망으로 일그러진 토미 에슨의 표정을 마지막까지 쏘아보던 최윤은 독실을 나섰다.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던 EIS 요원이 얼른 옆에 섰다. 궁금한 게 가득한 표정이었으나 그는 첩보 요원답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통로를 걷는 동안 최윤도, 요원도 아무 말이 없었다. 무거운 침묵만이 발자국 소리를 따라 흘러내렸다.

건물을 나선 둘은 정문을 향해 걸었다. 오늘따라 유독 햇살이 따가웠다.

그때였다.

“앗! 저게 뭐야?”

순찰 중이던 직원 하나가 순간 하늘을 쳐다보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몇 개의 불꽃이 구름을 헤치고 하늘을 향해 빠른 궤적을 남기고 있었다.

“대공 미사일?”

“무슨 일이죠? 미사일이라니요?”

“저건 일반적인 항공기나 발사체가 아닌 대공 미사일입니다! 인근 미군 방공 기지에서 발사한 것 같습니다. 미국 땅에서 이게 무슨…….”

또다시 불꽃이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수십 개가 훨씬 넘어가는 궤적이었다. 최윤은 당황했다. 전쟁이라도 난 건가? 미국 본토에서?

* * *

「공격 패턴의 다양화 모색 필요성 인정.」

전미 지역의 모든 괴수 통제권 확보 작업은 이제 막바지에 들어섰다. 그러나 블리츠랭크는 2차 공격 패턴을 다소 수정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인류는 괴수의 습격 자체에는 인위적인 공작 가능성 등의 의미를 전혀 부여하지 않음. 그러나 괴수 군단의 표적이 하나로 구체화될 경우, 비개연성을 감지할 수 있음.」

괴수가 습격하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괴수가 공격해온다고 누군가 괴수를 조종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괴수가 떼를 지어 몰려 와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그러나 괴수 군단이 연속적으로, 그것도 한 지점만을 공격한다면 어쨌든 간에 이상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누군가가 괴수를 통제한다는 데까지는 상상이 미치지 못해도, 목표가 된 지역에 괴수들이 노리는 뭔가가 있는 건가 하는 정도는 의심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블리츠랭크의 무기는 결정체를 이용해 만들어낸, 자신과 유사한 금속 괴수. 금속 괴수를 이용해 세뇌한 다른 괴수. 그리고 완전 장악한 전자통신망을 이용한 정보전 기술. 바로 이 세 가지다. 이 세 가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심 자체를 주지 않아야 한다.

「아이오와 주 상공 궤도의 위성 12개 통제 성공. 자유 낙하 개시.」

「미국, 위성 추락 감지. 대공 방위 실시. 1차 요격 미사일 32기 발사. 2차 요격 미사일 준비 중.」

「낙하 속도 마하 12 돌파. 요격 가능성 8% 이하.」

「요격 미사일 통제?」

블리츠랭크는 연산 끝에 요격 미사일은 놔두기로 했다. 요격미사일까지 통제하면 미국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전자전 능력을 이용해 미 본토를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의심을 주어서는 안 된다.

블리츠랭크는 알고 있다.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허약한 본체라는 것을. 본체의 존재가 인류에게 알려지는 순간 이 싸움은 순식간에 열세가 될 것이다.

초고속 연산 회로 속에서는 낙하하는 위성의 궤적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요격이 성공하지 못해도, 대기 마찰 때문에 위성 잔재가 지상에 주는 피해는 얼마 되지 못한다. 그러나 미 정부가 미칠 듯이 요격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위성 대부분의 예상 추락 지점이 바로 형무소 인근 지역의 레드 몹 괴수 서식처였기 때문이다. 바로 블리츠랭크가 세뇌를 마친 녀석들이다.

마침내 몇 개의 위성이 대기 마찰과 요격 미사일을 뚫고 레드 몹 서식지로 낙하해 폭발을 일으킨 순간이었다.

「왜 본 개체는 토미 에슨이 반드시 인류의 생태계를 위험에 빠뜨릴 불순 행위를 시도할 거라고 가정하게 되었는가?」

블리츠랭크는, 다시 한 번 연산 회로에 자문을 던졌다.

―치이익. 치익…….

============================ 작품 후기 ============================

요즘 고민이 많아서 머리가 복잡합니다.

어떡하면 블리츠랭크의 본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이 녀석에게 개그를 시킬 수 있을까....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개그를 추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