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517 Oh, my Lord

“기존에는 결정체에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고유 주파수를 감지하는 방식으로 탐지를 했습니다. 호크아이, 글로벌이글, MD시스템에 장착된 탐지장비는 기본 원리는 결정체 감정 장비와 동일합니다. 문제는 프레온층이 형성하고 있는 외피가 이 고유 주파수를 차단한다는 겁니다. 또한 레이더 전자파도 완벽하게 흡수해버려 레이더 탐지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백악관 수뇌부와 유지웅, 안슐은 말 잘 듣는 유치원생처럼 최윤의 설명에 집중했다.

“하지만 이 스펙트럼 투영 방식은 다릅니다. 이것은 결정 에너지의 파장 그 자체에 반응하여 띠 형식으로 배열하는 방식입니다.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 결정 에너지는 크게 16가지 성분으로 집약되어 있으며, CESP 방식은 그 개별 성분을 파장의 형질에 따라 해체함으로써…….”

“CESP 탐지 방식과 기존 주파수 탐지 방식의 차이점이 뭔지 알고 싶습니다. 가능하면 장단점 위주로요.”

칠드그린은 자연스럽게 최윤의 설명을 끊었다. 공돌이, 아니 공학자(최윤은 과학자면서 공학자다)들은 이런 때 반드시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한다. 바로 지금처럼 ‘모두 알고 계시겠지만’이라고 화두를 떼며 긴 긴 설명을 시작하려 할 때다.

최윤은 살짝 실망하는 눈치였으나 곧 설명을 이어갔다.

“CESP 탐지 방식은 기존 주파수 탐지 방식처럼 프레온층 외장갑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즉 메탈 괴수의 추적과 탐지에 뛰어난 성능을 보입니다. 단점은 아직 초기 단계라 출력이 불안정해 오차 범위가 많다는 겁니다. 또 탐지 거리도 짧습니다.”

프레온 괴수는 근거리에서 가시광선을 통해 식별할 수 있어, 기존의 장비로는 추적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CESP 장비는 프레온 괴수도 탐지, 식별할 수 있다.

최윤은 초기형 CESP 레이더 장비를 글로벌이글 다수에 장착하여 관련 지역을 집중 조사했다. 지난 2주 간 그렇게 모은 데이터를 수집해 컴퓨터로 분석했다. 그 결과 프레온 괴수층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세 곳을 확정할 수 있었다.

“글로벌이글이요?”

“록히드마틴과 협의해서 몇 대를 빌렸습니다.”

결제는 유지웅 경비 계좌로 긁었다는 것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대단합니다!”

비시는 흥분해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전지대 설치는 성공 가능성도 그렇지만, 치러야 하는 희생도 너무 컸다.(국가 입장에서 대량의 결정체 소모는 대단한 국력 희생이다.) 하지만 최윤은 좀 더 효율적이면서도 확실하게 해결할 수 있는 루트를 제시했다.

칠드그린 부통령이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으며 물었다.

“그럼 이 좌표에서 프레온 괴수층이 생성되고 있다는 겁니까? 지금 이 시간에도?”

“그런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 과연 무엇이 있을까요?”

최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건 이 자리에 모인 모두의 공통 의문이기도 했다.

메탈 괴수가 죽으면 온몸이 분해되면서 프레온 괴수로 변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혹시 대량의 프레온 괴수가 결합해서 메탈 괴수의 형체를 갖추는 것은 아닐까?

닭과 달걀. 어느 게 먼저인지를 놓고 미국 괴수 전문가들은 아직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세 지점 중 가장 유력한 곳은 어디죠?”

“바로 이 포인트입니다.”

최윤이 가리킨 곳은 중부 사막 지역이었다. 모래와 자갈, 그리고 바위 골짜기로 가득한 곳이었다.

“내일 바로 이 지역을 탐색하겠습니다. 대통령님, 지원 준비 가능한가요?”

“물론입니다. 미국의 모든 국력을 동원해서 보조하겠습니다.”

“특히 항공 운송 수단과 글로벌이글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하늘 천장 작전’은 보류하기로 결정되었다. 가능성이 생겼으니 당연한 것이다. 한두 푼도 아니고 300조 원의 결정체를 하늘에 쏟아 붓는 것이니,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 게 좋았다.

작전 입안을 마치고 유지웅은 늦게 호텔로 복귀했다. 호텔 주변은 미 정부가 제공한 특수경호팀이 24시간 주변을 감시 중이었다. 참고로 호텔 측은 제니스의 편의를 위해 일반 손님은 일절 받지 않고 있었다. 유지웅은 정효주와 같이 최상층 스위트룸을 쓰고 있었다.

“잘 될까?”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 정효주가 근심이 된다는 듯이 물었다.

“잘 되어야지. 300조 원을 내다 버릴 순 없잖아. 내 돈이라면 내 맘대로 쓰겠지만, 내 돈도 아니고.”

“어머, 무슨 말이야? 자기 돈이면 더욱 더 허투루 쓰면 안 되지. 나랑 우리 아이들은 생각 안 해?”

“아참, 그렇지.”

배시시 웃으며 그녀가 머리를 살짝 기댔다. 스위트룸이 있는 최상층에는 경비원의 그림자도 없다. VIP의 사생활을 최대한 배려하기 위한 조치였다.

룸에 들어서자 정효주가 유축기를 꺼내왔다. 유지웅이 유축 준비를 하는 그녀를 뒤에서 번쩍 안아 들었다. 그녀가 작게 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움츠렸다.

유지웅은 그녀를 무릎 위에 옆으로 앉혔다. 가슴을 풀어 헤치고 유축기를 댔다. 버튼을 누르자 모터가 작동하며 모유가 빨려 나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직접 기기를 사용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신랑이 무릎에 앉혀놓고 해줄 때도 있다. 꼭 애무를 해주는 것 같다며 신랑이 좋아한다. 그녀도 이것을 꽤 즐긴다.

가슴만 살짝 풀어헤친 아내가 자신의 손에 몸을 맡긴 채 무릎에 앉아 있다. 젖이 빨리는 모습이 부끄러운지 수줍게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럽다. 그는 왼손으로 유축기를 고정시킨 채, 오른손을 뻗어 다른 가슴을 슬며시 쥐었다.

“아이, 이거부터 하고. 애들 보내야 하잖아.”

은근한 앙탈은 밀어붙이는 게 나쁜 남자, 아니 나쁜 남편의 도리다. 한손에는 유축기를, 한손에는 가슴을 어루만지며 입술을 덧대듯 맞춘다. 조용히 모터 돌아가는 소리 위로 달뜬 신음이 울리며, 열정적인 입맞춤을 나눈다.

“반대쪽도 짜자.”

“아이 참, 말을 왜 그렇게 해.”

“짜는 거 맞잖아. 그럼 뭐라고 해?”

유지웅은 짓궂게 키득거리며 그녀를 번쩍 안아서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 다른 쪽 가슴도 짜주려는 것이다. 방금까지 짜낸 가슴을 희롱하듯 어루만지며, 다시금 입술을 맞췄다. 손은 그녀의 몸을 탐닉하며 점점 아래로 내려왔다. 검은 정장 치마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띠리리리. 띠리리리.

내부 인터폰이 울렸다. 프론트에서 온 연락이었다. 키스를 나누던 두 연인의 눈이 동시에 떠졌다.

그녀가 못내 아쉬운지 그를 살짝 밀어내며 일어났다.

“가 봐.”

“에이, 룸서비스 물어보는 걸 거야.”

“중요한 거 아니면 프론트에서 먼저 연락 안 오잖니. 어서 가 봐. 내가 마저 할게.”

그녀는 유축기를 받쳐 들고 옆에 앉았다. 유지웅은 입맛을 다시다가 일어나서 인터폰을 받았다.

「회장님, 휴식을 취하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무슨 일이죠?”

「예. 다름이 아니라 페이커 부통령께서 찾아오셨는데, 회장님을 뵙고 싶다고 합니다. 어떡할까요?」

유지웅은 갸웃거렸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백악관 회의실에서 같이 회의를 가지지 않았나? 그런데 따로 시간을 내어 호텔까지 찾아오다니, 무슨 일일까?

“잠깐 내려갔다 올게.”

“응. 나 이거 하고 마저 한국에 보낼게.”

젖먹이 쌍둥이가 흑석동 저택에 있는 터라 정효주는 틈나는 대로 모유를 짜서 냉동팩에 담아 초음속 비행기로 한국에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 젖을 안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세계 위기가 닥쳤는데 안 싸울 수도 없어서 마련한 절충안이다.

칠드그린은 혼자 온 게 아니었다. 최윤과 레지나도 함께 대동한 채였다.

“휴식을 취하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하실 말씀이 있었다면 아까 백악관에서 하셔도 됐을 텐데.”

“아까 회의에서 해야 할 말은 다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부통령으로서 할 말을 다했다는 겁니다.”

진중한 칠드그린의 태도에 유지웅의 눈빛도 가라앉았다.

“이 자리는 부통령이 아닌, 전 EIS 부국장으로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즉 미국 부통령 대 제니스 공격대장이 아닌, 다이아몬드 등급 대 챌린저 등급으로서 찾아온 자리라는 뜻이다. 부통령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말, 하지만 제니스 ‘명예 대원’으로서 해야 할 말을 하기 위해서.

“백악관이 저에게 숨긴 게 있나요?”

“아닙니다. 지금부터 제가, 아니 저희가 드릴 말씀은 미국도 알지 못하는 겁니다.”

“경청하겠습니다.”

“최윤 소장과 저는 규소기반 괴수가 자연적으로 저절로 발생한 게 아니라는 데 의사 합치를 보았습니다.”

“……무슨 의미죠?”

“최근 미국 내에 일어난, 언뜻 관련 없어 보이는 기이한 사건들은 어쩌면 긴밀한 인과관계를 갖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이것을 봐주십시오.”

칠드그린은 잘 정리된 보고서를 내밀었다. 유지웅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천천히 살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의 눈빛도 굳어져갔다.

보고서는 캘리포니아 저장고가 털린 의문의 사건부터 언급되고 있었다. 유지웅도 기억한다. 그 때문에 WCO에서 미국에 긴급 결정체 지급을 해주었으니. 게다가 미합중국이 두 동강 날 뻔한 갈등의 기폭제가 된 사건 아닌가.

그 뒤에 이어진 대규모 괴수의 동부 전진, 의문의 원인으로 고장 난 위성들이 추락하며 발생한 아이오와 주 사태, 나미가 발견한 규소기반형 모기 괴수, 이어 등장한 프레온 괴수와 메탈 괴수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게 캘리포니아 저장고 도난 사건에까지 연결되어 있다는 말씀이세요? 그건 조금 억측 아닐까요?”

“처음에는 전혀 무관한 사건으로 여겼으나, 뒤돌아 검토 하는 과정에서 강한 심증을 얻었습니다. 200억 달러에 달하는 결정체를 훔쳐낸 수법도 불명이거니와, 결정체가 시중에 전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 결정체를 그럼 어디다가 사용을…… 설마?”

유지웅이 놀란 듯이 눈을 치켜떴다. 칠드그린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건 바보스러운 공상이지만……. 고등 지적 능력을 획득한 규소기반형 괴수가 어딘가에 탄생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 미지의 괴수는, 자기 동포를 늘리기 위해 캘리포니아 저장고를 습격해서 결정체를 탈취한 건지도 모릅니다.”

말도 안 되는 바보스러운 공상이다. 하지만 그 공상을 끼워 넣는 순간, 캘리포니아 저장고 습격부터 시작된 모든 의문점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최윤이 나섰다.

“저 또한 부통령의 가설을 지지합니다. 결정적인 증거도 있습니다. 나미 씨가 발견한 정찰형 로봇 괴수, 그리고 여러 번에 걸쳐 제니스 공격대가 물리친 메탈 괴수들입니다. 메탈 괴수와 프레온 괴수의 유기적 연관성은 결코 단시간 안에 자연진화적으로 생성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분명히 무언가가 인위적으로 설계하고 만들어낸 것입니다.”

최윤은 ‘누군가’라고 하지 않고 ‘무언가’라고 했다.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작지 않다.

“그럼 CERC 사건 때처럼…….”

“CERC는 절대 아닙니다.”

왜인지, 최윤은 강하게 부정했다. 조금의 흔들림 없는 단호한 부정이었다.

“이건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유지웅은 입을 다물고 고민했다. 두 사람의 주장은 너무나 그럴듯하고 빈틈이 없다. 정황, 논리를 보면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진다.

“지적 능력을 갖춘 규소기반, 그러니까 메탈 괴수가 이 모든 걸 통제하고 있다?”

“그럴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그 점을 확인하고, 또 대비해야 합니다. 어쩌면 인류는 새로운 종류의 적과 조우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지적 능력을 갖춘 괴수? 그것도 바이오 괴수에 비해서 말도 안 되게 강한 힘을 갖춘? 유지웅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왠지 앞날이 편하지 않을 듯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내일 제니스가 진입하는 작전 지역에는 인간 이상의 사고 능력을 가진 괴수가 존재할 지도 모릅니다. 기우라면 좋겠지만, 만약 그게 사실이었을 때 대비하지 않는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될 겁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유지웅이 대뜸 물었다.

“만약 부통령님이 그 괴수라면, 우리 제니스를 어떻게 상대하시겠어요?”

“저라면.”

칠드그린은 잘라 말했다.

“탱커를 놔두고, 힐러를 먼저 공격하겠습니다. 그 중에서도 공대장님을 먼저 치겠습니다.”

============================ 작품 후기 ============================

최악의 보스는 AI가 아닌 블리자드 직원이 컨트롤하는 몬스터.

어그로 개념이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