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522 Oh, my Lord

최윤은 비로소 토미 에슨이 기꺼이 종신형을 받아들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탐욕이었다. 균열을 차지하면 결정 에너지를 독점할 수 있게 된다. 지금처럼 누구나 능력이 되면 획득할 수 있는 구조가, 단 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고 만다. 십 년쯤의 옥살이는 그에게 인내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균열은 거대한 내핵 결정체에 뚫린 틈이다. 인간의 힘으로 거기에 뚜껑을 닫아 누수 에너지를 통제하는 것은 어렵다.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토미 에슨은 연구를 차지한 뒤에도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묵혀두기만 했던 것이다.

“괴수들이 생겨난 게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어…….”

생물결합설, 결정 에너지가 기존 생물과 결합해서 괴수가 탄생했다는 설로서 학계의 가장 큰 유력설이다. 하지만 생물결합설도 결정 에너지가 어디에서 온 건지는 전혀 설명하지 못한다.

‘블랙 등급 괴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그럼?’

최윤은 문득 소름이 끼쳤다. 혹시 균열은 그 자체로…….

「균열은 자연 상태에서 계속 커져가네. 에너지가 상시 흘러나오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 하지만 그 속도는 매우 느려. 자연 상태의 균열이 지구 생태계에 심각한 해악을 끼치려면 적어도 수천 년은 지나야 해.」

그러나 탐욕스러운 자들이 더 많은 에너지를 얻겠다고, 그리고 자기 혼자 독점하겠다고 균열에 손을 대면 어찌 될까? 그 움직임이 가속화되진 않을까?

「녹서스, 토미 에슨은 아무 것도 모르네. 균열은 인간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지구 내핵과 지표면을 잇는 거대한 바이패스일세. 그 앞에서 인간의 힘 따윈 무력하네. 뚜껑을 닫아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 따위가 가능하지 않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순수한 파괴일 뿐이지.」

통제는 어렵다. 하지만 파괴는 쉽다. 그것은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권능.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은 할 수 있을 거란 맹목적인 믿음으로 뛰어든다. 불에 타버릴 것을 알면서도 온몸을 내던져 불꽃의 아름다움을 쥐려고 하는 것이다.

영상 속의 폭음이 더욱 커진다. 특수합금으로 된 두꺼운 문이 덜컹거리며 거칠게 흔들린다. CIA가 안으로 쳐들어오기 위해 문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그 긴박함이 최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데머샤! 데머샤!”

망설이고 있다. 저런 급박한 순간에, 최후의 유언을 남기면서도 그는 무언가 망설이고 있었다. 그게 뭘까? 친구는 무엇을 아직 말하지 못한 걸까? 무엇을 말하기 그리 어려운 것일까?

「……나의 고해성사를 들어주게, 친구.」

* * *

휘버는 뉴욕의 외곽 마을에서 태어났다. 항상 살림이 빠듯한 가난한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특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부모님은 없는 살림에도 월반을 거듭하는 아이를 자랑스러워했다. 남들은 머리가 좋은 아이라며 추켜세워 주었지만, 휘버는 항상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했다.

‘왜 이것도 모르는 거지?’

‘더 이상 어떻게 쉽게 설명해?’

‘이런 것도 몰라?’

친구가 그랬다. 선생이 그랬다. 모든 이가 그랬다. 심지어 책도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핵융합 반응에 관한 명쾌한 정리! 인류는 에너지 부족에서 해방되는가?」

유명한 물리 교수, 프랭클린이 발표한 논문 하나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프랭클린 교수는 노벨상을 받은 후 논문을 책으로 엮어 발표했다.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프랭클린 교수는 책을 구입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회를 가졌다.

강연회 참석 인원은 신청을 받기 시작한 후 30분 만에 마감되었다. 당시 15살이던 휘버도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뉴욕에서 매사추세츠까지 겨우 올 수 있었다. 참석자들은 어린 휘버를 신기하게 여기면서도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다. 미국에는 어린 나이에 이런 어려운 과학책을 좋아하는 영재들이 넘쳐났다.

“……라는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이제부터 질의문답 시간을 갖겠습니다.”

와아아아!

강연을 비교적 일찍 끝내고 곧바로 질의문답으로 넘어가자 참가자들은 뛸 듯이 좋아했다. 서로 앞을 다투어 손을 드는 바람에 질의문답을 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누구 하나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다.

미국이 자랑하는 위대한 과학자와 같은 공간에서 숨쉬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것만 해도 이 자리에 모인 젊은이들에게는 크나큰 영광이었다.

“자, 이제 정말로 마지막 질문을 받겠습니다. 오우, 좋아요! 거기 벌떡 일어서서 손을 높이 들고 있는 어린 친구! 이번엔 보이의 질문을 받아볼까요?”

휘버는 마지막 차례가 되어서야 겨우 눈에 띌 수 있었다. 체격 문제 때문에 아무래도 질문을 하기가 힘들었다.

참석자들의 시선이 휘버에게 쏠렸다. 15살짜리 어린 아이가 이 자리엔 어떻게 왔을까, 무슨 질문을 할까 하는 궁금증이 모두의 얼굴에 가득했다.

“교수님의 논문에서 정리하신 프랭클린 방정식의 에너지 상수가 미지값으로 되어 있던데요.”

“아아, 맞아요. 아직 그 상수의 진짜 값을 확정하지 못해 미지값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조만간 개정판을 낼 테니 그때도 꼭 책을 사주기 바랍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유 가득한 대답에 커다란 웃음이 터졌다. 프랭클린은 핵융합 에너지 상성 반응에 관한 정리로 노벨상을 받았지만, 중요한 에너지 상수 하나는 미지수로 남겨두었다. 아직 구체적인 수치가 해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가 계산을 해봤는데요, 2.722라고 나왔어요. 근데 선생님들한테 말씀을 드려 봐도 제가 틀린 거라고 혼났어요. 그래서 교수님께 직접 여쭙고 싶어서 왔어요.”

정말이었다. 휘버는 호기심에 계산을 해봤고, 2.722가 정답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과학 선생님들은 말도 안 된다며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면박을 주기만 했다.

휘버는 확인하고 싶었다. 그저 순수하게, 자신이 틀렸는지 맞았는지를 검사받고 싶었다. 숙제를 할 때 늘 그러하듯이.

“하하하, 이 어린 학생의 열의가 대단하군요. 앞으로 20년 뒤면 우리 미국은 열정이 넘치는 뛰어난 과학자 한 명을 얻겠군요. 자랑스럽습니다.”

와하하하하!

“교사는 검증도 하지 않고 일단 틀렸다고 하지만, 교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검증을 하고 난 뒤에 왜 틀렸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죠. 그래서 대학 등록금이 비싼 겁니다.”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프랭클린 교수는 손을 저어서 커다란 이동식 칠판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보드마카를 쥐고는 필기에 들어갔다.

“자, 그럼 우리 어린 학생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 왜 2.722가 정답이 아닌지를 검증해보겠습니다.”

어린 나이에 성인 과학자도 어려울 논문을 직접 읽고 나름대로 답까지 도출한 영재다. 아마 틀렸겠지만, 무턱대고 틀렸다고 윽박지르는 게 아니라 친절하게 검증해주고 왜 틀렸는지 자세하게 알려주면, 미국은 미래에 뛰어난 과학자 한 명을 얻을 것이다. 미국 문화는 착한 아이에게 친절하고 자상했다.

“그럼 이 부분에서 우리는…… 우리는…… 음…….”

갑자기 프랭클린 교수가 손을 멈췄다. 쥐죽은 듯한 고요가 청중을 휩쓸었다. 무언가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교수는 한참이나 칠판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뭔가 잘못된 게 있는 모양이다.

“어린 친구, 잠깐 강단에 나와 줄 수 있나요?”

프랭클린 교수가 갑자기 휘버를 불렀다. 휘버는 놀라서 주춤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 나가는 것은 창피했다. 그러자 프랭클린 교수가 직접 청중석까지 들어와 손을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자, 나와 봐요.”

모두의 눈이 쏠렸다. 무의식적으로, 뭔가 엄청난 일이 터지려는 것을 직감한 것이다.

“자, 친구가 어떻게 해서 저 값을 얻었는지 나와, 그리고 이 자리의 모든 이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나요?”

“저기, 저는…….”

“괜찮아요. 틀려도 괜찮습니다. 아무도 비웃거나 놀리거나 하지 않아요. 과학에서 틀린 것은 언제나 있는 일입니다. 만약 틀린 것을 가지고 놀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자상한 격려에 휘버는 용기를 얻었다. 보드마카를 쥐고는 식을 써내려갔다. 수식은 단 5줄. 휘버는 끝났다는 듯이 프랭클린을 돌아보았다.

“끝났어요.”

프랭클린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그는 강연 보조자들에게 지시를 내려 새 칠판을 하나 더 가져왔다. 5줄의 수식이 적힌 칠판은 청중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옆으로 살짝 물러났다.

“좀 더 풀어서 설명해줄 수 있나요?”

“예? 여기서 더요?”

“제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난해하군요.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좀 더 세분화해서, 모든 것을 풀어 정리해줄 순 없나요?”

휘버는 난감했다. 여기서 더 어떻게 풀어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예를 들어, 사과가 두 개 있다. 왜 사과가 두 개인지는 그냥 ‘척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사과 두 개를 보여주었는데, 상대방은 이게 왜 두 개인지 모르겠다며 설명을 해달라고 한다. 그럼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척 보면 그냥 두 개인데, 왜 척 보면 두 개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걸까?

지금까지 휘버가 만난 이들은 거의 다 그랬다. 그들은 결국에는 사과 두 개가 아니라며, 그가 틀렸다며 반발을 했다. 하지만 프랭클린은 달랐다. 그는 왜 두 개인지 모르겠다며, 자세한 설명을 부탁했다.

“칠판에 다 적을 순 없어요.”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말해요.”

“아주 큰 종이가 필요해요.”

잠시 강연이 멈춰지고, 보조자들은 큰 종이를 구해온답시고 바쁘게 뛰어다녔다. 청중석에도 심각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이것이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무언가 미국의 과학계에 한 획을 그을 위대한 역사가 시작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휘버는 정리를 써내려갔다. 벽 전체를 차지한 큰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수식을 적고, 방정식을 풀어놓았다. 어린 손이 꼭 쥔 펜은 멈출 줄을 모르고, 늙은 교수의 눈은 펜 끝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두 시간이 흘러 마침내 휘버의 펜이 멈췄다. 아까 전에 적었던 5줄의 수식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식을 풀어 설명하는 것이, 휘버에게는 지금까지 겪은 일 중에서 가장 어려웠다.

프랭클린 교수가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 작은 소년은 제 이론에 부족했던 점을 완벽하게 보완했습니다. 이 작지만 위대한 영웅에게 모두 큰 박수를 보내줍시다.”

그날, 휘버의 인생은 바뀌었다.

* * *

휘버는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프랭클린 교수는 아인슈타인의 화신이자 니콜라 테슬라의 재림이라며 휘버를 칭찬했다. 즉각 논문 개정판이 나왔으며, 휘버는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또한 휘버는 프랭클린 교수의 제자로 들어갔다.

인생이 바뀌었다. 단순히 남들보다 조금 뛰어난 머리를 가진 영재 소년은 세기의 천재로 알려졌다.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와 모든 일가족이 매사추세츠 시의 깨끗한 거리로 이주할 수 있었다.

프랭클린 교수는 아끼는 제자를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주었다. 크고 좋은 집, 아버지를 위한 안전하고 안락한 직장, 어머니를 위한 풍족한 생활비, 기타 등등.

프랭클린 교수는 해외여행을 자주 다녔다. 항상 휘버를 끼고 다니며 세상 곳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휘버는 프랭클린을 통해 아프리카의 기아, 선진국 빈민촌의 어두운 그늘을 보았다.

“휘버, 난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이유가 에너지 부족 때문이라고 믿는단다.”

“에너지 부족이요? 하지만 에너지는 넘쳐나지 않아요?”

“넘쳐나지. 그러나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단다. 또 그렇게 되는 것을 막으려는 자들도 있고. 그래서 나는 핵융합 연구를 하고 있는 거란다.”

프랭클린 교수는 에너지의 평등화를 원했다. 전 세계 어느 누구도 걱정 없이 전기 따위의 에너지를 마음껏 쓸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랐다. 사람들은 그를 몽상가라고 했다.

“인류는 화석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어. 우리 연구는 아직 빛을 보려면 갈 길이 멀구나. 그래도 포기해선 안 된다. 화석 에너지는 언젠가 커다란 다툼을 불러온다. 그걸 막기 위해서라도 결코 멈춰서는 안 돼.”

18살이 된 휘버가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 해 겨울, 프랭클린 교수는 그런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둘의 인연이 시작되고 3년 만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 봄, 미국은 쿠웨이트에 핵무기가 있다며 대대적인 침공을 개시했다.

‘한정된 화석 에너지에 의존하는 문명은 다툼을 부른다. 무한의 에너지만이 다툼을 해소할 수 있다.’

약 3만 명의 사상자가 나온 대규모 참사였다. 쿠웨이트는 결국 항복했고 미국이 군정을 시작했다. 미국은 쿠웨이트를 전진기지로 내세워 국제 석유 시장을 좌지우지하려 했고, 아랍은 한 마음으로 뭉쳐 대항에 나섰다.

그것을 보고 휘버는 프랭클린 교수가 입버릇처럼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 모든 건 에너지가 적기 때문이야.’

전쟁은 비극을 가져온다. 사망자, 부상자, 집을 잃은 사람, 부모님을 잃고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죽은 아이를 껴안으며 오열하는 부모, 그런 아픔을 낳는다.

휘버는 그 모든 것을 두 눈에 담았다. 의문을 품었다. 왜 싸워야 하지? 왜 서로 아파해야 하지? 에너지가 부족해서? 하지만 이 세상은 에너지가 넘쳐나는데?

“닥터 휘버, 이 프로젝트는 실행 불가능합니다.”

“어째서입니까? 태양은 무한한 핵융합 발전소입니다.”

“경제성이 낮습니다.”

미 정부는 대규모 태양광 발전 시스템에 흥미를 보였으나 거부되었다. 이유는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휘버는 친한 정부 관료를 통해 진짜 이유를 전해 들었다.

‘석유 카르텔의 로비 때문입니다.’

휘버는 깨달았다. 명성, 그리고 실력만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프랭클린 교수도 그걸 알기에 순수한 과학자로만 남았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좋아. 너희들이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포기하지 않겠다.’

휘버는 칼을 갈았다. 오래 묵혀 두었던 비밀 프로젝트 실행을 준비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자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그가 미국에서 뛰어난 명성을 자랑한다 해도, 이제 19살인 그가 무제한의 연구 자금을 끌어오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그는 적과의 동침을 선택했다. 유류 에너지의 생산 효율에 관한 몇 가지 연구 제안서를 내밀었다. 석유 카르텔은 앞을 다투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무제한의 자금이 들어왔다.

“닥터 휘버, 정말 안전한 겁니까?”

“글쎄요. 실험 단계에서 안전이라는 것은 확답을 드릴 수 없군요. 다만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서 모든 안전 수단을 강구할 뿐입니다.”

“부디 이 연구가 잘 되어야 할 텐데 말이죠.”

석유 카르텔의 큰손인 엑슨모빌은 휘버의 가장 큰 후원자 중 하나였다. 엑슨모빌은 석유뿐만 아니라 중수소를 이용한 핵융합 발전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실용화가 가능하려면 수십 년은 걸리겠지만, 이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며 미리부터 선점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그 첫 실험이 있는 날이었다.

쿠아아아앙!

대단한 지하 폭발이 일어났다. 지진계 바늘이 요란하게 들썩이기 시작했다. 참관한 엑슨모빌측 경영자들은 당황했다.

“실패입니까?”

“그 말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반응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니까요. 대폭발도 여러 변수 중 하나로 상정해서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단기간에 끝날 프로젝트는 아니다. 그래서 경영측은 금세 아쉬움을 접었다.

연구원들이 부산한 틈을 타 휘버는 한쪽 구석에 있는, 조그만 계기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연구원들 중 누구도 그 목적을 모르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계기판. 다른 바늘들이 끊임없이 요동치는 것에 비해, 이 녀석만큼은 0에 멈춘 채 움직일 줄을 몰랐다.

그때였다. 바늘이 격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바늘은 단숨에 오른쪽 끝까지 완벽하게 기울었다. 그리고 내려올 줄을 몰랐다.

‘성공이다!’

* * *

약 62년 전.

인류는 무한의 에너지원에 첫 시추를 성공했다.

============================ 작품 후기 ============================

죽었으니 망정이지 살아있었으면 희대의 악역.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