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545 Pre-season - Couple

“유지웅? 걔 좀 산다며?”

“좀 사는 정도가 아니라던데? 집 완전 장난 없대. 기집애들 말로는 무슨 재벌가 같다던데.”

“말이 되는 소릴 해라. 그런 집 자식이 왜 이런 학교 다니냐? 그냥 집에 돈 좀 있나 보지.”

담배를 비벼 끈 노란 머리 고교생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옆에서 같이 담배를 피던 남학생 셋이 놀라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현균아, 어디 가려고?”

“그 놈 낯짝 한 번 보러 간다.”

“야! 걔는 건드리면 안 돼! 그렇게 말 맞췄단 말이야!”

“이 학교에서 내가 못 건드리는 놈이 어디 있어. 그런 건 내가 용납 안 한다.”

현균은 발로 거칠게 옥상 문을 열고 내려갔다. 복도를 걷는데 마주치는 학생들마다 시선을 피하며 한참이나 비껴 선다. 심지어 선생들마저 멀찌감치 그를 피해 갔다.

기업형 조직 폭력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소문이 돈 뒤부터는 선생들도 결코 그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했다. 그리고 반쯤은 사실이기도 했다. 졸업하는 즉시 선배가 있는 조직에 들어가기로 말이 되어 있으니.

짜릿한 권력욕에 그의 표정이 풀어졌다. 역시 이 맛은 최고다. 무수한 약자들을 발아래 꿇리고, 그들의 순종을 맛보며 살아 있음을 느낀다.

쾅!

“야! 여기 유지웅이란 놈 어딨어!”

문을 걷어차며 위협하듯이 외치자 떠들썩하던 교실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학생들은 현균의 가슴에 달린 3학년 표찰을 보고 일단 기가 죽었고, 대담하게도 노랗게 물들인 머리에 또 한 번 기가 죽었으며, 마지막으로 그를 알아본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에 역시 기가 죽었다.

“이현균 선배잖아.”

“아, 그 우리 학교 짱이라는 사람?”

“쉿! 조심해. 선생님들도 함부로 못 건드린대.”

“그런 사람이 지웅이는 왜……?”

고요한 수군거림 속에서 현균은 누가 유지웅인지 한 번에 알아보았다. 학생들이 흘끔거리는 시선이 한곳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 봐라?’

그는 기분이 나빠졌다. 저거 뭐야, 하듯이 무심하게 쳐다보는 눈길에 마음이 팍 상했다. 성큼성큼 다가간 그는 거칠게 책상에 발을 턱 올리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니가 유지웅이냐?”

“그런데?”

“그런데? 너 선배한테 그딴 식으로 말하라고 배웠냐? 이 새끼가…… 잠깐, 이거 뭐냐?”

예상 못한 반말에 더욱 화가 나서 윽박지르던 현균은 순간 멈칫 했다. 왼손목에 찬 시계가 눈에 들어 왔다. 반짝이는 은색 금속광과 날렵하면서도 두툼한 디자인, 한눈에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시계였다.

“이야, 시계는 좋은 거 차고 있네? 애들 말대로 집안이 좀 사나 보다? 엉?”

“좋은 거?”

유지웅은 피식 웃었다. 눈이 그 따위 밖에 안 돼?

“야, 이거 잠깐 줘 봐. 너보단 나한테 어울릴 거 같다.”

“싫은데? 내가 왜?”

“끝까지 선배한테 말이 짧네? 정말 너 이 자식이…….”

현균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유지웅의 멱살을 잡았다. 여학생들이 꺅 하고 비명을 질렀다. 겁먹은 약자들의 비명에 현균은 더욱 짜릿함을 느꼈다. 바로 이 맛이다.

“진짜 한 번 지옥 같은 학창 생활 보내고 싶냐? 이 새끼가 어디서 감히…….”

그때 두툼한 손이 현균의 등을 잡고 돌렸다. 현균은 이거 뭐야, 하고 욕을 하면서 고개를 돌리다가 흠칫 했다. 처음 보는 건장한 30대 남자 둘이 험악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물러서라. 니가 함부로 손을 댈 분이 아니시다.”

“아저씨들, 뭐야? 학교에서 무슨 짓이야?”

“너야말로 학교에서 무슨 짓이냐?”

유지웅은 별 거 아니라는 듯이 현균이 잡았던 옷깃을 탈탈 털어 정리하고는 매무새를 바로 잡았다. 그리고 태연히 자리에 앉았다. 이미 그는 눈길도 주지 않고 있었다.

“데려가서 처리하세요.”

“알겠습니다. 서장님한테는 뭐라고…….”

“강도미수에 협박? 뭐 제가 그쪽은 지식이 짧아서 더 말씀 못 드리겠네요. 시가는 84억이에요.”

“84억?”

현균이 흠칫 놀랐다. 그제야 유지웅은 그에게 슬쩍 눈길을 주며 왼손을 들어 보였다. 마치 조롱하듯이.

“초범인지 아닌진 모르겠는데, 84억짜리를 강탈하려 했으니 쉽게는 못 나올 걸? 그냥 푹 쉬어.”

“야, 야……!”

“가자.”

두 형사는 현균을 수갑까지 채워서 데려갔다. 유지웅은 깨끗이 흥미를 잃은 듯이 다시금 패드 컴퓨터로 국제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

급우들은 멍한 채로 조용히 있었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3학년 폭력 학생이 뭔가 갈취를 하려다가 끌려 나간 거 같긴 한데, 그 대화에 이상한 숫자 하나가 끼어 있지 않았나? 뭐, 84억이라고?

용기를 낸 성지원이 나섰다.

“저어, 지웅아. 물어볼 게 있는데.”

“왜?”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방금 그 아저씨들은 누구야?”

“아, 잠복 형사.”

“혀, 형사?”

“경호원 구할 때까지 겸사겸사 서에서 나온 사람들이야.”

성지원은 살짝 질려 버렸다. 그 정도였어?

“그, 그럼 그 3학년 오빠는 이제 어떻게 돼?”

“서장이 알아서 하겠지. 쉽게 풀려나오진 못할 걸?”

“지, 진짜 그거 84억이야? 노, 농담이지?”

“맞는데?”

쥐죽은 듯한 고요 속에서, 급우들은 유지웅이 왜 저리 별일 없다는 듯이 잊고 넘어가는지 이해했다. 수백억짜리 한강 펜트하우스에 혼자 살고, 84억짜리 시계를 차고 다니는 고교생이다. 조직원으로 장래가 보장된 3학년 폭력 학생 따위, 아마 눈에도 차지 않았을 것이다.

* * *

“안녕히 가세요!”

교사에 인사를 마치고, 학생들은 우르르 빠져나갔다. 유지웅 팀원은 조별 과제를 위해 그의 뒤를 조심스레 따라갔다. 그는 팀원들이 따라오든 말든 신경도 안 쓰고 앞장을 섰다. 정효주도 조심스럽게 그의 옆에서 따라 걸었다.

대로로 나온 그는 택시 두 대를 잡았다. 아이들은 얼른 택시에 올라탔다.

“제원호텔로 가주세요.”

“호텔? 너희 집 안 가니?”

“당분간 호텔에 방 하나 빌렸어. 거기서 하자.”

“왜? 집에 무슨 일 있니?”

“내부 단장 좀 하느라고. 나 혼자는 상관없는데 너희들 다 데리고 가기는 좀 그래.”

성지원은 좀 많이 아쉬워했다. 그 그림 같은 펜트하우스에 또 한 번 가고 싶었는데. 그러나 그가 호텔에 잡아놓은 룸을 보고 아쉬움은 사라져 버렸다.

“그럼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불러 주십시오.”

말로만 듣던 최고등급 스위트룸을 잡아 놓은 것이다. 넓은 거실 중앙에 놓인 하얀 가죽 소파와 깔끔한 인테리어가 엉거주춤 서 있는 학생들을 맞이했다. 테이블에 놓인 프랑스산 와인 두 병을 신기한 듯 바라보던 성지원은 손가락으로 쿡 찔러 보았다.

여자애 둘도 꺅꺅거리며 침실, 욕실, 테라스를 차례대로 구경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이, 이런 데는 비싸지 않을까?”

성지원은 몸을 움츠렸다. 그러고 보니 언뜻 들은 거 같다. 제원호텔 최고등급 스위트룸은 하룻밤 숙박하는데 천만 원이 넘어간다고……. 그럼 지금 천만 원을 날리러 온 거야? 차라리 그 돈 나나 주지!

“지웅아, 지웅아! 우리 샤워해도 돼?”

“샤워?”

“응! 평생 이런 데 또 못 올 거 같으니까 한 번 샤워 해보고 싶어!”

“나도, 나도!”

‘경쟁’을 포기한 여자애 둘은 그저 소박한 행운을 즐기고픈 마음뿐이었다. 떨떠름한 유지웅이 그러라고 하자 둘은 꺅꺅거리며 손을 잡고 욕실로 들어갔다. 커다란 스위트룸 대리석 욕조에 몸을 한 번 담가보는 게 그리 소원이라면 뭐…… 근데 핸드폰은 왜 갖고 들어가는 거지? 습기에 안 좋은데?

유지웅은 친구들을 위해 간단한 룸서비스를 시켰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일식과 과자, 음료수가 나왔다. 여자애 둘은 샤워를 마치고 목욕 가운을 입은 채 나왔다. 쉬지 않고 핸드폰을 눌러대는 게, 인증샷을 찍는 모양이었다.

여자 다리라는 게 참 묘한 것이, 짧은 교복 밖으로 드러난 것과 목욕 가운 아래로 드러난 게 느낌이 사뭇 다르다. 다른 남자애 둘은 잔뜩 경직이 돼서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입 심심할 텐데, 어서들 먹어.”

룸서비스를 권하면서 유지웅은 와인의 마개를 땄다. 성지원이 그걸 보고 흠칫 했다.

“우리 술 먹어도 되는 거야?”

“너희들은 안 돼.”

애들이 무슨 술을, 하면서 유지웅은 자연스럽게 빈 잔에 와인을 따랐다. 정효주가 용기를 내어 빈 잔을 두 손으로 꾹 쥐고는 내밀었다.

“나도 한 잔 줘.”

“안 돼. 나만 마실 거야.”

“왜에?”

“술 냄새 풍기면서 집에 돌아가면 너희들 부모님한테 혼나잖아.”

결국 와인은 유지웅 혼자만 마시고, 정효주를 비롯한 아이들은 주스와 음료만 마셨다.

일행은 그렇게 머리를 맞대고 조별 과제를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데 과제가 제대로 될 리가 있는가. 가운 차림의 두 여학생은 과제 보다는 스위트룸을 구경하면서 이것저것 인증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게 눈에 훤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조금 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지금 7시야. 너희들도 집에 가야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여전히 가운을 입고 있는 여학생 둘이 가장 크게 아쉬워했다. 유지웅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손뼉을 짝짝 쳤다.

“그만 일어나자.”

“이거 안 치워도 돼?”

“그건 직원들 일이고.”

여자애 둘도 얼른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교복 차림의 일곱 명은 그렇게 스위트룸을 나섰다. 여자애 둘은 자꾸 뒤를 흘끗거리는 게, 못내 아쉬움이 남은 듯 보였다.

“주말에 날 잡고 하루만 더 모여서 하루 종일하면 과제 끝날 거 같지?”

“응, 그럴 거 같아.”

“내일 토요일이지? 그러고 보니 다들 시간 돼? 내일도 예약해두게.”

“돼! 돼! 시간 돼!”

“나도 시간 돼!”

성지원과 여학생들은 폴짝 뛰며 좋아 했다. 유지웅은 호텔 리무진을 불러서 학생들을 태웠다. 번쩍거리는 리무진의 위용에 주눅이 든 아이들은 머뭇거리면서도 사양 않고 탔다.

마지막으로 오른 성지원이 문득 의아해서 물었다.

“근데 효주 너는 안 타?”

“아, 효주는 나랑 방향이 같아서. 다른 차 타고 갈 거야.”

“……그래?”

성지원은 못내 아쉬움을 누르며 창문을 내렸다. 둘만 남게 되자 정효주가 토라진 듯이 말했다.

“지원이가 너 좋은가 봐.”

“니 눈에도 그렇게 보이지?”

“뭐야. 기분 좋은 거야? 지원이가 너 좋다니까?”

“니가 질투하는 게 기분 좋다.”

“……뭐야, 진짜.”

정효주는 직격을 맞은 듯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그는 웃음을 지으며 자연스럽게 손을 잡았다. 표정이 한결 풀어진 그녀는 그의 팔을 껴안으며 몸을 기댔다. 둘은 서로의 체온에 의지한 채 여의도 저녁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저녁 차려 줄까?”

“됐어. 아까 룸서비스 많이 먹었잖아.”

“있지, 우리 사귀는 거 말야…….”

정효주는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뭔가 말을 꺼내려고 했다. 유지웅이 그녀의 입술에 손가락을 살짝 얹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그를 쳐다봤다.

한참이나 말없이 그녀를 들여다보던 그가 이윽고 입을 귓가로 가져갔다. 그리고 속삭였다.

“자고 갈래?”

============================ 작품 후기 ============================

소녀를 홀리는 마법의 명령어, 얍!

월세방에서 실행시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