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574 A Miracle Even When You Fall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오늘 내일 간당간당하던 늙은 개가 팔팔하게 젊어진 것이다. 다 썩어버린 이빨은 튼튼하고 하얀 치아로 새로 거듭났고, 빛깔 나쁘고 윤기 없던 털 대신 튼튼하고 굵은 털이 새로 돋아났다. 뿐만 아니라 젊은 시절 지녔던 단단한 근육이 온몸을 뒤덮고 있었다.

명성 있는 수의사들이 불려 와서 베스의 검진을 시작했다. 온갖 검진으로도 모자라 나중에는 병원에 데려가서 MRI 촬영까지 실시했다. 그리고 결과는 매우 놀라웠다.

“믿어지지 않습니다. 지금 베스의 신체 나이는 갓 성체가 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팔십대 노인이 스무 살로 젊어진 겁니다.”

“온몸의 세포가 젊어졌습니다. 노화한 세포는 찾아볼 수조차 없습니다. 있을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난 겁니다.”

“만약, 만약 베스의 신체에 일어난 변화를 사람에게도 똑같이 재현할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세인 아민 카네기가 놀란 진짜 이유다.

젊음, 불로장생에 대한 인간의 갈망은 영원하다. 늙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누구나 언제까지고 젊음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레이더가 등장한 이후로 인류는 꾸준히 탱커의 신체에 관한 연구를 해왔다. 왜 탱커가 늙지 않는지 그 자세한 메커니즘을 규명하려 애썼다. 늙어 죽기 싫은 수많은 부호들이 그 연구에 어마어마한 자금을 댔다.

그러나 모두 실패했다. 탱커의, 레이더의 능력은 인류에게 쉬이 자신의 비밀을 내보이지 않았다. 탱커의 비거가 세포에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서 젊음을 유지하는지는 끝내 밝혀지지 않은 자연의 비밀로 남았다.

그렇다 해서 늙은 부자들이 젊음에 대한 꿈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들은 탱커의 젊음에 관한 비밀을 연구하는데 여전히 아낌없이 돈을 대고 있으며, 기약 없이 성과를 기다렸다. 카네기 가문도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한 거요?”

베스는 정밀 검사에 들어갔다. 조직 세포의 나이와 분열 횟수를 측정하는 무슨 복잡한 검사라고 했다. 그러나 누구도 베스가 젊어진 현상을 부정하지도, 의심하지도 않았다.

세인은 난리가 났다. 유지웅을 붙잡고 이게 어떻게 된 건지 그 비밀을 캐물었다. 자신이 듣기로는 베스가 유지웅이 머문 침실에 들어갔다가 젊어져서 나왔으니, 당연히 유지웅이 무언가를 했을 거라고 밖에 볼 수 없었다. 그 시간에 그는 침실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해도.

“글쎄요. 혹시 블루 결정체를 먹고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한데, 확신은 못하겠네요.”

“블루 결정체?”

“네. 어제 획득한 그거요. 방 테이블 위에 놔뒀는데 없어졌더라고요. 사람은 아무도 안 들어갔다면 베스가 먹은 게 아닐까요?”

그 말은 즉각 연구팀에 전달되었고, 바로 결정도 측정 검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결정도가 전혀 감지되지 않습니다. 그냥 평범한 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말 결정체를 먹은 게 맞나요?”

생물결합설에 따르면, 평범한 짐승이 고농축 결정체를 먹으면 괴수로 변이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아니면 그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거나, 둘 중 하나다.

결정체를 먹었다면 결정도 반응이 보여야 정상인데 정상 수치를 보였다고 한다.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이해되지 않는 현상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다 늙어 죽기 직전의 개가 하루아침에 쌩쌩한 나이가 된 것부터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혹시 블루 결정체를 통째로 섭취하면 젊어지는 건 아닐까요?”

그런 가설이 나왔다. 듣고 보니 그럴 듯했다.

사실 어느 누가 블루 결정체를 통째로 먹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을까. 괴수가 아닌 이상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발상 자체를 할 수 없다.

블루 결정체는 제약 소재로도 쓰인다. 즉 정제하기에 따라서는 사람이 먹을 수도 있다. 다만 제약 소재로 쓸 때에는 매우 저농도로 희석을 해서 사용한다. 그렇게 해도 약효가 워낙 대단하기 때문이다.

“블루 결정체에 집약된 에너지를 생각하면, 한 개를 통째로 섭취하는 것은 신체에 매우 치명적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칫 변이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어요.”

“하지만 베스는 저리 되지 않았소?”

“……사실 추정일 뿐이고 한 번도 검증을 해본 적이 없긴 합니다. 무엇보다 블루 결정체 하나를 통째로 섭취한다는 가정 자체를 해본 적이 없는 터라…….”

“실험을 해보면 어떻겠소?”

소식을 들은 미국의 늙은 부호들이 카네기 저택으로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했다. 가능성이 보였다. 그렇다면 실험을 하면 된다. 근데 말이지…….

“1회 실험에 오억 달러 이상이 날아가는군요.”

“…….”

이들은 미국에서도 내로라하는 수백억 달러의 자산가들이다. 하지만 1회 실험에 오억 달러 이상이 소요되는 실험은 이들에게도 매우, 아주 매우 부담스럽다. 자칫 가산을 탈탈 털어서 탕진하고 성과는 전혀 거두지 못할지도 모른다. 부자들에게도 두려운 것은 있다.

블루 결정체를 통째로 먹고 개가 젊어진 것 같다. 그러니 블루 결정체를 가지고 실험을 해보자. 근데 대뜸 사람에게 실험을 할 수 없으니 먼저 동물 실험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 말이 충분히지, 얼마나 천문학적인 돈이 소요될까?

안 그래도 옐로 몹이 씨가 말라서 결정체는 부르는 게 값이다. 지금 유지웅이 잠깐 레이드를 쉬는 바람에 또 국제 결정체 가격이 껑충 뛰어오르고 있는 추세다.

이런 판국에 수명 연장, 회춘을 위해서 블루 결정체로 실험을 한다고? 당장 전기가 끊어져서 골골대는 나라 사람들이 들으면 분개해서 들고 일어날 것이다. 무엇보다 그 비싸고 귀한 블루 결정체를 대체 어디서 구하나?

“아, 궁금한 건 못 참아.”

그러나 좀이 쑤신 유지웅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자신이 보기에도 베스가 젊어진 건 너무 신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블루 결정체 말고는 짚이는 게 없다. 그럼 실험을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다행히 자신은 블루 결정체쯤은 별 수고도 안 들이고 쉽게 구할 수 있다. 미국 땅에도 널린 게 레드 몹 아닌가. 그는 정효주와 함께 헬기를 타고 가까운 지역에 있는 레드 몹들을 사냥하러 나섰다.

슥삭. 슥삭. 슥삭.

세 번 칼질을 하고, 세 개의 블루 결정체를 얻었다. 안전한 실험을 위해서 안전지대 밖의 산악지형에서 실험을 하기로 했다. 내로라하는 미국 결정체학자들이 참관하고 싶어 했으나, 좋은 건 독점해야 한다는 신조가 투철한 유지웅은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위성으로 감시하는 것도 안 됩니다. 저 다 알아요.”

“…….”

몰래 훔쳐볼 생각이었던 백악관은 깨끗하게 포기했다. 비시는 ‘대체 제니스의 정보망은 얼마나 은밀하기에 아직까지 그 단서도 못 잡는 거지?’라며 한탄을 했다고 한다. EIS가 바로 그 정보망이라는 걸, 미국 대통령이 알게 될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아, 칠드그린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될 지도…….

유지웅은 미리 준비한, 다 늙어 죽어가는 동물 세 마리에게 블루 결정체를 주었다. 개, 사슴, 원숭이였다.

세 마리는 킁킁거리더니 블루 결정체를 낼름 먹어버렸다. 그리고 어떻게 됐냐면…….

번쩍!

“아씨! 완전히 흩어졌잖아! 이럼 에너지 다 날아가는 거 아니야?”

“어떡해! 변이했어!”

“효주야! 베어 버려!”

한 마리는 블루 결정체의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하고 그대로 신체가 터져 버렸다. 그렇다고 혈육이 낭자한 것은 아니고, 온몸이 잿더미가 되어 흩어져 버린 것이다. 당연히 먹은 블루 결정체도 사라져 버렸다. 아마 순수한 에너지 상태로 돌아가 대기권에 흩어졌을 것이다.

나머지 두 마리는 블루 결정체를 먹고 변이를 일으켰다. 즉 괴수, 그것도 레드 몹으로 변하고 만 것이다. 이쪽은 차라리 나은 편이었다. 정효주가 두어 번 칼질을 하자 깨끗이 죽고 블루 결정체 두 개를 다시 고스란히 토해냈으니까.

“오천억만 날렸네.”

유지웅은 다른 동물들을 데려다가 다시 실험을 했다. 이번에도 두 마리 다 변이를 일으켜 괴수가 되었다. 사뿐하게 칼질해서 죽여 버리고 결정체를 회수한 뒤, 또 다른 동물들을 데려다가 한 번 더 실험을 했다.

이번에는 한 마리는 처음처럼 펑 하고 터져버리고, 다른 한 마리는 괴수로 변이를 일으켰다. 변이를 일으킨 괴수를 잡고 다시 결정체를 획득한 뒤 또 실험을 했다. 그렇게 결정체 세 개를 다 잃을 때까지 실험을 반복했다.

1조 5,000억 원을 허공에 날려버린 꼴이다.

“효주야, 아무래도 이건 아닌 거 같아.”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어떡하니. 아까워 죽겠어.”

“뭐, 널린 게 블루 결정체인데 뭐가 그리 아까워? 아무튼 블루 결정체 먹인다고 젊어지는 건 아닌 거 같다.”

다양한 실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약 열 번에 걸친 실험에서 한 번도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에너지를 감당 못하고 펑 하고 터져서 죽거나, 혹은 괴수로 변이를 일으키기까지 했다. 이래서야 인체를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은 꿈도 못 꾼다. 동물실험부터 이미 엄청나게 위험한데 무슨.

“그냥 베스는 엄청나게 운이 좋았나 보다.”

“혹시 모르지. 결정체 때문이 아니라 그냥 탱커로 각성한 걸 수도.”

“아, 그렇네? 그럼 내가 방에 놔둔 그 결정체는 어디 간 거지? 누가 훔쳐 갔나?”

“만약 그럼 그 사람 바보 됐겠다. 그거 귀속돼서 어디 가져가서 써먹지도 못할…….”

순간 정효주는 말을 멈췄다. 유지웅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놀란 듯이 눈을 크고 뜨고 서로를 마주 봤다.

“효주야, 방금 뭐라고 했어?”

“서, 설마? 그거 때문에?”

“진짜로? 진짜로 그거 때문일까?”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이미 뜻은 통한다. 둘은 같은 마음으로 입을 모아 외쳤다.

“설마 귀속 결정체만 저런 거야?”

============================ 작품 후기 ============================

갑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업글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