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593 The Weight of the Crown

안슐은 아부다비 왕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풍요와 사치, 호화 속에서 성장했다. 말만 하면, 아니 말을 하기도 전에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삶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린 왕자가 배우지 못한 감정은 ‘갖고 싶다’는 감정이었다.

어린 왕자가 본 세상은 풍요로움이 가득한 곳이었다. 드넓고 화려한 궁전, 언제나 시원하게 바람을 씻어주는 대분수, 맛있는 음식과 호화로운 보석들까지.

처음에는 그런 게 당연한 줄 알았다. 원래 아이는 자신의 눈이 만들어낸 창틀로 세상을 보는 법. 어린 왕자는 세상 모든 아이들이 자신처럼 호화롭고, 풍족하게 사는 줄 알았다. 아니, 호화라는 단어 자체가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어린 왕자에게는 이런 삶이 이미 일상이자 보편적인 것이었으니.

그런 생각에 처음으로 금이 간 것은, 아마 여덟 살 때로 기억하고 있다.

“마하드.”

“예, 왕자님. 하명하십시오.”

“마하드는 왜 내 장난감을 가져 와?”

“……예?”

“마하드는 왜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중년의 전속 집사는 처음으로 당황함을 나타냈다. 이 어린 왕자님이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어린 왕자의 세상은 처음으로 금이 갔다.

“마하드.”

“예, 왕자님.”

“저 사람은 왜 내 나무를 만지고 있어?”

어린 왕자는 자신이 아끼는 나무를 손질하는 정원사를 가리키며 그리 말했다. 마하드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야, 왕자님이 아끼시는 나무니까요. 당연히 정성껏 다듬어야 하지요. 그게 우리 일입니다.”

“…….”

안슐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게 생각했던 풍요, 사치, 호화를 처음으로 당연하지 않다고 깨달은, 귀중한 경험이기도 했다.

한 번 깨어진 인식은 아물기는커녕 끊임없이 틈을 벌려가며 온갖 의문을 낳았다. 당연한 줄 알았던 맛있는 음식, 당연한 줄 알았던 비싼 장난감, 당연한 줄 알았던 호화로운 궁전이, 전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 깨달은 그 충격은, 어린 아이의 뇌리에 깊은 각인을 남기고 만 것이다.

‘왜 마하드는 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시키지 않지?’

‘왜 저 정원사는 자기 나무가 없지?’

‘이 음식은 누가 만든 거지?’

‘이 장난감은…….’

혼란은 끊이지 않고 거듭되었다. 가끔 아버지를 붙들고 그런 질문을 할 때마다, 아버지는 그저 온화하게 웃기만 했다. 마치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듯이.

모든 것이 주어진 호화로운 인생이었지만, 단 하나 허락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유. 고귀한 왕가의 어린 왕자님은 수행원 없이는 혼자서 돌아다녀서는 안 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안슐은 오랜만에 궁전을 떠나 먼 곳으로 여행을 갔다. 태어나 처음으로 타보는 비행기, 처음으로 건너는 드넓은 바다에 안슐은 환호를 질렀다.

“우와!”

도착한 곳은 별천지였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고층 빌딩이 즐비하고, 거리에 보이는 사람들은 피부가 하얗고 머리가 노란 색이었다. 처음에는 그래서 괴물인 줄 알았다.

“마하드. 저 사람들은 왜 색이 저래?”

“백인이라서 우리와 피부색, 머리색이 다릅니다. 왕자님.”

“백인?”

“예. 이곳은 미국이거든요.”

“미국이 뭐야?”

“UAE와 다른 나라입니다. 잠깐 이걸 보시겠어요? 여기가 왕자님의 조국인 UAE고, 바로 이곳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미국 땅입니다. 뉴욕이지요.”

마하드가 보여준 지구의를 보고, 안슐은 자신이 살고 있던 땅이 둥글다는 걸 처음 알았다. 아울러 조국이라는 곳이 이렇게 작은 나라인 줄도.

아버님은 일 때문에 미국을 방문했다고 했다. 안슐은 수행원과 함께 뉴욕의 한 호텔에 묵게 되었다. 나쁘지 않은 시설이었지만 궁전의 자기 방에 비하면 여러 모로 부족했다.

그날 저녁, 안슐은 수행원을 따돌리고 몰래 호텔을 빠져 나갔다. 순전한 호기심의 발로였다.

“와아…….”

네온 빛이 반짝거리는 밤거리는 황홀하리만큼 멋졌다. 호화롭지는 않지만, 그저 다른 사람들이 숨 쉬는 공간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근데 아무도 없네?”

밤거리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 구경을 하고 싶어서 나왔던 어린 안슐은 갸웃거리며 걸었다. 그때였다.

웬 덩치 좋은 성인 남자들이 그를 에워쌌다. 몸에는 이상한 그림을 새기고, 험상궂은 칼자국이 얼굴에 난 흑인들이었다. 안슐은 본능적인 두려움에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들은 히죽 웃으며 뭐라고 소리치며 다가왔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도, 도와줘! 마하드!”

안슐은 그렇게 외치며 등을 돌리고 도망쳤다. 그러나 열 살 아이가 할렘가 깡패를 피해 얼마나 도주할 수 있겠는가. 결국 붙잡히고 말았다.

흑인들은 자기들끼리 뭐라 낄낄거리며 떠들었다. 거친 손이 우악스럽게 안슐이 차고 있던 팔찌를 뺏었다. 목걸이를 쥐어뜯으려 했다. 안슐은 비명을 질렀다.

그때였다.

“이놈들! 뭐 하는 짓들이냐, 이게!”

한 노인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뭐라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안슐은 그가 자신을 도우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 할배. 또 당신이야?”

“이 녀석들! 저리 꺼지지 못해! 어린 아이를 상대로 그 무슨 험악한 짓이야!”

“……쳇. 내가 베스를 봐서 봐준다, 봐 줘. 가자.”

흑인들은 그렇게 물러갔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은 그제야 쓰러진 안슐에게 다가와 부축을 했다. 안슐은 힘겹게 눈을 뜨고 노인을 보았다.

“괜찮으냐?”

뭐라고 하는지는 여전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안슐은 도와줘서 감사하다고, 겨우 힘겹게 의사표시를 했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다.

* * *

작은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안슐은 잠에서 깼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밝은 햇살이 눈을 부시게 했다. 부스럭거리며 상체를 일으키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몸은 괜찮으냐?”

능숙한 아랍어였다. 안슐은 반가워서 고개를 돌리다가 흠칫 했다. 어제 자신을 구해 준 노인이었다.

“할아버지는, 어제…….”

“너는 어린 아이가 왜 할렘가에는 들어오고 그랬냐?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데.”

“할렘가요?”

“쯧쯧. 보아하니 어디 중동 부호 자식이구만.”

“……어. 그런데 우리말을 할 줄 아세요?”

“어제 밤에 잠깐 배웠다. 아무래도 네놈이 영어를 할 줄 모르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깨달은 건, 노인과 헤어지고 아주 한참이 지나서의 일이다.

노인은 갓 구운 토스트를 내놓으며 말했다.

“먹어라. 아침에 신고는 해놨으니 금방 소식이 올 게다.”

마침 배가 고팠던 안슐은 허겁지겁 토스트를 먹었다. 처음 보는 볼품없는 음식인데도 왜 그리 맛이 있었는지 몰랐다.

식사를 마치고 안슐은 그제야 방을 둘러볼 수 있었다. 방은 비좁고 초라했다. 이런 방이 존재한다는 거 자체가 안슐에게는 크나큰 충격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이런 방에서 살지?

“할아버지는 왜 이런 지저분한 데서 살아요?”

“뭐야? 이놈이…….”

역성을 내려던 노인은, 안슐이 정말로 그것을 궁금하게 여기는 것을 깨달았다. 아울러 저 아이가 이런 방을 보는 것이 태어나 처음이라는 것도.

“따라오너라.”

한숨을 쉬며 자신을 가라앉힌 노인은 안슐의 손을 잡아끌고 집을 나섰다. 좁디좁은 집의 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순간, 두 눈에 담기는 풍경에 안슐은 그만 굳어버리고 말았다.

작고 더러운 판잣집이 끝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곳곳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고, 온갖 오물로 악취 냄새가 가득했다. 무엇을 잘못 먹었는지 눈이 풀려서 헤롱거리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쓰러져서 실실 웃고 있고, 맨살을 차마 가려주지 못하는 낡은 옷을 입은 성인 여자들이 산발이 된 머리로 힘없이 걷고 있었다.

무엇보다 안슐의 마음에 큰 충격을 준 건, 자신 또래의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었다. 더럽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서로 엉겨 흙장난을 하는 와중에도 얼굴 가득한 천진난만한 웃음이, 왜 그렇게 날카로운 자국을 가슴에 남겼었는지.

“보아하니 남부러울 거 없는 집안에서 온갖 호사를 다 누리고 자란 모양이구나.”

“…….”

“하지만 세상에는 이렇게 좁고 더러운 곳에서 꿈도 희망도 없이 사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그 점을 알아 두거라, 아이야.”

“…….”

“아, 물론 나는 잠깐 일이 안 풀려서 이리 된 거다. 망할 제이크, 그놈이 예산 지원만 제대로 해줬어도 내 집은 팔진 않아도 됐을 텐데…….”

신고 접수가 제대로 되었는지, 아침에 바로 수행원들이 경찰을 데리고 그를 찾으러 왔다. 안슐은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단단히 혼이 났다. 하지만 혼이 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날 아침에 본, 할렘가의 풍경은 지울 수 없는 각인을 남겼으니까.

그 더러운 풍경은, 안슐이 여덟 살 때 처음으로 품은 의문이 가장 저급한 형태로 돌아온 대답이기도 했다.

‘왜 모두가 나처럼 살 수는 없는 거지?’

뼈가 앙상한 아이들이 흙을 만지며 노는 모습은 꿈에서도 종종 나타나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그런 불행 속에서도 그 아이들은 해맑게 웃고 있었다는 것이다.

안슐은 아버지를 졸랐다. 여행을 자주 다녔다. 비록 수행원들을 끌고 다녀야 했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겨우 1달러면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빈민국의 아이들, 병원비가 없어 살이 썩어 들어가는 사람들, 그리고 썩어나가는 음식을 내다버리는 사람들…….

모든 것이 어린 왕자에게는 충격이었고, 쇼크였다. 안슐은 왜 이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래서 다시 그 노인을 찾았다.

“이사 갔다고 합니다.”

“찾을 순 없어, 마하드?”

“그게, 이름을 아는 이들이 없어서…….”

단서는 노인이 말한 제이크라는 이름 하나였다. 그러나 미국에서 제이크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홍수처럼 넘쳐났다. 결국 안슐은 노인을 다시 만나는 걸 단념해야 했다.

* * *

“그런 일이 있었어요? 전혀 몰랐네요.”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준 사람이었지. 지금은 뭐 하나 궁금하군. 이미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르네.”

“아쉽겠네요. 이름도 모르다니.”

“그 지저분한 거리 풍경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네.”

인간이 본래 가진 근본적인 동정심.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하고 타인을 가엾이 여기는 유대감. 유년 시절 그것을 깨달은 안슐은 새삼 자신이 쓴 왕관의 무게를 실감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고혈을 모으고 모아 만든 제물이었다.

“한때는 모든 이의 행복을 책임지고 싶어했지. 그게 얼마나 치기 어린 생각이었는지는 뒤늦게 깨달았네. 하지만 그런 꿈을 품은 것 자체를 후회하진 않아.”

“…….”

“적어도 내가 거느린 사람들의 행복을 챙겨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귀중한 일인지를 알게 됐으니까. 무릇 왕이라 함은 자신의 사람들만큼은 평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책임져야 하네. 그것이 책임의 무게일세.”

“어쩐지. 안슐은 처음부터 다른 부자들하고 다르다 했는데, 그런 트라우마가 있었군요.”

“난 트라우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네. 아주 귀중한 경험이라 생각하고 있지.”

“아, 제가 말실수를 했나요? 나쁜 뜻으로 한 말은 아니었는데.”

“괜찮아. 자네가 실수하는 거야 어디 한두 번인가?”

“……그렇게 말하면 민망하잖아요.”

안슐은 픽 웃으며 포도주 잔을 쥐었다. 삼십여 년 전의 그 노인,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이미 세상을 등졌겠지?

“회장님.”

“아, 니트로 교수님. 안녕하세요?”

“……제가 생각을 해봤는데, 역시 종신 교수직은 좀 아닌 듯 합니다. 한 삼십년 쯤은 인재 양성에 힘쓰다가 연구소로 옮기는 것도 나쁘지는…….”

“왜요, 혜주가 속썩이던가요? 막 예산 가지고 장난치고 그래요?”

“아닙니다. 그렇지는 않아요.”

“교수님. 저는 교수님을 믿습…….”

새로 영입한 영재인가? 안슐은 교수라 불린 어린 소년을 흘끗 보며 다시 추억에 잠겼다. 잠깐? 그러고 보니 눈매가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데?

해가 저물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아아. 그때 돈 없어서 잠깐 한두 달 할렘가에서 먹고 자고 했지. 거기 무료 배식이 되더라고. 근데 그게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