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596 The Weight of the Crown

“7살? 8살? 아무튼 열 살 미만의 어린 여자아이입니다!”

“이목구비와 머리색을 보면 동양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신원을 증명할 만한 게 전혀 없습니다! 의식을 차리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괴수 관리소는 뒤집어졌다. 일단 급한 대로 피해자를 안전한 곳에 옮기고 의사를 불렀다. 맥박 등 간단한 검사를 마친 의사는 의식을 차리지 못할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다고 진단을 내렸다.

“외견상 문제는 없어 보이나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정밀 검사가 필요합니다.”

“그 부분은 회장님 승인이 필요해요. 알지도 못하는 아이 혈액 검사 같은 걸 할 수도 없잖아요. 나중에 아이 부모가 알면 큰일이 날 텐데.”

“그럼 일단 겉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니 기다립시다.”

브라우니를 잡아서 족치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지금 브라우니는 이곳에 없다. 소녀를 내려놓고 먹이를 찾아 떠난 것이다.

드디어 유지웅이 도착했다. 유럽에서 레이드하다가 연락받은 양반이 이렇게 빨리 도착한 걸 보면, A3가 확실히 빠르긴 빠른 모양이다. 정효주의 얼굴은 긴장으로 잔뜩 굳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여자아이를 납치해 와요? 브라우니가?”

“예. 저희도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는…….”

“브라우니는 아직 안 왔나요?”

“예. 여자아이를 내려놓고 다시 사냥을 간 것 같은데 아직 안 돌아왔습니다.”

“일단 한 번 보죠. 그 아이.”

미리 와서 대기 중인 비서가 둘을 병실로 안내했다. 걱정이 된 직원들이 그 뒤를 따랐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해도, 어찌 되었든 간에 브라우니가 사람에게 해를 입혔다. 이 일이 제니스에 해롭게 작용하지는 않을까 다들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생계가 달린 직장이다 보니 한마음으로 불안했다.

“이 아이인가요?”

“네. 아직 정신이 들지 않고 있습니다.”

“생명에는 지장 없나요?”

“외견상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자세한 건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할 듯합니다. 회장님 승인이 필요합니다. 일단 CT 정도는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렇게 하죠, 그럼.”

병원측이 부리나케 준비를 하는 동안 유지웅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소녀를 살폈다.

7, 8세쯤 되었을까? 얼핏 보면 혼혈 같은, 예쁘고 참한 외모다. 눈동자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눈을 뜨고 웃으면 기가 막히게 예쁠 것 같다. 이대로 십여 년만 지나면 아마 남자 여럿 울리는, 여자 탱커 못지않은 미인으로 성장할 여지가 보인다.

피부는 하얗고 깨끗했으며, 특이하게도 머리카락이 붉고 탐스럽게 빛나고 있었다. 염색을 한 건가 싶었는데 눈썹 색도 같았다. 이 색, 타고난 건가?

발견 당시에는 알몸이었다는데 여자 직원들이 급한 대로 간단한 속옷과 옷을 사와서 입혔다고 한다. 지금은 하얀 환자 가운을 입고 있었다.

정효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아이, 누구 닮지 않았어?”

“뭐야? 어디서 본 적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누구 닮은 거 같은데. 이 머리카락색 보면 생각 안 나니?”

그제야 유지웅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사람보다 더 아름답고 고결해 보이는 여자가 생각났다.

“나미?”

“그치? 닮았지?”

“에이, 하지만 머리카락 빨간 사람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그때 정효주가 흠칫 했다. 유지웅은 놀라서 얼른 눈을 돌렸다. 소녀의 몸이 뒤척이고 있었다. 그는 급히 호출벨을 눌렀다. 의료진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무슨 일이시죠?”

“이 아이 좀 보세요! 깨어나려는 거 같아요!”

의료진의 안색도 밝아졌다. 몸을 뒤척이던 소녀가 드디어 눈을 떴다. 의사가 물었다.

“정신이 드니?”

“…….”

“이 손가락이 보이니? 몇 개?”

“…….”

눈을 뜬 소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초점은 있지만 입을 꾹 다물고 말이 없다. 마치 관찰하듯이 시선이 의사에게서 그 주변으로 옮겨갔다. 의사, 인턴, 간호사를 차례차례 옮겨가던 시선이 정효주에서 잠시 멈칫 했다. 그리고 고개를 가볍게 흔들고는 다시 그 옆의 유지웅에게 시선을 옮겼다. 소녀의 눈이 커졌다.

소녀가 상체를 일으켰다. 놀랍다는 눈으로, 한 손을 힘겹게 들어 올려 유지웅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그는 어리둥절해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

“회장님. 아는 아이…….”

“아빠.”

“…….”

쌔앵 하고 찬바람이 굳었다.

남극의 겨울이라 해도 지금보다는 춥지 않으리라. 유지웅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고, 의료진은 망치라도 한 대 얻어맞은 듯이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의사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수습에 나섰다.

“아이가 착각을 한 모양입니다.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종종 그런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 아마…….”

“아빠!”

소녀는 활짝 웃으며 유지웅의 품으로 와락 달려들었다. 그는 엉겁결에 소녀를 안고 말았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특히 정효주의 표정을.

“효주야, 이건…….”

뭐라 설명을 해야 하는데, 왠지 와이프 시선이 매서워! 입이 떨어지지가 않아!

유지웅의 허리를 꼭 껴안은 채, 눈을 감고 뺨을 부비적하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인다. 다른 사람으로 착각을 했다기에는 너무 절절한데? 이 순간 의료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망상을 다 합치면 아침 드라마 수백 편은 찍고도 남을 것이다.

정효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최 비서.”

“예, 사모님.”

“이 분들 잠시 물려주세요.”

그 말에 ‘입단속’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최 비서는 경호원을 시켜 얼른 의료진을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병실에는 유지웅 커플, 그리고 소녀를 포함해서 셋만 남았다.

“아야!”

유지웅은 갑자기 머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멈칫 했다. 정효주가 그의 머리카락을 몇 개 뽑아든 것이다. 그녀는 이어서 소녀의 머리카락도 뽑았다. 잠깐, 이 시추에이션은?

“무, 무슨 짓이야!”

“검사하려고.”

“너, 설마 날 못 믿어! 얘는 내 애가 아니라고!”

“확실해지면 더 좋지. 안 그러니?”

“나 너랑 사고치고 한 번도 눈 돌린 적 없다니까!”

“알아. 근데 하나 걸리는 게 있어.”

“걸리는 게 대체 뭐가…….”

순간 유지웅은 멈칫 했다. 믿고 싶지 않은 상상이 떠오르고 만 것이다. 혹시 정말로?

“최, 최현주?”

“6년 전이잖아. 이 아이는 7세쯤 되어 보이고. 아주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거 같아.”

“그, 그럴 리가 없어.”

최현주랑 손만 잡고 사귀었던 깨끗한 사이라고 차마 거짓말은 못하겠다. 정효주도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해가 안 간다. 헤어진 다음에 임신을 했다 해도, 그녀 성격이라면 지우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는 꽤 쿨한 여자였으니까.

‘아니야. 혹시?’

불안함과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났다. 헤어진 직후 임신을 했다 치면, 시기상으로 최현주는 자신이 앱서버라는 걸 안 뒤에 임신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 레드 몹의 가능성을 고려해서 훗날 재산을 노리고 만약 지우지 않고 낳아서 키운 거라면? 이거 아주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데?

‘말도 안 돼!’

유지웅은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는 여전히 뺨을 비비적거리는 소녀를 내려다보았다. 생긴 건 딸로 삼고 싶을 정도로 참 예쁘고 귀엽다. 근데! 제발! 부디! 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정효주는 최 비서를 통해 비밀리에 친자 확인 검사를 해달라고 시키고 돌아왔다. 표정이 심각하기는 한데 화가 난 표정은 아니었다. 그게 더 무서웠다. 차라리 화를 내 줘!

“저기, 효주야. 나 진짜…….”

“자기가 한눈 안 판 건 알아. 나도 자기 딸 아니라고 생각해. 그렇게 믿어.”

“근데 왜 검사까지…….”

“믿으니까 검사하는 거야. 확실하게 매듭짓는 게 낫지 않니?”

다행이다. 이제야 평소의 와이프처럼 느껴진다. 유지웅은 한시름 놓았다. 소녀를 찬찬히 살필 여유가 생겼다.

“저, 얘야.”

“응. 아빠.”

“아니. 그러니까 그 아빠란 소리는 빼고…….”

“아버지?”

“아니아니! 그러니까 아직 내가 네 아빠인지 아버지인지 확정이 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그렇게 부르면 섭섭하지! 난 오늘 널 처음 본단 말이야!”

“아이한테 소리치지 마. 놀라잖아.”

“으, 알았어…….”

별로 놀란 거 같지도 않은데? 좋아 죽겠다는 듯이 생글생글 웃으며 떨어지려고 하질 않는다. 그 행복해 보이는 모습에는, 누구보다 불안할 입장의 정효주도 살짝 웃음을 지을 정도였다.

정말 이 아이는 누굴까? 그때 괴수 사육소에서 연락이 왔다.

「브라우니가 사냥에서 돌아왔습니다!」

“금방 갈게요. 자기는 여기서 그 아이 보고 있어. 누가 혹시라도 괜한 거 물어보면 절대 대답하지 말고, 자기 아이 아니라고만 말해. 알았지?”

“어, 알았어.”

“괜한 빌미 주면 안 돼. 나 그럼 가볼게.”

나가기 전에 정효주가 작게 ‘브라우니 이 씨발놈’이라고 중얼거린 거 같긴 한데, 아마 잘못 들은 거 같다. 천사 같은 와이프가 그런 거친 말을 할 리가 없으니까.

“어? 물이다!”

어느새 유지웅을 놓고 창가로 쪼르르 달려간 소녀가 밖을 내다보고 신이 나서 외쳤다. 병원 밖에 있는 조그만 인공 호수를 본 것이다.

“헤엄! 헤엄! 나 헤엄칠래!”

“무슨 이 날씨에…… 야! 아, 안 돼!”

유지웅이 붙잡을 틈도 없이 소녀는 그대로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다. 그는 사색이 되었다. 여기는 5층인데? 이거 오늘 조간 헤드라인에 ‘세계 최고의 부자, 혼외자를 추락시켜 살해!’라고 뜨는 거 아니야?

기겁을 한 그는 얼른 창문을 달려갔다. 하얗게 질린 채로 창문 아래를 내다봤지만, 떨어져 죽어 있어야 할 소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첨벙. 첨벙.

그때였다. 물장구치는 소리에 그는 얼굴을 들다가 경악하고 말았다. 아니, 어떻게 여기서 저기까지 점프했지? 저거 혹시 탱커라도 되는 거야?

소녀는 물과 한 몸이라도 되는 양 유유자적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어떻게 이 거리를 점프했는지, 그리고 5층에서 저기까지 뛰어내리고도 무사한지는 일단 보류. 혼외자로 의심되는 어린 여자아이를 살해한 부자로 헤드라인을 장식하지 않아도 돼서 참으로 다행이었다.

마음이 놓인 유지웅은 소녀가 헤엄치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 잠깐! 다리! 다리가 어디 갔어?”

다리가 있어야 할 곳에 웬 물고기 꼬리가 있었다.

============================ 작품 후기 ============================

"브라우니 이 씨발놈"

PS : 3차 인기 투표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