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598 The Weight of the Crown

“피즈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에 유지웅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묻고 말았다.

“저, 혹시 그럼 엄마 이름은…….”

“나미.”

“……세상에, 맙소사.”

우연이 중첩되면 필연이고, 반복되면 팩트가 된다. 물고기 꼬리가 달린 소녀, 브라우니가 먹이로 착각한 소녀, 피즈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 나미라는 엄마를 가진 소녀, 그리고 나미를 닮은 소녀. 이 반복성이 의미하는 팩트는 하나밖에 없지 않을까?

“너, 나미 씨 딸이었어?”

“씨가 뭐야?”

“……그건, 됐고! 아무튼! 아놔! 그 먹보 백상아리 녀석이 바로 너였단 말이야?”

기억난다. 대양에 데리고 나갔다가 새끼 범고래를 먹이로 착각해서 콱 깨무는 바람에 대판 해양 레이드가 벌어지기도 했었지. 먹을 거라면 일단 깨물고 보는 그 왕성한 먹성이 언제고 큰일을 낼 거 같았는데, 그게 이런 식으로 큰일이 될 줄이야.

‘세상에, 얼마나 절 처먹였으면.’

나미의 모성애가 새삼 무서워진다. 와, 진짜 얼마나 잘 처먹였으면 연약한 레드 몹 수준이던 그 백상아리 새끼가 그새 인간으로 둔갑까지 할 정도가 되었을까?

레지나는 나미가 인간화가 된 것이 레드 결정체로 진화한 것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주요 변수에 관한 가설이 몇 가지 있었다.

하나는 결정체의 등급 그 자체가 인간화를 야기하는 요인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등급보다는 숙성 여부가 야기하는 요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레지나는 둘 중 하나만 작용하기보다는 둘 다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여겼다.

아무튼 확실해졌다. 효웅산업이 개발한 2세대 탐지 장비에도 결정도가 전혀 걸리지 않은 걸 보니, 피즈는 체내 결정체가 숙성된 게 분명했다. 블루가 숙성된 건지 퍼플이 숙성된 건지는 배를 갈라봐야 알겠지만, 아무튼.

“근데 왜! 왜! 내가 니 아빠야!”

“아빠?”

“그러니까 왜! 나미 씨가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기가 막히고 통탄할 일이다. 그 여자는 대체 무슨 한이 맺혀서 자기 새끼, 아니 자기 딸에게 자신을 아버지라 속이고 뭍으로 내보냈단 말인가. 그렇게 잘해줬는데!

* * *

피즈는 인간화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세 달쯤 되었을까.

백상아리 시절의 기억은 흐릿했다. 높은 지적 능력을 얻으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탓이다. 본능에만 충실했던 예전과는 달리 제법 고차원적인 사고도 하게 되었고, 의문도 품게 되었다.

인간이 되고, 엄마한테서 말을 배우면서부터 피즈는 불현듯 이상한 점을 하나둘씩 깨닫기 시작했다.

“엄마. 우리는 왜 다른 물고기랑 생긴 게 달라?”

“다른 물고기들도 생긴 건 다 다른 걸?”

“하지만 우리는 너무 이상하잖아?”

물고기들은 기본적으로 입이 뾰족하게 생겼다. 그리고 팔이 없고 몸이 유선형으로 날렵하다. 헤엄을 빠르게 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엄마와 자신은 그렇지 않다. 얼굴도 동글동글하고, 머리에는 치렁치렁한 털까지 나 있다. 게다가 지느러미가 있어야 할 곳에는 팔이 나 있으며, 손가락도 있다. 이건 너무 이질적인 거 같은데?

헤엄치기 위한 지느러미 꼬리마저 없었으면, 피즈는 우리가 정말 물고기가 맞나 하는 생각까지 품었을 것이다.

“그건 우리가 특별해서 그래.”

“특별?”

“응. 잘 보렴.”

엄마는 손을 가볍게 뻗으며 힘을 집중했다. 순간 엄마의 조그만 손에서부터 요란한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전방을 덮친 충격파에 한창 잘 헤엄치고 있던 어군이 떼죽음 당했다. 피즈는 놀라서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다시 엄마가 손을 아래로 뻗었다. 충격파가 심해의 깊은 곳을 향해 뻗어 나갔다. 잠시 후 우르릉 하는 굉음과 함께 해저 바닥이 갈라지며 붉은 마그마가 튀어나왔다. 잠자고 있던 해저 마그마를 자극한 것이다.

“어때?”

“엄마, 우리는 왜 이렇게 쎄?”

“우리는 특별하거든. 이 바다의 제왕이란다.”

“바다의 제왕?”

뭔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왠지 엄청 멋있는 거 같다. 피즈도 엄마를 흉내 내려고 몇 번이나 낑낑거리며 연습을 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실망해서 시무룩해하는 피즈를 달래주었다.

“우리 애기는 아직 어려서 그래. 좀 더 크면 엄마만큼 잘할 수 있을 거야.”

어느 날 엄마가 커다란 뭔가를 끌고 왔다. 방수가방이라고 했다. 피즈는 그게 뭔지 잘 몰랐다.

“바깥 세상 구경할래?”

“응! 응!”

처음으로 엄마를 따라 뭍으로 올라간 날의 충격을, 피즈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엄마는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하얗고 커다랗고 이상한 물고기(크루즈선) 위로 갔다. 물에서 빠져 나오자 신기하게도 지느러미 꼬리가 사라지고 팔 두 개가 돋아났다. 엄마는 그게 팔이 아니라 다리라고 했다. 아무튼 피즈는 처음으로 얻은 두 다리와, 딱딱한 바닥을 밟고 선 감촉에 마냥 신기해했다.

“자, 준비하자.”

방수가방에서 엄마는 뭔가를 잔뜩 꺼냈다. 옷이라고 했다. 난생 처음으로 옷과 구두를 걸친 피즈는 갑갑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엄마도 입으니까 잠자코 따랐다.

외출 준비를 마친 엄마는 피즈의 손을 잡아끌고 크루즈선 중심으로 이동했다. 홀에 들어선 피즈는 순간 비슷하게 생긴 수많은 생물들의 모습에 놀라고 말았다.

“와! 다들 우리랑 비슷하게 생겼어!”

“인간들이야.”

“인간? 그럼 우리는 인간이야, 엄마?”

“아니.”

“왜? 우리랑 똑같이 생겼는데?”

“저들은 물에 들어가도 꼬리가 안 생기거든. 그리고 물에서는 숨 쉬지도 못해.”

“하지만 똑같이 생겼는 걸?”

“우리가 저들의 모습을 흉내 냈을 뿐이야.”

묵묵히 사람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은, 어떤 미련과 동경의 산물이라는 점을 이해하기에, 아직 피즈는 너무 어렸다.

“알지? 조용히 지켜만 봐야 해.”

“왜? 나도 같이 놀고 싶어. 장난 치고 싶어.”

“안 돼. 우리는 이 배에 밀항한 거니까.”

“밀항? 그게 뭐야?”

“몰래 탄 거야. 허락 없이.”

그러나 엄마의 뜻은 이뤄지지 않았다. 완벽한 조형을 갖춘 두 모녀의 미모는 인세의 것이 아니었고, 초호화 유람선에 탑승한 상류층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기에 충분했다.

“오, 세상에! 저는 무슨 바다의 세이렌이 우리 배에 몰래 탄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우실 수가!”

“제 이름은 그레이브스라고 합니다. 아름다우신 숙녀분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도 될까요?”

“따님도 정말 어여쁘시군요.”

사방에서 정신없이 사람들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피즈는 어안이 벙벙했다. 엄마도 이런 상황까지는 몰랐던 거 같다. 근데 예쁘다는 건 뭘까?

심지어 또래 아이들까지도 접근을 해왔다. 같이 놀고 싶어서 안달이 난 듯이 말을 걸고, 장난을 쳤다.

한바탕 사람들의 관심에 시달린 나미와 피즈는 겨우 크루즈 선박을 빠져 나와 바다로 돌아왔다. 어찌 되었든 간에 처음으로 본 반짝이는 샹들리에와 다양한 옷을 입은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에 피즈는 마냥 즐거웠다.

“재미있었니?”

“응! 또 가고 싶어.”

“그럼 다음에 또 데려가줄게.”

그 뒤로도 나미는 몇 번이나 피즈를 데리고 유람 중인 선박을 밀항했다. 피즈는 이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제법 익숙해졌다. 그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도 알았다.

자신은 물에서 살 수 있지만 그들은 물에서는 살 수 없다.

자신은 꼬리로 빠르게 헤엄칠 수 있지만, 그들은 물에 들어가도 꼬리가 생기지 않는다.

엄마는 바다에서 무엇 하나 무서울 거 없는 존재지만, 저들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피즈는 처음으로 어떤 사실을 깨달았다.

“엄마. 근데 왜 난 아빠가 없어?”

“…….”

“그 사람들은 다 아빠가 있대. 동물들도 다 아빠가 있대. 물고기도 엄마 아빠가 있대.”

“…….”

“내 아빠는 어디 있어?”

“멀리. 아주 멀리 있어.”

“만나러 가면 안 돼?”

“안 돼. 너무 멀어서 못 가.”

“우리는 바다 어디든 갈 수 있잖아?”

“……바다가 아냐.”

바다 말고 다른 곳? 피즈는 갸우뚱거렸다. 땅을 밟아본 적도, 본 적도 없는 피즈에게 육지란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래도 찾아가면 안 돼?”

“갈 수 없어. 우리는 바다를 벗어나면 안 돼.”

“그럼 나 아빠 어떻게 알아 봐?”

어린 피즈는 혹시, 엄마가 자꾸만 유람선에 몰래 밀항해서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이 아빠를 찾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래서 물어봤다. 아빠를 어떻게 알아보는가 하고.

“그, 그냥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보면 알 수 있어?”

“어, 응. 보면,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엄마가 말을 조금 더듬긴 했다. 근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 깨닫기에 피즈는 아직 경험이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엄마 몰래 벗어난 피즈는 신이 나서 마냥 직선으로 쭉 헤엄쳤다. 그러다가 절벽을 보았다.

‘저 위에는 뭐가 있을까?’

배를 탈 때 외에는 수면 위로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 수면과 연결된 저 절벽, 저 위에는 뭐가 있을까? 궁금한 피즈는 절벽을 따라 부상해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놀랐다.

“우와!”

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땅덩어리가 수면 위로 굳건하게 펼쳐져 있었다. 수면 위의 세상은, 수면 아래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물이 없다는 사실을 빼고.

피즈는 신이 나서 육지를 밟았다. 넓고 평평한 곳을 골라 팔다리를 쭉 펴고 누웠다. 잠이 솔솔 왔다. 그리고 뭔가 찌이잉 하고 온몸을 울리는 감각에 기절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웬 사람들이 눈앞에 서 있었다. 피즈는 문득 그 중 두 명에게 시선이 갔다. 엄마와 흡사한 기척이 느껴지는 사람들이었다.

‘여자?’

이제 피즈는 여자와 남자도 구분할 줄 안다. 그 중 한 명은 엄마와 같은 여자였다. 여자는 아빠가 될 수 없으니까 빼자.

그리고 그 옆의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을 땐…….

‘남자?’

남자다.

그리고 엄마와 똑같은 기척이 느껴진다. 세상 어느 누구한테서도 느껴보지 못한 그런 기운. 그럼 이 사람이?

“아빠!”

세상에! 아빠가 날 찾으러 왔어! 너무 기뻐!

============================ 작품 후기 ============================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