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Sparrow of the 00602 Legion

“써, 이 꼬마 숙녀분은 누구입니까?”

“꼬마 숙녀 아니야! 피즈야!”

“피즈?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이이이이 나쁜 여자!”

피즈는 앙증맞은 주먹을 꼭 쥔 채 바르르 떨었다.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 게 어지간히 겁에 질린 듯 보인다. 새끼였던 시절, 수중 레이드에서 테레사한테 크게 한 방 얻어맞은 기억이 생생한 모양이다. 정작 테레사는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아빠!”

팔까지 꼭 붙잡고 매달린다. 다른 손으로는 테레사를 가리키기 바쁘다.

“혼내줘! 혼내줘!”

테레사는 피즈를 빤히 쳐다봤다. 사실 그녀가 휴가 일정을 팽개치고 달려온 건 유세현의 전화 때문이었다. 집에 웬 누나가 들어와서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다나? 도련님을 아끼는 보모로서 상황 파악은 해야겠다 싶어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다.

테레사는 남성우월주의자다. 여자가 남성우월주의자라니 뭔가 이상하긴 한데, 아무튼 그렇다. 근데 우월주의는 어디까지나 성인 한정이다. 어린 아이들은 그저 사랑하고, 보호해줘야 할 대상에 속한다.

“저 아이입니까?”

테레사는 유세현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이는 부끄러운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연애 감정을 모르는 테레사라 해도 무슨 상황인지 한눈에 파악이 되었다.

‘도련님도 드디어 첫 사랑을…….’

정성으로 돌봐온 보모로서 감격하는 건 이해가 가는데, 첫 사랑은 이미 개봉한지 오래 됐다는 점을 본인만 모르는 거 같다.

“이이이! 내가 혼내줄 거야!”

피즈는 테레사를 향해 뛰어들었다. 주먹을 꼭 쥐고 팔을 크게 휘둘렀다. 근데 눈까지 감으면 어떡해?

테레사는 피즈의 어깨를 잡고 가볍게 들어올렸다. 농담 안 하고 깃털처럼 가볍다. 허공에 붕 떠오른 피즈는 팔다리를 마구 휘둘렀다. 어느 것 하나도 테레사한테는 맞추지 못했지만.

“그 아이, 피즈가 변한 거예요.”

“예?”

“동해에 있던 그 피즈요. 나미 아이.”

정효주의 부언설명에 테레사는 눈동자가 커졌다. 그녀는 얼른 피즈를 다시 보았다. 무서운지 눈을 꼭 감은 채, 제발 한 대만 맞아라 하듯이 팔다리만 마구 휘둘러대는 이 아이가? 그 상어 괴수인 피즈라고?

테레사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나미, 그 음란한 암컷이 기어코 자기 새끼까지 저버리고 방탕하게 지내는군. 용서가 안 돼.”

“저기, 쿤겐? 아무래도 그건 아닌 거 같…….”

“좋다. 내가 네 엄마를 찾아주지. 그 음란한 여자를 잡아다가 네 앞에 석고대죄를 시키겠다.”

“우리 엄마 잡지 마! 잡지 마!”

“걱정할 건 아무 것도 없다. 제니스가 못하는 건 없으니까.”

“놔! 이거 놔!”

유지웅은 탈진한 채 소파에 털썩 몸을 묻었다. 왜 이렇게 온몸이 피곤한 건지 모르겠다. 피즈가 온 지 사흘 밖에 안 지났는데 왜 삼 년은 훌쩍 지난 기분이 들지?

“……당분간 조용할 날이 없겠는데.”

“그러게.”

* * *

피즈가 마땅히 입을 만한 옷이 몇 벌 없어서 일단 옷을 사주기로 했다. 그런데 피즈가 한사코 붙어서 떨어지지 않으니 결국 유지웅이 직접 가야 했다. 여기에 유세현도 가세했다.

“나도 아빠랑 옷 사러 갈래!”

유세현이 가세하니 자연히 보디가드 겸 보모 겸 해서 테레사도 함께 하게 되었다. 정효주는 생각보다 인원이 늘어나서 번잡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그 걱정은 곧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우아아앙!”

“어엄마아!”

출발 직전, 이제 겨우 조금씩 말을 하는 쌍둥이 아기들이 울며불며 엄마를 찾았다. 할 수 없이 정효주는 집에 남아서 쌍둥이 아기들을 돌보기로 했다.

“그 백화점은 안 되겠네. 다른 곳으로 가죠.”

“어째서입니까?”

“그 백화점은 내 얼굴을 너무 잘 알아서 안 돼요.”

조수석에서 의아해하던 테레사는 뒤를 돌아보고는 아하 하고 납득했다. BMW 뒷좌석에는 유세현과 피즈가 나란히 앉아서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다. 피즈는 아빠의 옆자리, 즉 조수석을 적대관계에 있는 여자에게 빼앗긴 게 분한지 뚱한 얼굴이었다.

“그렇군요.”

유지웅 커플이 애용하는 백화점은 거의 대부분의 직원이 그를 알아본다. 물론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하면 그의 사진을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사진으로만 보던 사람을 실제로 맞닥뜨렸을 때 알아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만약 피즈를 데리고 그 백화점을 가면? 어떤 식으로든 소문이 흘러나갈 것이다. 제니스 회장이 열 살쯤 되는 어린 여자아이를 데리고 나타난다면, 온갖 다양한 해석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날 것이다.

먼 친척부터 시작해서 혼외자니, 장래 며느릿감이니 하는 억측이 돌고 돌 게 뻔했다.

“출발하죠.”

유지웅은 엑셀을 밟았다. 오늘은 평범한 젊은 아버지 코스프레를 해야 하는 날이다. 피즈야 시키지 않아도 아빠 아빠 하고 부르니 문제될 게 없다. 근데 직원들이 이상하게 보려나?

‘이 나이에 열 살짜리 아이라니…….’

액면가는 스물여섯이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스물여섯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보통은 몇 살 더 아래로 본다.

그런데 열 살쯤 되는 여자아이가 아빠라고 불러봐라. 직원은 아마 몇 살 때 결혼을 한 건지 패닉에 빠질 것이다. 뭐 한두 번 보고 말 매장 직원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알 바 아니지만, 그래도 민망한 건 민망한 거다.

게다가 더욱 큰 문제가 있으니…….

‘쿤겐은?’

테레사는 한창 피어나는 열여덟의 미소녀다. 목을 겨우 스치는 단발이 유일한 아쉬움일 정도로 아름다운 은발에, 늘씬하면서도 육감적인 몸매의 굴곡은 성숙을 마친 여인의 것. 이 조합으로 같이 다니면 아무래도 가족 모임으로 오해를 받기 쉽다.

테레사의 어린 얼굴 때문에 조금 갸웃거려지긴 해도, 애들 엄마로 오해받을 여지가 없진 않다. 친척이나 동생? 생긴 것부터가 인종이 다른데 무슨? 게다가 척 보기에도 동양인이 아닌 피즈가 아빠 아빠라고 부르는 상황 아닌가.

불길한 예감은 그리고 틀리지 않는다.

“따님이 정말 귀여우시네요. 무엇을 입어도 잘 어울립니다. 이렇게 빛이 나는 아이는 처음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이건 어떻습니까? 모녀가 맞춤으로 입으면 참 잘 어울리고 예쁠 것 같습니다만.”

“모, 모녀요?”

백화점 매장 직원들은 대부분 테레사를 애들 엄마로 생각했다. 너무 어려 보이는 얼굴에 갸웃거리긴 했으나, 모델처럼 늘씬하고 육감적인 몸매에 그리 납득을 한 것이다. 결혼을 좀 일찍 했고, 얼굴이 매우 동안이라고.

“아빠! 나 이거! 이거 가질래!”

“……그래.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라.”

포기할 대로 포기한 유지웅은 남성 손님을 위해 준비된 의자에 앉아 얼굴을 감쌌다. 가뜩이나 의류 쇼핑은 남자에게 피곤한 일이다.

‘여자 맞네.’

테레사는 지치지도 않는지 옷을 한꺼번에 꺼내서 아이들에게 대본다, 입혀본다 여념이 없었다. 본인이 스스로 즐기고 있는 듯 밝은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부친에게 당한 학대로 스스로를 남성으로 여기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지만, 저런 모습을 보면 여자는 여자인가 보다.

하긴, 저 얼굴에 저 몸매를 보고 누가 감히 그녀를 남자라 생각할 수 있을까. 그녀가 아무리 남성스럽게 행동하고, 말하고, 사고를 해도, 그녀를 제외한 모든 이는 그녀를 가장 여성스러운 존재로 본다.

‘치료가 안 된댔지, 아마?’

탱커는 최적화된 육체를 유지하게 된다. 그 점 때문에 오히려 정신 질환 치료가 안 된다고 한다. 탱커로 각성하기 전에 자신을 남성으로 각인하게 된 인격이 그대로 고정되었기 때문이다.

치료하고자 해도 이미 탱커로 최적화된 육체는 변화를 거부한다. 카네기에서 온갖 노력을 한 끝에 치료를 포기하게 된 이유다. 평생 저런 인격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땐, 유지웅도 조금 안 되긴 했다.

“이거이거. 나 이거 좋아.”

“안 어울려.”

“정말?”

“못 생겼어. 나라면 안 입어.”

“그럼 뭐 입어?”

“이거 입어.”

쇼핑을 하면서 친해진다고 했던가? 어느덧 피즈와 유세현의 사이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 우애 나쁘지 않은 남매로 보일 정도다. 엄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얻은 아이라며 질시를 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다.

“피곤해 보입니다.”

잠시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옷을 골라보게 놔두고 테레사가 유지웅에게 다가왔다.

“아, 좀 피곤하긴 하네요. 애들까지 데리고 쇼핑 나온 건 별로 없어서.”

“써도 몇 벌 골라 보시는 게 어떻습니까? 자기 옷을 구매하는 거라면 피로가 덜할 겁니다.”

“난 괜찮으니 쿤겐이나 많이 골라요.”

“이 층에는 우리가 살 만한 옷이 없습니다. 7층으로 올라가봐야 합니다.”

듣고 보니 웃긴다. 자신이야 남자니까 남성 의류가 있는 7층에 간다지만, 테레사는 왜?

가만 훑어보니 테레사가 걸치고 있는 옷은 전부 남성 옷이었다. 흰 셔츠에, 타이트한 검은 바지. 그런 옷도 그녀가 걸치고 있으니 무심코 여성 옷이라 착각하게 된다. 옷도 옷걸이에 따라서 다르게 보이나 보다.

“그런데 정말 놀랍습니다. 나미는 그렇다 치고, 피즈마저 인간화가 되다니. 상상도 못했습니다.”

“나도 놀랐어요.”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게 그러니까…….”

아까 간략하게 설명을 했지만, 유지웅은 다시 한 번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 듣고 난 테레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나미에게 돌려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죠. 일단 나미를 찾을 방법을 생각 중이에요. 문제는 나미는 차세대 탐지망도 전혀 안 통한다는 거죠. 그렇다고 공개 광고를 해도 볼 거 같지도 않고…….”

말을 흐리면서 유지웅은 아이들을 보았다. 참 많이 친해진 듯한 아이들의 모습에 괜히 가슴이 따뜻해진다. 아직은 피즈가 머리 하나만큼은 키가 더 크다. 열 살과 여섯 살의 차이려나? 물론 액면가는 피즈가 더 어리겠지만.

‘언제 저리 친해졌지?’

피즈 성격으로 봐서는 유세현을 엄청 견제하고 거리를 둘 것 같았는데, 의외로 안 그런다? 유지웅은 그 점이 신기했다. 아들 녀석이 여자 후리는 재주가 그렇게 뛰어난가 하고 말이다.

“정말? 당근을 싫어해?”

“응.”

“진짜 의외다. 그렇게 안 봤는데.”

“아빠 앞에서 안 그런 척 하는 거야. 엄마, 은근히 음식 가려.”

“그리고, 또? 또? 뭐가 있는데?”

“아, 맞다! 해삼도 싫어해!”

“해삼? 그게 뭐야?”

“잠깐만. 사진 찾고 있어. 여기 이거.”

“와, 이 맛있는 걸 싫어해? 완전 깬다.”

“그렇다니까.”

피즈가 유세현에게 갑자기 잘해주는 진짜 이유가 있었다.

============================ 작품 후기 ============================

괴수여도, 어려도, 미인은 어장관리를 한다.

황태자도 피해갈 수 없는 어장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