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697 Still Strong

팔레스타인의 건국은 세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이 흑석동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포로를 사살하고, 중재에 반발하여 한국에 대량의 핵을 날렸다. 그러나 한국은 100여 발의 핵미사일 전부를 막아내어 국지적인 피해를 입는데 그쳤다. 분노한 한국은 이스라엘과 유대교 그 자체에 선전포고했고, 유대교와 거래하는 모든 국가와 단체, 개인까지도 수교를 끊을 것이라 공표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스라엘을 보며 세계 정상은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결국 흑석동 주인의 의지 하나로 국가가 사라진 것이다. 핵 공격을 받았다는 명분이 있다 하나, 모든 것은 유지웅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하지 못했다.

중국과는 경우가 달랐다.

당시 중국은 유지웅에게 위해를 시도하기는 했어도, 결국 국가가 분열된 것은 무수한 레이더를 억압하며 촉발된 갈등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게 냉정한 분석이었다. 비록 유지웅의 의사가 결정타를 날리긴 했어도.

허나 이스라엘은 오롯이 한 명의 개인이 가진 의지가 국가 하나를 소멸시켰다고 보는 관점이 대세였다. 심지어는.

「흑석동이 핵 공격을 유도한 것 아닌가?」

라는 음모론까지 나왔다. 여기에 또 다른 음모론이 더해졌다.

「배후에서 핵 발사를 적극 유도한 것은 아닌가? 미국을 움직인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흑석동이라면 그럴 만하다, 충분히 가능성 있다, 그런 음모론이 판을 쳤다. 아이러니하게도 핵분열을 무력화한 대규모 붕괴 억제 역장이 음모론을 더욱 부추겼다.

―핵을 막아낼 자신이 있으니까 핵 발사를 유도한 거 아닌가?

―충분히 설득력 있네.

―와, 정말 무섭다. 진짜 가차 없는 냉혈한이네.

음모론을 믿는 자들은 유지웅의 배포에 두려움과 존경심, 반발심 등 다양한 감정을 나타냈다. 반면 한국과 중동, 미국을 필두로 한 유지웅 지지자들은 논할 가치도 없는 음모론이라며 거세게 부딪쳤다.

―우리 지웅이 형님을 흔한 졸부들과 비교하지 마라! 그 분은 절대 그럴 분이 아니시다!

―벌써 까먹었냐? 프레온 괴수 때 인류 존속을 위해서 퍼플 결정체를 쿨하게 내놓으셔서 지구를 구원하신 분이 유지웅 형님이시다. 이스라엘 사건도 인종 청소와 학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가 그 분도 피해를 보신 거라고!

―너, 유대교지?

압도적인 힘은 반발을 낳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순종하며 따르는 이를 더욱 많이 발생시킨다. 유지웅에 많은 것을 의존하는 한국, 미국, 러시아, 중국, 심지어 일본에서는 유지웅 음모론을 일거의 가치도 없다며 강한 냉소를 나타냈다. 중동에서도 그의 인기는 높았다. 안슐과 맺은 친분 덕분이었다.

주로 유럽과 남미에서 음모론이 판을 쳤다. 상대적으로 유지웅의 영향을 덜 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라는 의미였다. 이미 지구는 직간접적으로 제니스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는 처지였다.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곳이라면, 어떤 식으로든지 제니스의 영향권 아래 놓이게 된다. 그것은 21세기를 지배하는, 자명한 패러다임이었다.

* * *

“노틸러스가 도착했습니다.”

“누적 폐기물 전량을 완전 분해하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양이 상당한지라 수개월은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노틸러스의 처리 속도는 문제없으나, 아무래도 중장비를 이용해서 투입하고 배출물을 재정리하는데 시간이 소요됩니다.”

노틸러스는 몇 개월에 한 번씩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쓰레기를 처리한다. 투입된 쓰레기는 원소 혹은 분자 단위로 분리돼서 배출된다. 예를 들어 철, 구리, 아연, 금, 이런 식으로 분리돼서 나오는 식이다.

덕분에 어떤 쓰레기든지 종류를 가리지 않고 100% 광물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광물 시장이 빈약한 한국으로서는 대단한 이득이다. 한국에서 재활용하는 광물이 주는 이익도 상당하지만, 미국에서 획득하는 광물의 양 또한 엄청나다. 게다가 미국에서 처리하는 쓰레기는 처리비용까지 받으니 일석이조다.

여기에 환경오염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다. 덕분에 요즘 한국은 기매립했던 쓰레기를 다시 파내어 옮기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고용 시장도 증가했다.

“아주 떼돈을 벌어들이는군요. 부럽기까지 합니다.”

대통령이 농담조로 말하자 비서실장도 웃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지웅 회장님이 안 부러운 사람도 있습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님.”

“정계에서 은퇴하고 자문단에 정치 부문 자리가 몇 개쯤 남아 있으면 좋을 텐데요.”

“저와 같은 걸 노리시는군요.”

“이런, 비서실장도 그 자리를 노리고 있습니까? 이거 경쟁이 장난 아니겠는데요?”

제니스 연구단지는 기존에는 돈 잡아먹는 하마였다. 물론 붕괴 역장 생성 장치, 결정 에너지 연구 등으로 보이지 않는 엄청난 무형의 이익을 냈지만, 재정적인 면만 따졌을 때는 수익이 전혀 없는 적자사업체였다. 매년 수 조 원에서 수십 조 원을 잡아먹는.

그러나 이제 달라졌다. 노틸러스 이용 방법을 알아낸 연구원들은 쓰레기 처리를 통해 한 해에도 수십 조 원 이상의 돈을 벌어들였다.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쓰레기를 처리하면서 벌어들이는 돈만 해도 수십 조 원이 넘었다. 조국 할인과 우방국 할인을 적용해서 싸게 해주는데도 이 정도다.

여기에 배출된 광물을 판매해서 벌어들이는 돈이 또 상당하다. 국제 광물 시장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큰손은 아니지만, 나름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은 갖게 되었다.

원래 유지웅이 유일하게 취약한 부분이 금속 자원, 즉 광물 쪽이었는데(사실 관심이 없어서 그랬지만), 이제는 그런 말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정부 입장에서 살짝 아쉬운 거라면, 제니스 연구단지가 법적으로는 개인사업체라는 사실 정도다. 직접세 면세 혜택 때문에 연구단지가 노틸러스로 벌어들이는 수십 조 원의 이익에 과세를 하지 못했다.

재미있는 것은 직접세 완전 면제임에도 불구하고 유지웅이 내는 세금이 국내 1위라는 것이다. 개인, 기업을 전부 합쳐서 산출한 수치였다. 바로 물품에 붙는 부가세 때문이다.

유지웅이 수많은 자동차, 보물, 컬렉션과 잡화를 사면서 부담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가세가 작년 한 해만 15조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간접세로만 15조 원을 낸 셈으로, 일성전자가 20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낸 근 4조 원의 법인세보다 월등히 높았던 것이다.

부가세만으로 압도적인 납세 1위를 찍는 인간이니 더 말해 무엇 할까.

제니스는 직원 복지가 세계에서 제일 좋기로 또 유명하다. 급여도 매우 높고 교육비 지원 등 각종 혜택이 많다. 직원이 자녀를 낳거나 자녀를 키우고 있으면 이런저런 항목을 만들어서 돈을 지원해준다.

그래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제니스 그룹은 반드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꿈의 직장이다. 하다못해 흑석동 경비원 자리 하나에도 경쟁률이 미어터진다. 흑석동에서 정원사 하는 게 대기업 과장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 * *

붕괴 역장 생성을 위해 북극곰이 남긴 레드 결정체 사용을 승인할 당시, 유지웅은 결정체가 소멸될 가능성을 살짝 우려했다. 그래도 결정체보다는 핵 공격을 막는 게 우선이라 일단 승인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결정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심지어 결정도가 줄어들지도 않았다.

“레드 결정체는 퍼플 결정체보다 한 차원 높은 항상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퍼플 결정체는 결정 에너지가 일정 이하로 소모되면 대기 내에 존재하는 에너지를 흡수해서 자연스럽게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려고 합니다. 그 한계치를 넘은 에너지를 소모할 경우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사라집니다.”

과거 프레온 괴수를 막기 위해 지구 전역에 미약한 안전지대를 쳤을 때, 퍼플 결정체는 그런 식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레드 결정체는 그런 에너지 항상성이 한 차원 더 높은 수준입니다. 레드 결정체가 원래 그런 것인지, 북극곰 결정체가 핵물질과 융합하여 그런 성질을 지니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래도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적어도 나미, 나디아가 체내에 보유하고 있을 레드 결정체와는 다른 형질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나미 스스로도 북극곰 괴수는 이길 자신이 없다고 했을 정도니, 아마 한 차원 더 강한 힘을 가졌을 게 분명했다.

여기에 북극곰 레드 결정체는 특이한 형질을 갖고 있었다. 결정도 수치가 탐지기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윤이 개발한 차세대 탐지기에도 지직거리기만 할 뿐 정확한 수치가 표시되지 않는다.

이론상 결정체가 지니는 결정 에너지 한계는 135,000이다. 10만이 넘어가면 퍼플이 되고, 135,000에 도달하여 일정한 숙성을 거치면 레드 결정체가 된다. 클래식형 레드 결정체는 붉은 색을 띠지만 결정도 수치는 135,000을 나타낸다.

하지만 북극곰 결정체는 결정도 수치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이 결정체에 함유된 에너지량 따위를 측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유지웅은 설명을 들으며 끄덕거렸다. 사실 반도 제대로 못 알아들었지만 대충 엄청 귀하다는 것은 이해했다.

“그런데 가렌 박사님도 오셨네요?”

“승인을 받고 싶은 실험이 있습니다.”

“제 승인이요?”

유지웅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응시했다. 그는 휘하 과학자들에게 놀라우리만치 자유로운 권한을 줬다. 기초과학 연구라면 지급한 예산 안에서는 얼마든지 허용한다. 단기적인 수익을 기대하고 운용하는 연구소도 아니다.

그런데 자신의 승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하나뿐이다.

“북극곰 결정체가 필요하신가 보네요.”

“예. 그렇습니다.”

최윤과 가렌이 살짝 눈길을 부딪쳤다. 둘은 사적으로는 친한 동료 과학자지만 선의의 경쟁 관계이기도 하다. 특히 결정체학의 일인자이자 결정체와 핵물리학 융합의 일인자인 둘은 연구 주제가 상당수 겹칠 때가 많았다.

물론 예전에 유지웅은 생각 없이 ‘그거 같은 연구 주제 아니에요?’라고 물어봤다가 둘이 크게 삐지는 걸 경험했다. 비전문가가 보기엔 같아 보이지만, 조금도 안 비슷하다나?

‘결정 에너지 밀도 조절 연구와 결정 에너지 밀도 확산 연구가 뭐가 다르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잔뜩 삐진 두 사람한테서 당시 장황하게 ‘우리 둘의 연구가 완전히 다른 이유’를 듣긴 했는데, 솔직히 말해서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이거 어쩌죠? 저도 마침 북극곰 결정체를 가지고 결정 에너지 근원 형태 조명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얼마 전 붕괴 역장 생성 때문에 연구가 많이 지체됐습니다. 저도 여유가 없어요.”

“최 소장, 그렇지만 근원 형태의 에너지로 환원한다는 제 연구에 북극곰 결정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미 시뮬레이션만으로 진행하는 것에도 한계가 부딪쳤어요. 이제부터는 실질적인 실험을 통해 검증해 나가야 합니다.”

“……저기, 제가 보기에 에너지와 근원 어쩌고 하는 거 보니까 대충 비슷한 연구 같은데 그냥 같이 하시면…….”

“달라요!”

“다릅니다!”

“제 연구는 결정 에너지의 근원 형태를 알아내서 그 태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최윤에 이어 가렌도 질 수 없다는 듯이 열변을 토했다.

“제 연구는 결정 에너지를 통해 타에너지, 특히 방사선 에너지를 근원으로 되돌림으로써 결정 에너지로 환원하는 겁니다! 최 소장의 연구와는 방향성이나 목적, 연구 과정이 전혀 다릅니다!”

“가, 같은 거 같은데…….”

“다릅니다!”

진짜 다른 거야, 아니면 서로 지기 싫어서 그냥 아이처럼 경쟁하는 거야?

유지웅은 도움을 청하는 눈으로 니트로를 쳐다봤다. 니트로는 가렌과 최윤이 이처럼 경합할 때 그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훌륭한 중재자였다. 아니, 그 말고는 이런 상황에서 판정을 내려줄 수 있는 인물이 없었다.

“최 소장님은 결정체 그 자체를 연구하고 싶은 거고, 가렌 박사님은 미국 방사능 오염 문제 해결에 결정체를 이용하고 싶은 겁니다.”

“아하, 그런 뜻이었어요? 진작 알아듣게 말하시지…….”

두 과학자는 억울했다. 이미 아까 전에 한 시간 동안 침을 튀겨가며 설명을 한 건데.

니트로가 혀를 쯧쯧 찼다.

“안되겠습니다. 두 분 바쁘신 건 아는데 잠깐 짬을 내서 학생 상대로 강의도 해보고 그러시죠. 비전문가가 이해하지 못할 설명을 하면 어떡합니까.”

그는 진심으로 걱정되었다. 저 사람들 저래서야, 앞으로 예산을 제대로 타낼 수 있을까?

============================ 작품 후기 ============================

교수하다가 온 니트로는 두 사람이 하는 짓 보고 암 걸릴 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