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698 Still Strong

“좋습니다. 이제야 자세가 바로잡혔군요.”

“그, 그래요?”

“칭찬을 하기가 무섭군요. 좀 더 허리를 똑바로 펴시고, 다리에 힘을 주세요. 두 발을 일자로 곧게 만들어 평행을 유지하시고요.”

“아, 알았어요!”

“운동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올바른 자세로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틀린 자세로 운동하면 효과도 적고, 부상의 위험도 높습니다.”

트레이닝복을 입은 테레사가 팔짱을 낀 채 지그시 바라보며 잔소리를 끊임없이 해댔다. 유지웅은 온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가슴 앞에 교차한 두 팔에 덤벨을 쥐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자, 이번엔 벤치프레스를 해보겠습니다. 시범을 보여드리죠.”

테레사는 벤치프레스에 누워 역기를 쥐었다. 그리고 가볍게 위로 들어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약 열 번 정도 천천히 자세를 보여준 테레사는 역기를 놓고 일어났다.

“잘 보셨습니까?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

“끄응…….”

유지웅은 자신 없어 보였다. 한 번 보기만 했는데도 팔의 근육 섬유가 찢어지는 것 같다.

한편 다른 헬스장 회원들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모여서 둘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들은 유지웅과 테레사가 들어서는 순간 운동을 멈추고, 모든 신경을 둘에게 집중했다.

남성 회원들은 테레사의 미모에 반하지 않은 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만큼 그녀의 미모는 미인들 많기로 유명한 이곳에서도 단연 발군이었다. 그들은 테레사가 벤치프레스 시범을 보이는 것을 보고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가슴 움직이는 거 봐라.”

“와, 저거 150kg인데…….”

“맞지? 확실하지?”

남성 회원들은 테레사가 150kg 역기를 가뿐히 들어 올리는 것을 보고 확신했다. 저 가냘픈 몸매에 저 엄청난 힘, 그리고 저 근사한 미모, 답은 하나뿐이다.

“탱커 맞네. 확실해.”

“젠장……. 탱커면 너무 허들이 높잖아?”

사업가를 제외하고 최고 많은 소득을 벌어들이는 전문직은 바로 레이더다. 게다가 탱커는 늙지도 않는다. 때문에 여성 탱커는 가장 뛰어난 신붓감이다.

예쁘지, 안 늙지, 몸매도 좋지, 거기다가 돈도 많이 버니, 어느 남자가 싫어하겠는가. 문제는 여성 탱커는 국내에서 1만여 명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사실이다. 7,000만 인구 중에 겨우 1만 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통계에 따르면 여성 탱커들은 독신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고 한다. 돈도 많고, 예쁘고, 늙지도 않으니 굳이 결혼을 할 필요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재벌집 자제가 매달려도 싫다고 거절하는 게 여성 탱커들이다. 그나마도 결혼을 해도 같은 남성 탱커와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여성 탱커를 와이프로 두고 있는 남자는 매우 희귀하다. 모든 남자들의 꿈이 여성 탱커와 연애하거나 결혼하는 것이지만, 숫자도 희박하고 콧대도 높기 그지없이 그 꿈을 이룬 자들이 없다.

“와, 나 여자 탱커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다.”

“솔직히 저 여자가 예주희보다 더 낫네. 백인이라서 그런가?”

“그 가수 예주희? 나도 저 여자가 더 나은 것 같다.”

“진짜 저 남자 뭐 하는 놈이지?”

온몸에 힘을 줘도 움직이지 않는 역기에 끙끙대던 유지웅은 결국 무게추를 몇 개씩 덜어내고 다시 역기를 잡았다. 테레사는 옆에서 다치지 않도록 역기를 살살 잡아주었다. 역기를 높이 들어 올린 유지웅의 팔이 부들부들 떨리다가, 결국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지고 말았다.

“조심하십시오.”

테레사는 역기가 그의 목을 누르기 전에 한손으로 얼른 역기를 쥐고 지탱했다. 30kg밖에 안 된다지만 가냘픈 여자가 한 손으로 가볍게 지탱하는 모습은 심히 충격적이었다. 과연, 역시 탱커란 말인가.

“닮지 않았어?”

“……나도 그 생각했는데.”

“저번에 아주 제대로 크게 얼굴 나왔었잖아. 닮았지?”

“그러고 보니 저 여자가 부하 직원이라고 했어. 탱커를 부하 직원으로 뒀으면 뻔하지 않아?”

여성 회원들은 자기들끼리 그렇게 수군거렸다. 그동안 유지웅의 정체를 놓고 참 말이 많았다. 그가 댄 가명, 이진석이라는 사실에서 일성그룹의 자제라느니 등 여러 가지 설이 난무했지만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힘을 얻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아무리 일성그룹의 자제라 해도 천만 달러짜리 신발을 동대문에서 산 실내화처럼 신고 다니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매일 같이 바뀌는 고급 외제차가 걸린다. 뿐만 아니라 차고 다니는 시계도 하나같이 수억에서 수십억을 넘어가는 명품일 뿐이다.

얼마 전, 이스라엘이 핵을 발사했을 때 제니스 공격대장이 방송에 나와 직접 국민을 안심시켰다. 덕분에 최소한의 혼란과 희생으로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성 회원들은 그때 이후로 의심을 품었다. 당시 화면에 너무 크게, 그리고 생생하게 잡혔기 때문이다. 원래 여자들이 그런 감은 귀신같다지 않은가?

“맞는 거 같은데?”

“나 들은 적 있어. 메시인가? 그 축구 선수가 제니스 공대장이 갖고 있는 축구 클럽 선수래.”

“아, 저 남자가 천만 달러 주고 샀다는 그 신발?”

“그럼 확실하지 않아?”

“그러게. 제니스 공대장이 아니고 누가 여자 탱커를 부하 직원으로 데리고 다니겠어.”

제니스 공대장쯤은 되어야, 여성 탱커를 개인 헬스 트레이너로 데리고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제니스 공대장쯤은 되어야, 저 남자가 매일 같이 바꿔가며 타고 다니는 차와, 매일 같이 바뀌는 명품 시계와, 그리고 백억 원 상당에 달하는 축구화를 설명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근데 그럼 사람이 왜 이런 데 있어? 집에 개인 헬스장 얼마든지 있을 텐데?”

“…….”

그게 딜레마다.

너무 닮았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얼마 전 생생한 화면에서 보던 것과 닮았다. 여러 가지 정황도 그가 제니스 공격대장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더! 더! 더! 혼란스러운 것이다. 그런 사람이 뭐 하러 이런 동네 헬스장(목 좋은 강남 고급 휘트니스 센터다)에서 얼굴 팔아가면서 운동을 할까? 그를 노리는 파파라치들이 한둘이 아닐 텐데?

“혹시 본인은 아니고, 엄청 닮은 동생이나 일가친척은 아닐까?”

“제니스 공대장이 동생이 있었어?”

“모르지. 워낙 그 집안은 알려진 게 없으니. 인터넷에 쳐도 가족 관계 같은 것도 일절 안 나오잖아.”

“가족이라고 쳐. 그런데 가족한테도 그렇게 막 돈을 줘?”

“얘는. 그 사람한테 1, 2조는 돈도 아니래. 자기 개인 은행에 쌓아둔 예치금만 수천조 원이 넘는다더라. 외화까지 다 합쳐서 그 정도라는데?”

“와, 그럼 그럴 듯하네?”

제니스 공대장이 이런 누추한 곳에서 얼굴 팔아가며 운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엄청 닮은 형제나 뭐 그런 인물은 아닐까? 누군가가 제기한 이 설은 급격한 지지를 얻었다.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일부 여성 회원들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섰다.

“저어, 이진석 씨?”

“네?”

이진석은 이 헬스장에 등록할 때 사용한 가명이다. 역기를 내려놓고 땀을 닦으며 쉬고 있던 유지웅은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의아해서 고개를 들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물어봐도 돼요?”

“뭔데요?”

“혹시 제니스 공격대…….”

말을 잇다 말고 여성 회원은 입을 다물었다. 유지웅의 안색이 급격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무게감이 사방에 짙게 깔렸다. 여성 회원은 직감했다.

‘여, 역시!’

“……어떻게 알았죠?”

“그, 얼마 전에 이스라엘 핵 공격 때 TV에서 봤거든요. 너무 심하게 닮았고, 또 부하 직원이라는 저 분이 아무리 봐도 탱커인 것 같고, 돈도 엄청 많으시고…….”

“부탁이 있어요. 비밀로 해주시겠어요?”

“네?”

아니, 비밀로 하라니. 무슨 재주로? 이미 헬스장 회원들은 거의 다 눈치 까고 있는데?

“집에서 혼자 운동하면 심심하고 그래서 일부러 헬스장 등록한 거예요. 근데 제가 여기 다닌다고 알려지면 소란이 일 것 같아서요. 부디 헬스장 밖으로 안 나가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그, 그럴게요!”

여성 회원은 속으로 아싸! 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제니스 일가가 맞았어! 그렇지 않고서야 저 말도 안 되는 돈지랄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이씨? 이씨면 어느 쪽이지?’

제니스 공대장은 유씨다. 그럼 이종 사촌? 만약 제니스 공대장 어머니가 이씨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 이종사촌에게 돈 1, 2조 원쯤 떼어주는 건 일도 아니겠지. 추정 재산이 몇 경이 넘어간다는 사람이니까. 1, 2조가 어디 돈이겠어?

“그런데 방송에 그렇게 크게 나왔나요?”

“네?”

“너무 급작스러워서 화장도 못하고 나갔는데……. 그래서 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 나오면 어쩌나 고민 많이 했거든요. 아, 근데 역시 단번에 알아보시네.”

“저기, 잠깐만요.”

지금 뭐라고요? 여성 회원은 순간적으로 사고 회로가 어긋나서 제대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그러니까 지금 무슨 소리를 한 거야? 응?

그녀를 패닉에서 깨운 것은 함께 나서준 헬스장 친구였다. 친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저기, 그러니까 이진석 씨가 설마 제니스…….”

“네. 제가 공대장이에요. 이진석은 가명이구요.”

“세상에나!”

소 뒷걸음질하다가 쥐 잡은 게 바로 이럴까. 두 여자는 졸도할 뻔했다. 두 여자뿐만이 아니라. 반쯤 물러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여성 회원들도 경악해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살벌한 적막감이 실내를 흘렀다. 마치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했다. 회원들은 돌처럼 굳어버린 채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다른 이도 아니고 제니스 공대장이라니! 그런 대단한 사람과 여태 같이 운동을 했단 말인가! 그런데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질 못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이 헬스장은 강남 목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의사 등 사회에서 인정받는 전문직 회원도 상당수 많다. 회원의 연령층도 20-30대로 매우 젊다. 사고방식이 깨어 있고, 제니스가 이 나라에서 지닌 영향력을 실감할 만한 인지력을 갖춘 이들이다.

“저, 저기…… 진짜에요? 친척이나 그런 게 아니라 진짜 제니스 공격대장 본인이세요?”

“네, 맞는데요. 알고 물어보신 거 아니었어요?”

“…….”

천연덕스러운 반문에 숨이 넘어간다. 아니, 그런 대단한 이야기를 무슨 점심 뭐 먹을 거냐는 것처럼 간단하게 물어볼 수가 있어! 이쪽도 좀 배려를 해줘야지!

“아무튼 소문 안 나게 잘 부탁해요. 시끄러워지면 저 다른 헬스장 발굴해야 되니까요.”

“아, 알겠어요.”

“쿤겐, 오늘은 이만 해도 되죠?”

“그러죠. 더 이상 했다가는 쓰러지시겠습니다.”

유지웅은 주섬주섬 정리하고 일어났다. 테레사와 둘이 헬스장을 나설 때까지 정적은 깨지지 않았다. 돌부처처럼 굳어 있던 회원들은 그제야 하나둘씩 적막에서 깨어났다.

누군가 말했다.

“이거 기회네요.”

“……?”

“저 분이 여기 다니는 거, 절대로 외부로 발설하지 맙시다. 알았죠, 절대로 그러면 안 됩니다.”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고 운동에 집중할 수 없게 되면 유지웅은 미련 없이 이곳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그날 이후 여자보다 오히려 남성 회원들의 출석률이 월등히 증가했다고 한다.

============================ 작품 후기 ============================

열심히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