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712 Safe Zone

유지웅은 단칼에 모든 것을 정리했다.

“제가 직접 아프리카와 교섭하겠어요.”

일이 복잡해지겠지만 청와대는 오랜만에 희색을 띠었다. 유지웅은 게을러서 잘 안 움직여 버릇해 그렇지, 한 번 나서면 작정하고 밀어붙인다. 그리고 그가 직접 나서야 이익이 극대화된다. 아무래도 황제가 직접 하명하는 것과, 두세 다리 거쳐서 전달되는 것은 포스가 다르니까.

“아프리카 전권 대사들 지금 한국에 있나요? 바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만찬 도중이었지만 비서실장은 즉시 일어나서 알제리 등 아프리카 국가 대사관에 해당 사실을 전했다. 각국 대사들은 두말 않고 부리나케 청와대로 달려왔다. 이동 중에 자기들끼리 다급히 의견을 교류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난들 압니까.”

“귀띔 들은 거라도 없소? 제니스 공격대장이 갑자기 우리를 보자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이오?”

“대강 듣기로는 스팟 필드 관련 문제인데 아무래도 유지웅 회장이 직접 나설 것 같답니다. 저도 청와대쪽 인사를 통해 얼핏 들은 거라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제니스가 직접?”

알제리 대사는 얼굴을 굳혔다. 사실이라면 아프리카에는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다.

스팟 필드를 EU와 아프리카, 그리고 제니스가 놓고 나누면 아무래도 아프리카가 가져가는 파이가 적어진다. 여기서 EU가 탈락하는 것만으로도 아프리카가 가져가는 파이가 커진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다만 아프리카는 스팟 필드에서 레이드 생산 활동을 관리 유지할 국가 통제 능력이 없어 유지웅한테 말도 못 꺼내고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었다.

그런데 유지웅이 직접 나서주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EU는 숟가락을 급히 빼야 할 것이다.

‘어떤 조건을 제안해야 하지?’

대사들은 바쁜 이동 중에도 머릿속으로 갖가지 시나리오를 그렸다. 유지웅이 무엇을 요구할까? 그에게 어떤 이권을 약속하면 되려나? 러시아가 한 정도면 충분할까?

‘아니야, 부족해.’

러시아는 스팟 필드에 관해서 미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이권을 약속했다. 그러나 아프리카가 부담하기에는 충분한 정도의 수준이다.

문제는 러시아와 아프리카의 격차다. 러시아는 스팟 필드를 직접 관리 유지할 능력이 충분하지만, 아프리카는 전적으로 유지웅의 힘에 의지해야 할 부분이 많다.

때문에 러시아가 약속한 이권보다 더 큰 이권을 약속해야 이치에 맞을 것이다. 작은 소수점 하나에도 어마어마한 이익이 오고가는 거래 아닌가.

어떡하면 유지웅이 흡족하게 받아들이면서 본국에도 최대한 이익이 되는 조건을 절충할 수 있을지, 대사들은 머리가 팽팽 돌아가느라 터질 것만 같았다.

골치 아프다. 이런 건 최소 몇 달 동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깊은 토의를 거쳐 도출해야 할 문제인데, 삼십 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겨우 최측근 몇몇만 데리고 상의해야 하다니.

“혹시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하라고 하지는 않겠지요?”

“설마 그럴 리는……. 아니, 아니오. 유지웅 회장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오.”

“이런, 저는 아직 스팟 필드 문제에 관해서 전권위임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빨리 본국과 통화해서 구두 위임이라도 받으시는 게 좋을 거요. 사정을 빨리 설명하시고.”

“후후, 우리 리비아는 이럴 줄 알고 미리 전권 위임을 받아두었소.”

“그 유비무환의 정신, 부럽소. 우리나라는 관료체계가 아직 너무 딱딱해서…….”

아무튼 사막이 위치한 아프리카 대사들은 절충 조건을 떠올리랴, 서둘러 본국과 통화하랴, 이래저래 바빴다.

오늘따라 의전 차량이 왜 이렇게 빠른지 몰랐다. 하다못해 종로에 그 흔한 교통 체증도 없었다. 오늘 서울 사람들 죄다 교외로 휴가라도 나갔나? 왜 이렇게 거리에 차가 없어?

정신없는 와중에 의전 차량들은 줄을 이어 청와대로 들어섰다. 경호원들이 가벼운 수색을 마치고, 만찬이 벌어지는 장소로 대사들을 안내했다. 유지웅과 대통령, 그리고 장관들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차 한 잔을 나누며 담소 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리비아 대사 알슈마흐입니다.”

리비아를 시작으로 대사들은 차례차례 인사를 건네고, 악수를 나누었다. 유지웅과 손을 잡을 때마다 대사들은 가볍게 몸을 떨었다.

이 남자가 술자리에서 농담 삼아 지구의 왕으로 불린다는, 하지만 그 말이 전혀 틀리지도 않은 그 인물? 이렇게 가까이에서 유지웅을 보는 게 처음이었던 아프리카 대사들은 표정 관리가 제대로 안 됐다.

이렇게 어린 청년이 말 한 마디로 온 지구를 들었다 놓았다 하다니, 얼굴을 알고 있음에도 차마 믿어지지가 않는다. 실감이 안 난다고 할까.

“앉으세요. 오시느라 고생했습니다.”

유지웅이 앉을 것을 권하자 다들 착석했다. 새로 참석한 대사들 앞에도 따뜻한 차 한 잔씩이 놓였다.

유지웅이 먼저 말을 꺼냈다.

“EU가 스팟 필드 조성에 관해서 협력안을 체결하자고 제안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을 제시했는지 간략하게 들을 수 있을까요? 혹시 기밀 저촉이 되려나요?”

“아닙니다!”

이쪽은 일러바치고, 아니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는데 알려달라고 하면 너무 고맙지. 대사들은 학교에서 얻어맞은 초등학생이 집에 와서 형에게 이르듯이 미주알고주알 있는 대로 일러바쳤다. 어떤 대사들은 없는 살점을 만들어 붙여 부풀리기도 했다.

여기 모인 나라들은 과거 서구 열강들에게 식민지 침탈을 당해봤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겪고 있었다.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아도 속에 맺힌 한이 과연 어디로 갈까.

“흐응, 그랬군요. 이거 영국도 안 되겠네.”

유지웅이 못마땅한 듯이 중얼거리자 대통령 비서실장이 급히 그에게 귓속말을 했다.

“원래 국제관계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법입니다. 타국간의 관계에 섣불리 끼어드는 것은 자칫 내정간섭이 될 수 있습니다.”

“누가 끼어든대요. 그런 거 안 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국제관계에 유지웅처럼 단순한 방법을 좋아하는 인간이 끼어들면 중간에 죽어나는 것은 업무 대리자들뿐이다.

이 경우는 한국, 특히 청와대와 외교부가 되겠지. 더 이상의 야근은 사양하고 싶다.

“좋습니다.”

유지웅이 박수를 짝 소리나게 쳤다. 대사들은 기대감을 품고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과연 어떤 말이 나올까.

“사실 전 아프리카 지역의 기아 문제 해결에 평소 관심이 많았어요. 무턱대고 나섰다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뿐이라, 제가 지원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지만요. 하지만 스팟 필드는 근본적인 기아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회장님의 지원 덕분에 수많은 아이들이 굶어죽는 것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지웅은 복지 재단을 통해 국제 기근 문제에도 많은 지원을 한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자선 사업을 펼치는 부호로 손꼽히고 있다.

“물론 저도 무료 봉사가 아니니만큼 적절한 대가를 원합니다. 러시아가 스팟 필드 형성에 어떤 조건을 제시했는지 혹시 아시는 바가 있나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스팟 필드의 75%를 유지웅 전용으로 영구 제공하고, 나머지 25%에서 거둬들이는 세수의 50%도 유지웅에게 영구 지급할 것을 약속했다.

유지웅이 제일 많은 지분을 가져가는 것이지만, 애초에 스팟 필드 형성 능력 자체가 그에게 독점되어 있으니 과하다고 할 수도 없는 조건이다. 황무지를 황금 광산으로 만들 수 있는 진귀한 능력 아닌가. 그 이상을 줘도 해당국은 이익이다.

그러나 유지웅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러시아가 거창한 조건을 제시해서 흡족한 건 사실입니다만, 그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일 마음은 없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너무 과한 것은 좋지 않아요. 저 혼자 많은 이익을 독점해봤자 수많은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맬 뿐이죠. 러시아의 조건은 기쁘지만,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을 작정입니다. 여러분들 국가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너그럽게 봐주겠다는 소리? 대사들은 헷갈려서 제대로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국제 관계에 그런 게 어디 있어? 어떻게든 힘 있는 놈이 많이 뜯어가려고 하는 게 정상이지.

“이렇게 하죠. 스팟 필드의 25%는 제가 독점 사용권을 갖고, 나머지 75% 지역에서 거둬들이는 세수의 절반을 추가로 갖겠습니다. 이 조건은 스팟 필드가 유지되는 한 효력을 갖습니다.”

“예? 정말 그 정도면 됩니까?”

그것은 유지웅이 미국측에 제시한 조건과 똑같은 수준의 조건이었다. 아프리카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인 셈이 아닌가?

‘설마 나머지 75%는 방치하려고?’

그래서 대사들은 오히려 불안했다. 저렇게 파격적으로 조건을 낮추는 것은, 나머지는 귀찮으니까 니들이 알아서 하라는 소리가 아닐까?

그럼 나머지 75%에 EU 혹은 대형 공격대 집단 혈들이 서로 많이 차지하려고 판을 칠 테고, 아프리카는 다시금 혼란스러워질 텐데?

그것은 대사들이 결코 바라지 않는 결과였다. 어떻게든 유지웅이 직접 통제를 해줘야 했다.

하지만 아직 그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아프리카 지역의 레이드 체계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고, 또 여러 가지 갈등의 여지도 많으니 나머지 75%에 관해서 제가 해당 정부와 동등한 지위에서 관리감독을 하려고 하는데요, 그 부분은 감당하실 수 있나요?”

“예? 아! 무, 물론입니다!”

유지웅이 발을 뺄 줄 알았던 대사들은 반색해서 얼른 크게 대답을 했다.

“로열티가 50%나 걸려 있는데 제가 직접 나서서 감시해야죠. 비리 통제를 소홀히 하면 제 몫이 깎이잖아요? 미국이야 자기들이 알아서 잘 하니까 상관없지만, 아프리카는 그놈의 혈들이 워낙 난리를 쳐대서……. 아참, 좀 강경한 수단을 쓸 수도 있는데 괜찮으신 거 맞죠?”

“강경한 수단이요? 물론 괜찮습니다!”

괜찮고, 아주 괜찮고말고! 제발 강경한 수단이든 뭐든 써도 좋으니 그놈의 군벌화된 혈들이 설치지 못하게 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덤으로 EU에서도 숟가락 내밀지 못하게 방패막이를 해줬으면 했다.

유지웅은 만족스러운 듯이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럼 행정적인 체계는 여기 청와대와 의논하시면 될 듯하고, 저는 군벌화된 혈들을 위협할 방안을 마련해야겠군요.”

“생각해두신 바가 있으십니까?”

대사들 생각에는, 그냥 유지웅이 공개석상에 나서서 경고 한 마디만 날려도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따로 생각을 해둔 방안이 있는 모양이었다.

“음, 제가 키우고 있는 맹금 괴수 새끼 몇 마리가 있는데 이제 거의 다 자라서 독립할 때가 됐거든요. 영역을 좀 떼어줘야 하는데 한국이 너무 좁아서 고민이었어요. 이참에 잘 됐네요.”

브라우니도 이제 자식들 독립시킬 때 됐다.

============================ 작품 후기 ============================

혈들 긴장타라. 디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