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720 Emperor's Drink

“뭐라고? 아덴이 습격당해?”

바츠 연합 수뇌부는 새벽에 올라온 급보에 급히 일어나 모여야 했다. 절반 이상이 입에서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몇 몇 하위 대원들이 그 모습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다.

“예! 10분 전 세 방향에서 습격을 당했습니다! 현재 저항 중입니다만 적의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속히 지원을 나가야 할 듯 싶습니다!”

“서둘러 지원팀을 꾸립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연합 수뇌부는 급히 지원팀을 보내기 위해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아덴 지역을 점령하는데 공이 큰 까이르뜨 공격대를 중심으로 지원을 가는 게 어떻소? 가장 공이 큰 만큼 아덴의 지리와 상황을 속속들이 알 거라 생각되는데.”

“무슨 소리요? 우리 까이르뜨 공격대가 한 게 뭐가 있다고? 오히려 귀 필츠뤼오나 공격대가 가장 큰 희생을 치르지 않았소? 당연히 필츠뤼오나 공격대를 중심으로 편제를 짜야 하오.”

이권을 다툴 때는 으르렁거리기 바빴던 연합 수뇌부는 지원 편제를 놓고 서로 얼굴에 금칠을 하며 미루기 시작했다.

아슛카드함 본거지를 점령할 때 누구보다 용기백배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일부 하위 대원들은 수뇌부의 그런 모습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을 느끼기도 했다.

보다 못한 어느 대원이 나섰다.

“이럴 때가 아니라 서둘러 아덴을 지원하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덴을 빼앗기면 이곳 본거지도 위험해집니다. 아덴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거점입니다.”

“음.”

수뇌부는 지원에는 수긍하는 눈치였지만 책임을 누가 지느냐에는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서로 차일피일 지휘권을 미루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결국…….

“아덴이 함락되었습니다!”

“뭐? 이렇게 빨리?”

“아덴에서 여기 본거지까지는 직행입니다! 속히 대응 태세를 갖춰야만 합니다!”

아덴이 뚫린 이상 본거지까지는 고속도로다. 수뇌부는 우왕좌왕하며 어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속히 방어팀을 갖춥시다!”

“방어망은?”

“그건 우리 까이르뜨 공격대가 맡겠소!”

“아니, 우리 필츠뤼오나가 맡겠소!”

본거지에는 로켓포 등 재래식 무기 방어 체계가 존재한다. 당연히 이 무기를 제어하는 팀이 직접 육탄전에 나서는 팀보다 피해가 적다. 그러니 연합 수뇌부는 서로 방어망을 맡겠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이러는 동안에도 아슛카드함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라고요!”

누군가의 일침이 강하게 울렸지만 공염불로 끝났다. 결국 가장 인원이 많은 까이르뜨 팀이 무기 제어를 맡게 되었다. 나머지는 울며 겨자 먹기로 본거지 방어에 나섰다.

이곳은 아슛카드함의 가장 큰 기지이자 본거지다. 가장 넓은 면적과 많은 물자를 자랑한다. 뿐만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이곳이 털리면 방사형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른 주요 거점도 죄다 빼앗기게 된다.

어떻게 해서든 본거지만큼은 지켜내야 했다.

“우리 연합의 힘을 보여주자! 아슛카드함 녀석들을 또 한 번 이 땅에서 쫓아낸다!”

방어선 지휘를 맡은 필츠뤼오나는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속마음과는 달리 겉으로는 패기 있게 외쳤다. 그 속마음을 모르고 사기가 한껏 오른 연합원들은 저마다 장비를 굳게 쥔 채 전투에 임할 준비를 마쳤다.

“와아아아! 와아아아!”

연합원들의 사기가 단단히 오른 것을 확인한 필츠뤼오나는 조용히 부관을 불러 지시했다.

“우리 팀원들을 데리고 최대한 안전한 지역에서 싸우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본거지 깊숙이 후퇴해.”

“예?”

“우리 팀의 전력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알겠지?”

부관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말뜻을 깨닫고는 알았다는 듯이 재빠르게 끄덕였다. 필츠뤼오나는 만족스럽게 부관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관제탑에 올랐다.

저 멀리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필츠뤼오나는 탱커의 매서운 눈으로, 어둠 속에서도 수많은 장갑차들이 질주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슛카드함 녀석들, 단단히 준비를 했군.”

맨몸으로 쫓겨난 녀석들이 어디서 저 많은 장갑차들을 구했을까? 문득 의문이 솟았다.

“빼돌린 비자금이 그만큼 어마어마하다는 소리렷다?”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필츠뤼오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번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내면, 연합 수뇌부에서 자신의 입지가 한층 더 올라간다. 아마 바츠의 영향력을 넘어설 지도 모른다.

그리 되면 이권을 차지하는데 있어서도 목소리를 한층 더 높일 수 있고, 그러면…….

슈슈슈슝! 콰아앙!

저 멀리서 수백 개가 넘는 불꽃이 튀었다. 곧 바람을 가르는 소리 뒤로 요란한 폭음이 울렸다. 아슛카드함 녀석들이 포탄을 쏘아대기 시작한 것이다.

포탄, 로켓탄은 비용도 많이 드는 단점이 있지만 딜러의 원거리 공격보다 사거리가 넓고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아슛카드함 녀석들은 멀리서 포격부터 시작했다.

“뭐야? 우리 방어망은?”

필츠뤼오나는 당황해서 부하들을 돌아봤다. 본거지의 방어망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아슛카드함 녀석들이 쏴대는 포격이 사정없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반격의 기미가 없었다.

“까이르뜨 녀석들은 대체 뭐 하는 거야! 어서 가 봐!”

“알겠습니다!”

부하 한 명이 허겁지겁 달려갔다. 필츠뤼오나는 초조한 마음을 안고 기다렸다. 느낌이 영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불안함은 현실이 되었다.

“대, 대장! 큰일났습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까이르뜨 녀석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그, 그게! 무기 통제실이 완전히 박살났습니다! 초토화되었다고요! 까이르뜨 녀석들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뭐라고?”

필츠뤼오나는 하마터면 무릎에서 힘이 풀릴 뻔했다. 설마 했던 예감이 현실이 되었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노호성을 터트렸다.

“이, 이런 찢어죽을 개자식들!”

방어망이 침묵했으니 원거리에서 때려대는 포격에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필츠뤼오나는 급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연합을 구성한 각 군소 공격대들이 허둥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아직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일부는 불안함을 품고 전열을 이탈할 마음을 품은 낌새가 보였고, 일부는 어떻게든 전의를 불태우는 의지가 보였다.

‘망할! 할 수 없다. 우리라도 살아야겠어!’

필츠뤼오나는 급히 부관을 찾아 명령했다.

“대원들을 데리고 서둘러 이탈한다! 이곳은 버리고!”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틀렸어! 아무래도 까이르뜨 녀석들이 먼저 눈치 채고 도망친 것 같다! 망할, 어쩐지 아득바득 후방에 남아서 방어망 제어를 하겠다고 우길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눈치 빠른 쥐는 배가 침몰할 때 제일 먼저 달아난다고 했던가. 가장 인원도 많은 주제에 최후방에서 방어망이나 다루겠다고 우길 때 눈치 챘어야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후회는 가장 늦은 법이다.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부관이 서둘러 휘하 팀원들에게 간략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팀원들은 어리둥절했으나 까이르뜨가 달아났고, 아슛카드함 혈맹에 다시 본거지를 뺏길 위기라는 설명에 더 이상 반박하지 않았다.

“달아나자!”

방어태세를 위해 나선 연합의 다른 군소 공격대가 어찌 되든 말든 필츠뤼오나는 휘하 공격대를 이끌고 달아났다.

딜러의 사정거리까지 거리를 좁힌 아슛카드함 혈맹이 마침내 무차별 공격을 시작했다.

“으, 으아아악!”

“죽어! 죽어!”

“살려줘! 제발!”

연합은 숫자만 많을 뿐 제대로 된 단합과 지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이미 최고 지휘관이 달아나버린 상황에서 유기적인 대응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반면 아슛카드함 혈맹은 반격을 위해 철저히 준비했고, 훈련했으며, 무기까지 충분히 갖추었다. 무차별로 쏟아지는 포격과 딜러의 원거리 공격 앞에 연합은 속절없이 무너져만 갔다.

“항복해라! 항복하면 혈맹원으로 받아준다!”

“항복만이 살 길이다! 어서 항복해라! 어서!”

요란한 확성기 소리가 사방을 진동했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아슛카드함 혈맹원과 그 장갑차뿐이었다.

“바츠 대장만 여기에 있었어도!”

누군가가 피를 토하듯이 부르짖었지만, 이미 결과는 뒤집을 수 없었다. 대세가 기울었음을 깨달은 연합원들은 하나둘씩 무기를 내려놓고 무릎을 꿇었다.

“항복하면 혈맹원으로 받아준다! 필츠뤼오나 그 개자식은 너희를 버리고 도망쳤단 말이다!”

“어서 항복해라! 어서!”

새벽이 걷힐 무렵 전투는 끝이 났다. 연합원은 약 3천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항복했다. 그에 비해 아슛카드함 혈맹은 80명에도 못 미치는 사상자를 냈을 뿐이었다.

“한 달도 안 지났는데, 참 그리운 느낌이군.”

사령실을 찾은 아슛카드함은 오랜 세월을 애용해온 가죽 소파를 황홀한 듯 어루만졌다. 옆에서 까이르뜨가 교활한 표정으로 아부를 했다.

“잘 어울리십니다. 역시 그 자리는 아슛카드함 님을 위해 준비된 자리입니다. 연합 따위가 앉기에는 너무 황송한 자리죠.”

“수고했네. 자네 공은 잊지 않지.”

“제가 뭐 한 게 있겠습니까.”

아슛카드함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연합은 분열 끝에 지리멸렬했고, 그 틈을 노린 아슛카드함 혈맹은 화려하게 복귀했다.

아슛카드함은 본거지를 재정비한 이후, 가장 먼저 군소 공격대의 수장들을 전원 처형했다. 그 중에는 연합을 배반하여 자신의 복귀를 도운 까이르뜨도 포함되어 있었다.

============================ 작품 후기 ============================

글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이나 조언은 감사하나 자기 입맛에 맞게 이렇게 써달라 저렇게 써달라, 이렇게 쓰지 마라 저렇게 쓰지 마라, 하는 참견은 사양하겠습니다.

심지어 아직 쓰지도 않은 차기작까지 관여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러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