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723 Emperor's Drink

‘이왕 설치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지.’

유지웅의 마음가짐이다. 처음부터 하지 않았으면 모르되, 이왕 나선 것 확실하고 깔끔하게 맺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일주일의 장기출장, 일주일의 휴가라는 번거로움을 감당하고 있었다.

원래는 한 달씩 돌아가면서 처리하려 했는데, 와이프를 못 보니까 견딜 수가 없어서 일주일로 수정했다. 일주일 동안 와이프 얼굴 안 보는 것도 정말 많이 참은 거다. 그래서 집에 돌아오면 일단 침실부터 틀어박힌다.

아프리카에 어느 정도의 연민도 있다. 사람을 시켜 이쪽 상황을 알고 보니 가여운 마음도 들었다.

오지랖 넓은 성격은 아니다. 그러나 이왕 나선 거 제대로 판을 뒤엎고 새로 짜줄 정도의 배려는 있었다. 남의 눈에는 무시무시하게 보이겠지만, 그에게는 길을 잃은 아이를 경찰서에 데려다주는, 딱 그 정도의 번거로움이었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지.’

북부 아프리카 전역을 한꺼번에 해방하기란 어렵다. 그러니 알제리만이라도 먼저 해방시키는 게 우선이다. 거대한 바퀴는 처음 돌리기가 힘들지, 일단 한 번 돌아가기 시작하면 스스로 움직임을 가속하는 법이다.

알제리를 해방시키면 그 물결은 파도가, 해일이 되어 온 아프리카로 퍼져 나갈 것이다. 민중이 우리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된다.

그를 위해 바츠 연합을 적극 지원해야 했다. 그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길 칩니다.”

어둠 속에서 몸을 낮추고 있던 유지웅은 케르샨 혈맹 본거지를 가리켰다. 알제리의 3대 혈맹으로 등극한 혈맹이다.

“내일 새벽, 바츠 연합이 케르샨 혈맹 본거지를 기습할 겁니다. 그 전에 우리가 본거지 무기 방어망을 무력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바츠 연합이 피해 없이 이곳을 점령할 수 있어요.”

“지금 녀석들은 방심하고 자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직접 수뇌부를 제거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건 바츠 연합의 몫이자 공으로 남겨놔야 합니다. 무기 방어망을 무력화시켜두는 것으로도 충분해요. 바츠 연합이 도달하는 시기에 맞춰 습격하고, 신속히 철수합니다.”

대원들은 과연 하며 속으로 가볍게 신음했다. 어떤 의미의 신음일까?

‘자기 손에 피를 묻히진 않겠다는 거군.’

‘역시…….’

바츠 연합의 공적으로 남겨야 한다. 언뜻 보면 엄청 좋은 말 같고, 바츠 연합을 배려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 꺼풀 뜯어보면 자기 손에 절대 직접 피를 묻히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혹시라도 일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 모든 것을 철저히 하겠다는 것이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철두철미함에는 대원들도 살짝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역시 세계의 황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명분과 실익을 모두 챙기겠다는 거군. 아프리카가 그 과정에서 얼마의 피를 흘리더라도.’

지금 이게 가장 적은 피를 흘리는 길이라는 것은 안다. 희생을 더 줄이면서 아프리카가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방법은 아마 찾기 어려우리라.

하지만 가장 적은 피라 해도 그 양이 만만치 않다. 벌써 무수한 사람들이 해방이라는 이름 앞에 쓰러져 갔다. 허나 눈 하나 깜짝 않고 꿋꿋이 자기가 정한 길을 향해 나아가는 유지웅의 모습은, 대원들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충분했다.

“가죠!”

“예!”

이미 첩보 공작을 통해 케르샨 혈맹 본거지의 주요 시설과 병력 배치는 낱낱이 파악해둔 상태였다. 자정이 되자마자 사십 인의 공격대는 어둠 속에서 쏜살같이 튀어나갔다.

착용한 고글이 야시경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한밤중이었지만 대낮처럼 사방을 볼 수 있었다. 소리 죽여 빠르게 움직인 그들은 제일 먼저 도달한, 외곽 발칸포 초소에 폭탄을 설치했다.

“여기서 흩어지죠.”

유지웅이 교신기에 대고 낮게 말했다. 대원들은 저마다 작게 대답하고는 조별로 흩어졌다.

유지웅은 어둠 속을 응시했다. 고글에는 파란 LED선이 만든 복잡한 도형과 기호가 표시되고 있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주요 목표가 어디인지를 낱낱이 알려주는 것이다.

대원들은 은밀하게 움직여 모든 거점에 폭약을 설치했다. 대원들에게는 너무 쉬운 작업이었다. 알제리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혈맹치고는 방비가 너무 허술했다.

‘아프리카 군벌들이 그럼 그렇지, 뭐.’

작업을 마친 대원들은 예정된 귀환 포인트에 모였다. 그들은 몸을 낮추고 소리 죽여 기다렸다.

고글에는 LED가 깜박거리며 이곳으로 이동하는 다수의 열원이 표시되고 있었다.

“도착 예정까지 삼십 분 남았습니다.”

“아직, 아직 아니에요. 더 기다려야 해요.”

“5분 안에 케르샨 혈맹도 눈치 채고 비상이 울리게 됩니다.”

“그때가 실행 개시입니다. 기다려요.”

대원들은 긴장해서 끄덕였다.

마침내 저 멀리서 땅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케르샨 혈맹 본거지에 사이렌이 울리며 서치라이트가 사방으로 빛을 뿜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한눈에 보였다. 케르샨 혈맹도 드디어 바츠해방전선의 기습을 알아차린 것이다.

“좋아요, 지금입니다!”

“예!”

통제 임무를 맡은 대원이 고글을 조작해서 무선 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받은 수백 개의 폭약이 일제히 폭발을 일으켰다.

콰앙! 콰과과광!

박격포 초소, 무기고, 전차 기지, 탄약고, 미사일 발사대 등 주요 방어 기능을 갖춘 곳이 모조리 불길에 휩싸였다. 케르샨 혈맹원들은 어찌 된 일인지를 몰라 허둥지둥 댔다.

불길은 어둠을 살라먹을 듯이 거대한 혓바닥을 넘실거렸다. 뜨거운 열기가 사방을 휩쓸었다. 혈맹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흩어져 도망치기 바빴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바츠 연합이 얼마만큼 가까이 왔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좋아요. 이제 철수합니다.”

로켓 사거리에 도달한 바츠 연합이 먼저 로켓을 날리며 외곽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유지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철수 지시를 내렸다.

특수공격대는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 * *

“이게 어떻게 된 건가?”

“모르겠습니다. 분명 우리가 공격하기 전 녀석들의 본거지에서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폭음 정도로 보아 단순 화재가 아니라 고성능 폭약이 대량으로 터진 게 틀림없습니다.”

“……또 안티 블러드인가?”

내복단의 원조, 내복단을 따르는 수많은 군소 공격대와 차별을 두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진 명칭, 안티 블러드. 바츠는 그 이름을 무겁게 읊조렸다.

“좋아. 헥스톨의 위치는?”

“충분히 범위 밖입니다. 녀석을 자극하지 않을 겁니다.”

“다행이군. 서둘러 케르샨 녀석을 몰아내고 우리가 저 본거지를 차지한다.”

“예!”

아프리카에는 옐로 몹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생기더라도 족족 혈맹들이 잡아서 내다 판다. 옐로 몹이 거의 없으니 혈맹들이 서로 대규모로 치고 박고 싸우는 것이다.

물론 혈맹들이 건드리지 못하는 레드 몹은 있다. 하지만 그 개체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게다가 넓은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어, 위치만 제대로 파악하고 거리 유지만 하면 문제될 게 없다.

케르샨 혈맹에서 제일 가까이 있는 레드 몹은 결정도 6,000으로 추정되는 헥스톨이다. 비행형 괴수라서 영역이 넓은 게 흠이지만, 이 정도 거리면 충분히 괜찮다.

혼란에 빠진 케르샨 혈맹을 치는 것은 매우 쉬웠다. 바츠 연합은 수도 많았고, 무기도 충분했으며, 무엇보다 사기가 높았다. 민중의 지지도 함께 하고 있었다.

마침내 케르샨 혈맹 본거지 입성에 성공한 바츠 연합은 깃발을 바꿔 달며 승리의 환호를 널리 퍼트렸다.

바츠는 위험을 남기지 않기 위해, 케르샨 혈맹 수뇌부를 모두 처형했다. 그리고 혈맹원 전원을 감금했다.

“단순 가담자는 죄의 경중에 따라 용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적극 가담자, 혈맹의 이름과 권위를 빌어 악을 행한 자는 철저하게 그 죄를 물을 것이다.”

바츠 연합이 케르샨 혈맹을 무너뜨렸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아프리카 전역을 강타했다. 미국 등 해외에서도 특급 속보로 자세히 다룰 만큼 중대한 일이었다.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바츠해방전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눈을 돌렸다. 부패와 불의로 얼룩진 아프리카가 정의의 옷으로 바꿔 입으려고 하는 원인에 스팟 필드라는 보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아슛카드함을 능가하는 초거대 연합이 탄생했다.

바츠 연합은 단일 규모로는 아슛카드함마저 넘어선다. 물론 압도적인 차이는 아니다. 아슛카드함 혈맹이 다른 혈맹들과 동맹을 맺으면 규모로는 바츠 연합을 능가할 것이다.

하지만 바츠 연합은 수많은 민중, 혈맹의 압제에 시달려온 군소 공격대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아슛카드함 혈맹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적극 주변 혈맹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전면전, 기습, 게릴라전, 음모, 배신, 귀계가 알제리에서 끊어질 날이 없었다. 화약과 피 냄새가 멈추지 않고, 압제에 항거하는 움직임과,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치열하게 싸웠다.

긴 전쟁 끝에 결국 승리한 것은 바츠 연합이었다.

최후까지 저항한 아슛카드함 혈맹을 마침내 무너뜨린 바츠는 군소 공격대 레이더와 수많은 민중의 환호를 받으며, 자신을 위해 마련된 단상에 올랐다.

연설을 시작하기 전, 그는 벅찬 가슴으로 수없이 몰려든 민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안티 블러드가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은 불가능했겠지? 그래, 결국 아직도 행방을 알 수 없나? 그들을 꼭 이 자리에 초대하고 싶었건만…….”

“대장, 안티 블러드는 사실 제니스라는…….”

“됐네.”

“예?”

“굳이 입 밖으로 꺼낼 필요는 없어. 안티 블러드는 아프리카 해방을 위해 일어난 내복단일 뿐이다.”

진지한 암시에 부관은 수긍한 듯 끄덕이고 물러났다. 바츠는 연설을 시작하기 위해 목을 가다듬었다. 그때였다.

“대, 대장! 대장! 큰일 났습니다!”

패전 세력 수색을 맡은 책임자가 달려왔다. 바츠는 뒤탈을 없애기 위해 철저하게 패전 세력을 색출해 내기로 마음먹고, 그 임무를 맡은 팀을 마련했다. 그런데 그 책임자가 사색이 되어 있었다.

“무슨 일인가?”

“탈주한 아슛카드함 녀석들이 13마리 레드 몹 전부를 건드렸습니다! 아마도 같이 죽자는 것 같습니다! 지금 이곳도 매우 위험합니다!”

그때였다. 멀리서 희미한 파공음이 들렸다. 바츠는 놀라서 하늘을 바라봤다.

저 멀리, 새파란 뭔가가 반짝이며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날개였다.

‘헥스톨…….’

차가운 얼음바람이 사방을 덮쳐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눈치 챈 사람들이 도망치려 했으나, 얼음바람은 인정사정없이 그들을 할퀴고 지나갔다.

“으, 으아아아아!”

* * *

“……라고 합니다.”

기내에서 눈을 감고 휴식을 하던 유지웅은 긴급 보고를 받았다. TV로 기분 좋게 바츠의 해방기념식을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던 그는 돌처럼 굳어진 얼굴로 끝까지 보고를 들었다.

십여 초 동안 말이 없던 그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기수 돌려요.”

“알겠습니다.”

한기가 주변을 잠식했다. 유지웅은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장 팀장님. 전원 호출입니다.”

「부공장님도 부를까요?」

“……아뇨, 효주는 됐어요. 효주 빼고 전원 호출입니다. 일단 브라우니 먼저 보내주세요.”

============================ 작품 후기 ============================

"이래도 음모론이라고 우길 겁니까? 더 변론할 거 있으세요?"

"아, 저 진짜 결백하다구요."

"피고는 반성의 기색이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