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Are you still a citizen after 00788 %3C Pre-Season Dealer %3E?

「재계에 놀라운 소문이 돌고 있다. 술병회항으로 유명한 한국공항공사의 박철준 이사가 일성가의 사생아라는 것이다. 익명의 정보 제공자에 따르면, 박철준 이사는 일성그룹의 명예회장인 이형준의 친동생인 이재준 부회장의 사생아라는 것이다.」

「박철준 이사는 술병을 던져 여승무원을 부상 입혀 이륙 직전의 비행기를 회항하게 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승객들이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죄는 여승무원에게 술병을 던진 행위라 볼 수 있다. 이는 명백한 살인미수이며, 만약 여승무원이 사망하기라도 했다면 살인죄가 되는 것이다.」

「박철준 이사는 자신이 가진 힘을 내세워 여승무원에게 합의를 종용했다. 뿐만 아니라 검경을 움직여 살인미수가 적용되지 않도록 했다. 가진 자들의 이런 추악한 행태로 약자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이야말로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할 때다.」

「모든 것은 일성 탓이다. 일성이 이 사태를 책임져야 한다.」

「끝없이 폭락하는 김포공항 주가, 만년 적자에 시달리는 공항의 앞날이 몹시 불투명하다. 특별의 결단이 필요하다.」

뭔가 마지막에 와서 이상한 기사 하나가 스리슬쩍 나타나긴 했지만, 덮어두고 넘어가자.

처음 3류 가십지, 그리고 인터넷 소규모 기사에서 출발한 박철준 비난 기사는 네티즌의 손길을 타고 부지런히 퍼져 나갔다.

네티즌은 처음에는 술병회항의 진실을 알고 경악했고, 박철준이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등 사건을 묻으려 한 점에 분노했으며, 그가 일성그룹 오너가의 사생아라는 스캔들에 경멸을 나타내기에 이르렀다.

―이 기사는 말도 안 된다. 박철준이 일성가의 사생아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일단 성부터 다르잖아?

―사생아니까 당연히 성이 다르지. 너 일성충이지?

―건전한 비판을 제기했을 뿐인데 사람을 빠돌이로 모냐?

―그럼 박철준이 사생아가 아니라는 증거를 가져와 봐!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런 게 어디 있어!

―어딨긴, 대기업들이 잘하는 거잖아? 지들이 잘못해놓고 안 했다는 증거 가져오라고 큰소리치고. 내가 저번에 급발진이 맞다는 증거를 가져오라는 기사 보고 기가 막혔다.

―그건 일성이 아니잖아.

―어차피 다 그 밥에 그 나물인 걸.

인터넷 여론은 흙탕물이 되었다. 사실에 근거한 비판, 루머에 근거한 옹호, 사실에 근거한 옹호, 루머에 근거한 비판이 섞여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루머인지 알 수가 없게 되었다.

이쯤 되면 메이저 언론사도 국민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논평 기사를 내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박철준 이사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가 일성그룹의 사생아라는 루머가 진실처럼 떠도는 여론몰이를 우려했다. 즉 사건의 초점을 박철준 이사의 개인에게 맞춘 것이다.

「초점을 돌리려는 메이저 언론사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진실이 아니라 광고비를 대주는 대기업의 체면이다!」

기다렸다는 듯이 소규모 언론사, 인터넷 언론사에서 그와 같은 행태를 비난하며 들고 일어섰다. 이쯤 되면 바보라도 눈치 챌 수 있었다. 누군가 고의로 박철준 이사와 일성의 치부가 널리 알려지도록 불 지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불을 보듯이 뻔했다.

―유지웅 딜러가 칼을 뽑아들었네. 아주 작정을 한듯.

―확실하냐?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해?

―이 사건 처음 불씨 터트린 게 김범석이잖아. 일성그룹 비자금 관리했던.

―김범석은 비자금이 사실이라고만 터트렸지 그 외에 뭐 따로 한 게 있냐? 없잖아. 그 뒤로는 코빼기도 안 보이는구만.

―코빼기도 안 보인다지만 뻔한 거 아니냐? 뒤에서 유지웅이 여기저기 손쓰고 있을 거다. 또 모르지, 김범석이 유지웅 도와서 열심히 작업 치고 있을지도.

―나라도 8조 원 준다는데 당연히 그러겠다.

일성그룹에 대한 비난이 점점 거세어지자 이에 일성을 옹호하는 이들이 음모론으로 맞불을 놓았다. 박철준의 술병회항에 분개한 이들이 많은 만큼, 그것을 일성의 책임으로까지 묻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백 번 양보해서 박철준이 이재준 부회장의 사생아라고 치자. 그런데 박철준이 잘못한 것이 왜 일성그룹의 책임이냐? 개인과 기업은 엄연히 구분해야지. 엄연히 따지면 박철준이 일성 이름 팔고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너 혹시 직장이 일성이냐?

―여기서 그 얘기가 왜 나오는데?

―아니, 너 하는 말투가 꼭 그런 거 같아서. 애초에 일성이 잘못한 건 유지웅 딜러한테 꼴에 대기업이라고 말도 안 되는 갑질하려다가 역폭풍 맞은 건데, 그 이야기는 왜 쏙 빼는데?

―술병회항에 일성이 휘말린 거랑 유지웅 딜러하고 제휴 사업 파토난 게 무슨 상관인데?

―얼씨구. 꼴갑질하려던 게 아니라 제휴 사업? 알겠다. 넌 역시 일성충이었어.

―현피 뜰래?

일성과 박철준을 놓고 온/오프라인 여론이 온통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든 그때, 케즈빌 펜트하우스에 노크를 한 이들이 있었다.

* * *

“반갑습니다. 대통령, 최재형입니다.”

졸린 눈으로 문을 연 유지웅은 대통령의 인사에 잠시 자신이 헛것을 보았나 하고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경호를 위해 따라온 이들이 그 모습에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비서실장의 표정도 몹시 안 좋았다.

“대통령님이 이런 누추한 곳은 어떻게…… 경호 수칙은 어떻게 하시고요?”

“안 그래도 그 점 때문에 경호실장과 입씨름을 엄청 했습니다. 제가 지금 이곳에 온 것도 비밀입니다.”

“일단 들어오시죠. 좁아터지긴 했지만…….”

유지웅은 대통령을 안으로 안내했다. 대통령은 다소 신기하다는 눈으로 1층 거실을 둘러봤다. 최고급 펜트하우스답게 인테리어가 화려하지만, 곳곳에 갖추어진 가구는 럭셔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홈시어터…… 대형 스크린…… 수많은 각종 게임기와 타이틀……. 집은 그 사람의 품성을 반영한다고 한다. 대통령은 유지웅이 어떤 인간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집에 있는 게 없어서……. 일단 이거라도 드시죠.”

유지웅은 대형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어 물에 씻는다, 프라이팬에 굽는다, 그러더니 뚝딱 요리를 해서 가져왔다. 대통령은 별로 기대도 하지 않고 바라봤다가 의외의 요리에 놀랐다.

“이건 혹시 캐비어 아닌가요?”

“맞아요. 요건 푸아그라하고 캐비어고요. 대충 구워서 맛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기본 스펙이 좋은 애들이니까 못 드실 정도는 아닐 거예요.”

“대단한 미식가이신가 보군요. 혹시 요리 연구가 취미신가요?”

대통령은 정말 놀랐다. 세계 3대 진미라는 것들이 개인 냉장고에서 뚝딱 하고 튀어나오다니. 그것도 요리하는데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혹시 거실을 꾸며놓은 것과는 달리 요리를 깊이 연구하는 취미라도 있는 것은 아닐까?

“맛있는 거 좋아하는 건 맞는데 미식가는 아니고요.”

“그래도 세계 3대 진미를 집 냉장고에 상시 구비해두는 분은 거의 없죠.”

“아, ‘오네가이 냉장고’에 언제 출연 요청 받을지 몰라서요.”

“오네가이…… 뭡니까, 그게?”

“요즘 핫한 예능인데 모르시는구나. 누구누구 냉장고가 더 크고 아름다운지 겨루는 그런 프로그램 있어요.”

“……?”

대통령은 생각했다. 이 청년, 역시 페이스가 범상치가 않다. 국가 원수나 되는 자신을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들다니.

대통령은 차분히 유지웅을 뜯어보았다. 눈빛은 맑고 자신감이 가득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표정 어디에도 긴장감은 보이지 않는다.

스무 살 청년. 이런 경우는 보통 둘 중 하나다. 자신감이 그만큼 넘치거나 아니면 개념이 없거나. 그러나 후자의 경우는 가능성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리라.

“긴히 부탁할 게 있어서 왔습니다.”

“안 들어줄 건데요.”

어렵사리 꺼낸 말이 즉각적으로 거절당하자 대통령은 멍한 얼굴이 되었다. 설마 대통령이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는데 저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비서실장은 벌써부터 얼굴이 빨개져서 붉으락푸르락 했다.

대통령은 이내 평정을 되찾았다. 쓴웃음이 절로 지어졌다.

“제가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알고요.”

“일성 좀 봐 달라, 뭐 중재하러 오신 거 아닌가요? 대통령님 성정이라면 충분히 그렇죠.”

“귀하가 보는 제 성정은 어떻습니까.”

“이상을 추구하지만 철저한 현실주의와 실리주의자?”

“…….”

“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이 이 사회에 심은 고질병을 고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수술 중 대출혈로 환자가 아예 죽어버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태산이죠. 지금은 메스가 아니라 약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죠? 메스를 대는 건 약물 치료로 종양이 좀 더 작아진 다음, 수술 부담을 견딜 수 있는 체력이 됐을 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신 거 아닌가요?”

대통령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분노로 어쩔 줄 모르던 비서실장마저 경악한 눈이 되었다.

어떻게 대통령의 의중을 이렇게 정확히 꿰뚫어 본단 말인가. 그것도 어디 가서 한 번도 말한 적 없던 마음을.

‘이 양반. 저번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그러네.’

“아무튼 저는 일성을 봐줄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니 중재를 하려고 노력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대통령은 차분히 그를 응시했다. 역시 자신이 생각한 대로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강한 힘을 손에 넣은 치기 어린 청년의 칭얼거림이 아니었다.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을 기초로 한 것이다. 방금 그 말로 모든 것이 확실해졌다.

그렇다 해서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법이다.

“압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일성에서 근무하는 직원 수가 30만 명이 넘습니다. 그들의 가족과 협력업체 직원수와 그 가족, 그 모든 점을 고려하면 지금 일성이 붕괴하는 것은 막아야 합니다.”

“그건 마치 비자금 비리를 없던 걸로 하자는 것처럼 들리는데요.”

“죄는 처벌을 해야겠죠. 그러나 그 죄 때문에 그룹 자체가 공중분해 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그리 되면 이 나라도 함께 흔들립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룹 자체가 산산조각 나게 생겼습니다.”

“어차피 오너 일가가 차지하는 지분은 얼마 안 되잖아요. 지분율로 따지면 외국기업이나 다름없는데, 좀 망한다고 해서 뭐 어때요? 기업 하나 망한다고 나라 망하거나 그럴 일 없어요. 잠시 힘들 수 있겠지만 이참에 깔끔하게 털고 새 그릇에 물을 채우면 되죠.”

“그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이 고통받게 됩니다.”

“원래 수술하고 나면 짼 부위가 아픈 법이고, 몸에 좋은 약은 삼키면서 구역질 나오고 그러는 거예요. 감내해야죠.”

“유지웅 씨.”

“아, 아무튼 이번에는 안 돼요. 언제 또 그렇게 돌아가요? 전 절대로 일성 봐줄 마음 없으니까 그리 아세요.”

단호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대통령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 기를 쓰고 옹호하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이래서야 마치 비자금 비리를 지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그런 게 아닌데. 단지 지금은 수술을 견딜 체력이 안 되니까 치료 페이스를 늦추자는 것뿐인데. 상대는 자신의 입장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 점이 싫었다.

“대통령님이 뭔가를 잘못 알고 계신데요.”

그 말에 대통령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유지웅은 키득거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이 대수술을 하기에 딱 적기예요.”

“……?”

“왜냐하면 제가 있으니까요.”

“무슨 말씀이신지…….”

“대기업이 공중분해 되면 나라가 망할 것 같죠? 걱정 마세요. 휴지조각 되면 제가 다시 사들여서 제대로 새 술 담을 테니까.”

“그게 가능하다는 말씀…….”

대통령은 반사적으로 반문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너무 바보 같은 질문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잘 모르시는 것 같은데…….”

유지웅은 깍지를 끼며 소파에 길게 등을 묻었다. 입가에 피어난 조소는, 어린 청년답지 않게 사람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위압감이 있었다.

“제가 마음만 먹으면 이 나라를 통째로 사들일 수도 있습니다.”

============================ 작품 후기 ============================

"사실 지구도 한 번 샀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