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795 %3C Pre-Season Dealer %3E Terrorist? No, I'm not.

칠드그린은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는 현재 위장 신분으로 여행 중이었다. 당분간 그는 EIS 부국장 칠드그린이 아니라, CNN 경제부 기자이자 팀장인 ‘바드’였다.

‘직접 보고 싶다.’

그런 마음이 칠드그린의 한국행을 결심하게 만들었다.

그는 유지웅이 어떤 인물인지 직접 생생하게 보고, 느끼고, 판단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스러운 접촉이 필요했다. 정보부 부국장이란 신분을 알게 되면, 유지웅은 결코 자신에게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법정 관리라…….”

그는 기사를 검색했다. 한국은 지금 일성그룹의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로 시끌벅적했다.

일이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정부의 단호한 의지도 있지만, 기존 다른 대기업의 연합도 컸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앗 뜨거라 하며 놀란 재벌계에서 일성그룹을 버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재벌계의 가장 큰 맏이지만 집단적인 따돌림과 사회 분위기는 당해낼 수 없었다. 그렇게 일성은 버려졌다.

재벌계는 들불처럼 퍼지는 재벌 증오론이 더 이상 커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중의 분노가 해소될 수 있도록 크고 맛있는 미끼를 던져주기로 했다. 그런 이해합치가 이처럼 빠른 법정관리 신청을 이끌어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기획하고 실현해냈다면 정말 대단한 인물이다. 상대하기 쉽지 않겠어.’

어리석은 자들은 우연의 일치라고 치부하고 있지만 칠드그린은 달랐다. 원인 없는 결과란 없다. 심지어 유지웅은 김범석이 비자금 총책임자라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어쩌면 처음 블루 결정체 해외 판로를 모색한 것도 일성이 시비를 걸어오기를 바란 유인수였는지도 모른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살짝 소름이 돋았다. 한국식으로 스무 살이라고 들었다. 그 어린 나이에 저런 깊은 심계가 과연 가능한 것일까?

한국에 도착한 칠드그린은 먼저 유지웅 부모가 살고 있다는 시골로 향했다. 과연 마을 입구에서부터 엄중한 경호망이 이뤄지고 있었다.

유지웅이 따로 고용한 사설경호원 외에 정부에서도 많은 인력을 파견해서 안전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 외국인은 아예 마을에 들어설 수조차 없었다.

‘최재형 정부는 무적 근딜과 같은 배를 탔다. 그렇다면 누가 선주고, 누가 선장인가?’

정부가 유지웅 가족을 보호한다. 세간에서는 유지웅의 영향력과 무력을 의식한, 어쩔 수 없는 정치적인 타협이라고 해석했다. 함부로 그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는 만큼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예우를 보인 것이라는 관점이다.

그러나 칠드그린은 다르게 판단했다. 저 정도 삼엄한 경계는 정부에서 누구보다 신경질적으로 유지웅 부모의 안전을 신경 쓰고 있다는 증거였다.

만약 타국에서 유지웅 부모를 납치해 그를 협박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는 부모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그것만큼은 무조건 방지해야 한다.

「지웅아! 우리가 보고 있다!」

마을 입구에 걸린 거대한 플랜카드였다. 마을 주민들이 유지웅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테러범이냐, 아니냐.

아직도 유지웅을 놓고 끊어지지 않는 떡밥 논쟁이었다. 그가 하는 발언이나 위협적인 제스처를 보면 테러범에 가까운데, 막상 그가 지닌 힘은 테러범을 한참 넘어섰다.

총만 지니면 테러범이지만 핵을 지니면 군벌이 된다. 그렇다면 후자에 가까우면서, 정부도 쉬이 건드리지 못하는 그는 어느 선상에 두어야 할까?

‘어떻게 테러범이라는 건지. 쯧쯧.’

칠드그린은 플랜카드를 보며 혀를 찼다.

해외에서는 6:4 정도로 그를 테러범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러나 국내 공기는 전혀 다르다. 직접 한국을 돌아다니며 피부로 느끼니 실감할 수 있었다.

많은 한국인들이 유지웅에 관한 것, 그가 한 행위에 관한 판단을 논쟁하거나 보류 중이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어느 누구도 그를 테러범이라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그가 위험한 인물이거나 체포해야 한다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 전체가 그를 당연한 사회 구성원으로 여기고 있는 상황인데, 그를 테러범으로 규정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국을 테러국으로 지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국력이 비약적으로 증대했다는 반증이 될 뿐이다.

시골을 떠난 칠드그린은 여의도 케즈빌을 방문했다. 과연 그곳도 삼엄한 경계망이 펼쳐지고 있었다. 통행까지 통제하진 않지만 곳곳에 정복을 입은 경찰들이 감시의 눈길을 번뜩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대의 세단이 미끄러지듯이 다가와 도로에 섰다. 기사가 얼른 내려서 뒷좌석의 문을 열어주었다.

머리가 반쯤 벗겨진, 배가 나온 중년의 남자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내렸다. 칠드그린은 그가 누군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김범석이었다.

“수고들 하시게.”

김범석은 거리에서 경계 중인 경찰들에게 의기양양하게 치하의 말을 건네고는 케즈빌로 향했다. 칠드그린은 놓칠세라 얼른 그에게 접근했지만, 경찰이 제지했다.

“더 이상 접근하시는 건 곤란합니다.”

“CNN 경제부 기자 바드라고 합니다. 잠시 취재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백인이 쏟아내는 유창한 한국어에 호기심이 생겼는지 김범석은 그 자리에 멈췄다. 고개를 돌린 그는 두 눈 가득 흥미를 품고 다가왔다.

“CNN 소속 기자라고요?”

“예. 요즘 한창 유명세를 타고 계신 미스터 유지웅을 취재하기 위해 멀리 미국에서 여기까지 날아왔습니다. 헌데 너무 경호망이 삼엄해서 취재가 어렵습니다. 어떻게 안 될까요?”

“허어. 어떻게 감히 그 분을 취재할 생각을……. 그 분은 일개 기자가 알현을 요청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아니오.”

김범석은 말은 그리 하면서 속으로는 흡족해서 어깨를 으쓱했다. 얼마나 취재가 고팠으면 이렇게 한국어가 유창한 기자를 찾아내어 여기까지 보냈을까. 그 도도한 CNN이 말이다.

“그래도 그 먼 미국에서 왔는데, 명함이나 한 장 주시오. 내가 나중에 보도 자료라도 돌려드리지.”

“고맙습니다, Sir.”

“뭐 Sir까지야…….”

말은 그리 해도 Sir라 불린 게 기분이 좋았는지 김범석은 입이 귀에 걸렸다.

겉만 보면 참 속을 알기 쉬운 인물 같다. 그러나 칠드그린은 그가 한때 182조 원의 비자금을 총관리했던 인물이자, 지금은 유지웅의 개인 비서이며, 8조 원이 넘어가는 자산가라는 점을 잊지 않았다.

후덕하고 수더분해 보이는 모습 뒤에는 남들이 모르는 치열한 번뜩임이 살아 있을 것이다. 겉모습에 속아 쉽게 생각했다가는 오히려 이쪽이 크게 다친다.

칠드그린은 어쨌든 가벼운 접점을 만들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오늘은 이만 돌아가기로 했다. 오늘 아침에 막 한국에 도착했는데 시골까지 들렀다 서울로 돌아오느라 몸도 피곤했다.

‘망원랜드나 가야겠어.’

근무 시간은 끝났다. 칠드그린은 망원랜드를 향해 산뜻한 발걸음을 옮겼다.

망원랜드.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대형 카지노다.

강원랜드와 더불어 유일하게 내국인 출입이 허가되는 합법적인 카지노로 국가가 100% 지분을 가지고 운영한다. 내국인 출입이 허용된다 하나 출입객의 70% 이상이 외국인들이다.

칠드그린은 도박이나 카드게임을 그리 즐겨하지 않는다. 그런 그가 망원랜드로 향한 것은…….

「자, 이번에 소개해드릴 상품은 멀리 스위스 제네바에서 날아온 파텍필립 블루세이버 No.1입니다!」

시계 애호가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한 그 절대 시계가, 오늘 이곳에서 공개되기 때문이다.

* * *

유려하고, 아름다웠다.

매끄러운 광택, 투명한 금속 케이스는 섬세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부품을 속살처럼 수줍게 보여주고 있었다. 조명의 각도가 변할 때마다 반사되는 광택도 거듭해서 달라진다. 계절은 물론이요 별자리까지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는 디자인은, 말 그대로 하나의 세계를 저 조그만 시계에 담아낸 것이다.

칠드그린은 당연하게도 파텍필립 블루세이버 No.1의 아름다운 위용에 모든 것을 빼앗겼다. 몸도, 마음도, 그리고 영혼까지도.

단 한 번이라도 저 것을 손목에 감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칠드그린은 불현듯 손목에 차고 있는 파텍필립 레플리카 시계가 창피해졌다.

「블루세이버 경매는 오늘 자정에 진행하겠습니다!」

칠드그린은 시계를 보았다. 8시다. 경매가 진행되기까지는 아직 4시간이 남아 있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블루세이버는 과연 얼마나 낙찰될 것인가. 3,000만 달러? 4,000만 달러? 아니면 그 이상?

그는 자신의 주머니를 확인했다. 대충 500달러가 들어 있었다. 이것만 해도 적은 돈은 아니지만, 블루세이버라는 이름 앞에서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먼지일 뿐이다.

지폐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머릿속에 번쩍 하고 불이 일었다.

‘그래! 이것은 운명이야!’

어쩌면 세계 최고의 낙찰가로 시계 경매 역사를 다시 쓸지 모르는 녀석과 지금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다. 이것은 신이 인도한 운명 같은 게 아닐까?

‘내 운명을 시험해보겠다!’

칠드그린은 급히 환전소로 가서 지폐를 모조리 칩으로 바꿨다.

그는 뛰어난 머리를 지녔다. 도박을 즐겨하지는 않지만 카드게임이라면 자신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숫자를 외우고 계산하는 방법으로 라스베이거스의 내로라하는 카드 딜러들을 격침하고 다닌 적도 있었다.

운보다는 계산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카드 게임만을 골라 다닌 그는 순식간에 칩을 불렸다. 500달러의 칩은 순식간에 2,000달러로 불어났다. 그러나 아직 한참 멀었다.

「블랙잭 : 최소 배팅액 1,000 달러」

2,000 달러를 넘긴 그는 드디어 블랙잭 테이블로 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 적어도 십만 달러 이상을 만들어야 전문 포커러들이 모이는 포커룸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포커룸에서 그들의 주머니를 제대로 털 수만 있다면, 수천만 달러를 손에 쥐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 블루세이버는 자신의 것이 된다.

‘됐어!’

블랙잭 테이블에 온지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12만 달러를 쥘 수 있었다.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30분이었다. 경매가 시작되기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 마음이 다급해진 그는 칩을 마구 쓸어 담은 채 포커룸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만 손님, 아직 게임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이런!’

그는 당혹스러웠다. 두 개의 테이블 중 하나는 비어 있고, 다른 하나는 이미 자리가 꽉 차 있었다. 포커러들 얼굴을 보니 이제 갓 게임을 시작한 것 같다. 아마 당분간은 빈자리가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룸은 없습니까?”

“다른 룸에 가셔도 당장 자리가 나지는 않을 겁니다. 이 방에서 기다리시는 게 게임을 가장 빠르게 시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런…….”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적어도 4,000만 달러, 아니 그 이상을 만들어야 블루세이버를 노릴 수 있는데!

“아, 대기 중인 다른 손님이 한 분 계신데 그 분과 잠깐 이 테이블에서 1대1 게임을 하시는 건 어떨까요?”

“1대1…….”

칠드그린은 얼굴을 찌푸렸다. 1대1을 해서 과연 얼마나 털어낼 수 있을까. 상대가 다이다이만 하면 얼마 따지도 못하고 시간만 버릴 뿐이다.

그러나 이대로 시간을 죽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칠드그린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 분이 다른 게임 테이블에 구경을 가셔서요. 곧 모셔오겠습니다.”

헐벗은 여자 직원이 정중하게 인사하고는 사라졌다. 칠드그린은 빈 테이블에 앉아 허망한 기분으로 기다렸다.

“아, 이분이에요? 드디어 나도 한 게임 할 수 있겠다.”

익숙한 목소리에 칠드그린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리다 말고 그만 소리를 지를 뻔했다.

‘유지웅 딜러!’

아니,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칠드그린은 펄쩍 뛸 듯이 놀랐으나 그 놀람은 곧 기쁨으로 변했다.

됐다!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됐다! 그와 접선한다는 목적도 달성할 수 있고, 파텍필립도 살 수 있게 됐다! 왜냐하면 그는 한국 제일의 부자이자, 곧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남자였으니까.

‘좋았어! 행운의 여신이 내게 미소 짓는군.’

과연 그럴까?

============================ 작품 후기 ============================

(트위스티드 페이커님이 유가메쉬 님 근처로 운명을 시전하였습니다.)

행운의 여신 : 도망쳐요 페이커!! 그는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