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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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의장은 어색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모두 입을 다문 채 주변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불편한 적막 속에서 경계하듯이 옆에 앉은 사람을 살핀다.

‘저 사람은 누구야?’

‘다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우리는 왜 여기 부른 거지?’

‘백악관에서 대체 왜…….’

영문도 모르고 끌려오다시피 오니 백악관 회의실의 고급 가죽 소파도 마냥 불편하기만 했다. 이유라도 설명해주면 좋을 텐데,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모두 모였군요.”

낯선, 하지만 왠지 들어본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불편한 얼굴로 착석해 있던 이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가벼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이미 면식이 있는 니트로와 최윤만이 놀람이 덜했다.

“당신은…….”

가렌은 눈을 치켜떴다.

처음 보는 얼굴이지만 모를 수가 없는 인물이다. 유지웅, 바야흐로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아닌가. 교황은 몰라도 유지웅은 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를 가리키는 표현은 많다. 희대의 테러리스트, 동아시아 반도국의 독재자, 세계 최강의 레이더, 걸어 다니는 전략 병기, 곧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될 인물 등등.

미국에 있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어째서 여기에 나타났는지 가렌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이렇게 뵙게 뵈어 반갑습니다. 유지웅이라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저를 모르시는 분은 없죠?”

아마 이 세상에서 당신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요. 가렌은 그 말이 목구멍까지 나올 뻔했다.

“시간이 없으니 곧바로 여러분들을 모은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가져와주세요.”

백악관 보좌관은 속으로 가볍게 투덜거리며 미리 준비한 대로 프리젠테이션 세팅을 했다. 무슨 자기가 백악관 주인이라도 되는 양 설치고 다니는 게 너무 자연스럽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해서, 여러분은 블랙 몹을 잡을 수 있도록 MD개발 및 전투 데이터 수집, 그리고 퍼플 결정체 분석에 걸쳐 모든 보조 지원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

긴 설명이 끝났지만 아무도 말이 없었다. 그들은 블랙 몹의 존재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특히 최윤과 니트로의 표정이 볼만 했다. 백발이 성성한 니트로가 더듬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퍼플 결정체? 그럼 블랙 등급 괴수의 체내에는 보라색 결정체가 들어있단 말이오?”

“그렇죠.”

“교수님, 내기는 제가 이겼군요.”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니트로의 눈에는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이상했다. 자신의 계산대로라면 블루 결정체의 상위는 붉은색이어야 하는데?

“말도 안 되오! 귀하의 설명대로라면, 히카리가 최초의 블랙 몹이라는 소리인데, 잡아서 배를 갈라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녀석의 결정체색을 알 수 있단 말이오!”

“……그건 그렇기도 하네요.”

유지웅의 설명이 자기 가설을 거든 것 덕분에 조금 의기양양해 있던 최윤도 그 점에는 수긍했다.

장태준, 가렌 등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직접 본 적도 없는 결정체 색을 어떻게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아직은 가설로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심지어 유지웅은 관련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지 않은가?

“음…….”

유지웅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균열, 화이트 등급, 레드 결정체 등등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이들이 쉬이 믿지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설득하는 게 좀 귀찮다.

이들의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신뢰를 얻어야 편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은 그 다음에 해야 할 일, 원래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한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당장 먹힐 만한 말을 생각해냈다.

“직접 봤습니다. 그래서 압니다.”

“……!”

“그, 그 말은 설마……?”

“네. 히카리 이전에 직접 블랙 몹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건 이 세상에서 저만이 압니다.”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칠드그린의 눈이 번쩍 뜨였다. 다른 이들의 얼굴에도 경악이 가득했다. 회의에 참관한 백악관측 인물들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에 휩싸였다.

충격적인 발언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누구 하나 어수룩한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은 순식간에 어떤 가정을 떠올렸다.

‘혹시?’

그 상상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호기심을 참지 못한 니트로가 기어코 말문을 열었다.

“결정체를 봤다면…… 그 블랙 몹은 죽은 겁니까?”

“그렇죠.”

“……어떻게 죽은 겁니까?”

“그건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이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퍼플 결정체를 흡수해서 제 힘으로 삼았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둘러대기가 되었겠지? 유지웅은 훌륭한 거짓말이라고 속으로 자화자찬했다. 노코멘트를 한 이유는 자세하게 거짓말을 만들다가 들통 날까봐서였다.

‘그랬구나!’

모든 이들은 속으로 일제히 무릎을 쳤다. 그제야 유지웅의 비상식적인 강함이 이해되었다.

상상이 그려진다. 평범한 레이더였던 유지웅은 우연히 죽어가는 블랙 몹을 발견했을 것이다. 자연사인지, 다른 괴수와 싸우다가 당한 건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유지웅이 처리한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괴수가 죽으면서 퍼플 결정체를 남겼을 테고, 유지웅은 그걸 가지려다가 그만 사고로 몸에 흡수되었을 것이다. 어찌어찌 기적이 일어나 죽지 않고 살아났고, 대신 퍼플 결정체의 막대한 힘을 품게 되었겠지.

결정도가 10만 이상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레드 몹도 혼자서 때려잡고, 총탄도 튕겨내고, 장거리 포격도 가하고, 혼자서 다 해먹는 거겠지.

‘괴수 방어막?’

가렌은 문득 거기에 생각이 미쳤다. 유지웅은 로켓 같은 재래식 무기가 통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그가 탱커이기 때문에 그런 거라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과연 이 사람을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가?’

인간 같지 않게 무지막지한 힘을 지녔다는 의미가 아니다. 퍼플 결정체를 취해 괴수의 힘을 온전히 손에 넣은 그는, 이미 인간을 벗어난 그 무언가가 아닐까? 어쩌면 그의 몸에도 괴수의 방어막이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자, 아무튼 저는 히카리의 기동력은 도저히 따라잡지 못하니까 그 점도 고려해서 어떡하면 녀석을 잡을 수 있는지 고려해주세요. 걸리기만 하면 한 방에 그냥 콱 보내 버릴 수 있으니까, 그 점은 염려하지 마시고요. 세계 평화가 여러분의 어깨에 달려 있습니다.”

유지웅은 손뼉을 치며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 그럼 저는 한국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서둘러 주세요. 파이팅!”

“…….”

응원인지 조롱인지 모를 격려를 마지막으로 유지웅은 회의실을 나섰다. 이제 다시 회의실에는 그의 부름을 받고 모인 이들만이 남았다.

최윤이 먼저 침묵을 깼다.

“인간이 결정체, 아니 괴수의 힘을 흡수하는 게 과연 가능합니까?”

“그런 이론이 있기는 했소. 하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사장되었지. 결점이 너무 많, 아니 허황된 이론이었소.”

가렌이 먼저 말을 받고, 니트로가 그 뒤를 이어 말했다.

“결정체의 안정성을 생각하면 귀속 반응 그 이상의 반응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정설이야. 하물며 인간의 체내에 완전히 흡수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지.”

“그리고 그 힘을 인간이 온전히 끌어낸다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죠.”

장태준이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놀라움, 불신의 빛이 가득했다.

세상에! 퍼플 결정체를 얻었다니! 그리고 그 힘을 마음대로 다루다니! 누구라도 쉬이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결과를 직접 눈으로 봤습니다.”

마침내 칠드그린이 말을 떼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는 진중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는 일반적인 레이더를 아득히 넘어선 힘을 지녔습니다. 레드 몹을 혼자서, 그것도 단숨에 때려잡는 힘은 그 동안 그 원리가 납득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그 모든 것을 명쾌하게 만들어버리죠.”

“그렇지만 그 가능성은 일억 분의 일도 되지 않소.”

“그러나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

칠드그린의 말은 반박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모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퍼플 결정체의 힘을 얻은 인간, 그를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까? 그는 과연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만에 하나…….”

최윤이 조심스럽게 어떤 가설을 꺼내려는 순간 칠드그린이 가볍게 손을 들어 제지했다.

“무엇을 염려하시는지 압니다. 그 말은 꺼내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듣는 귀가 너무 많습니다.”

최윤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하려던 것은 인간의 괴수화 염려 가능성이었다.

지금이야 유지웅이 멀쩡히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훗날 그가 괴수의 힘에 먹히면 어떻게 되는가? 인류는 최악의 천적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지 않은가?

“우리가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블랙 몹 히카리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 그리고 유지웅 딜러가 히카리를 처치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어쨌거나 당장 위험한 건 히카리니까 말이야.”

니트로가 거들고 나섰다. 최윤은 침묵했고, 가렌은 팔짱을 낀 채 눈을 내리 깔았다. 장태준은 회의가 돌아가는 분위기를 조용히 살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요?”

가렌이 그제야 칠드그린의 신원에 궁금증을 느끼고 물었다. 결정체나 괴수 전문가도 아닌 듯한데 왜 그가 이 자리에 있는지 이해가 안 갔다.

“EIS 부국장입니다.”

“EIS? 그거 첩보 조직 아니오? 부국장이면 실무진 수장이라는 소린데……. 왜 당신이 이 자리에?”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파텍필립 로얄 클래스 회원권에 혹해서 오긴 왔는데, 왜 아직도 유지웅이 자신을 불렀는지는 이해가 안 갔다. 괴수 잡는데 자신이 무슨 도움이 된다고?

============================ 작품 후기 ============================

보약이라도 지어 먹어야겠어여 기력이 너무 딸림..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