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845 %3C Pre-Season Dealer %3E This is crazy.

정효주는 모처럼 기분이 좋았다. 창문 아래로 보이는, 드넓은 푸른 바다에 가슴이 시원해졌다. 듬성듬성 보이는 흰 구름을 보며 감탄을 터트리던 그녀가 밝은 얼굴로 돌아봤다.

“이거 정말 니 거야?”

“그렇다니까.”

“와, 이런 거 엄청 비쌀 텐데. 막 몇 백억씩 하는 거 아니야?”

개인 전용기가 보통 그 정도 가격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한 말인데 유지웅의 반응은 영 달랐다.

“그런 보급형은 얼마 멀리 날지도 못해. 못해도 3, 4천억은 줘야 좀 타고 다닐만 하지.”

“4, 4천억?”

상상도 못할 금액에 정효주는 기가 죽었다. 유지웅은 그걸 보고 살짝 아쉬워했다.

“수십 조 짜리 결제 확인서에 막 도장 찍어댔으면서, 겨우 전용기 하나에 벌벌 떨어?”

“그, 그렇지만 그거랑 이건 다르잖아! 그건 그냥 숫자일 뿐이고, 이건 지금 내가 실제로 타고 있는 걸!”

“숫자나 실물이나, 인출하고 팔아치우면 결국 다 똑같은 현금이지 뭘.”

“…….”

한두 번 이러는 것도 아니라서 정효주는 이제 그에 관해 말하는 것을 포기했다. 뭐 허당인 것도 아니고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자격이 있는 남자니까 이해해야지.

“나 전용기는 처음 타 봐.”

“뭐? 정말?”

“으, 응……. 이상하려나?”

정효주는 수줍은지 얼굴을 붉혔다. 유지웅은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수긍한다는 듯이 끄덕였다.

“하긴, 사는 게 퍽퍽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아, 아니거든! 세상에 전용기 탑승 경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이해한다니까.”

“이익! 누굴 비행기 한 번 못 타본 사람처럼 보지 말란 말이야!”

“어? 그 이야기가 아니었어?”

“전용기랑 비행기는 다르지! 모든 비행기가 전용기인 건 아니잖아!”

그렇게 티격태격도 하고, 소소한 잡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하다 보니 어느새 전용기는 텍사스에 도착했다.

이번 방문은 극비로 했기에 공항에는 별다른 인파가 몰리지는 않았다. 정부 고위층 인물 몇 명이 마중을 나왔을 뿐이다.

“미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부통령 스미스 J 에드워드입니다.”

“유지웅입니다. 반가워요. 그리고 이쪽은…….”

그렇지 않아도 부통령의 날카로운 눈빛은 유지웅과 대동한 미모의 소녀에게 향해 있었다. 희고 앳된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늘씬하면서도 굴곡 있는 몸매가 인상적이었다.

“정효주라고 해요. 제 여자친구.”

“어우, 야…….”

정효주는 당당한 소개에 부끄러움 반, 놀라움 반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부통령의 눈빛이 살짝 예리해졌다.

‘여자친구?’

한국 내에서 유지웅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얻은 정보들이 있었다. 지금처럼 그에 관한 보안이 강화되기 전에 얻은 자료들이다.

그중 하나가 그의 주변인물 중 하나인 정효주였는데, 정보부에서는 특별한 사이다 아니다를 놓고 입씨름이 길었다. 그런데 유지웅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했다.

‘독재자의 애인이라.’

가히 나라 하나쯤은 흔들 수 있는 미모라 생각하며, 부통령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과연 듣던대로 아름다우시군요.”

굳이 통역을 거치지 않아도 ‘Beautiful’이란 단어쯤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효주는 더더욱 부끄러워졌다.

“가, 감사해요…….”

인사를 나누고, 부통령이 직접 유지웅을 안내했다. 공항 밖에는 대기시켜놓은 VIP 의전 차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를 지나가던 여행객들은 대체 누가 왔는지 호기심을 보였지만, 경호원의 가드 때문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했다.

차량에 오른 뒤 부통령이 물었다.

“특별한 언질 없이 미국을 방문하셔서 대통령 각하께서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그냥 관광이나 할까 해서요. 텍사스가 볼거리가 넘쳐난다고 들었거든요.”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텍사스 하면 사나이들의 고향이지요. 드넓은 농장과 갖은 역사 명소, 그리고 우주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 우주센터가 있지요.”

“네. 그래서 천천히 둘러볼까 합니다.”

“저희가 가이드와 경호원을 붙여드리겠습니다.”

“아니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우리끼리 그냥 신혼여행 온 기분 좀 내려구요.”

“하지만 혹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 때문에 번거로우실 것 같아서……. 마블 코믹스의 영웅은 몰라도 귀하의 얼굴은 아는 사람들은 참 많습니다.”

“오, 제가 미국에서 그렇게 유명하단 말이죠? 이거 어깨가 아주 으쓱해지는데요?”

부통령은 살짝 쓴웃음을 머금었다가 그만 정효주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눈빛을 했다.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둘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른 체 했다.

‘유명? 엄청 유명하긴 하지…….’

악명으로 유명하지만 말이다. 그의 악명에 급을 매기자면, 600개의 인피니트 스톤이 박힌 건틀렛을 장착한 타노스 정도는 되지 않을까.

‘정말 관광이 목적인가?’

패드 컴퓨터로 텍사스 관광 지역을 계속 검색하는 모습을 흘끗 보며 부통령은 생각했다. 지금까지 한 행동을 보면 정말로 관광을 목적으로 온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워낙 예측이 불가능한 인물 아닌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을 내릴 순 없다.

설령 정말 관광이 목적이라 치자. 그래도 이쪽은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 그 때문에 부통령이 직접 온 것 아닌가.

“근래 한국에서 UN 재가입을 놓고 여론이 들끓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요? 난 왜 못 들었지?”

“…….”

비공식이기는 해도, 나름대로 외교석상이라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참 사람이 할 말 없게끔 대답한다. 정효주가 다 창피해서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

“흠흠! 아무튼 만약 한국이 UN에 다시 가입한다면 우리 미국은 지원을 할 의사가 있습니다.”

“쫓아낼 땐 언제고…….”

“그, 그것은…….”

“뭐, 우리 이제 썸 타기로 한 사이니까 그럴 수 있죠. 저도 이해해요. 제가 말이 이런 건 원래 그런 거니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아, 예.”

부통령은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유지웅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전 반대예요.”

“네?”

부통령은 펄쩍 뛸 듯이 놀랐다. 아니, UN에 다시 가입하지 않겠다고? 이게 무슨 소리야?

“UN회원국이면 이것저것 지켜야 할 규제도 많고, 체면도 차려야 하고, 또 상부상조도 해야 하고, 아무튼 신경 쓸 게 많아서 귀찮아요. 하지만 탈퇴하고 혼자 놀다 보니 이것만큼 편할 게 없네요. 역시 저는 단체생활 스타일이 아닌가 봐요.”

“하, 하지만!”

“결정체 시장으로 무역 활동도 알음알음 잘 되겠다, 뭐 문제 될 게 없는데 굳이 재가입할 필요가 있을까요? 번거롭기만 할 텐데? 아무튼 전 재가입은 반대예요. 뭐, 정부에서 다시 가입한다고 결정하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내 관할이 아니니 그건 어쩔 수 없지, 라고 유지웅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물론 부통령 입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내용이었다. 한국은 UN에 재가입할 일이 없을 거라는 으름장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것이 확고한 의사인지, 아니면 더 큰 것을 얻어내기 위한 밀고 당기기인지는 알아야 했다. 그리고 그건 이 자리에서 당장 알아낼 수는 없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확실히 그 뜻을 전하죠.”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부탁이 있어요.”

“무엇이든지 말씀하시지요. 제 능력이 닿는 한에서는 뭐든지 돕겠습니다.”

“록펠러 가문 사람들을 좀 만나고 싶은데, 혹시 자리를 주선해줄 수 있나요?”

“록펠러요?”

부통령의 눈빛에 다시금 긴장감이 깃들었다. 다른 이름도 아닌 록펠러란 이름이, 다른 인물도 아닌 유지웅 입에서 나왔다는 게 몹시 걸렸다.

‘혹시?’

설마 관광 어쩌구 한 것도 결국은 록펠러와 접촉하기 위한 핑계? 부통령은 그렇게 확신했다.

“네, 기왕이면 가문 내에서 중요한 입지를 가진 직계 쪽이었으면 더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 안에 주선하지요.”

“부탁합니다.”

그렇게 부통령은 약간의 이득과 큰 숙제를 함께 안은 채 유지웅을 텍사스 어느 고급 호텔까지 바래다주었다. 그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호텔 전체를 통째로 빌리고, 보이지 않는 곳곳에 경호원을 배치했다.

“왜 투룸이야. 그 아저씨 진짜 센스 없네.”

“잘 때 몰래 들어오면 안 돼! 나 문 잠그고 잘 거야!”

“그럼 난 문 부수고 들어가야지.”

“그, 그게 뭐야!”

어쨌든 첫날 관광은 대강 주변을 둘러보고, 맛있는 식사를 하고 그렇게 종료했다. 혹시라도 그가 몰래 들어올까 봐 정효주는 문을 잠그고 잤다.

그리고 곤히 자고 있던 한밤중이었다.

“효주야, 효주야.”

“헉!”

몸을 흔드는 느낌에 잠에서 깬 정효주는 펄쩍 뛸 듯이 놀랐다. 유지웅이 손가락을 세워 입에 대고 말했다.

“나가자. 옷 입어.”

“어, 어딜?”

“갈 데가 있어. 아무 소리 말고 따라 와.”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정효주는 부끄럽고,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하면서도 일단 옷을 챙겨 입었다. 왠지 그의 말을 거역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너 근데 어떻게 들어왔니?”

“손잡이 부수고.”

“…….”

한 대 때려도 돼?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너도 탱커니까 조용히 움직일 수 있지? 경호원한테 안 들키게 창문으로 빠져 나가자.”

“대체 어딜 가려고?”

“응. 몸에 좋은 거 잡으려고.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았어.”

“……몸에 좋은 거?”

============================ 작품 후기 ============================

응. 보라색 맛나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