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872 %3C Pre-Season Dealer Side %3E Terrorist, and?

세인은 입을 열 수 없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손녀가 저렇게 흉악하게 변하다니! 언제 꿈이라도 한 번 꿔봤겠는가. 그는 눈앞의 소녀가 손녀의 탈을 쓴 다른 사람이 아닌가 하는 바보 같은 의심까지 했다.

“……그래,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다. 그동안 네 아비 때문에 쌓인 게 많았구나. 이해한다.”

“이해를 바라는 게 아닙니다. 카네기 가문은 제 겁니다.”

“테레사, 서두를 것 없다. 일단 그간 밀린 회포나 풀자꾸나.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도 들어보고 싶구나.”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테레사…….”

“지금 당장 직계 친족들을 불러 주세요. 가문의 주인으로서 몇 가지 이야기를 할 게 있습니다.”

“테레사!”

세인은 엄한 표정을 지으며 크게 호통을 쳤다. 어린 철부지의 칭얼거림도 들어주는데 한도가 있다. 더 이상 참지 않고 크게 혼을 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콰과과광!

쿤겐이 오른손을 뿌리듯이 흘렸다. 손끝에서 빛이 흘러나오며 정원을 덮쳤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정원 한 구석이 쓸려나갔다. 세인이 제일 아끼던 조각상도 폭발에 휩쓸려 먼지로 변했다.

“…….”

세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경호원들도 반사적으로 총을 꺼내 겨누었지만,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탱커에게 권총은 통하지 않는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과연 그녀가 이 자리에서 미쳐 날뛰면, 누가 그걸 막을 수 있을까.

‘도저히 막을 수 없다.’

경호실장은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 채로 세인을 흘끗 바라봤다. 적어도 이 자리는 무력이 아닌 대화로 넘겨야 한다. 상대는 주먹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다.

“……알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친족들을 불러 주마.”

“들어가시죠, 회장님.”

정중하지만 딱딱하다. 하지만 그 음성 어디에도 떨림은 느껴지지 않는다. 손녀는 더 이상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너를 그리 변하게 했느냐.’

세인은 어두운 낯빛으로 쿤겐을 흘끔 살폈다. 마지막으로 접한 보고서는, 쿤겐이 유지웅과 만났다고 되어 있었다.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지웅이 쿤겐에게 커다란 변화를 끼친 것은 분명하리라.

단순한 열두 살 아이의 칭얼거림으로 치부하기에는, 그녀가 지닌 힘이 워낙 무시무시했다. 작정하고 강력범이 된 탱커를 과연 누가 막을 것인가.

과연 쿤겐이 탱커의 힘을 위협으로만 사용할지, 실제 행사의 카드로 고려하고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세인은 부디 후자는 아니기를 바랬다.

* * *

고급 대형 세단이 정문을 통과했다. 세인의 네 번째 아들, 안소니 카네기는 부서진 정문을 보고 의아하게 여겼다.

‘문이 왜?’

무슨 사고라도 있었나? 그는 쿤겐이 가문 복귀 기념으로 성대하게 날렸다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본가 저택 앞에는 대형 세단이 줄을 지어 정차해 있었다. 다른 친족들도 이제 막 도착한 모양이었다. 1층 홀에 들어서자 형제 친척들이 끼리끼리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테레사가 가문으로 돌아왔다고?”

“겨우 그거 때문에 우리를 다 불러요? 할아버님도 대체 무슨 생각이시죠?”

“겨우가 아니다. 어쩌면 유언장을 고칠지도 모른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한 여인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반문했다.

“유언장을 고쳐요? 설마 테레사 그 아이한테 US크리스탈 지분을 넘겨주시려는 건 아니겠죠?”

“설마가 사실일지도. 어쨌든 윌리스 형의 자식이잖나. 셋째이기는 하지만.”

“하늘에서 윌리스만 좋아하겠군.”

“말도 안 돼.”

일부는 대수롭지 않게, 일부는 심각하게, 그리고 일부는 두고 보자는 식으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카타리나와 카시오페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직 오지 않은 두 여자를 놓고 카네기 일가원들은 수군거렸다.

가문의 최고 연장자인 세인 아민 카네기는 자식을 여럿 두었다. 그의 장자인 윌리스 카네기는 오래 전 교통사고로 부부가 사망했으며, 딸만 셋을 남겼다. 카타리나, 카시오페, 그리고 테레사였다.

아들을 원했던 윌리스가 생전에 테레사를 아들처럼 키우려고 부단히 노력한 것은 가문에서 유명한 사실이었다. 그 과정에서 학대도 심심찮게 수반되었다. 가족 내에 갈등과 불화만 남겨놓은 채 일찍 죽었으니, 콩가루 집안이 된 것은 당연했다.

장자의 딸로서 막대한 지분이 예정된 두 언니가 과연 어떻게 나올까? 직계와 방계를 가리지 않고 친족들의 궁금증은 동일했다.

“쿤겐이 딜러였나, 탱커였나?”

“탱커일 걸요.”

“그럼 쿤겐이 US크리스탈을 맡는 것도 모양새가 나쁘진 않겠군. 어쨌든 US크리스탈은 결정체 산업체잖나. 아버님도 그 점을 고려하고 계시겠지.”

“그래서 미련을 놓지 못했지요.”

“이제 겨우 열두 살인데 무슨 미련까지야. 그 정도 반항쯤이야 조부 입장에서 얼마든지 귀엽게 받아들일 수 있지. 카타리나와 카시오페한테 좋은 이야기는 아니겠어.”

“카시오페는 제외해야죠. 그 아이는 기업 경영에는 일절 관심이 없어요.”

“하긴, 그럼 카타리나와 테레사의 자매 대립 구도로 가는 건가? 카시오페가 누구 손을 들어주느냐에 달렸겠군.”

US크리스탈은 카네기 가문의 중심이자, 가문이 보유한 가장 큰 기업이었다. 미국 최대 종합 결정체 산업회사로 손꼽히는 대기업으로, 이 회사를 쥐고 있는 인물이 가문을 주도하게 된다.

다른 일가원들도 탐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나, US크리스탈은 세인이 단단히 손에 쥐고 있어 어찌해볼 수가 없었다. 섣부르게 욕심을 냈다가는 세인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하지만 내 것이 될 수 없다 해서 구경까지 못하리란 법은 없는 법, 그 공룡 회사를 놓고 벌어질 자매 대립이 어떻게 흘러들어갈지 지켜보는 것도 꽤 신선한 경험이다.

‘여차하면 틈이 생길 수도 있고.’

일가원들의 생각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그래서 모두들 바쁜 와중에도 세인의 호출에 응해 본가로 모인 것이다.

“회장님께서 오십니다.”

가정실장이 와서 넌지시 알렸다. 과연 계단 위에서 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의실로 안내하지도 않고, 1층 접객홀에서 바로 이야기를 할 셈인가. 일가원들은 의아했다. 세인은 본래 형식과 격식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왜 저러시지?’

‘나이 먹더니 성격이 급해졌나?’

“모두 왔구나. 오랜만에 가족이 이렇게 모이니 반갑다. 먼저…….”

“시간이 없습니다. 제가 바로 이야기하지요.”

그때였다. 세인의 옆에 서 있던 쿤겐이 불쑥 앞으로 나섰다. 그제야 일가원들도 그녀를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감히 세인이 말하고 있는데 그것을 가로채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여기 있는 이들 중 한 명이 그랬다가는 큰 호통을 받고 가문에서 쫓겨났을 것이다. 어디 조그만 백화점이나 하나 받아서 연명하며 사는 처지가 됐겠지.

“할아버지께서는 오늘부로 저에게 US크리스탈의 모든 지분과 가문의 지휘결정권을 넘기셨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제부터 카네기 가문에서는 제 말이 곧 법입니다.”

“……?”

모두 벙찐 표정을 지었다. 지금 쿤겐이 무슨 말을 하는지, 귀는 분명히 들었는데 뇌는 이해하지 못했다. 뭐라고? US크리스탈 지분이 어떻게 됐다고? 누가 가문의 주인이라고?

심지어 세인마저 당황해서 얼굴색이 변했다.

“테레사!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는 세인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막나가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하잖아.

“왜 그러시죠? 아까 저와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그럼 지금 약속을 하시면 되겠군요.”

“테레사!”

“분명히 통고합니다. 제가 US크리스탈의 다음 회장이자 오너이며, 가문의 최고결정권자인 것은 결정된 사항입니다. 반론은 받지 않습니다. 향후 제 카네기 산하 기업 운영 방향에 관해서 궁금한 게 있으신 형제친척분들은 질문해 주십시오.”

“…….”

일가원들은 꿈에서 깨어나듯 겨우 상황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눈빛이 똑같은 마음이라고 말해준다.

통고란다. 결정된 사항이란다. 이게 대체 무슨 시츄에이션?

‘어디서 많이 봤는데…….’

안소니는 당황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데자뷰를 느끼는 게 자기만은 아닌 모양이다. 다른 친족들도 비슷한 생각, 비슷한 느낌을 받고 있는 모양이었다.

어디서 봤더라? 이와 같은 상황을?

“테레사! 이상한 짓은 그만 하거라! 어리광도 정도가 있지! 이게 대체 무슨 짓……! 크헉!”

둘째 아들이 용기 있게 나서서 호통을 쳤다. 그러나 번개처럼 뛰어나간 쿤겐이 그의 멱살을 잡고 높이 들어올렸다. 가녀린 소녀가 풍채 좋은 중년 남자를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리는 모습에 다들 흠칫 했다.

“작은아버지, 반론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크, 크윽……!”

“이 모든 것은 가문을 위해서, 그리고 미합중국을 위해서, 나아가 인류를 위한 숭고한 결정입니다. 그러니 제 뜻에 충실히 따라주십시오. 아시겠으면 고개를 끄덕이시고 받아들이지 못하시겠다면 모든 권리를 내려놓고 가문에서 나가십시오.”

무자비한 표정에 다들 저도 모르게 몇 걸음씩 물러났다. 쿤겐은 진심이었다. 눈빛도 살벌했다. 사람 몇 명 죽어나가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무서웠다.

한편 쿤겐의 속마음은 이랬다.

‘나 말고는 병신이다. 나만이 가문을, 미국을 구할 수 있다. 이 바보들은 지금 세상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아무 것도 몰라!’

소녀의 박애주의, 그리고 정의감은 지고지순했으며, 올곧았다. 유지웅의 자상한 가르침이 문득 생각났다.

‘내가 가문을 하드캐리 해야 해!’

―쿤겐, 너만이 가문과 미국을 하드캐리할 수 있다. 그 사실을 항상 잊지 마라.

―하드캐리가 뭡니까?

―병신들을 이끌고 슬기롭게 위기를 헤쳐나가는 걸 말하지. 다른 말로는 원맨팀이라고도 한다. 넌 훌륭한 하드캐리어가 되는 거다.

하드캐리어. 쿤겐은 그 말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입안에 아주 쫙쫙 달라붙는다.

============================ 작품 후기 ============================

하드캐리... 제가 잘하는 거죠.

제 티어가 궁금하다는 분이 계셨는데 티어를 밝히면 많은 분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것 같아서 그건 생략하겠습니다. 모스트 챔피언은 알려드릴 수 있어요. 모스트1이 베인이고 모스트2가 에코(정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