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939 Am I Harem?

“이놈이 바로 그 괴수 히카리입니다. 귀엽죠?”

“…….”

자초지종 긴 설명이 끝났다. 그러나 파티 참가자들은 어느 누구도 말이 없었다.

어디선가 ‘참 쉽죠?’라는 말이 들려오는 듯한 것은, 아마도 기분 탓인가.

“볼 때마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고양이군. 옛다, 이거나 먹거라.”

안슐리제가 침묵을 깼다. 그녀는 뭔가 반짝이는 것 하나를 히카리에게 던져 주었다. 히카리는 재빠르게 뛰어올라서 날름 받아먹었다. 결정체였다.

“맛있다!”

“더 줄까?”

“응!”

“아, 안 돼요! 버릇 나빠진단 말이에요! 지금 자율급식 안 돼서 힘든데!”

유지웅이 기겁을 해서 나섰고, 안슐리제는 몹시 아쉽다는 듯이 결정체를 쥐려던 손을 멈췄다. 히카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유지웅을 째려봤다.

“너무하다.”

“너무한 건 네 식탐이지!”

“너무해!”

“됐어. 저리 가서 낮잠이나 자. 이 먹성 터진 고양이 같으니라고.”

파티 참가자들은 우두커니 서서 그 소란을 지켜봤다. 그러니까 지금 뭐라고? 저 작고 예쁜 소녀가 정말 괴수 히카리?

겨우 정신을 차린 프랑스 총리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믿을 수 없소. 분명히 히카리는…….”

“아, 그러고 보니 히카리가 전에 유럽 정상들이랑 뒤에서 모의했다고 했던데, 그거 때문에 그러세요? 혹시 들통 나면 어떡할까 하고?”

“어헉!”

프랑스 총리는 숨이 넘어갈 뻔했다. 당시 그 일은 유럽 정상들 사이에서도 쉬쉬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있지? 아, 히카리가 말했구나!

비단 프랑스 총리뿐만이 아니다. 다른 이들도 식은땀을 흘리며 차마 유지웅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히카리와 손을 잡은 정상들은 지금 이 자리에 없지만, 그들과 정치적 동반자인 이상 이들도 가슴이 조마조마했던 것이다.

유지웅이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사람이 정치 좀 하다 보면 뒤에서 음모도 꾸미고 그럴 수도 있지, 어떻게 깨끗하게만 나라를 운영하나요. 전 개인적인 비리만 아니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음모론 같은 게 왜 나오겠어요?”

“…….”

뭔가 이해해주는 눈치 같긴 한데, 표현이 요상하다?

“원래는 제가 히카리한테 그 이야기 듣고 어이가 없어서 당장 쳐들어가려다가, 다시 생각해보니까 여러분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넘어가고, 대신 그 일을 빌미 삼아서 여러분들을 압박하고자 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꿨습니다.”

“…….”

듣고 있으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만 같다. 이 순간 정치가들의 마음은 하나같았다. 지금 통역,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지?

“제, 제대로 하고 있습니다!”

일제히 그들의 눈빛을 받은 통역가들이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으며 변명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통역하는 자신들도 지금 유지웅이 제정신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의 정신이 나간 건지 헷갈리는 판국인데, 한 번 통역을 거쳐 전해듣는 저들의 심정은 어떨까.

“자, 이리 와서 우리 허심탄회하게 협상을 해봅시다. 말 돌리거나 시간 끌거나 그런 거 없기예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전 그런 거 매우 안 좋아합니다.”

유지웅은 서둘러 파티 분위기를 정리하려는 듯이 정치가들을 재촉했다. 비공개 회담을 가지려는 모양이었다. 그의 주도에 이끌린 정치가들은 어어 하면서도 따라갔다.

그러나 딱 한 명, 아까부터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하는 이가 있었다. 바로 영국의 수상이었다.

“영국은 원한을 잊지 않소.”

다른 나라에서 2인자급 인물들이 참석한 것과 달리, 영국은 수상이 직접 파티에 참가했다. 바로 유지웅의 존재 때문이다.

“원한이요?”

유지웅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치 기억 나지 않는다는 듯한 그 모습에 영국 수상은 분통을 참지 못했다.

무고한 16만여 명의 사람을 학살하고자! 어찌 저리 뻔뻔할 수 있단 말인가! 정녕 저자는 악마인가!

“귀하가 수많은 영국 시민을 죽이지 않았소!”

“아, 일성그룹 비자금 찾으러 갔을 때!”

그제야 기억났다는 듯이 유지웅은 손뼉을 짝 쳤다.

‘아이고, 머리야.’

지켜보던 정효주는 가만히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영국 수상은 자신을 조롱하는 줄 알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안다. 유지웅은 지금 정말로 뭐 때문에 저러는지 까먹고 있었다. 왜냐하면 런던 참사는 정말로 그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무신경한 남자니, 자기가 한 짓도 아닌데 세세하게 기억하기를 바래서도 안 된다.

“으음, 그건 유감스러운 일입니다만…… 제가 누누이 말했듯이 제 책임이 아닙니다. 전 그런 짓 안 했어요.”

“명백한 증거가 있지 않소!”

“아, 이거 골치 아프네. 안 한 것을 어떻게 안 했다고 증명할 수도 없고……. 할 수 없지, 영국은 빠지셔도 됩니다.”

“뭐, 뭐라?”

“제가 안 했다는데 바득바득 제가 했다고 우기면 저로서는 할 말이 없지요. 잘 가세요.”

“이보시오! 이보시오!”

영국 수상이 처절하게 외쳤지만 유지웅은 깔끔하게 무시했다. 런던 참사가 유감이기는 해도 정말 티끌만큼도 자기 책임이라고는 볼 수 없으니……. 그렇다고 저들이 우기는 대로 안 한 것을 한 것으로 인정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어, 그러고 보니 그거 히카리 책임 아닌가? 이러면 일이 어떻게 되지?’

등을 돌리다 말고, 문득 든 생각에 유지웅은 멈칫 했다.

‘뭐…… 히카리는 그때 괴물이었을 뿐이고, 지금은 그때 일을 기억도 못하고……. 그리고 얼마 전에 내가 히카리를 전리품으로 획득한 거니까, 어쨌든 내 책임은 아니지? 그래도 히카리 주인으로서 도의적으로는 좀 미안하니까 나중에 영국에 잘해줘야겠다. 아니다, 지금 잘해줄까?’

갑자기 측은한 마음이 든 유지웅은 힘없이 멀어지는 영국 수상을 바라보았다.

‘그래, 왕이라면 너그러운 마음으로 투항을 받아줄 줄도 알아야지, 내가 너무 심했어.’

“저기요! 수상 각하!”

유지웅은 소리 높여 영국 수상을 불렀다. 안슐리제가 그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봤다.

그대로 나가려던 영국 수상이 다시 돌아왔다. 그는 의아함 반 분노 반을 담은 눈으로 유지웅을 바라봤다.

괜히 쑥스럽네. 유지웅은 조금 멋쩍어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기, 음……. 런던 참사가 제가 한 짓은 아니지만, 그때 마침 저도 그 자리에 있었고, 뭐 그걸 막지 못한 것에서 한 명의 히어로로서 도의적인 책임은 느껴지네요. 그래서 말인데, 당시 피해를 입은 시민과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약간의 위로금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사과를 하겠다는 겁니까?”

수상은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희대의 독재자, 테러리스트, 무법자로부터 사과를 이끌어낸다면, 정말 자신의 인생에서 두고두고 길이남을 업적이 될 것이다. 사람 16만 명이 죽었는데 사과가 뭐가 대수냐고 할 지 모르지만, 원래 외교라는 게 그렇다.

“아니요. 제 잘못이 없는데 왜 사과를 해요. 전 단지 인류의 히어로로서 힘없는 시민들을 지키지 못한 것에 자책감을 느끼고, 위로를 해드리고 싶다는 겁니다.”

“…….”

영국 수상은 눈만 끔뻑거릴 뿐, 그의 진의를 바로 짚어내지 못했다. 그때 안슐리제가 옆에서 나섰다.

“수상 각하, 유지웅 회장은 영국과 관계 개선을 하고 싶은 겁니다.”

“그, 그렇소? 그렇다면 사과를…….”

“그러나 런던 참사에 대한 책임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싶은 겁니다.”

안슐리제는 그렇게 선을 그었고, 수상은 분개해서 반박했다.

“그렇다면 관계 개선은 없소!”

“수상 각하, 저는 개인적으로 이 사람이 그런 참담한 짓을 저질렀다고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말씀을 드리자면, 책임의 사실 여부가 어쨌든, 이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일을 앞으로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

수상은 머릿속이 다소 차가워졌다.

유지웅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영국 내각에서도 몇 번이고 논의가 나왔던 내용이었다.

유지웅이 런던 참사에 정말로 책임이 있든 없든(이런 가정 자체가 상당한 양보이자 무리수였다), 그는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야 할 이유도 없으며, 그렇지 않아도 될 만한 힘을 지니고 있으니.

따라서 영국으로서는 유감 표명 하나만 얻어내도 정말 감지덕지한 것이다. 오히려 그의 눈치를 봐야 한다. 그가 정말 화가 나서 작정하고 영국과 교역 단절을 시도하면, 결정체 공급 부족으로 영국이 더 큰 손해를 입기 때문이다.

원수에게 오히려 잘 보이려고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 겉으로는 원수를 비방해야 하는 것, 뒤로는 사과 하는 시늉이라도 해달라고 졸라야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국제 관계이자 외교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찔러도 바늘 하나 들어갈 틈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안슐리제는 그 틈이 생겼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위로금을 준다 하였소? 그럼 어느 정도나……?”

“음…… 블루 백 개 정도?”

수상은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랐다. 블루 결정체 백 개라니!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다 떠나서, 금액만 놓고 보면 유지웅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백배사죄하며 최대한의 배상을 해주는 것으로 여길 것이다.

“너무 적나요? 그럼 이백 개.”

“허, 허억…….”

“수상 각하, 이쯤하면 유지웅 회장도 관계 회복을 위해 충분한 성의를 보인 것 같습니다만.”

옆에서 안슐리제가 끼어들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호의에서 화해를 위한 지원 사격을 한 줄 알 것이다.

그러나 수상은 안슐리제가 원망스러웠다. 잘하면 삼백 개 이상도 불러줄 것 같았는데! 안슐리제는 이백 개가 초과하지 않도록 제지를 한 게 분명했다.

============================ 작품 후기 ============================

영국 수상 : 으드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