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Noble

00999 %3C Pre-Season Helmship %3E A World Without Pre-Season Helmship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나왔습니다.”

영업 개시를 위해 가게를 방문한 정효주는 황당한 방문을 맞닥뜨렸다.

“세무조사요?”

“네, 세금 탈루 제보가 있어서 조사를 해야겠습니다. 협조해 주시죠.”

자신을 서울지방국세청 조사과장이라고 밝힌 40대 중년 남자는 고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8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는 게, 아주 작정하고 온 듯이 보였다.

정효주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세무조사요? 우리는 올해 개업했는데?”

개업한 지 몇 달이나 됐다고, 애초에 세금 신고 자체를 한 게 없는데 무슨 세무조사? 정효주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나 조사과장은 가차 없었다.

“4월 부가세 말입니다. 그거 아직까지도 납부를 안 하셨더군요.”

“네? 4월 부가세요?”

“네, 그것 때문에 조사를 나왔습니다.”

순간 정효주는 혼란에 빠졌다. 4월 부가세라니?

‘말도 안 돼. 우리는 올해 개업했으니까 간이과세자인데…… 4월에 납부 안 해도 되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개업을 하면서 그녀는 단단히 사전 조사를 하고, 또 열심히 공부도 했다. 혹시라도 GCS를 탐낸 이들이 이리저리 찔러올 것을 대비해서, 아예 그럴 틈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왜냐고? 유지웅한테 빌미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지금 ‘제발 누가 딱 한 대만 날 때려 줘!’라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맞을 구멍을 찾고 있는데, 빈틈을 줘 봐. 어떻게 되겠나.

그런데 부가세 탈세 혐의라니?

‘내가 뭘 잘못 알았나?’

그녀는 당혹스러웠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다지만 애초에 세법 전공자도 아니고, 뭔가 놓친 게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녀는 해명을 하려고 했다.

“전부 쓸어 담아.”

조사과장은 냉랭한 표정으로 명령했고, 지방청 직원들은 매출 등 영업 자료가 담긴 중앙 컴퓨터 본체와 외장 디스크, 매출 관련 서류들을 무자비하게 쓸어 담기 시작했다.

“아, 안 돼요!”

정효주는 기겁했다. 혹시라도 유지웅이 이 꼴을 보기라도 한다면, 기껏 봉인해놓은 테러범이라는 악마가 다시 부활할 지도…….

“무슨 일이야?”

“사장님! 국세청에서 나온 분들이세요! 저희 가게가 세금 탈루 혐의가 있다고……!”

매니저는 혹시라도 ‘높으신 분들’ 앞에서 유지웅이 실수를 할까 봐 급히 사태를 설명했다. 유지웅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달려왔다.

“이봐요! 세금 탈루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우리 가게가 개업한 지 몇 달이나 됐다고!”

“공무 집행 중입니다. 물러나시죠.”

“안 돼! 이건 음모야! 부가세를 납입 안 했으면 가산세 물려서 납입 독촉서를 보내면 그만이지, 이렇게 쳐들어와서 다 쓸어가는 게 어디 있어!”

“자꾸 이러시면 공무 집행 방해죄로 걸려들 수 있습니다. 어서 물러 가세요.”

“이건 음모라니까! 내 가게를 빼앗으려는 델지그룹의 음모가 틀림없어! 맞아, 얼마 전에도 델지그룹이 내 가게와 GCS를 뺏어가려고……!”

“어허.”

유지웅이 격렬하게 몸으로 달려들자 조사과장은 당황해서 힘으로 그를 밀어냈다. 비실비실하게 생겼는데 무슨 힘이 그렇게 센지 하마터면 자신이 밀려날 뻔했다.

가게 직원들은 유지웅이 국세청 직원들과 엎치락뒤치락하는 그 모습을 재빨리 핸드폰으로 찍었다. 유지웅은 불의의 침탈에 항거했지만, 끝내 쪽수를 이기지 못하고 제압당하고 말았다.

유지웅은 울부짖듯이 외쳤다.

“델지그룹, 너네! 이런다고 GCS를 뺏을 수 있을 것 같아! 어림도 없어! 더러운 공권력을 동원한다고, 니네가 감히……!”

“지웅아, 대체 왜 이래!”

정효주는 놀라서 얼른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 일을 얼마나 더 크게 키우려고 이러는 거야?

조사과장은 몸에 묻은 먼지를 털며, 굳은 눈으로 유지웅을 노려보았다.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시고, 공무까지 방해하시다니…… 어디 어떻게 될지 두고 봅시다.”

국세청 직원들은 압수한 증빙자료를 들고 가게를 나가 버렸다. 어느덧 가게 밖에는 손님들이 웅성거리며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유지웅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효주야. 내가 얼마나 많이 참은 지 알지? 진짜 저것들 다 날려버리려다가 참았어.”

“알지, 알아. 근데, 너…….”

“내가 뭐랬어. GCS를 노리는 자들이 호락호락 물러날 리가 없다고 했잖아.”

“너, 부가세 탈세 혐의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건 아까 매니저가 말 안 한 것 같은데?”

정효주의 날카로운 일침에 유지웅은 딸꾹질을 했다.

* * *

“일이 잘 풀렸습니다. 젊은 친구라 그런지, 역시 혈기가 넘치더군요. 자기는 무죄라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조사원들을 밀치고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허허.”

“일반조사 과정에서 공무 방해까지 했으니, 조세범칙조사로 전환할 수 있겠군.”

“구속영장도 적극 검토 중입니다.”

델지생활건강 사장, 구현준은 간만에 기분이 몹시 좋았다. 근래 들어오는 보고가 하나같이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다.

“멍청한 친구지요.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었으면 무혐의 처분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괜히 제 발에 찔려서 날뛴 바람에 일이 쉽게 됐습니다. 올해 개업한 가게라서 세무조사로는 찔러볼 여지가 적었거든요.”

전무진 상무는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럼 부가세 탈세는 전혀 혐의가 없는 건가?”

“그렇습니다. 원래 간이과세자라 내년 1월에 부가세를 납입해야 하는데, 일반과세자는 사실 이미 납입을 해야 했습니다. 그 친구도 자기가 일반과세자라 착각한 모양입니다.”

“그냥 찔러 본 건데 제대로 걸려들었군.”

구현준은 기분이 몹시 좋았다.

GCS를 손에 넣기만 하면, 가문 내에서 서열을 확고하게 다질 수 있다. 천덕꾸러기 막내로만 보던 부친도 자신을 달리 보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최두일 이사가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뭔가?”

“유지웅과 정효주, 그 두 친구가 본래 고아였는데 브로커를 통해서 새 신분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걸 봐선 뭔가 꺼림칙한 게 있는 건 아닌지…… 충분히 파고들 여지는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사건과 결부시켜서 접근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구현준은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튕겼다.

“아주 좋아! 그대로 시행하게!”

“예, 사장님.”

* * *

“너, 또 다시 그러면 안 돼. 알았지?”

유지웅은 불만스럽게 바라보다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대우를 받는 건데 왜 항의하면 안 돼?”

“넌 항의를 하려는 게 아니라 다 때려 엎으려는 거잖아.”

“그런 적 없거든? 그냥 떳떳하게 항의만 하려고 했거든?”

“그런 애가 세무조사 들어오자마자 옳다구나 하고 깽판을 부려?”

“쳇.”

헐리우드 액션이 들킨 유지웅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정효주는 일단 한시름 놓았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그의 봉인을 풀려는 것을 막았으니.

‘델지에서 움직였나?’

그녀는 손가락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다.

헬조선의 위명은 역시 대단하다. 좀 자리 잡고 사업을 해보려고 해도 어떻게든 그걸 뺏지 못해 안달이라니. 전에 살던 한국도 만만치 않은 부정부패가 많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그냥 찔러본 것에 지웅이가 너무 난리를 피웠어.’

그녀는 세무사 등 전문가를 통해 상담한 결과, 세무조사는 그냥 위에서 찔러본 것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부가세 탈루는 애초에 유죄 요건이 전혀 안 됐으니.

오히려 유지웅이 흥분해서 길길이 날뛰는 바람에, 공무집행 방해라는 좋은 빌미를 저쪽에 던져준 셈이다.

‘으이그, 저 원수.’

정효주는 유지웅을 흘겨보았다. 남들은 유지웅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흥분해서 날뛴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실은 그는 어떻게든 ‘날뛸 명분’을 만들기 위해 판을 키운 것뿐이다.

“효주야.”

갑자기 진지한 목소리에 정효주는 멈칫했지만, 곧 침착하게 대답했다.

“응.”

“나도 전생에서는 좀 너무 했다는 건 알아. 그래서 이번 생에서는 자제하려 하고 있어. 네 체면도 있고, 네가 그런 걸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으니까.”

“알아, 고마워.”

“하지만 난 부당한 대우까지 참을 마음은 없어. 이 세상이 내 인내심을 깨뜨린다면, 난 그에 합당한 보복을 돌려줄 마음과 각오가 있어. 너도 그건 이해해줬으면 해.”

“……알아. 나도 얻어맞았는데 참으란 소린 아니었어.”

정효주는 볼멘소리로 덧붙였다.

“단지, 일부러 얻어맞으려고 뺨 들이대면서 약 올리지는 말란 소리였지.”

“내가 언제 그랬는데?”

“너, 어제 국세청 직원들한테 했던 거 보면…….”

그때였다.

가게 문이 벌컥 열리고, 사복 차림의 건장한 남자 여럿이 우르르 들어왔다. 도저히 영업을 할 상황이 아닌지라 매장 오픈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낯선 이들이 들어온 것이다.

그들은 유지웅을 향해 주저 없이 다가왔다.

“이 가게 사장, 유지웅 씨 맞습니까?”

“네, 그런데요?”

“공무집행방해죄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사복형사들이 수갑을 내밀자, 유지웅은 벌떡 일어나서 두 팔을 얌전히 내밀었다. 체포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태도에 오히려 형사들이 당황했다.

그는 결연히 말했다.

“고귀한 세무 당국의 존엄한 공무 행사를 감히 훼방했으니, 언제든 잡혀갈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자, 나를 잡아가세요! 어서 잡아가세요!”

형사들은 순간 당황했지만, 그런 내색을 내지 않고 침착하게 그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아니, 채우려고 했다.

그때 턱 하고 수갑을 제지하는 손길이 있었다. 가느다란 팔뚝, 바로 정효주였다.

“형사님들, 이건 아니죠.”

그녀의 눈빛이 활활 불타올랐다.

어리석은 인간들이 악마의 봉인에 손을 대지 못하게 막는 것은 인간들의 평화를 위한 배려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들이 단지 봉인에 손을 대려는 게 아니라, 봉인에 소변을 갈기려고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런 치욕까지 참아줄 마음은 없다.

“효주야. 네가 말했잖아. 조용히,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야! 구치소에 갇히는 거랑은 다르지!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구치소에 갇혀야 해!”

“그럼 지금이라도 크게 한 판 벌일까? 나, 브라우니한테 청와대가 어디 있는지 알려줬어.”

“……아, 잠깐만.”

“네가 결심만 굳힌다면, 나는 기꺼이 다시 한 번 전처럼…….”

“야, 잠깐만!”

============================ 작품 후기 ============================

정효주 제단 깊숙한 곳에 봉인된 유트롤.

그는 오늘도 재벌, 고위 공직자, 정치인들을 내려다보며 탄식합니다.

"너희 중 누가 나의 봉인을 풀어주겠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