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gin Alone

40 coins.

마리나 비셋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정시우를 살피며 말했다.

“너 진짜 괜찮겠어? 몬스터가 저렇게 많은데?”

“적의 숫자는 하등 고려할 가치가 없어. 적이 아무리 많아도, 아무리 적어도, 결국 내 몸을 지키느냐 지키지 못하느냐의 문제거든.”

“굉장히 무식하게 들리는데 묘하게 설득력이 있어…….”

작전은 간단했다. 한 명이 주의를 끌고, 한 명이 우두머리를 죽인다. 당연히 주의를 끄는 역할은 정시우가 맡았다.

수만 마리의 몬스터 속으로 돌격하는 것은 보통 용기가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정시우는 자신을 걱정하는 마리나 비셋을 보며 오히려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나보다 강한 놈도 안 보이는데 대체 뭘 걱정하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가 수만인데…….”

당황하여 반박하던 마리나 비셋은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아까 수백 마리의 몬스터와 격전을 벌일 때, 그녀는 지쳐 헐떡였지만 정시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태연한 기색이었다. 수십 킬로그램을 넘기는 망치를 빙빙 휘둘러 적을 쳐부수면서도 숨결조차 거칠어지지 않았다.

“너 체력이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야……?”

물론 플레이어들은 레벨이 오르면서 마력, 근력과 함께 체력 스테이터스도 성장한다. 제아무리 정시우의 체력 스테이터스의 향상 속도가 타 플레이어의 두 배에 달한다지만, 레벨 200을 훨씬 전에 넘긴 마리나 비셋의 체력은 정시우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어디까지나 인터페이스로 확인할 수 있는 수치상으로는, 말이다.

“그건 네 눈으로 보고 추측해보든가.”

“으기이이이.”

스테이터스에 플레이어의 모든 정보가 드러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신체를 스캔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지표를 네 개 표시할 뿐 상호교류하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체의 가능성까지 드러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타고난 회복력이었다.

“잘 숨어 있어라.”

“찬스, 확실히 만들어줘야 해.”

마리나 비셋이 쌍권총을 쥔 채 조용히 기척을 감추었다. 정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망치를 꺼내어 쥐었다.

그리곤 아무 망설임도 없이 몬스터들을 향해 돌진했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압!”

그는 지금 이 순간까지 어떻게든 숨겨오던 살기를 있는 힘껏 드러내며 그 기세까지 담아 워 크라이를 내질렀다.

자살을 하며 대지에 피를 흩뿌리던 몬스터들도, 그런 놈들을 독려하며 제 무기를 허공에 휘두르던 엘리트 몬스터들도, 그놈들의 중심에 파묻혀 기이한 외침을 반복하던 사자탈의 인간형 몬스터도 모두가 정시우에게 시선을 집중시켰다.

[제물!]

[강한 제물이다!]

[놈을 잡아 최후의 제물로 바치자!]

“그놈의 제물 소리, 아주 귀에 딱지가 앉겠다.”

“오빠, 조심해요!”

허공에 수백 개의 화염구가 떠올랐다. 사자탈 너머로 드러난 붉은 눈동자가 정시우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저 화염구를 모두 보스가 만들어냈다고 한다면 실로 대단한 실력이다.

하지만 놈 주위의 엘리트 몬스터들이 모두 부르르 떨고 있는 것이, 아무래도 순수한 보스의 힘이 아니라 다른 몬스터들을 착취한 결과인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벌이던 의식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겠지.

“지금 냉정하게 분석하고 있을 시간 없어요!”

“내가 저따위 뻔히 보이는 공격에 당할 것 같아?”

정시우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화염구 몇 개를 그대로 지나친 정시우가 그에게 마주 달려오던 고블린 한 마리를 한 손으로 붙잡아 덥석 내던졌다. 시속 20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로 날아간 고블린이 불덩어리와 부딪혀 성대하게 폭발했다.

[구아아아아아아!]

[퀴, 퀴이이이! 제물, 제물이 되었다! 제물이 된 것이다!]

육편이 후드득 떨어져 내리는 것을 힐끗한 그는 화염구의 위력을 대략적으로 파악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다시 주위의 몬스터를 붙잡아 던졌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불덩어리의 궤도를 읽고, 자신이 못 피하는 것만 미리 몬스터를 내던져 중간에 터트리는 것이다.

‘정면으로 맞아도 많이 아프진 않겠지만 쓸데없이 체력을 소모할 필요는 없지. ……그래도 화염 내성을 위해 몇 발은 맞아둘까.’

정시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적의 숫자가 얼마나 많건, 적이 어떤 기술을 다루건 정시우에게는 별 달라질 것이 없었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고, 막을 수 있는 것은 막고, 피하지도 막지도 못하는 것은 중간에 저지한다. 두 눈만 부릅뜨고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진짜 두 눈 부릅뜨고 딱 한 대만 세게 때리고 싶네요.”

“실은 저도…….”

모든 화염구의 궤도 계산을 마친 정시우가 바닥을 박차고 화염구의 세례 속으로 거침없이 돌진했다. 수아린은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으나, 용세하만은 똑똑히 보았다.

메이저리거 투수가 내던진 공보다도 빠르게 쇄도하는 수십, 수백 개의 화염구. 그 모두를 예술적으로 비껴내며 그 너머로 나아가는 정시우의 환상적인 질주를.

[쿠아아아아아아아아!]

[그분께서는 우리가 직접 놈을 죽이길 원하신다!]

[제물, 제물을 바치는 의식이다! 모두 놈을 죽여라! 놈을 죽여라!]

누구나가 압도될 만한 광경이었으나 몬스터들은 기죽지 않았다. 정시우를 대신해 화염구에 얻어맞고 쓰러진 동료의 사체를 짓밟고 돌진해오는 몬스터 무리, 정시우는 그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가볍게 해머를 내질러 놈들을 깔끔하게 분쇄했다.

“마나 아껴요, 오빠!”

“마나 안 쓰고 있어.”

“네!?”

정시우는 해머의 원심력에 몸을 맡겨 빠르게 회전하며 다시 놈들을 몰아쳤다. 해머가 한 번 허공을 가를 때마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던 모든 몬스터의 몸통이 터져나갔다. 레벨이 얼마가 되든 상관없었다.

그런데 뭐? 마나를 안 다루고 있다고? 수아린은 그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적어도 그녀가 아는 플레이어 중 마나를 다루지 않고 이런 경악스러운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그것은 더 이상 레벨의 문제가 아니었다. 스테이터스의 문제도 물론 아니었다. 물리력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차라리 권능이라 불러 마땅할 힘이었다.

‘모두 헤비 웨폰 배틀의 힘이야. 단지 2레벨에 불과한데도 이 정도로 압도적인 위력을 더해주다니…… 마치 심장이 하나 더 생겨난 것만 같다.’

정시우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어렸다. 그가 보다 적극적으로 날뛰면 날뛸수록, 보다 힘주어 휘두를수록 해머가 강해졌다. 정시우 본인이 만족할 수 있는 궤적이 그려진 순간 파괴력은 극한에 달했다.

그의 공격 궤도를 예측해 몸을 움직이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망치가 횡으로 가로지르고 지나간 자리, 그의 빈틈을 노리고 덤벼든 오크의 몸통이 직후 그 궤도를 타고 돌아온 망치에 얻어맞아 허공에 붕 떠올랐다. 그것은 도중에 날아드는 화염구와 정면으로 충돌해 터져나갔다.

“흐아아아아아아아!”

마나는 오직 워 크라이에만 소모했다. 지금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 없다. 대청봉을 가득 채운 몬스터의 90% 이상은 레벨 100 이하의 잡몹인 것이다!

놈들은 우두머리의 명을 따라, 무엇보다도 1초에도 몇 마리씩 동료를 쳐 죽이고 있는 괴물을 응징하기 위해 미친 듯이 그에게 몰려들었다. 우두머리는 마치 처음부터 그것을 노리고 있던 것처럼 수하들까지 사정범위에 넣어 화염구를 퍼부었다. 수하들을 모두 죽여서라도 정시우를 죽이려는 것이다.

[제단에 피가 차오른다. 놈만 바치면 모든 것이 완벽해질 것이다!]

제단? 익숙한 울림에 정시우의 귀가 쫑긋했다. 하지만 물어본다고 놈이 답해줄 리도 없고, 그는 일단 그것을 마음에 담아둔 채 몸을 놀렸다.

그즈음 쉴 새 없이 쏟아지던 화염구의 폭우가 멈추었다. 우두머리가 새빨간 눈으로 정시우를 노려보고 있었다. 굉장히 분해하는 모습. 그러나 수아린은 코웃음을 치며 그에게 속삭였다.

“끝이 아녜요, 오빠. 저놈의 마나뿐이라면 몰라도, 지금 놈은 다른 엘리트 몬스터의 마나까지 끌어 쓰고 있는걸요. 오빠를 방심하게 만든 후 공격할 거예요. 그것도 빠르고 은밀한 마법일 가능성이 커요.”

“알아들었어. 공격 타이밍만 알고 있으면 피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 여유로운 태도가 불안하다니까 글쎄.”

정시우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놀렸다. 무수한 몬스터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고, 망치를 휘두르고, 고함을 질렀다.

우두머리 놈의 화염구에 죽어나간 몬스터도 수천을 넘겼지만, 정시우의 돌진에, 휘둘러지는 해머에 폭사한 몬스터의 숫자도 결코 그에 밀리지 않았다.

“뭐야, 몬스터 맞잖아…….”

은신한 채 타이밍을 노리던 마리나 비셋은 정시우의 전투를 보며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만약 그녀가 저렇게 날뛰고 있었더라면 이미 숨이 거칠어져 조준이 빗나가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나 정시우는 어떤가? 두 다리는 굳건하게 대지를 디디고, 손에 쥔 슬레지 해머는 한 순간도 헛되이 휘두르는 법이 없다.

그가 내지르는 공격은 모두가 필사의 일격인 반면 적의 공격은 그에게 닿지 않으니, 그에게 덤벼드는 몬스터는 풍차를 향해 덤벼드는 돈키호테처럼 무모해보일 따름이었다.

물론 그와 전투를 벌이고 있는 몬스터들은 그리 강하지 않다. 그녀 자신도 벌레 밟아죽이듯 가볍게 죽일 수 있는 놈들뿐이었다. 하지만 죽인다는 결과만 동일할 뿐, 나머지 부분에서 그녀는 결코 그를 쫓아가지 못하리라.

정시우의 움직임은 맹수처럼 과감하고 흉포하되, 세심했으며 낭비가 없었다. 그는 힘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잘 알았으며 그대로 행했다.

그는 육체능력에 재능이 없음을 깨닫고 일찍이 마나를 다루는 데에만 집중한 마리나 본인과는 완전히 달랐다. 물론 다른 모든 플레이어들과도.

‘마나를 다루는 능력만 특별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내 터무니없는 착각이었어.’

스스로의 재능이 워낙에 뛰어나 평생 타인에게 질투를 해본 적이 없는 마리나는 지금 이 순간 처음으로 타인을 질투했다. 하지만 그만큼 그가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그녀 앞에 있는 이상, 마리나는 몬스터에게 공격받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몬스터 우두머리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즈음이었다.

‘놈의 마나가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어. 그것도 다른 엘리트 몬스터를 제물로 바쳐 발동하는 마법……!’

화염구와는 판이하게 다른 음유한 성질의 마법이다. 이대론 그가 위험하다!

그러나 경고해주고 싶어도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둘의 작전은 완전히 틀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지금 우두머리를 공격하자니, 놈이 두르고 있는 마나의 장벽이 너무나 두터웠다.

이미 그녀는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최대한의 마나를 권총에 부여한 상태였다. 그 존재감을 발사 직전의 순간까지 감출 수 있는 것만도 기적이었다. 한 번 공격하면 그 다음은 없다. 우두머리를 퇴치하지 못하고 도망쳐야 하겠지.

‘그건 최악이야. 아으으,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그러나 결론은 의외로 금방 나왔다.

정시우를 구해야 한다.

그녀가 생각하기엔 작전 실패로 인해 한국이 피해를 입는 것보다는, 앞으로 얼마든지 강해질 가능성을 지닌 저 남자가 죽는 쪽이 더 큰 손실이었다.

“좋아.”

그러나 그녀가 판단을 마치고 움직이려던 바로 그 순간, 그보다 한 발 빠르게 우두머리의 마법이 발동했다. 정체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악마의 손. 땅 속성과 어둠 속성이 결합되어 발동하는 마법으로, 지하에서 치솟은 손이 대상을 붙잡아 지하로 끌고 들어가는 즉사 계열의 무시무시한 마법이었다.

그것은 엄연한 흑마법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33단계 던전의 최전선에 서 있는 그녀조차 이제야 간신히 그 존재를 알게 된 악독한 마법이었다.

‘저건 나도 마법저항력 외에 막을 방도가 없는데!?’

대상을 지정해 발동하는 대인 계열 최강의 마법 중 하나. 이대로 그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사방에서 튀어나와 그의 양다리를 붙잡은 어둠의 손이, 그의 발 구르기 한 번에 흩어져 사라졌다.

[뭣!?]

‘응!?’

그녀는 간신히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는 고함을 억눌렀다. 흑마법을 발 구르기로 떨쳐 내다니 저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란 말이야! 하지만, 그렇지만…….

‘최고의 찬스!’

그녀는 본능적으로 양팔을 들어올렸다. 마나가 극한에 가깝도록 응축된 쌍권총이, 혼신의 마법이 무효화되어 당황한 기색을 있는 대로 드러내고 있는 사자탈을 정조준했다.

‘죽엇!’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다.

세계 최강의 사수 마리나 비셋의 전력이 담긴 탄환이 놈의 머리통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