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단의 신의 힘은 군단의 규모가 불어날 때 더해진다. 자신의 세력을 확장시키고자 하는 신들에게 있어, 군단의 신의 특성은 비겁하게 느껴질 만큼 대단했다. 그러나 그 힘에는 이면이 있다.

군단의 신이 결국 군체가 아니고 오롯한 한 명으로 존재하듯이, 군단의 신의 힘의 방향성도 결국은 완성된 하나를 향해 있는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

“쿠학!”

케나토와 파이라가 각각 정시우, 케이나와 붙기 시작한 시점에 그들이 이끄는 군세 또한 저항자 집단과 격돌했다. 물론 군단의 신과 화염의 신이 완벽하게 뜻을 하나로 모은 것도 아닌 터라 삼파전의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그런데 그중 군단의 신의 세력에 속하는 자들이, 케나토가 뻗어 낸 수십, 수백 줄기의 나무줄기에 꿰뚫려 마나와 기록으로 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강탈……?”

“아니, 그런 고등한 능력이 아냐. 단지 군단의 신의 힘으로 저 모두를 묶었을 뿐이지. 그러니까 어쩌면 군단의 신의 힘은…….”

처음부터 다수의 힘을 하나로 묶는 것을 목표로 하는 능력일지도 모른다.

레드 티베이드 무리의 융합을 떠올려 보면 실로 간단하게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원리를 납득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저 역겨운 새끼가, 동료의 목숨을 대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쿠…… 하아.]

그때 드디어 만족할 만큼 힘을 흡수한 케나토가 몸을 일으켰다. 나무줄기의 숫자는 오히려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으나, 그것은 정시우가 아닌 자신이 이끌던 세력을 향해서만 뻗어 갔다.

나무가 대지에 뿌리를 박고 영양분을 흡수하듯 그들의 모든 것을 빼앗아 온 케나토의 육신은 점점 부풀어 갔다.

어디까지나 테디베어 형상을 유지했던 레드 티베이드와는 달리, 그는 드디어 완벽하게 인간을 벗어던지고 사람과 나무의 중간 즈음 되어 보이는 형태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이것이…… 군단의 신, 뒤세느 님의 힘이다.]

“아, 그래. 최악이군그래.”

케나토보다 무력으로는 한참 뒤쳐졌던 세리아 윌슨은 루이오스의 힘을 마지막 순간까지 거부하며 버텼다. 반면 케이나는 제 목숨을 버리고 스스로 세트나크의 종이 되면서도 자신의 동생을 향한 애정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저기서 제 몸을 뒤룩뒤룩 살찌우고 있는 저놈은 대체 무어란 말인가. 한때 뜻을 같이했던 동료들의 목숨을 제 손으로 취하며, 그를 그렇게 만들어 놓은 신의 이름을 찬양하며, 놈은 대체 무엇을 위해 지금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

[덤벼라, 애송이…… 신의 위대함을 네 몸에 새겨 주마.]

“적어도 때릴 부위는 늘어나서 좋네.”

정시우는 재차 망치를 들었다. 놈은 동족포식을 멈추지 않고 이어 가면서도 이제 어렵지 않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신의 원래 무기였던 장검에 나무줄기를 수십 겹이고 칭칭 감아 거대한 몽둥이 비슷하게 만든 케나토가 그것을 정시우를 향해 휘둘러 왔다.

[죽어라!]

“쯔.”

예리함 대신 항거할 수 없는 거력을 얻은 놈의 공격은, 차마 정시우라고 해도 정면으로 받아 낼 수 없는 수준. 단순히 속도와 강함 두 면에서만 놓고 보자면, 놈의 일격은 가히 극에 이르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시우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바로 항거할 수 없는 거력에 항거하는 것이었다.

“흐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걸 무식하게 정면에서 맞받으면 어떻게 해요!”

“끄으아아아아.”

놈의 공격은 턱없이 묵직하고 단단했다. 순간적으로 정시우의 무릎이 꺾일 만큼! 하지만 정시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이가 악물리고, 지나치게 큰 힘을 막아 내느라 망치를 쥔 양팔의 뼈에 금이 갈 만큼 아팠지만 그래도 그는 어떻게든 그것을 버텨 냈다.

“이따위 놈에게 밀릴 수는 없어.”

그렇다. 놀랍게도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단순한 똥고집이었다.

“아, 이 바보…….”

평소엔 머리가 좋은 것 같다가도 꼭 중요한 순간에 머리를 아예 안 쓰는 정시우에게 환멸하면서도 수아린은 필사적으로 치유 마법을 영창하여 그의 치명적인 상처들을 해소했다.

[으음……?]

그때가 되어서야 케나토는 간신히 그의 품에 은신한 수아린을 발견할 수 있었으나, 아직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때였더라면 유용하게 써먹었을 정보를 지금의 그는 활용하지 못했다.

[다 같이 죽어라!]

그저 나머지 한 팔을 들어 올려, 같잖게 그의 힘에 버티고 있는 애송이를 더욱 큰 힘으로 깔아뭉개려 할 뿐!

“크학!”

정시우는 어떻게든 그 자리에 버티고 선 채, 망치의 옵션인 독염을 발동했다. 맹독을 품은 불꽃이 거세게 타올라 놈의 양 주먹을 뒤덮는다!

그러나 신의 정수를 한 몸에 품고 각성한 케나토는 나무의 형상을 이루고 있으면서도 불꽃에 어렵지 않게 저항했다. B+랭크의 불꽃으로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A랭크의 흑뢰를 구사하자니, 그것은 오히려 불꽃보다도 효과가 덜했다.

[그깟 불꽃으로 나를 태워 보겠다고……?]

“하!”

정시우는 더 이상 놈이 내리누르는 무게를 견디지 못해 뒤로 살짝 물러났다가는, 양팔이 회복되는 대로 다시 놈에게 덤벼들었다.

놈의 전신에서 비롯된 수천 개의 나무줄기가 허공에서 수십 겹씩 칭칭 꼬여 하나하나 거대한 몽둥이가 되어 그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정시우는 용의 감각을 활성화해 무수히 겹치는 궤적 속에 드러난 길을 타고 달렸다.

“처먹어!”

[크하!]

드디어 혼신의 강타가 놈의 몸통을 두드렸다. 그러나 실로 충격적이게도 놈의 몸통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타격 부위에서 거세게 솟구친 날카로운 나무줄기가 기습적으로 정시우의 복부를 관통했다.

[침식 내성이 Lv7이 되었습니다.]

“오빠!”

“큭…… 괜찮아!”

배도 한두 번 뚫려 봐야 놀랍지 플레이어로 나선 지 반년이 넘어가는 이 시점에 새삼스러울 일도 아니다.

그는 사방에서 그의 시야를 가리며 날아드는 나무줄기들을 피해 뚝 떨어져 착지하며 한 손으로 복부를 틀어막았다. 수아린은 순식간에 몇 가지인가의 치유 마법을 동시에 발휘해 필사적으로 그를 회복시켰다.

“치유 마법은 원래 이렇게 외줄타기 하듯 구사하는 게 아닌데……!”

“하지만 넌 할 수 있잖아. 역시 너밖에 없어.”

“이 바보갓!”

[네놈…….]

그러나 일방적이게 보이던 공방의 끝에 더 놀란 쪽은 다름 아닌 케나토였다.

[신의 힘을 체내에 직접 주입해 주려 했건만.]

“아, 그런 거 나한테 안 통해. 너 같은 허접이랑은 달라.”

[뭐……? 거, 건방진 자식이!]

케나토는 놀란 직후 더욱 광분했다. 그러나 정시우는 수십 개의 거대 나무줄기와 함께 양팔에 든 무기를 휘둘러 그를 공격해 오는 케나토의 공세로부터 몸을 조금 뒤로 빼며 짤막하니 결론을 냈다.

“괴력을 쓰지 않으면 어렵겠어.”

“그 결론은 처음부터 나와 있었던 것 같은데요!”

“괴력을 쓴다 해도, 차지 스트라이크 정도가 아니면 치명적인 일격을 먹이기 힘들 것 같고.”

전투의 순간순간이 적을 탐색하는 시간이다. 놈의 몸에 워낙 많은 마나가 섞여 있어 자세히 분석하기가 힘들었지만, 용의 감각으로 어떻게든 놈과 정시우 사이의 객관적인 전력 차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냥 지고 싶지 않았을 뿐이면서 나중에 둘러대긴.”

“문제는…… 차지 스트라이크라는 게 저렇게 쏜살같이 날아드는 공격들을 받아 내면서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라는 거지.”

만화영화에 나오는 괴물을 보는 것만 같다. 기본적으로 레벨도 마력도 이쪽보다 높은 주제에 회복력까지 뛰어나다. 극적인 기지 없이는 이길 수 없는 상황을 강요한다.

“그래도 해법은 대충 알았어. 순서가 잘못됐네.”

[흐고아아아아아!]

단 한순간만 한눈을 팔아도 그의 목숨을 끊어 낼 위력을 지닌 공격이 무수히 쏟아지는 가운데, 그것들을 모두 피해 내며 정시우는 담담히 말했다.

“화염의 신의 종속 쪽을 먼저 끝냈으면 쉬웠을 거야.”

놈의 불꽃의 힘을 해머에 더했더라면 어렵지 않게 놈을 다 태워 버릴 힘을 얻었을 것이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전투를 끝마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정시우는 힐끗, 전장의 다른 축에서 파이라와 전투를 벌이는 케이나를 보았다. 치열하기는 저쪽도 마찬가지다. 케이나는 반쯤 녹아내린 투구 속에서 눈을 빛내며,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전투가 즐거운 모양이었다.

“재미나게 싸우는 걸 방해하기도 싫고.”

“당장! 방해하러! 가죠!”

“그리고 이쪽에도 카드는 하나 있고.”

그는 나지막이 중얼거리곤 후우, 크게 한숨을 내쉬며 재차 망치를 굳세게 쥐고는, 자연스럽게 한 발 앞으로 놀려 정확히 19개의 나무송곳을 피해 냈다.

그것은 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극적인 공백이며, 동시에 망치를 한 번 휘둘러 적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타격 지점 선정이었다.

“……해 볼까.”

그리고 괴력을 발동했다.

이어서 차지 스트라이크를 시전하며, 외쳤다.

“세하, 지금!”

“흐오오오오오오오!”

섬광이 일었다.

[큭!?]

성장했다고는 생각했지만 그것은 대단한 일격이었다. 차지 스트라이크를 시전하느라 아주 짧은 순간 제자리에 멈춘 정시우를 노리고 날아들던 공격. 그 모두가 은신을 풀고 나타난 용세하의 거센 돌진에 파훼되어 흩날렸다!

[저 조무래기가……!]

“하!”

전투에 끼어든 자를 징벌하기 위해 케나토가 거대 몽둥이를 휘두른 그때, 용세하의 나비날개가 마나를 담아 눈부시게 팔랑였다. 순식간에 90도 각도로 꺾어 하늘로 솟구친 용세하가, 자신의 창에 모든 마나를 담아내 재차 쏜살같이 하강했다.

“흐아아아아!”

[죽어라!]

날개가 달린 플레이어라 해서 모두 용세하와 같은 속도를 얻을 수는 없으리라.

그것은 어디까지나 돌격병이라는 그의 천직에 몰두한 결과 그가 얻어 낸 속도였다. 망설이지도 않고, 흔들리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빈틈없이 적을 압박하는 일직선의 돌진.

[감히!]

“크학!”

비록 그것은 놈을 정면에서 이기기에는 아주 약간 화력이 부족했으나, 놈이 전력을 다해 막아 낼 만큼 굉장한 기세를 품고 있었다.

놈의 몽둥이와 충돌한 용세하의 랜스는 그것을 절반쯤 부숴 낸 시점에서 역할을 다하고 망가지고, 용세하 본인은 충격을 이겨 내지 못해 피를 토하며 허공으로 튕겨 나갔으나.

“역시…… 훌륭하다, 용세하.”

비록 정시우가 외부 마나를 컨트롤해 도왔다고는 하나 케나토가 끝까지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 완벽한 은신에, 뇌리에 새겨질 만큼 강렬한 일직선의 돌격까지. 그 두 가지가 조화를 이뤄 케나토를 압박했다.

그 결과 놈은 짧은 순간이나마 정시우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별것도 아닌 놈이 감히 나를 방해하…….]

“용세하라는 이름을 기억해 둬라.”

허공에 거대한 망치의 모습이 나타났다. 케나토가 그것을 인식한 순간, 전장에서 모이는 모든 마나를 그 끝에 담아낸 해머 헤드가 심상치 않은 빛을 토해 냈다.

“네가 죽는 데 크게 일조한 남자의 이름을.”

정시우의 명을 충실히 이행한 용세하가 만들어 낸 찰나의 틈.

[그깟…….]

“차지 스트라이크!”

그 틈에 완성된 필살의 일격이 케나토의 전신을 강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