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ogin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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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야, 서둘러야 해……!”

“대체 뭘 왜 서두르는지는 알려 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방금 자신이 들은 것을 믿지 못하면서도, 어떻게든 정시우에게 그것을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세리아는 다급히 마나를 운용하고 있었다. 그 바로 옆에서는 마리나가 투덜대고 있었지만 지금 세리아의 귀에는 그녀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큭, 계속 아까 그곳과 연결되려고 하잖아. 대체 어째서? 아니, 잠깐만…….”

몇 번인가의 차원이동 시도 끝에 세리아는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려 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정시우에게서 느껴졌던 용의 흔적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아까부터 계속 헛방을 쳤고…….

“그 여자에게 들었던 말. 그 대화에서 나온 말…….”

정시우는 하늘성을 버렸다. 정해진 길에서 벗어났다. 도망쳤다. 그것이 단순히 정시우의 행동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닐 것만 같았다. 영민한 세리아는 금세 결론을 낼 수 있었다.

“설마…… 시우 님은 더 이상 플레이어가 아니게 되신 건가?”

“세리아! 너 진짜 내 속 터져 죽는 꼴 볼래!?”

“기다려, 이제 다 알게 된 것 같으니까!”

세리아의 표정이 정말로 다급해 보이자 마리나는 충직한 강아지처럼 그 자리에 멈추었다. 이서희는 세리아의 태도에서 정시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닌가 싶어 그녀보다도 초조한 표정이 되었다.

반면 답을 찾아낸 세리아의 표정은 이전에 비해 조금 밝아져 있었다.

‘그래, 반응이 있어! 시우 님에게서 플레이어와 연관되는 부분을 모두 걷어 내고, 오직 그분이 타고나신 능력을 기반으로 그분을 추적한다면……!’

그것이 가능한 시점에서 세리아의 마도사로서의 재능은 필멸자의 수준을 초월해 있었으니 과연 사랑의 힘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었다. 답을 찾은 세리아는 다시금 침착하게 자신의 마나를 주입했고, 그 과정에서 차원용병증 몇 개가 녹아내리고 말았다.

“이거 돌아올 때는 어떻게 하려고!?”

“그냥은 못 돌아간다면서 시우 님한테 달라붙어야지.”

“여태까지 너한테 들었던 말 중에 제일 마음에 들어!”

끝내 차원용병증을 전부 소모하고 나서야 차원이동 마법이 완성되었다. 애초에 제작된 용도와 다른 식으로 사용했으니 이런 꼴이 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더는 누구도 차원용병증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대로 출발할 거야. 만약에 내가 틀렸으면, 우리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서 쓸쓸하게 죽어 갈지도 몰라.”

“불길한 소리하지 말고 빨리 출발이나 해.”

“가자, 세리아.”

이서희의 재촉에 세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 순간 그녀의 주먹 사이로 터져 나온 빛이 그들 셋을 완전히 감싸, 다음 순간에는 그 자리에서 완전히 지워 버렸다.

“음?”

정시우가 행동을 멈추었다. 이제 막 마지막 신의 사냥이 끝나고, 남은 것은 전리품 분배뿐인 행복한 상황에 스턴이라도 걸린 것처럼 그의 움직임이 멈춘 것이다. 이윽고 뭔가를 느낀 것처럼 그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것을 본 수아린의 눈동자가 가늘어졌다.

“또 어디서 막 오빠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요?”

“아니? 누가 날 찾았어.”

“눈을 뜨세요, 용사님…….”

“그런 게 아니라니까. 누가 날 찾고…… 그리고 이곳으로 오려는 것 같아.”

정시우는 스스로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몰라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단 세이락시아를 시켜 일정 영역의 물을 밀어내고 엘의 힘으로 적당한 발판을 만들었다.

그녀가 만들어 낸 거대한 발판이 물 위를 두둥실 떠다니는 장면이, 원래 물로 가득한 헤데아의 세상이니만큼 무척 초현실적으로 비추어졌다.

“아, 이거 꼭 여름철 기념품 같아요. 바깥이 물로 가득 찬 구슬 안에서 떠다니는 보트 있잖아요.”

“그거 항상 마지막엔 기름 새어 나와서 버리게 된다니까.”

“맞아요, 맞아. 관리를 아무리 잘 해 줘도 그래서 너무 속상했어요.”

수아린과 정시우가 오랜만에 일치되는 추억을 공유하며 재수 없는 커플력을 상승시키고 있을 무렵 정확히 그가 비워 둔 영역, 발판 위에서 대기가 일렁이며 변화를 예고했다. 세이락시아가 경계했으나 그쯤에서 완전히 상대의 정체를 파악한 정시우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적이 아냐. 하지만…… 지독한 녀석들, 정말로 쫓아올 줄이야.”

“쫓아와요?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저 발판 치울까요?”

오랜만에 수아린의 질투심이 발동한 바로 그 순간, 허공에서 스파크가 튀더니 순식간에 대기의 틈이 벌어졌다. 술자의 부족한 실력 탓에 불안정한 게이트의 모습이었으나, 정시우가 만상만화경을 살짝 들어 올리자 순식간에 완벽한 게이트가 구축되었다.

“됐다, 이곳이다!”

“정말?”

“아.”

게이트 너머에서 익숙한 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수아린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싸늘해졌다. 그녀는 일단 본능적으로 정시우에게 달라붙었다. 직후, 그 안에서 어마어마하게 조그마한 인간 셋이 튀어나왔다.

“뭐야 여기!?”

“시우다!”

“크다!?”

당연하지만 그것은 마리나 일행이었다. 지버스 에이지에서 활동하는 차원용병들 중에서도 단연 톱에 꼽히는 실력을 지니고 있는 만큼 헤데아의 세상이 주는 마나의 압력에도 어떻게든 저항하고는 있었으나, 마신을 지니고 있지 못하기에 크기는 여전한 인간의 모습!

처음 마신을 이루고도 성장을 거듭해 온 정시우와 일행들의 눈에는 정말로 개미만도 못한 크기였다.

“와, 이러니까 화신들이 우리를 얕볼 만도 했지.”

“손가락으로 누르면 혹시 죽을까요……?”

“누가 아린이 좀 붙잡아라.”

[알겠다. 거기 주책바가지, 꼼짝 마라.]

“이거 놔욧, 앞으로 시나리오가 빤히 보인단 말이에요!”

케이나가 수아린을 붙잡고 있는 동안 정시우는 무릎을 굽혀, 공기로 가득한 대지 위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3인의 얼굴을 확인했다.

“역시 너희구나.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긴 한데…… 왜 여기까지 왔냐?”

“시우다!”

“크다!”

“너희 그 말밖엔 할 줄 모르니?”

마리나와 이서희는 정시우와의 재회에 대한 감격과 터무니없는 환경에 대한 놀라움으로 언어 기능에 고장을 일으키고 있었으므로 세리아가 대신 나섰다.

“어떻게든 주인님께 알려야 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물론 알려야 할 일이 없었어도 찾아왔겠지만요.”

“정직해서 좋구나. 대체 너희 힘만으로 어떻게 이곳엘…… 아니, 일단 하고 싶다는 말이 뭔지부터 듣자.”

“알겠습니다.”

세리아는 아직까지도 진정이 되지 않는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든 목소리를 떨지 않기 위해 무던 애를 쓴 끝에 간신히 침착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하늘성의 뒤에, 헥토라는 자가 있습니다. 아마도 신인 것 같아요.”

“아…….”

“요정상인…… 루타가, 그에게 보고를 하고 있었습니다. 시우 님은 도망쳤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세상의 힘을 하나로 모을 수는 있을 것이라고.”

“아.”

그 시점에서 완벽하게 알아들었다. 정시우는 잠시간 아무 말 없이 있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파악이 끝났다. 솔직히 제법 충격을 받았다.

“광룡의 흔적을 쫓은 곳에서 헥토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그래서였구나.”

정시우는 과거 광룡의 발톱과 함께 하늘성의 건설에 쓰인 시스템의 일부를 발견하고 만상만화경으로 그 근원을 탐색한 결과 헥토와 대화를 나누게 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그는 그것이 광룡의 사후 헥토가 그의 세상에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그것은 조금 틀린 추론이었던 것이다.

“헥토는 하늘성에 간섭하고 있었구나. 요정상인은 애초에 헥토의 주구였어.”

“네!? 루타가 헥토의 종이라구요!?”

기겁한 수아린이 큰소리로 외쳤다. 세리아를 비롯한 3인이 귀를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니 일부러 한 것이 분명했다. 정시우는 수아린을 적당히 쓰다듬어 주며 말을 이었다.

“광룡의 목표는 신들을 멸절하는 것. 그 수단은 하늘성이라는 시스템의 힘을, 나라는 용사를 통해 하나로 모으는 것이었지. 하지만 그는 완벽하지 못했다. 헥토는 시스템의 일부를 파악하고 말았다.”

“맙소사…….”

스스로 말을 하면서도 이가 뿌득 갈렸다. 정시우는 지난 과거들을 찬찬히 되짚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하늘성을 통째로 꿀꺽하는 데에는 실패한 모양이지만, 그는 요정상인이라는 스파이를 그 안에 끼워 넣는 데에는 성공했다. 요정상인의 목적은 나를 통해 세상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맞지만, 그 최종목적은…… 그 힘을 헥토에게 인계하는 것, 인가.”

이 부분이 과거 정시우가 파악하지 못했던 핵심이었다. 요정상인들을 상대로는 언제나 수상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제대로 의심을 한 적이 없지 않은가. 의심해 봤자 소용이 없다는 말로 스스로를 납득시킬 뿐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정답이었다. 헥토에게 직접 묻지 않는 한 요정상인들이 스파이라는 사실은 끝까지 몰랐을 것이다. 세리아는 자신이 얼마나 천문학적인 확률로 도청에 성공했는지 차마 짐작하지도 못할 것이다.

“잘했어, 세리아. 네 덕분에 마지막 복선까지 시원하게 파괴한 셈이 됐어.”

“칭찬으로 알아듣겠습니다.”

“당연히 칭찬이지.”

언제까지고, 어디까지고 끝없이 힘을 추구하는 헥토에게 하늘성이라는 시스템이 구축할 거대한 에너지가 탐스럽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의 목표는 처음부터 그것이었을 터다.

다른 신들이 아무리 자신을 넘고자 하든 그것이 가능할 리가 없다. 헥토는 신들의 전쟁 따위에는 애초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오직 정시우가 성장하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정시우가 탐스러운 힘과 함께 자신 앞에 나타나 주길 바랐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죄송합니다, 시우 님. 제 능력이 부족하여…….”

“아니, 널 탓하는 게 아니라 아둔한 내 머리를 탓하는 거야.”

그래도 그 덕에 확실히 알았다. 머리를 영 굴리지 못하는 자신을 대신해 머리를 굴려 줄(이번 건은 머리를 굴리기보다는 운이 좋았기 때문이었지만) 사람도 필요하다는 것을. 정시우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에 고소를 머금고는, 이내 세 명의 천사를 돌아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희는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너희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줄게.”

“결혼해 줘!”

“곁에 있을래!”

“제 소원은 언제나와 같습니다. 시우 님을 곁에서 보필하고 싶습니다.”

정시우는 우선 마리나의 소원을 가볍게 넘기고, 이서희와 세리아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솔직히 엄청나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덕에 자신이 해야 할 일도 새로이 깨달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 자신에게 있는 힘(그리고 아직 넘치도록 남은 신들의 사체)이 있다면 그녀들의 개성 넘치는 힘을 톡톡히 활용하도록 만들어 줄 수도 있었다.

“그래, 앞으로는 함께하자. 너흰 스스로 지옥에 뛰어든 거야. 후회하지 마.”

“물론이지!”

“결혼하자는 얘기는 아니니까요! 그 점 다들 분명히 알아 두시라구요!”

“그래그래, 내 사랑은 아린이밖에 없어요. 착하지, 진정해.”

“그르르르르르르.”

수아린이 실로 오랜만에 비스트 모드에 돌입했기에 정시우는 우선 수아린을 그루밍해 주기로 했다. 그와 동시에 마리나 일행을 자신의 지배 스킬의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로써 비로소 최종전을 위한 파티가 완성되었다.